[기자 눈Noon] ‘참사 11년’ KBS 전수 추적…청소년·어린이 피해자 가장 많았다

입력 2022.08.31 (12:48) 수정 2022.08.3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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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참사'로 공식 인정한 지 오늘(31일)로 꼭 11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판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3,400명이 넘습니다.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전수를 추적, 분석했습니다.

11년 동안 피해자들은 누구였는지,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KBS 재난미디어센터 이정은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해서는 계속 보도가 나왔는데, 전수를 분석한 건 처음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수 정도만 공식적으로 확인됐습니다.

KBS 취재진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입수하고, 두 달에 걸쳐 사망자와 생존자의 연령별, 피해 등급 등을 분석했습니다.

[앵커]

들여다 보니, 청소년, 어린이 피해가 가장 많았어요?

[기자]

네, 현재 정부가 공식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4,350명입니다.

이 중 사망자는 1,066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피해자 4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겁니다.

사망자를 연령별로 따져봤더니 60세 이상 고령층에 이어 10대 이하, 즉 청소년과 어린이 사망자가 205명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비율로 보면 5명 중 1명꼴인데요.

특히 영유아 사망자가 92%나 됐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피해에 취약했던 거로 보입니다.

[앵커]

사망자는 그렇고, 생존 피해자들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생존 피해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10대 이하 피해자가 1,220여 명인데, 전체 피해자의 40%에 육박합니다.

연령별로 보면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당시 판매된 제품 포장에서 '아이에게도 안심'이라고 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산모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많이 사용됐다는 게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앵커]

어린이와 청소년 피해가 가장 컸다는 건데, 피해 인정은 제대로 됐습니까?

[기자]

아직 피해 인정을 기다리는 10대 이하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생존자 중 피해 인정까지 걸린 시간이 평균 9개월 정도거든요.

하지만 길게는 5년이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와 청소년 670여 명은 아직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안타까운 건 이 중 138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채 피해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앵커]

지금은 특별법도 만들어졌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기자]

그렇긴 하지만, 현재 정부 지원은 치료비나 약값을 쓰고 청구하면 지원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가 집중된 연령층을 보면, 성장 과정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복합적인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KBS가 이번 취재 과정에서 접한 여러 피해자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어린 피해자들은 병원 진료 등을 이유로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따돌림을 겪거나 또, 학교를 아예 졸업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고요.

10대 후반 남학생의 경우, 곧 다가올 군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소극적인 치료비 지원에서 연령별 특성에 맞게 맞춤형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현재 법상 갱신이 가능하긴 하지만 피해 지원 기간이 10년으로 제한된 점도 어린 피해자들에게는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부 지원도 지원이지만, 결국,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기업들의 배·보상, 또는 지원이 중요한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네, 올 초 옥시와 애경이 조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사실상 모든 논의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옥시는 특히, 전체 분담금 9천240억 원 중 54%를 부담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주장이 합리적인지 따져봤습니다.

전체 피해자가 4,350명이죠.

이 가운데 옥시 제품만 썼거나, 다른 제품과 함께 옥시 제품을 쓴 피해자는 85.6%인 3,727명입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옥시를 얼마나 썼는지 살펴봤더니 913명이었는데요.

사망자 10명 중 8명이 넘습니다.

다른 회사 제품은 빼고 옥시 제품만 사용한 사망자만 봐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0명에 달합니다.

역시 조정위에서 빠진 애경의 경우 애경이 제조하거나 판매한 제품을 쓴 사용자는, 중복 사용을 포함해 전체 피해자의 34%나 됩니다.

이렇게 제품 사용 비중을 볼 때 옥시와 애경의 주장은 쉽게 납득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앵커]

그래서 옥시 본사에 직접 입장을 물어봤죠?

뭐라고 하던가요?

[기자]

그간의 취재 과정을 보면 한국 지사가 가진 권한이 많지 않습니다.

영국 본사에 질의서를 보낸 이유기도 한데요.

KBS는 지난 6월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질의서를 보냈는데요.

옥시는 이 가운데 네 차례 답변했는데, 짧게는 2줄, 길어야 7줄로 답했습니다.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 400여 명에게 이미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해 드렸지만 이 400명은 옥시를 사용한 피해자의 10% 수준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의지가 있는지, 다시 물었는데요.

이번에는 "2020년 특별법 개정으로 피해 구제 체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습니다.

[앵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떤 의미입니까?

[기자]

2년 전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 개정됐죠.

이를 계기로 피해자 인정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정된 피해자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1,231명 정도인데요.

옥시가 배상한 400여 명 외에 나머지 피해자들과, 이 추가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여부에 관해 유보적인 입장인 겁니다.

하지만 이 답변을 들은 피해자 대다수는 추가 피해자에 대해서는 책임질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앵커]

우리 정부나 국회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겁니까?

[기자]

애초에 제품 사용 허가를 낸 게 정부였고, 초기 조사 부실 논란도 있어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국회가 참사 6년 뒤에 만든 특별법도 결국 피해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피해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피해자와 기업 간 사회적 합의를 위해 조정위가 만들어졌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걸 민간에 맡겨뒀습니다.

최근 이 조정위마저 옥시와 애경이 발을 빼면서 파행을 겪고 있죠.

정부 개입 요구가 거세지면서, 최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피해자 단체들과 비공개로 만났고요.

국회도 다음 달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벌써 참사 11년이니까 더 늦어져서는 안 될 일이죠, 이번만큼은 해결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앵커]

이 기자, 잘 들었습니다.

