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전설적 록밴드 AC/DC의 콘서트를 보면 수만 명 규모의 스타디움을 관객들이 꽉 채우고 있어요. 우리도 그런 공연은 한 번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하하"(주상균)
올해로 데뷔 33주년을 맞은 백전노장 밴드 '블랙홀'의 주상균(보컬 겸 기타),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김세호(베이스) 네 멤버의 열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최근 종로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블랙홀은 수많은 록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밴드 블랙홀은 1989년 정규 1집 '미라클'(Miracle)을 발표하며 국내 가요계에 데뷔했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음악을 빨아들이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담아 밴드 이름을 지었지만, 헤비메탈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개척자로 나선 길은 쉽지 않았다.
원년 멤버 주상균은 "밴드 결성 초기에는 아무 기반도 없었다"며 "첫 앨범을 냈을 때 기대만큼 흥행이 되지 않아서 멤버들도 자주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열정은 식지 않았다. 블랙홀은 1991년 2집 '서바이브'(Survive)를 비롯해 2019년 발매한 정규 9집 '에볼루션'(EVOLUTION)까지 20여 개의 음반을 발표하며 공백기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다. 블랙홀의 음악들은 '록'이라는 서양 장르에 한국의 한을 잘 녹여냈다고 평가받는다.
주상균은 "음악의 소재가 멀리 있지 않았다"며 "부모님, 옆집 사람, 역사 속 무너지지 않았던 우리 민초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중 블랙홀이 1995년에 발표한 정규 4집은 매국노를 질타하는 '공생관계'나 '잊혀진 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곡 '마지막 일기' 등이 수록돼 민감한 역사 속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낸 음반으로 꼽힌다. 밴드 해체를 각오하고 내놓은 문제작은 오히려 대표작이 됐다.
이원재는 "4집 데모 테이프(임시녹음본)를 들고 갔을 때 음반사가 경악했었다"며 "'너희도 유명해지고 음반도 팔려야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상균은 "그런 음반이 입소문을 타더니 발매 한 달 뒤부터 대학교에서 섭외공연이 물밀듯이 들어왔다"며 "그 이후 1년 동안은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고 공연만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4집 성공으로 블랙홀은 가장 한국적인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밴드로 자리매김한다.
이들은 음반 시장의 변화와 헤비메탈 장르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5년 발표한 정규 8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는 등 한국 록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갔다.
블랙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시작되고 무대가 줄어들자 '원정대 프로젝트'라는 색다른 전국투어를 떠나기도 했다.
'원정대 프로젝트'는 블랙홀의 지역 팬들이 기획자가 되어 현지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블랙홀은 팬들이 준비한 무대에 올라서 공연을 선보이는 이색 콘서트다.
이원재는 "그런 소소한 공연만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며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거리두기 때문에 영업하는 식당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데뷔 33주년 기념 공연도 열었다. 소규모 공연이던 '원정대 프로젝트'의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게 30여곡을 선보였다.
무대에서 활발히 팬을 만나고 있지만 '에볼루션' 이후 블랙홀의 새 음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신보 발표가 뜸한 이유를 묻자 블랙홀은 2∼3년 안에 정규 10집을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그 음반이 블랙홀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상균은 "정규 음반 10개 정도 되면 블랙홀이 할 수 있는 음악은 모두 해본 것 같다. 더 정규 음반을 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호는 "그렇다고 밴드 해체는 아니다"라면서 "10집이 나오고 10년은 더 공연할 것"이라며 웃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올해로 데뷔 33주년을 맞은 백전노장 밴드 '블랙홀'의 주상균(보컬 겸 기타),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김세호(베이스) 네 멤버의 열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최근 종로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블랙홀은 수많은 록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밴드 블랙홀은 1989년 정규 1집 '미라클'(Miracle)을 발표하며 국내 가요계에 데뷔했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음악을 빨아들이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담아 밴드 이름을 지었지만, 헤비메탈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개척자로 나선 길은 쉽지 않았다.
원년 멤버 주상균은 "밴드 결성 초기에는 아무 기반도 없었다"며 "첫 앨범을 냈을 때 기대만큼 흥행이 되지 않아서 멤버들도 자주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열정은 식지 않았다. 블랙홀은 1991년 2집 '서바이브'(Survive)를 비롯해 2019년 발매한 정규 9집 '에볼루션'(EVOLUTION)까지 20여 개의 음반을 발표하며 공백기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다. 블랙홀의 음악들은 '록'이라는 서양 장르에 한국의 한을 잘 녹여냈다고 평가받는다.
주상균은 "음악의 소재가 멀리 있지 않았다"며 "부모님, 옆집 사람, 역사 속 무너지지 않았던 우리 민초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중 블랙홀이 1995년에 발표한 정규 4집은 매국노를 질타하는 '공생관계'나 '잊혀진 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곡 '마지막 일기' 등이 수록돼 민감한 역사 속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낸 음반으로 꼽힌다. 밴드 해체를 각오하고 내놓은 문제작은 오히려 대표작이 됐다.
