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이란 넘어 전 세계로

입력 2022.09.29 (10:51) 수정 2022.09.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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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슬람 여성들의 머리와 목 등을 가리는 전통 의상 '히잡'.

그런데 이란에서 이 '히잡'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이제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지구촌 돋보기' 홍석우 기자와 짚어봅니다.

'히잡 의문사 사건'이 반정부 시위로까지 이어졌다고요?

[기자]

때는 지난 1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진 속 여성 마흐사 아미니, 올해 22살인데요.

가족과 테헤란에 왔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의문사합니다.

경찰 조사를 받다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는데요.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폭력은 없었다, 심장마비가 사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진압봉으로 폭행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유족들은 숨진 여성이 심장질환을 앓은 적이 없고, 멍 자국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반정부 시위가 17일 장례식 후에 시작됐다고 들었는데요.

[기자]

네, 초기에는 젊은 여성들을 주축으로 히잡 강제 착용 반대, 그리고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가세했고, 노동자, 부유층, 유명인들로까지 번졌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는 SNS를 통해 날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모이고 있는데요.

연일 규모가 커져 현재는 이란 내 80여 개 도시로까지 확산했습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독재자에게 죽음을!"]

여기서 독재자란 3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83살의 최고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말하는 건데요.

이슬람 신정 일치 국가 이란에서 지도자에 대한 퇴진 요구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앵커]

그런데요, 히잡을 제대로 안 썼기로서니 경찰에 체포돼서 죽기까지 해야 하나요?

[기자]

히잡은 이슬람의 오랜 관습이죠.

이란에선 1979년 미국에 우호적인 왕정이 몰락한 이후에 법으로 강제화됐습니다.

이란에서 여성이 히잡을 불태우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엄연한 불법이고요.

9살 이상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합니다.

여성의 복장을 단속하는 경찰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이른바 '도덕 경찰'입니다.

'도덕 경찰'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많이 보이진 않는지, 옷이 몸에 딱 붙진 않는지 등을 감시합니다.

적발되면 최대 60일까지 구금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구타나 감금 등 과잉 단속 논란이 이어져 왔는데요.

이번 시위는 그동안 쌓여온 히잡 강제 착용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가르 아미니/이란계 미국인 : "이란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란을 떠나고 있어요."]

[앵커]

그런데 대규모 시위로까지 번진 이유는 뭡니까?

[기자]

우선 강경 진압입니다.

시위가 확산하자 이란 당국은 인터넷을 차단하고 총과 최루탄 등으로 무력 진압하고 있는데요.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지금까지 40여 명이 숨지고 천2백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소 76명이 사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가 확산한 배경에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율법 학자인 그는 지난해 집권 이후 히잡 착용 규정을 강화하고 대규모 사형 집행을 하는 등 보수 색채를 더 강하게 입히려 했는데요.

개혁과 개방에 부정적인 지도부가 장기 집권하면서 이란 경제는 수십 년 동안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핵 합의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갈등으로 경제 제재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부족 문제 등에 시달려 왔는데요.

최근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50%를 넘었습니다.

이번 시위는 20대 청년들이 주축이지만, 기성세대와 유명인들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습니다.

[나자닌 보니아디/영국계 이란인 배우 : "이란 여성들이 처음으로 히잡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2019년처럼 벗고 흔드는 걸 넘어선 겁니다. 자유를 외치며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앵커]

국제 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먼저 인권 문제를 놓고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연대 시위가 확산하고 있고요.

프랑스 파리에선 에펠탑 맞은편 광장에 4천여 명이 모여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캐나다와 호주, 이라크 등 세계 곳곳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요.

유럽연합과 캐나다 등은 유혈 진압을 두고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고,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까지 가세해 이란 정부의 인터넷 차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위대에 자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시위는 1979년 이란의 친미 왕정이 몰락한 이후에 들어선 이슬람 국가 체제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것으로도 풀이되고 있습니다.

