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아바타 탈 쓴 악마…메타버스에서도 ‘온라인 그루밍’
입력 2022.09.20 (07:00)
수정 2022.09.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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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아직은 낯선 분들이 많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그 이상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버스(verse)가 합쳐진 말입니다.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가 가상의 공간에서 일상 생활이나 경제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는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제트에서 운영하는 '제페토'가 있습니다. 지난 3월에 글로벌 누적 가입자가 3억 명을 넘었다고 발표하는 등 급성장 중인 플랫폼입니다.
■"16살 서닝이에요"…"자위행위 가르쳐 줄까?"
취재진은 16살 여성 청소년 캐릭터, 서닝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의상을 입고, 작은 얼굴과 긴 다리, 큰 눈 등을 구매해 아바타를 꾸몄습니다. 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아바타를 꾸미자 '예쁘다', '매력적이다'라는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자신을 30대 남성이라고 밝힌 '프렌'이 서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실제 30대 남성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프렌은 다정한 목소리로 '오빠에게 반말을 하라'며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예쁘다, 보고 싶다'를 거쳐 사귀자고 했습니다. 프렌의 아바타는 서닝의 아바타에게 누우라고 하고 그 위에 걸터앉아 이상한 자세를 연출하며 야한 농담을 던지더니, 사귀는 사이니까 괜찮다며 자위행위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성적인 얘기를 시작하고 행위를 유도하는 이 익숙한 과정을 취재진은 한 달여 전에도 보았습니다. 바로 8월 2일 KBS 1TV에서 방송한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 편에서입니다.
■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범행 수법 똑같아"
당시 <너를 사랑해> 편에는 '우쭈쭈'가 등장했습니다. 채팅에서 만난 13살 아이에게 '하늘만큼 사랑한다'며 노출 사진을 보내달라, 뽀뽀해달라, 첫 성관계는 내가 해주겠다는 등 망언을 쏟아낸 인물입니다.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프렌과 우쭈쭈가 아이에게 성적인 얘기를 꺼내는 방식과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이미 퍼져 있습니다.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가 하나 둘 바깥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진이 접속한 제페토의 경우, 아바타를 이용한 성추행뿐 아니라 다른 매체로 범죄 행위가 확장되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제페토에서 만남을 시작으로 SNS 메시지, 영상통화 등으로 플랫폼을 옮겨가며 '온라인 그루밍'이나 '성 착취' 행위들이 이어지는 겁니다.
이명화/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 범죄패턴은 똑같습니다. 정말 똑같습니다. 아동 성착취를 할 수 있도록 상당히 유용한 시스템으로 구축을 하고 있다, 아동 성착취, 성폭력이 발생하는 걸 분명히 이 랜덤 채팅의 시스템 업자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걸 계속 방치하고 있는 거로 봤을 때, 예전에 성매매 알선을 하던 보도방이라든지 뭐 이런 집단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봐요. |
■ 우쭈쭈는 어디에나 있다…"그들이 두려워할 수 있도록"
방송이 나간 후에도 '미성년자'로 설정했던 취재진의 휴대전화에는 끝없이 연락이 왔습니다.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활동하는 커뮤니티, SNS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수많은 우쭈쭈와 프렌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범죄 피해 아동을 변호하던 한 변호사는 방송을 보고 취재진에게 이런 말을 전해왔습니다.
"아마 우쭈쭈는 그냥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남들 다하는데 괜히 나만 걸려가지고. 잡혀도 세게 처벌 안 받을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나쁜 사람 많으니까 조심해."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나쁜 놈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그들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지라도 제대로 얘기해주면 좋은데, 어른들은 아이들과 '성'에 대한 대화 자체를 꺼립니다. 학교 성교육은 '성폭행 피해자 되지 마, 가해하지 마'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참혹한 현실을 '내 이야기', '내 아이 이야기'가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9월 20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2…거미줄 그루밍> 편 보시며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 https://youtu.be/0GHauQ0yIz8
홈페이지 https://program.kbs.co.kr/1tv/news/sisachang/pc/index.html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hangkbs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2… 거미줄 그루밍> KBS1TV 9월 20일(화) 밤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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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9-20 07:00:13
- 수정2022-09-20 08:37:22
메타버스, 아직은 낯선 분들이 많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그 이상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버스(verse)가 합쳐진 말입니다.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가 가상의 공간에서 일상 생활이나 경제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는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제트에서 운영하는 '제페토'가 있습니다. 지난 3월에 글로벌 누적 가입자가 3억 명을 넘었다고 발표하는 등 급성장 중인 플랫폼입니다.
