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유령 등록’…어느 대학의 기막힌 생존법

입력 2022.10.07 (06:35) 수정 2022.10.0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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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요즘 유행하는 씁쓸한 비유인데 수도권에서 먼 대학일수록 정원 채우기가 힘들어서 자꾸만 문 닫는 실태를 빗대는 말입니다.

충원율이 낮으면 각종 지원에서 당장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다른 학교보다 좋은 점수를 받겠다고 불공정한 방법을 동원해선 안 되겠죠?

학생 수를 부풀리려고 이른바 '유령 신입생'을 동원한 사례, 요즘 잇따라 재판에 넘겨지고 있고 한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직접 수사를 의뢰하고 나섰습니다.

이예린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남의 한 사립대.

취업 특성화 교육을 강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학과에선 지난해 추가모집 기간 입학했던 12명 중 9명이 그만뒀습니다.

1학기 첫 수업부터 내내 결석하더니, 2학기엔 등록도 안 하고 제적됐습니다.

그만둔 9명 모두 30대에서 50대 나이.

이 학과가 양성한다는 직업군의 채용 응시 기준을 애당초 넘긴 연령대였습니다.

[A 학과 자퇴생/음성변조 : "(작년에 자퇴하셨다고 들었는데...) 네. 농사 때문에 그만뒀어요."]

비슷한 일이 이 학교 13개 과에서 벌어졌습니다.

다니지도 않을 학교에 입학했다 제적된 사례, 지난해에만 9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A 학과 자퇴생/음성변조 : "(교직원분들한테 입학해 달라, 이런 요청을 받으셨던 거예요?) 그런 것도 있었죠 조금. (출석은 하지 않으셨던 거죠?) 처음에만 했죠. 입학할 때만."]

사실상 부탁 받고 이름을 올려줬단 얘기.

등록금은 학교 측에서 장학금으로 내줬습니다.

[B 학과 교수/음성변조 : "쉽게 얘기하면 학교를 안 나오고 그것을 학교가 관리를 해준다는... 그리고 출석은 여기서 다 조작되는 경우."]

그래서인지 그만두지 않고 계속 적만 두고 있는 재학생도 있습니다.

성실히 출석한 거로 돼 있지만, 같은 수업을 들은 다른 학생들은 누군지 모른다는 경우입니다.

[B 학과 재학생/음성변조 : "4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옛날 출석부에 있어서 이름을 보긴 했는데 얼굴은 한 번도..."]

올해 신입생 중에도 수십 명이 이른바 '유령 학생'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학교가 신입생과 재학생 수를 의도적으로 부풀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대학 측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교무처 관계자/음성변조 : "그건 저희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지금으로서는 아는 바가 없으세요?) 네, 그렇죠."]

하지만 교수들 얘기는 달랐습니다.

'충원율' 때문이라는 겁니다.

[C 교수/음성변조 : "(신입생) 충원율이 높아야만 국고가 지원되니까. 그거에 대해서 사활을 거는 거죠."]

교육부의 '대학 평가' 항목 가운데 배점 기준 5분의 1을 차지하는 게 충원율입니다.

학교별 점수 차가 작아서, 신입생 한두 명 차이로도 전체 등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D 교수/음성변조 : "(정시 모집까지는) 정원이 차지 않았는데, 2월 말쯤 되면 우리 학교가 (충원율) 99%, 98% 되었다는 수치를 보면. 어떻게 해서 다 채웠구나. (유령) 학생들을 데려다가 입학시켰구나."]

재작년에 이 학교는 국고지원금 30억여 원을 받았고 지난해에도 대학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습니다.

올해 초엔 부총장이 이런 업무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무부총장/올해 1월/음성변조 : "나이 먹은 사람들 일단 원서를 받으면, 그것은 ○○○학과에 넣어도 되고. 그런 사람들을 좀 섭외를 해서, 장학처리를 하니까. 생활기록부만 하나 떼면 돼요."]

[교무부총장/올해 9월/음성변조 : "그런 발언을 저는 한 적이 없고. (지인을 데려와라 이런 얘기는 전혀 아니고.) 그렇죠."]

하지만 취재 이후 일부 학과엔 일종의 '비상'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B 학과 조교/음성변조 : "○○○교수님이 기자 연락 왔다면서. 관리 학생(유령 학생)들 솔직히 말해서 들킨 거 같으니까 휴학 처리해야 할 거 같다."]

이 대학 교수 노조 측은 학생 수를 의도적으로 부풀린 혐의로 학교를 고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근래 여러 학교가 학생 수 부풀리기로 적발된 바 있고, 해당 대학들은 모두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KBS 뉴스 이예린입니다.