영상편집:한미희/그래픽: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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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눈Noon] ‘참사 11년’ KBS 전수 추적…청소년·어린이 피해자 가장 많았다
    • 입력 2022-08-31 12:48:31
    • 수정2022-08-31 13: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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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참사'로 공식 인정한 지 오늘(31일)로 꼭 11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판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3,400명이 넘습니다.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전수를 추적, 분석했습니다.

11년 동안 피해자들은 누구였는지,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KBS 재난미디어센터 이정은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해서는 계속 보도가 나왔는데, 전수를 분석한 건 처음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수 정도만 공식적으로 확인됐습니다.

KBS 취재진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입수하고, 두 달에 걸쳐 사망자와 생존자의 연령별, 피해 등급 등을 분석했습니다.

[앵커]

들여다 보니, 청소년, 어린이 피해가 가장 많았어요?

[기자]

네, 현재 정부가 공식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4,350명입니다.

이 중 사망자는 1,066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피해자 4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겁니다.

사망자를 연령별로 따져봤더니 60세 이상 고령층에 이어 10대 이하, 즉 청소년과 어린이 사망자가 205명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비율로 보면 5명 중 1명꼴인데요.

특히 영유아 사망자가 92%나 됐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피해에 취약했던 거로 보입니다.

[앵커]

사망자는 그렇고, 생존 피해자들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생존 피해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10대 이하 피해자가 1,220여 명인데, 전체 피해자의 40%에 육박합니다.

연령별로 보면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당시 판매된 제품 포장에서 '아이에게도 안심'이라고 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산모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많이 사용됐다는 게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앵커]

어린이와 청소년 피해가 가장 컸다는 건데, 피해 인정은 제대로 됐습니까?

[기자]

아직 피해 인정을 기다리는 10대 이하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생존자 중 피해 인정까지 걸린 시간이 평균 9개월 정도거든요.

하지만 길게는 5년이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와 청소년 670여 명은 아직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안타까운 건 이 중 138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채 피해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앵커]

지금은 특별법도 만들어졌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기자]

그렇긴 하지만, 현재 정부 지원은 치료비나 약값을 쓰고 청구하면 지원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가 집중된 연령층을 보면, 성장 과정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복합적인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KBS가 이번 취재 과정에서 접한 여러 피해자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어린 피해자들은 병원 진료 등을 이유로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따돌림을 겪거나 또, 학교를 아예 졸업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고요.

10대 후반 남학생의 경우, 곧 다가올 군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소극적인 치료비 지원에서 연령별 특성에 맞게 맞춤형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현재 법상 갱신이 가능하긴 하지만 피해 지원 기간이 10년으로 제한된 점도 어린 피해자들에게는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부 지원도 지원이지만, 결국,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기업들의 배·보상, 또는 지원이 중요한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네, 올 초 옥시와 애경이 조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사실상 모든 논의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옥시는 특히, 전체 분담금 9천240억 원 중 54%를 부담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주장이 합리적인지 따져봤습니다.

전체 피해자가 4,350명이죠.

이 가운데 옥시 제품만 썼거나, 다른 제품과 함께 옥시 제품을 쓴 피해자는 85.6%인 3,727명입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옥시를 얼마나 썼는지 살펴봤더니 913명이었는데요.

사망자 10명 중 8명이 넘습니다.

다른 회사 제품은 빼고 옥시 제품만 사용한 사망자만 봐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0명에 달합니다.

역시 조정위에서 빠진 애경의 경우 애경이 제조하거나 판매한 제품을 쓴 사용자는, 중복 사용을 포함해 전체 피해자의 34%나 됩니다.

이렇게 제품 사용 비중을 볼 때 옥시와 애경의 주장은 쉽게 납득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앵커]

그래서 옥시 본사에 직접 입장을 물어봤죠?

뭐라고 하던가요?

[기자]

그간의 취재 과정을 보면 한국 지사가 가진 권한이 많지 않습니다.

영국 본사에 질의서를 보낸 이유기도 한데요.

KBS는 지난 6월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질의서를 보냈는데요.

옥시는 이 가운데 네 차례 답변했는데, 짧게는 2줄, 길어야 7줄로 답했습니다.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 400여 명에게 이미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해 드렸지만 이 400명은 옥시를 사용한 피해자의 10% 수준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의지가 있는지, 다시 물었는데요.

이번에는 "2020년 특별법 개정으로 피해 구제 체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습니다.

[앵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떤 의미입니까?

[기자]

2년 전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 개정됐죠.

이를 계기로 피해자 인정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정된 피해자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1,231명 정도인데요.

옥시가 배상한 400여 명 외에 나머지 피해자들과, 이 추가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여부에 관해 유보적인 입장인 겁니다.

하지만 이 답변을 들은 피해자 대다수는 추가 피해자에 대해서는 책임질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앵커]

우리 정부나 국회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겁니까?

[기자]

애초에 제품 사용 허가를 낸 게 정부였고, 초기 조사 부실 논란도 있어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국회가 참사 6년 뒤에 만든 특별법도 결국 피해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피해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피해자와 기업 간 사회적 합의를 위해 조정위가 만들어졌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걸 민간에 맡겨뒀습니다.

최근 이 조정위마저 옥시와 애경이 발을 빼면서 파행을 겪고 있죠.

정부 개입 요구가 거세지면서, 최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피해자 단체들과 비공개로 만났고요.

국회도 다음 달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벌써 참사 11년이니까 더 늦어져서는 안 될 일이죠, 이번만큼은 해결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앵커]

이 기자, 잘 들었습니다.

영상편집:한미희/그래픽: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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