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론스타ISDS]⑫ 판정원문, “금융당국, 재량권 남용·위법·사익 추구”

입력 2022.09.29 (17:40) 수정 2022.09.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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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금융위원회가 법이 정한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정문에 적시했습니다. 금융위의 행위는 감독 당국으로서 의무보다 론스타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을 피하려는 조직의 이익이 목적이었고, 이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이 정한 투자자에 대한 공평·공정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중재판정부는 판단했습니다.

■ ”금융위 조직의 이해 · 이익이 목적”

법무부가 28일 공개한 론스타-한국정부 간 ISDS(국제투자분쟁) 판정원문에서 중재판정부는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 매매 가격 인하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가격 개입은 재량권을 벗어난 위법행위라고 봤습니다.

판정문에서 확인된 결론은 이렇습니다.

론스타-하나금융 간 ISDS 판정문

- 금융위원회가 2011년 가을, 하나금융의 인수 승인을 해주지 않았는데 이는 “먹튀(eat and run)”에서 더 나가 “속튀(cheat and run)”로 불리는 론스타에 대한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

- 금융위는 법이 정한 권한보다 조직의 이익을 앞세워 재량권을 남용

- 금융위의 위법행위는 투자 조약상 공정· 공평 의무를 위반

- 론스타의 위법 행위도 손해에 기여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위가 조직의 이해관계를 쫓느라 주어진 권한을 넘어 부당한 행위를 했고, 그것이 국민 세금으로 론스타에 배상금을 물게 된 원인이라는 게 판정요지” 라고 설명했습니다.

송기호 민변 전 국제통상위원장은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킨 것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비난을 벗어나려는 조직 자체의 이기주의 때문에 모순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 판정부의 결론” 이라고 해석했습니다.


■ ICSID, “정부 개입 안 해” 하나금융 증언 기각

ICSID 중재판정부가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가격협상에 금융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판단한 증거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됩니다.

우선,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유죄로 최종 확정된 뒤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 회장이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보낸 두 번의 편지입니다.

김승유 회장은 2011년 10월 28일과 11월 11일 그레이켄 회장에게 잇따라 편지를 보냅니다. 대주주로서 적격성을 상실한 론스타에 대해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노동조합, 시민운동가, 정치인들의 여론이 있다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려면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김승유 회장은 ICSID 증인 신문에서 이 제안에 이르기까지 금융당국과 상의하거나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중재판정부는 이 증언을 기각했습니다.

두 번째 증거는 하나금융이 금융위에 제출한 현황보고서와 이에 따라 금융위가 하나금융에 요구한 새로운 승인 신청입니다.

하나금융은 2011년 11월 14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유죄판결로 론스타의 법적 지위가 바뀌었다는 등의 이유로 계약 조건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금융위에 제출했고, 금융위는 나흘 뒤 외환은행 인수 승인 신청서를 새로 제출하라고 하나금융에 지시합니다.

정부는 하나금융의 보고서 제출에 관여하지 않았고, 인수 신청을 새로 하라고 한 것이지 새 계약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판정부는 이 주장도 기각했습니다.

나머지 증거는 11월 25일 런던에서 이뤄진 하나금융과 론스타 관계자들의 회의입니다. 이 회의에서 김승유 회장은 주당 11,900원으로 가격 인하를 제안하면서 당시 법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거래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론스타 관계자들은 금융위가 가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하면서 회의를 몰래 녹음했습니다.

12월 3일 론스타와 하나금융은 인하된 가격으로 계약을 수정하고, 금융위는 2012년 1월 27일 하나금융의 인수 신청을 승인합니다.

결국, 이 증거들은 ICC에서 금융당국이 개입한 정황증거로 판단됐고, 론스타는 ICC 판정문과 ICC에서 하나금융 관계자들의 증언을 ICSID에 제출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썼습니다.

■ “법무부 요지서에 없는 강한 표현”

전문가들은 판정 원문에서 지난 6일 법무부가 배포한 판정요지서에는 없는 강한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감독상 재량권 남용(abuse of regulatory discretion), 금융위의 부당한 행위(misconduct of the FSC), 금융위의 사적 이익(its own self-interest) 추구와 같은 표현 들입니다.

전성인 교수는 “ 중재판정부가 금융당국의 위법행위에 대해 쓴 표현은 사실상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정도의 기술”이라며 “고의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질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금융당국의 단순한 승인 지연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가격하락을 조정하는 협정 위반행위가 기술돼 있다”며 “ 판정문 요지서는 판정문의 의미를 상당 부분 축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최문호 기자 bird@kbs.co.kr 송명희 기자 thimble@kbs.co.kr
촬영· 영상편집 김성현 기자 neptune@kbs.co.kr 허용석 기자 godup@kbs.co.kr
자료조사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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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론스타ISDS]⑫ 판정원문, “금융당국, 재량권 남용·위법·사익 추구”
    • 입력 2022-09-29 17:40:00
    • 수정2022-09-29 17:47:45
    탐사K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금융위원회가 법이 정한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정문에 적시했습니다. 금융위의 행위는 감독 당국으로서 의무보다 론스타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을 피하려는 조직의 이익이 목적이었고, 이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이 정한 투자자에 대한 공평·공정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중재판정부는 판단했습니다.

