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서 문화의 거목’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별세
입력 2022.09.14 (17:38)
수정 2022.09.14 (17: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고서 수집가로서 우리 책 문화를 널리 알려온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가 향년 86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1955년 광주고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일하며 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뒤 서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1959년 형편상 학업을 중단했지만, 서점 일은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63년 화봉문고의 전신인 ‘팬아메리칸 서비스’를 설립하며 외국의 학술 잡지나 서적,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1975년에는 독서 운동지 월간 ‘독서’를 발행하는 등 출판업도 겸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고인은 특히 국내 고서 문화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됩니다.
1982년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북 페어’를 열어 총 8차례 행사를 진행했고, 고인은 훗날 이 박람회를 계기로 고서 수집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고서동우회’, ‘한국고서협회’, ‘한국애서가클럽’ 등에서 활동하며 근현대 시집, 잡지 희귀본, 각종 초간본 등 다양한 고서를 수집했고, ‘고서 경매전’을 개최해 한국 고서 경매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2004년에는 화봉책박물관을 열어 책 문화를 알리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6일, 장지는 전남 담양 선산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고인은 1955년 광주고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일하며 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뒤 서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1959년 형편상 학업을 중단했지만, 서점 일은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63년 화봉문고의 전신인 ‘팬아메리칸 서비스’를 설립하며 외국의 학술 잡지나 서적,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1975년에는 독서 운동지 월간 ‘독서’를 발행하는 등 출판업도 겸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고인은 특히 국내 고서 문화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됩니다.
1982년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북 페어’를 열어 총 8차례 행사를 진행했고, 고인은 훗날 이 박람회를 계기로 고서 수집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고서동우회’, ‘한국고서협회’, ‘한국애서가클럽’ 등에서 활동하며 근현대 시집, 잡지 희귀본, 각종 초간본 등 다양한 고서를 수집했고, ‘고서 경매전’을 개최해 한국 고서 경매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2004년에는 화봉책박물관을 열어 책 문화를 알리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6일, 장지는 전남 담양 선산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한국 고서 문화의 거목’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별세
-
- 입력 2022-09-14 17:38:42
- 수정2022-09-14 17:53:32

국내 최고의 고서 수집가로서 우리 책 문화를 널리 알려온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가 향년 86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1955년 광주고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일하며 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뒤 서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1959년 형편상 학업을 중단했지만, 서점 일은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63년 화봉문고의 전신인 ‘팬아메리칸 서비스’를 설립하며 외국의 학술 잡지나 서적,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1975년에는 독서 운동지 월간 ‘독서’를 발행하는 등 출판업도 겸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고인은 특히 국내 고서 문화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됩니다.
1982년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북 페어’를 열어 총 8차례 행사를 진행했고, 고인은 훗날 이 박람회를 계기로 고서 수집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고서동우회’, ‘한국고서협회’, ‘한국애서가클럽’ 등에서 활동하며 근현대 시집, 잡지 희귀본, 각종 초간본 등 다양한 고서를 수집했고, ‘고서 경매전’을 개최해 한국 고서 경매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2004년에는 화봉책박물관을 열어 책 문화를 알리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6일, 장지는 전남 담양 선산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고인은 1955년 광주고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일하며 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뒤 서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1959년 형편상 학업을 중단했지만, 서점 일은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63년 화봉문고의 전신인 ‘팬아메리칸 서비스’를 설립하며 외국의 학술 잡지나 서적,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1975년에는 독서 운동지 월간 ‘독서’를 발행하는 등 출판업도 겸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고인은 특히 국내 고서 문화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됩니다.
1982년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북 페어’를 열어 총 8차례 행사를 진행했고, 고인은 훗날 이 박람회를 계기로 고서 수집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고서동우회’, ‘한국고서협회’, ‘한국애서가클럽’ 등에서 활동하며 근현대 시집, 잡지 희귀본, 각종 초간본 등 다양한 고서를 수집했고, ‘고서 경매전’을 개최해 한국 고서 경매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2004년에는 화봉책박물관을 열어 책 문화를 알리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6일, 장지는 전남 담양 선산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