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英 여왕 서거…왕실 위기의 시대 오나
입력 2022.09.16 (10:52)
수정 2022.09.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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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영국은 애도의 물결로 뒤덮혔습니다.
여왕은 한편으로는 영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입헌군주제의 상징이기도 했는데요.
구심점이 사라진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그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현대 군주,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기자]
네, 70년 넘도록 영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건 바로 그래서겠죠.
2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조지 6세가 갑자기 서거하면서 왕위에 오른 뒤, 평생 개인을 버리고 국가에 헌신하며 영국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필립공이 지난해 별세했을 때조차 코로나19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려고 외로이 앉아 있던 모습이 전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있죠.
여왕이 곧 영국 왕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런 왕실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영국에서는 군주제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공화주의 정치운동 단체인 '리퍼블릭'의 대변인은 "여왕 서거 이후 단체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민들의 군주제 지지율은 62%로, 10년 전 73%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연방 국가들 가운데서는 벌써 공화제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도 있다면서요?
[기자]
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 얘기인데요.
여왕 서거 사흘 만에 "3년 안에 공화국 전환 여부를 국민 투표에 부치겠다"고 정부가 직접 발표했습니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 식민지였던 56개 국가로 구성된 연합체를 말합니다.
이 가운데 영국 본토를 포함해 15개 국가를 여전히 영국 국왕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정치와는 별개인 상징적인 자리이기 하지만 여전히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인 겁니다.
대표적으로 호주와 캐나다 등이 있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우호 여론이 높았던 덕에 지금까진 이 체제가 유지됐지만, 여왕이 서거하자 군주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호주는 좌파 정당이자 여당인 노동당을 중심으로 공화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호주에서는 이미 1999년 공화제 전환 개헌안을 두고 국민 투표를 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부결됐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중앙정부가 여왕 장례식날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기업 단체와 일부 주 정부에서 경제적인 이유를 들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국 왕실이 존재적 위기를 맞고 있네요.
사실 21세기에도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한데요.
[기자]
네, 많은 왕실이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식민지가 너무 많아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로이터는 여왕 서거를 계기로 영국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국가들에서 노예제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윌리엄 당시 왕세손 부부가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3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마니 던칸-프라이스/자메이카 전 상원의원 : "우리가 군주제에 의해 약탈당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독립했습니다. 군주제는 오늘날 그 부의 혜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왕실의 위기는 영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의 인구정보 분석업체 '세계인구리뷰'의 조사를 보면, 영연방 소속 입헌군주제 국가 15곳을 포함해 왕실을 가진 국가는 42곳에 달하는데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 속에 많은 왕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한 래퍼가 노래로 왕실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징역 15년형을 받을 만큼 강력한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서도 최근 왕실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앵커]
왕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기자]
그 존재 의미를 증명하는 게 새 국왕 찰스 3세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일텐데요.
군주제 국가에서 왕실이 비판받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금이나 호화 생활, 권한 남용 등으로 국왕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은 즉위식에서부터 책상 위를 치우라며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이 됐는데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변화하는 왕실만이 존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영국은 애도의 물결로 뒤덮혔습니다.
여왕은 한편으로는 영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입헌군주제의 상징이기도 했는데요.
구심점이 사라진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그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현대 군주,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기자]
네, 70년 넘도록 영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건 바로 그래서겠죠.
2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조지 6세가 갑자기 서거하면서 왕위에 오른 뒤, 평생 개인을 버리고 국가에 헌신하며 영국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필립공이 지난해 별세했을 때조차 코로나19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려고 외로이 앉아 있던 모습이 전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있죠.
여왕이 곧 영국 왕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런 왕실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영국에서는 군주제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공화주의 정치운동 단체인 '리퍼블릭'의 대변인은 "여왕 서거 이후 단체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민들의 군주제 지지율은 62%로, 10년 전 73%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연방 국가들 가운데서는 벌써 공화제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도 있다면서요?
[기자]
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 얘기인데요.
