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된 일제 신궁 잔재…철거 vs 존치 고민
입력 2022.09.13 (20:16)
수정 2022.09.1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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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30년대 말 일제가 부여 부소산성 일대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 들어보셨나요?
일본 패망으로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신궁터 아래에 만든 대규모 지하 굴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서영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37년 일제는 부여 부소산성 일원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결정합니다.
일본 메이지 신궁보다 큰 100만㎡ 규모로 신궁 가운데 최고인 관폐대사 등급이었습니다.
1939년 착공한 신궁 건설에는 연인원 9만 명이 동원됐습니다.
불리해지던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구현할 땅으로 부여를 택했던 것입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일본하고 백제는 굉장히 교류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이미 내선일체의 연고가 있는 땅이었다,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에."]
그러나 공사는 공정률 80% 상태에서 일본 패망과 함께 중단됐고, 철거 뒤 백제 충신을 기리는 삼충사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궁의 잔재가 있습니다.
바로 신궁 터 아래에 조성한 대규모 지하 굴입니다.
폭 1.89m에 높이 2.18m로 성인 2~3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고, 길이는 45m에 달합니다.
좌우대칭의 아치 형태에 당시로써는 최신 자재인 시멘트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유사시 대피 목적과 함께 귀빈들의 비밀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어떻게 보면 이게 비밀통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아마도 일본에서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 혹시 제관으로 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부여군은 신궁의 잔재인 지하굴 처리방안을 놓고, 2019년부터 2차례 용역까지 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하계현/부여군 백제왕도팀장 : "문화재 관련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고 주민 의견 수렴도 더 해보고 나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굴욕의 잔재를 철거할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지, 광복 80년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일제 청산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KBS 뉴스 서영준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
1930년대 말 일제가 부여 부소산성 일대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 들어보셨나요?
일본 패망으로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신궁터 아래에 만든 대규모 지하 굴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서영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37년 일제는 부여 부소산성 일원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결정합니다.
일본 메이지 신궁보다 큰 100만㎡ 규모로 신궁 가운데 최고인 관폐대사 등급이었습니다.
1939년 착공한 신궁 건설에는 연인원 9만 명이 동원됐습니다.
불리해지던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구현할 땅으로 부여를 택했던 것입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일본하고 백제는 굉장히 교류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이미 내선일체의 연고가 있는 땅이었다,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에."]
그러나 공사는 공정률 80% 상태에서 일본 패망과 함께 중단됐고, 철거 뒤 백제 충신을 기리는 삼충사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궁의 잔재가 있습니다.
바로 신궁 터 아래에 조성한 대규모 지하 굴입니다.
폭 1.89m에 높이 2.18m로 성인 2~3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고, 길이는 45m에 달합니다.
좌우대칭의 아치 형태에 당시로써는 최신 자재인 시멘트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유사시 대피 목적과 함께 귀빈들의 비밀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어떻게 보면 이게 비밀통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아마도 일본에서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 혹시 제관으로 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부여군은 신궁의 잔재인 지하굴 처리방안을 놓고, 2019년부터 2차례 용역까지 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하계현/부여군 백제왕도팀장 : "문화재 관련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고 주민 의견 수렴도 더 해보고 나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굴욕의 잔재를 철거할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지, 광복 80년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일제 청산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KBS 뉴스 서영준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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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2-09-13 22: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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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말 일제가 부여 부소산성 일대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 들어보셨나요?
일본 패망으로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신궁터 아래에 만든 대규모 지하 굴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서영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37년 일제는 부여 부소산성 일원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결정합니다.
일본 메이지 신궁보다 큰 100만㎡ 규모로 신궁 가운데 최고인 관폐대사 등급이었습니다.
1939년 착공한 신궁 건설에는 연인원 9만 명이 동원됐습니다.
불리해지던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구현할 땅으로 부여를 택했던 것입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일본하고 백제는 굉장히 교류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이미 내선일체의 연고가 있는 땅이었다,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에."]
그러나 공사는 공정률 80% 상태에서 일본 패망과 함께 중단됐고, 철거 뒤 백제 충신을 기리는 삼충사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궁의 잔재가 있습니다.
바로 신궁 터 아래에 조성한 대규모 지하 굴입니다.
폭 1.89m에 높이 2.18m로 성인 2~3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고, 길이는 45m에 달합니다.
좌우대칭의 아치 형태에 당시로써는 최신 자재인 시멘트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유사시 대피 목적과 함께 귀빈들의 비밀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어떻게 보면 이게 비밀통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아마도 일본에서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 혹시 제관으로 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부여군은 신궁의 잔재인 지하굴 처리방안을 놓고, 2019년부터 2차례 용역까지 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하계현/부여군 백제왕도팀장 : "문화재 관련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고 주민 의견 수렴도 더 해보고 나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굴욕의 잔재를 철거할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지, 광복 80년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일제 청산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KBS 뉴스 서영준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
1930년대 말 일제가 부여 부소산성 일대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 들어보셨나요?
일본 패망으로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신궁터 아래에 만든 대규모 지하 굴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서영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37년 일제는 부여 부소산성 일원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결정합니다.
일본 메이지 신궁보다 큰 100만㎡ 규모로 신궁 가운데 최고인 관폐대사 등급이었습니다.
1939년 착공한 신궁 건설에는 연인원 9만 명이 동원됐습니다.
불리해지던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구현할 땅으로 부여를 택했던 것입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일본하고 백제는 굉장히 교류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이미 내선일체의 연고가 있는 땅이었다,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에."]
그러나 공사는 공정률 80% 상태에서 일본 패망과 함께 중단됐고, 철거 뒤 백제 충신을 기리는 삼충사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궁의 잔재가 있습니다.
바로 신궁 터 아래에 조성한 대규모 지하 굴입니다.
폭 1.89m에 높이 2.18m로 성인 2~3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고, 길이는 45m에 달합니다.
좌우대칭의 아치 형태에 당시로써는 최신 자재인 시멘트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유사시 대피 목적과 함께 귀빈들의 비밀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어떻게 보면 이게 비밀통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아마도 일본에서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 혹시 제관으로 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부여군은 신궁의 잔재인 지하굴 처리방안을 놓고, 2019년부터 2차례 용역까지 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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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잔재를 철거할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지, 광복 80년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일제 청산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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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준 기자 twintw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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