■ ”금융위 조직의 이해 · 이익이 목적”

법무부가 28일 공개한 론스타-한국정부 간 ISDS(국제투자분쟁) 판정원문에서 중재판정부는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 매매 가격 인하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가격 개입은 재량권을 벗어난 위법행위라고 봤습니다.

판정문에서 확인된 결론은 이렇습니다.

론스타-하나금융 간 ISDS 판정문

- 금융위원회가 2011년 가을, 하나금융의 인수 승인을 해주지 않았는데 이는 “먹튀(eat and run)”에서 더 나가 “속튀(cheat and run)”로 불리는 론스타에 대한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

- 금융위는 법이 정한 권한보다 조직의 이익을 앞세워 재량권을 남용

- 금융위의 위법행위는 투자 조약상 공정· 공평 의무를 위반

- 론스타의 위법 행위도 손해에 기여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위가 조직의 이해관계를 쫓느라 주어진 권한을 넘어 부당한 행위를 했고, 그것이 국민 세금으로 론스타에 배상금을 물게 된 원인이라는 게 판정요지” 라고 설명했습니다.

송기호 민변 전 국제통상위원장은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킨 것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비난을 벗어나려는 조직 자체의 이기주의 때문에 모순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 판정부의 결론” 이라고 해석했습니다.


■ ICSID, “정부 개입 안 해” 하나금융 증언 기각

ICSID 중재판정부가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가격협상에 금융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판단한 증거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됩니다.

우선,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유죄로 최종 확정된 뒤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 회장이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보낸 두 번의 편지입니다.

김승유 회장은 2011년 10월 28일과 11월 11일 그레이켄 회장에게 잇따라 편지를 보냅니다. 대주주로서 적격성을 상실한 론스타에 대해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노동조합, 시민운동가, 정치인들의 여론이 있다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려면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김승유 회장은 ICSID 증인 신문에서 이 제안에 이르기까지 금융당국과 상의하거나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중재판정부는 이 증언을 기각했습니다.

두 번째 증거는 하나금융이 금융위에 제출한 현황보고서와 이에 따라 금융위가 하나금융에 요구한 새로운 승인 신청입니다.

하나금융은 2011년 11월 14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유죄판결로 론스타의 법적 지위가 바뀌었다는 등의 이유로 계약 조건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금융위에 제출했고, 금융위는 나흘 뒤 외환은행 인수 승인 신청서를 새로 제출하라고 하나금융에 지시합니다.

정부는 하나금융의 보고서 제출에 관여하지 않았고, 인수 신청을 새로 하라고 한 것이지 새 계약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판정부는 이 주장도 기각했습니다.

나머지 증거는 11월 25일 런던에서 이뤄진 하나금융과 론스타 관계자들의 회의입니다. 이 회의에서 김승유 회장은 주당 11,900원으로 가격 인하를 제안하면서 당시 법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거래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론스타 관계자들은 금융위가 가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하면서 회의를 몰래 녹음했습니다.

12월 3일 론스타와 하나금융은 인하된 가격으로 계약을 수정하고, 금융위는 2012년 1월 27일 하나금융의 인수 신청을 승인합니다.

결국, 이 증거들은 ICC에서 금융당국이 개입한 정황증거로 판단됐고, 론스타는 ICC 판정문과 ICC에서 하나금융 관계자들의 증언을 ICSID에 제출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썼습니다.

■ “법무부 요지서에 없는 강한 표현”

전문가들은 판정 원문에서 지난 6일 법무부가 배포한 판정요지서에는 없는 강한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감독상 재량권 남용(abuse of regulatory discretion), 금융위의 부당한 행위(misconduct of the FSC), 금융위의 사적 이익(its own self-interest) 추구와 같은 표현 들입니다.

전성인 교수는 “ 중재판정부가 금융당국의 위법행위에 대해 쓴 표현은 사실상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정도의 기술”이라며 “고의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질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금융당국의 단순한 승인 지연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가격하락을 조정하는 협정 위반행위가 기술돼 있다”며 “ 판정문 요지서는 판정문의 의미를 상당 부분 축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최문호 기자 bird@kbs.co.kr 송명희 기자 thimble@kbs.co.kr
촬영· 영상편집 김성현 기자 neptune@kbs.co.kr 허용석 기자 godup@kbs.co.kr
자료조사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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