■"16살 서닝이에요"…"자위행위 가르쳐 줄까?"
취재진은 16살 여성 청소년 캐릭터, 서닝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의상을 입고, 작은 얼굴과 긴 다리, 큰 눈 등을 구매해 아바타를 꾸몄습니다. 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아바타를 꾸미자 '예쁘다', '매력적이다'라는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자신을 30대 남성이라고 밝힌 '프렌'이 서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실제 30대 남성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프렌은 다정한 목소리로 '오빠에게 반말을 하라'며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예쁘다, 보고 싶다'를 거쳐 사귀자고 했습니다. 프렌의 아바타는 서닝의 아바타에게 누우라고 하고 그 위에 걸터앉아 이상한 자세를 연출하며 야한 농담을 던지더니, 사귀는 사이니까 괜찮다며 자위행위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성적인 얘기를 시작하고 행위를 유도하는 이 익숙한 과정을 취재진은 한 달여 전에도 보았습니다. 바로 8월 2일 KBS 1TV에서 방송한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 편에서입니다.
■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범행 수법 똑같아"
당시 <너를 사랑해> 편에는 '우쭈쭈'가 등장했습니다. 채팅에서 만난 13살 아이에게 '하늘만큼 사랑한다'며 노출 사진을 보내달라, 뽀뽀해달라, 첫 성관계는 내가 해주겠다는 등 망언을 쏟아낸 인물입니다.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프렌과 우쭈쭈가 아이에게 성적인 얘기를 꺼내는 방식과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이미 퍼져 있습니다.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가 하나 둘 바깥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진이 접속한 제페토의 경우, 아바타를 이용한 성추행뿐 아니라 다른 매체로 범죄 행위가 확장되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제페토에서 만남을 시작으로 SNS 메시지, 영상통화 등으로 플랫폼을 옮겨가며 '온라인 그루밍'이나 '성 착취' 행위들이 이어지는 겁니다.
이명화/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 범죄패턴은 똑같습니다. 정말 똑같습니다. 아동 성착취를 할 수 있도록 상당히 유용한 시스템으로 구축을 하고 있다, 아동 성착취, 성폭력이 발생하는 걸 분명히 이 랜덤 채팅의 시스템 업자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걸 계속 방치하고 있는 거로 봤을 때, 예전에 성매매 알선을 하던 보도방이라든지 뭐 이런 집단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봐요. |
■ 우쭈쭈는 어디에나 있다…"그들이 두려워할 수 있도록"
방송이 나간 후에도 '미성년자'로 설정했던 취재진의 휴대전화에는 끝없이 연락이 왔습니다.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활동하는 커뮤니티, SNS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수많은 우쭈쭈와 프렌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범죄 피해 아동을 변호하던 한 변호사는 방송을 보고 취재진에게 이런 말을 전해왔습니다.
"아마 우쭈쭈는 그냥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남들 다하는데 괜히 나만 걸려가지고. 잡혀도 세게 처벌 안 받을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나쁜 사람 많으니까 조심해."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나쁜 놈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그들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지라도 제대로 얘기해주면 좋은데, 어른들은 아이들과 '성'에 대한 대화 자체를 꺼립니다. 학교 성교육은 '성폭행 피해자 되지 마, 가해하지 마'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참혹한 현실을 '내 이야기', '내 아이 이야기'가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9월 20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2…거미줄 그루밍> 편 보시며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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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기자 peace100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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