여왕 서거 사흘 만에 "3년 안에 공화국 전환 여부를 국민 투표에 부치겠다"고 정부가 직접 발표했습니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 식민지였던 56개 국가로 구성된 연합체를 말합니다.
이 가운데 영국 본토를 포함해 15개 국가를 여전히 영국 국왕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정치와는 별개인 상징적인 자리이기 하지만 여전히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인 겁니다.
대표적으로 호주와 캐나다 등이 있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우호 여론이 높았던 덕에 지금까진 이 체제가 유지됐지만, 여왕이 서거하자 군주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호주는 좌파 정당이자 여당인 노동당을 중심으로 공화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호주에서는 이미 1999년 공화제 전환 개헌안을 두고 국민 투표를 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부결됐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중앙정부가 여왕 장례식날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기업 단체와 일부 주 정부에서 경제적인 이유를 들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국 왕실이 존재적 위기를 맞고 있네요.
사실 21세기에도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한데요.
[기자]
네, 많은 왕실이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식민지가 너무 많아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로이터는 여왕 서거를 계기로 영국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국가들에서 노예제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윌리엄 당시 왕세손 부부가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3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마니 던칸-프라이스/자메이카 전 상원의원 : "우리가 군주제에 의해 약탈당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독립했습니다. 군주제는 오늘날 그 부의 혜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왕실의 위기는 영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의 인구정보 분석업체 '세계인구리뷰'의 조사를 보면, 영연방 소속 입헌군주제 국가 15곳을 포함해 왕실을 가진 국가는 42곳에 달하는데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 속에 많은 왕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한 래퍼가 노래로 왕실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징역 15년형을 받을 만큼 강력한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서도 최근 왕실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앵커]
왕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기자]
그 존재 의미를 증명하는 게 새 국왕 찰스 3세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일텐데요.
군주제 국가에서 왕실이 비판받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금이나 호화 생활, 권한 남용 등으로 국왕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은 즉위식에서부터 책상 위를 치우라며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이 됐는데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변화하는 왕실만이 존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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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9-16 10:52:03
- 수정2022-09-16 10:59:47
[앵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영국은 애도의 물결로 뒤덮혔습니다.
여왕은 한편으로는 영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입헌군주제의 상징이기도 했는데요.
구심점이 사라진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그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현대 군주,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기자]
네, 70년 넘도록 영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건 바로 그래서겠죠.
2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조지 6세가 갑자기 서거하면서 왕위에 오른 뒤, 평생 개인을 버리고 국가에 헌신하며 영국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필립공이 지난해 별세했을 때조차 코로나19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려고 외로이 앉아 있던 모습이 전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있죠.
여왕이 곧 영국 왕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런 왕실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영국에서는 군주제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공화주의 정치운동 단체인 '리퍼블릭'의 대변인은 "여왕 서거 이후 단체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민들의 군주제 지지율은 62%로, 10년 전 73%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연방 국가들 가운데서는 벌써 공화제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도 있다면서요?
[기자]
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 얘기인데요.
여왕 서거 사흘 만에 "3년 안에 공화국 전환 여부를 국민 투표에 부치겠다"고 정부가 직접 발표했습니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 식민지였던 56개 국가로 구성된 연합체를 말합니다.
이 가운데 영국 본토를 포함해 15개 국가를 여전히 영국 국왕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정치와는 별개인 상징적인 자리이기 하지만 여전히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인 겁니다.
대표적으로 호주와 캐나다 등이 있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우호 여론이 높았던 덕에 지금까진 이 체제가 유지됐지만, 여왕이 서거하자 군주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호주는 좌파 정당이자 여당인 노동당을 중심으로 공화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호주에서는 이미 1999년 공화제 전환 개헌안을 두고 국민 투표를 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부결됐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중앙정부가 여왕 장례식날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기업 단체와 일부 주 정부에서 경제적인 이유를 들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국 왕실이 존재적 위기를 맞고 있네요.
사실 21세기에도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한데요.