[앵커]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홍석우 기자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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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돋보기]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이란 넘어 전 세계로
    • 입력 2022-09-29 10:51:15
    • 수정2022-09-29 11: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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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슬람 여성들의 머리와 목 등을 가리는 전통 의상 '히잡'.

그런데 이란에서 이 '히잡'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이제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지구촌 돋보기' 홍석우 기자와 짚어봅니다.

'히잡 의문사 사건'이 반정부 시위로까지 이어졌다고요?

[기자]

때는 지난 1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진 속 여성 마흐사 아미니, 올해 22살인데요.

가족과 테헤란에 왔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의문사합니다.

경찰 조사를 받다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는데요.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폭력은 없었다, 심장마비가 사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진압봉으로 폭행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유족들은 숨진 여성이 심장질환을 앓은 적이 없고, 멍 자국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반정부 시위가 17일 장례식 후에 시작됐다고 들었는데요.

[기자]

네, 초기에는 젊은 여성들을 주축으로 히잡 강제 착용 반대, 그리고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가세했고, 노동자, 부유층, 유명인들로까지 번졌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는 SNS를 통해 날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모이고 있는데요.

연일 규모가 커져 현재는 이란 내 80여 개 도시로까지 확산했습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독재자에게 죽음을!"]

여기서 독재자란 3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83살의 최고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말하는 건데요.

이슬람 신정 일치 국가 이란에서 지도자에 대한 퇴진 요구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앵커]

그런데요, 히잡을 제대로 안 썼기로서니 경찰에 체포돼서 죽기까지 해야 하나요?

[기자]

히잡은 이슬람의 오랜 관습이죠.

이란에선 1979년 미국에 우호적인 왕정이 몰락한 이후에 법으로 강제화됐습니다.

이란에서 여성이 히잡을 불태우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엄연한 불법이고요.

9살 이상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합니다.

여성의 복장을 단속하는 경찰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이른바 '도덕 경찰'입니다.

'도덕 경찰'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많이 보이진 않는지, 옷이 몸에 딱 붙진 않는지 등을 감시합니다.

적발되면 최대 60일까지 구금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구타나 감금 등 과잉 단속 논란이 이어져 왔는데요.

이번 시위는 그동안 쌓여온 히잡 강제 착용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가르 아미니/이란계 미국인 : "이란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란을 떠나고 있어요."]

[앵커]

그런데 대규모 시위로까지 번진 이유는 뭡니까?

[기자]

우선 강경 진압입니다.

시위가 확산하자 이란 당국은 인터넷을 차단하고 총과 최루탄 등으로 무력 진압하고 있는데요.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지금까지 40여 명이 숨지고 천2백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소 76명이 사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가 확산한 배경에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율법 학자인 그는 지난해 집권 이후 히잡 착용 규정을 강화하고 대규모 사형 집행을 하는 등 보수 색채를 더 강하게 입히려 했는데요.

개혁과 개방에 부정적인 지도부가 장기 집권하면서 이란 경제는 수십 년 동안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핵 합의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갈등으로 경제 제재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부족 문제 등에 시달려 왔는데요.

최근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50%를 넘었습니다.

이번 시위는 20대 청년들이 주축이지만, 기성세대와 유명인들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습니다.

[나자닌 보니아디/영국계 이란인 배우 : "이란 여성들이 처음으로 히잡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2019년처럼 벗고 흔드는 걸 넘어선 겁니다. 자유를 외치며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앵커]

국제 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먼저 인권 문제를 놓고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연대 시위가 확산하고 있고요.

프랑스 파리에선 에펠탑 맞은편 광장에 4천여 명이 모여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캐나다와 호주, 이라크 등 세계 곳곳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요.

유럽연합과 캐나다 등은 유혈 진압을 두고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고,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까지 가세해 이란 정부의 인터넷 차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위대에 자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시위는 1979년 이란의 친미 왕정이 몰락한 이후에 들어선 이슬람 국가 체제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것으로도 풀이되고 있습니다.

[앵커]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홍석우 기자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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