촬영기자:최석규/그래픽:이근희 김정현 김석훈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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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7 06:35:25
    • 수정2022-10-07 07: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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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요즘 유행하는 씁쓸한 비유인데 수도권에서 먼 대학일수록 정원 채우기가 힘들어서 자꾸만 문 닫는 실태를 빗대는 말입니다.

충원율이 낮으면 각종 지원에서 당장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다른 학교보다 좋은 점수를 받겠다고 불공정한 방법을 동원해선 안 되겠죠?

학생 수를 부풀리려고 이른바 '유령 신입생'을 동원한 사례, 요즘 잇따라 재판에 넘겨지고 있고 한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직접 수사를 의뢰하고 나섰습니다.

이예린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남의 한 사립대.

취업 특성화 교육을 강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학과에선 지난해 추가모집 기간 입학했던 12명 중 9명이 그만뒀습니다.

1학기 첫 수업부터 내내 결석하더니, 2학기엔 등록도 안 하고 제적됐습니다.

그만둔 9명 모두 30대에서 50대 나이.

이 학과가 양성한다는 직업군의 채용 응시 기준을 애당초 넘긴 연령대였습니다.

[A 학과 자퇴생/음성변조 : "(작년에 자퇴하셨다고 들었는데...) 네. 농사 때문에 그만뒀어요."]

비슷한 일이 이 학교 13개 과에서 벌어졌습니다.

다니지도 않을 학교에 입학했다 제적된 사례, 지난해에만 9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A 학과 자퇴생/음성변조 : "(교직원분들한테 입학해 달라, 이런 요청을 받으셨던 거예요?) 그런 것도 있었죠 조금. (출석은 하지 않으셨던 거죠?) 처음에만 했죠. 입학할 때만."]

사실상 부탁 받고 이름을 올려줬단 얘기.

등록금은 학교 측에서 장학금으로 내줬습니다.

[B 학과 교수/음성변조 : "쉽게 얘기하면 학교를 안 나오고 그것을 학교가 관리를 해준다는... 그리고 출석은 여기서 다 조작되는 경우."]

그래서인지 그만두지 않고 계속 적만 두고 있는 재학생도 있습니다.

성실히 출석한 거로 돼 있지만, 같은 수업을 들은 다른 학생들은 누군지 모른다는 경우입니다.

[B 학과 재학생/음성변조 : "4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옛날 출석부에 있어서 이름을 보긴 했는데 얼굴은 한 번도..."]

올해 신입생 중에도 수십 명이 이른바 '유령 학생'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학교가 신입생과 재학생 수를 의도적으로 부풀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대학 측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교무처 관계자/음성변조 : "그건 저희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지금으로서는 아는 바가 없으세요?) 네, 그렇죠."]

하지만 교수들 얘기는 달랐습니다.

'충원율' 때문이라는 겁니다.

[C 교수/음성변조 : "(신입생) 충원율이 높아야만 국고가 지원되니까. 그거에 대해서 사활을 거는 거죠."]

교육부의 '대학 평가' 항목 가운데 배점 기준 5분의 1을 차지하는 게 충원율입니다.

학교별 점수 차가 작아서, 신입생 한두 명 차이로도 전체 등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D 교수/음성변조 : "(정시 모집까지는) 정원이 차지 않았는데, 2월 말쯤 되면 우리 학교가 (충원율) 99%, 98% 되었다는 수치를 보면. 어떻게 해서 다 채웠구나. (유령) 학생들을 데려다가 입학시켰구나."]

재작년에 이 학교는 국고지원금 30억여 원을 받았고 지난해에도 대학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습니다.

올해 초엔 부총장이 이런 업무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무부총장/올해 1월/음성변조 : "나이 먹은 사람들 일단 원서를 받으면, 그것은 ○○○학과에 넣어도 되고. 그런 사람들을 좀 섭외를 해서, 장학처리를 하니까. 생활기록부만 하나 떼면 돼요."]

[교무부총장/올해 9월/음성변조 : "그런 발언을 저는 한 적이 없고. (지인을 데려와라 이런 얘기는 전혀 아니고.) 그렇죠."]

하지만 취재 이후 일부 학과엔 일종의 '비상'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B 학과 조교/음성변조 : "○○○교수님이 기자 연락 왔다면서. 관리 학생(유령 학생)들 솔직히 말해서 들킨 거 같으니까 휴학 처리해야 할 거 같다."]

이 대학 교수 노조 측은 학생 수를 의도적으로 부풀린 혐의로 학교를 고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근래 여러 학교가 학생 수 부풀리기로 적발된 바 있고, 해당 대학들은 모두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KBS 뉴스 이예린입니다.

촬영기자:최석규/그래픽:이근희 김정현 김석훈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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