[기자]
네, 많은 왕실이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식민지가 너무 많아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로이터는 여왕 서거를 계기로 영국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국가들에서 노예제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윌리엄 당시 왕세손 부부가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3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마니 던칸-프라이스/자메이카 전 상원의원 : "우리가 군주제에 의해 약탈당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독립했습니다. 군주제는 오늘날 그 부의 혜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왕실의 위기는 영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의 인구정보 분석업체 '세계인구리뷰'의 조사를 보면, 영연방 소속 입헌군주제 국가 15곳을 포함해 왕실을 가진 국가는 42곳에 달하는데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 속에 많은 왕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한 래퍼가 노래로 왕실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징역 15년형을 받을 만큼 강력한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서도 최근 왕실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앵커]
왕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기자]
그 존재 의미를 증명하는 게 새 국왕 찰스 3세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일텐데요.
군주제 국가에서 왕실이 비판받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금이나 호화 생활, 권한 남용 등으로 국왕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은 즉위식에서부터 책상 위를 치우라며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이 됐는데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변화하는 왕실만이 존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영국은 애도의 물결로 뒤덮혔습니다.
여왕은 한편으로는 영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입헌군주제의 상징이기도 했는데요.
구심점이 사라진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그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현대 군주,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기자]
네, 70년 넘도록 영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건 바로 그래서겠죠.
2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조지 6세가 갑자기 서거하면서 왕위에 오른 뒤, 평생 개인을 버리고 국가에 헌신하며 영국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 필립공이 지난해 별세했을 때조차 코로나19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려고 외로이 앉아 있던 모습이 전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있죠.
여왕이 곧 영국 왕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런 왕실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영국에서는 군주제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공화주의 정치운동 단체인 '리퍼블릭'의 대변인은 "여왕 서거 이후 단체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민들의 군주제 지지율은 62%로, 10년 전 73%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연방 국가들 가운데서는 벌써 공화제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도 있다면서요?
[기자]
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 얘기인데요.
여왕 서거 사흘 만에 "3년 안에 공화국 전환 여부를 국민 투표에 부치겠다"고 정부가 직접 발표했습니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 식민지였던 56개 국가로 구성된 연합체를 말합니다.
이 가운데 영국 본토를 포함해 15개 국가를 여전히 영국 국왕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정치와는 별개인 상징적인 자리이기 하지만 여전히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인 겁니다.
대표적으로 호주와 캐나다 등이 있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우호 여론이 높았던 덕에 지금까진 이 체제가 유지됐지만, 여왕이 서거하자 군주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호주는 좌파 정당이자 여당인 노동당을 중심으로 공화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호주에서는 이미 1999년 공화제 전환 개헌안을 두고 국민 투표를 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부결됐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중앙정부가 여왕 장례식날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기업 단체와 일부 주 정부에서 경제적인 이유를 들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영국 왕실이 존재적 위기를 맞고 있네요.
사실 21세기에도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한데요.
[기자]
네, 많은 왕실이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식민지가 너무 많아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로이터는 여왕 서거를 계기로 영국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국가들에서 노예제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윌리엄 당시 왕세손 부부가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3국을 방문했을 때, 관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마니 던칸-프라이스/자메이카 전 상원의원 : "우리가 군주제에 의해 약탈당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독립했습니다. 군주제는 오늘날 그 부의 혜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왕실의 위기는 영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의 인구정보 분석업체 '세계인구리뷰'의 조사를 보면, 영연방 소속 입헌군주제 국가 15곳을 포함해 왕실을 가진 국가는 42곳에 달하는데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 속에 많은 왕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한 래퍼가 노래로 왕실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왕실을 모독하면 최고 징역 15년형을 받을 만큼 강력한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서도 최근 왕실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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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지금처럼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기자]
그 존재 의미를 증명하는 게 새 국왕 찰스 3세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일텐데요.
군주제 국가에서 왕실이 비판받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금이나 호화 생활, 권한 남용 등으로 국왕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은 즉위식에서부터 책상 위를 치우라며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이 됐는데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변화하는 왕실만이 존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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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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