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헝가리 “낙태 전 태아 심장소리 들어라”…낙태와 빈곤

입력 2022.09.19 (10:55) 수정 2022.09.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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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헝가리에서 임신부가 낙태를 하려면 먼저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결정하도록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앞서 미국에선 대법원이 낙태권을 폐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낙태권 문제가 선거 판세에까지 적지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어야만 낙태를 허용해준다니 좀 놀라운데요.

[기자]

현재 헝가리는 임신 12주까지 낙태가 허용되고, 그 뒤로는 건강상의 이유 등이 있어야 가능한데요.

앞으로는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제출해야만 낙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지시각 14일 헝가리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공표하면서, "임신부는 더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도라 듀로/헝가리 극우 정치인 : "우리의 제안은 산모가 (낙태) 시행 전에 아이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산모를) 압박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아이의 생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더타임스는 극우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관련 법안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앵커]

낙태율을 최대한 낮춰보려고 하는 걸텐데, 낙태를 원하는 임신부가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고 결정을 바꾸게 될까요?

[기자]

헝가리 현지에서도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반발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효성은 없고 임신 유지가 어려운 여성에게 트라우마만 악화시킨다는 겁니다.

[헝가리 여성/자녀 있음 : "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미 낙태를 선택하기로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완전히 불필요하고 여성을 괴롭히기만 할 뿐입니다."]

지난달 헝가리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가 임신 20주차 이전에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행령이 헝가리 국민 여론에 반하는 셈입니다.

반면 헝가리의 보수 성향 국회의원들은 이 제도가 '생명의 기회'라며 반기고 있습니다.

[앵커]

낙태 이슈는 찬반 입장 차이도 워낙 크다보니 어느 사회든 쉽게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기자]

네, 사실 태아 심장 소리를 들었냐 안 들었냐로 따지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죠.

지난 6월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로 떠들썩한 미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BBC는 최근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미국 여성들이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멕시코와 가까운 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서 찾아가는 여성이 특히 많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멕시코에서는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됐지만,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법을 시행하는 지역입니다.

정부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수술받은 여성을 처벌한다고 해도, 낙태 행위 자체를 막기는 역부족인 셈입니다.

[앵커]

태아의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냐 이런 논의도 중요하겠지만, 여성들이 왜 낙태를 선택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기자]

네,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낙태권을 옹호하든 반대하든 낙태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겁니다.

로이터는 2018년 미국 내에서 낙태 수술을 받았거나 시도한 여성 8백여 명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인용 보도했는데요.

해당 연구진이 5년 동안 이들 여성을 추적 관찰한 결과, 낙태를 원하지만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낙태를 한 여성에 비해 4년 뒤 연방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4배나 높았습니다.

연방 빈곤선은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2013년 미국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결과가 나왔는데요.

낙태를 원하는 여성 950여 명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1위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40%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단순히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경우는 3%에 불과했습니다.

[앵커]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 개개인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생활비나 양육비처럼 현실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네요.

[기자]

네, 흔히 낙태를 한 여성은 모성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 지곤 하는데요.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29%는 현재 키우고 있는 자녀에게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태아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없어서라고 답한 경우도 있었고요.

연구진은 낙태와 모성의 교차점이라고 설명하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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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돋보기] 헝가리 “낙태 전 태아 심장소리 들어라”…낙태와 빈곤
    • 입력 2022-09-19 10:54:59
    • 수정2022-09-19 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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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헝가리에서 임신부가 낙태를 하려면 먼저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결정하도록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앞서 미국에선 대법원이 낙태권을 폐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낙태권 문제가 선거 판세에까지 적지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어야만 낙태를 허용해준다니 좀 놀라운데요.

[기자]

현재 헝가리는 임신 12주까지 낙태가 허용되고, 그 뒤로는 건강상의 이유 등이 있어야 가능한데요.

앞으로는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제출해야만 낙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지시각 14일 헝가리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공표하면서, "임신부는 더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도라 듀로/헝가리 극우 정치인 : "우리의 제안은 산모가 (낙태) 시행 전에 아이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산모를) 압박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아이의 생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더타임스는 극우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관련 법안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앵커]

낙태율을 최대한 낮춰보려고 하는 걸텐데, 낙태를 원하는 임신부가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고 결정을 바꾸게 될까요?

[기자]

헝가리 현지에서도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반발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효성은 없고 임신 유지가 어려운 여성에게 트라우마만 악화시킨다는 겁니다.

[헝가리 여성/자녀 있음 : "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미 낙태를 선택하기로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완전히 불필요하고 여성을 괴롭히기만 할 뿐입니다."]

지난달 헝가리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가 임신 20주차 이전에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행령이 헝가리 국민 여론에 반하는 셈입니다.

반면 헝가리의 보수 성향 국회의원들은 이 제도가 '생명의 기회'라며 반기고 있습니다.

[앵커]

낙태 이슈는 찬반 입장 차이도 워낙 크다보니 어느 사회든 쉽게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기자]

네, 사실 태아 심장 소리를 들었냐 안 들었냐로 따지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죠.

지난 6월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로 떠들썩한 미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BBC는 최근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미국 여성들이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멕시코와 가까운 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서 찾아가는 여성이 특히 많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멕시코에서는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됐지만,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법을 시행하는 지역입니다.

정부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수술받은 여성을 처벌한다고 해도, 낙태 행위 자체를 막기는 역부족인 셈입니다.

[앵커]

태아의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냐 이런 논의도 중요하겠지만, 여성들이 왜 낙태를 선택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기자]

네,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낙태권을 옹호하든 반대하든 낙태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겁니다.

로이터는 2018년 미국 내에서 낙태 수술을 받았거나 시도한 여성 8백여 명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인용 보도했는데요.

해당 연구진이 5년 동안 이들 여성을 추적 관찰한 결과, 낙태를 원하지만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낙태를 한 여성에 비해 4년 뒤 연방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4배나 높았습니다.

연방 빈곤선은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2013년 미국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결과가 나왔는데요.

낙태를 원하는 여성 950여 명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1위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40%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단순히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경우는 3%에 불과했습니다.

[앵커]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 개개인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생활비나 양육비처럼 현실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네요.

[기자]

네, 흔히 낙태를 한 여성은 모성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 지곤 하는데요.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29%는 현재 키우고 있는 자녀에게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태아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없어서라고 답한 경우도 있었고요.

연구진은 낙태와 모성의 교차점이라고 설명하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촌 돋보기 황경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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