이원재는 "4집 데모 테이프(임시녹음본)를 들고 갔을 때 음반사가 경악했었다"며 "'너희도 유명해지고 음반도 팔려야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상균은 "그런 음반이 입소문을 타더니 발매 한 달 뒤부터 대학교에서 섭외공연이 물밀듯이 들어왔다"며 "그 이후 1년 동안은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고 공연만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4집 성공으로 블랙홀은 가장 한국적인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밴드로 자리매김한다.
이들은 음반 시장의 변화와 헤비메탈 장르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5년 발표한 정규 8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는 등 한국 록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갔다.
블랙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시작되고 무대가 줄어들자 '원정대 프로젝트'라는 색다른 전국투어를 떠나기도 했다.
'원정대 프로젝트'는 블랙홀의 지역 팬들이 기획자가 되어 현지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블랙홀은 팬들이 준비한 무대에 올라서 공연을 선보이는 이색 콘서트다.
이원재는 "그런 소소한 공연만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며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거리두기 때문에 영업하는 식당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데뷔 33주년 기념 공연도 열었다. 소규모 공연이던 '원정대 프로젝트'의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게 30여곡을 선보였다.
무대에서 활발히 팬을 만나고 있지만 '에볼루션' 이후 블랙홀의 새 음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신보 발표가 뜸한 이유를 묻자 블랙홀은 2∼3년 안에 정규 10집을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그 음반이 블랙홀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상균은 "정규 음반 10개 정도 되면 블랙홀이 할 수 있는 음악은 모두 해본 것 같다. 더 정규 음반을 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호는 "그렇다고 밴드 해체는 아니다"라면서 "10집이 나오고 10년은 더 공연할 것"이라며 웃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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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록의 역사’ 블랙홀 “마지막 꿈은 스타디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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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1-14 07:23:44

"미국 전설적 록밴드 AC/DC의 콘서트를 보면 수만 명 규모의 스타디움을 관객들이 꽉 채우고 있어요. 우리도 그런 공연은 한 번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하하"(주상균)
올해로 데뷔 33주년을 맞은 백전노장 밴드 '블랙홀'의 주상균(보컬 겸 기타),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김세호(베이스) 네 멤버의 열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최근 종로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블랙홀은 수많은 록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밴드 블랙홀은 1989년 정규 1집 '미라클'(Miracle)을 발표하며 국내 가요계에 데뷔했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음악을 빨아들이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담아 밴드 이름을 지었지만, 헤비메탈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개척자로 나선 길은 쉽지 않았다.
원년 멤버 주상균은 "밴드 결성 초기에는 아무 기반도 없었다"며 "첫 앨범을 냈을 때 기대만큼 흥행이 되지 않아서 멤버들도 자주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열정은 식지 않았다. 블랙홀은 1991년 2집 '서바이브'(Survive)를 비롯해 2019년 발매한 정규 9집 '에볼루션'(EVOLUTION)까지 20여 개의 음반을 발표하며 공백기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다. 블랙홀의 음악들은 '록'이라는 서양 장르에 한국의 한을 잘 녹여냈다고 평가받는다.
주상균은 "음악의 소재가 멀리 있지 않았다"며 "부모님, 옆집 사람, 역사 속 무너지지 않았던 우리 민초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중 블랙홀이 1995년에 발표한 정규 4집은 매국노를 질타하는 '공생관계'나 '잊혀진 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곡 '마지막 일기' 등이 수록돼 민감한 역사 속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낸 음반으로 꼽힌다. 밴드 해체를 각오하고 내놓은 문제작은 오히려 대표작이 됐다.
이원재는 "4집 데모 테이프(임시녹음본)를 들고 갔을 때 음반사가 경악했었다"며 "'너희도 유명해지고 음반도 팔려야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상균은 "그런 음반이 입소문을 타더니 발매 한 달 뒤부터 대학교에서 섭외공연이 물밀듯이 들어왔다"며 "그 이후 1년 동안은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고 공연만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4집 성공으로 블랙홀은 가장 한국적인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밴드로 자리매김한다.
이들은 음반 시장의 변화와 헤비메탈 장르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5년 발표한 정규 8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는 등 한국 록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갔다.
블랙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시작되고 무대가 줄어들자 '원정대 프로젝트'라는 색다른 전국투어를 떠나기도 했다.
'원정대 프로젝트'는 블랙홀의 지역 팬들이 기획자가 되어 현지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블랙홀은 팬들이 준비한 무대에 올라서 공연을 선보이는 이색 콘서트다.
이원재는 "그런 소소한 공연만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며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거리두기 때문에 영업하는 식당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데뷔 33주년 기념 공연도 열었다. 소규모 공연이던 '원정대 프로젝트'의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게 30여곡을 선보였다.
무대에서 활발히 팬을 만나고 있지만 '에볼루션' 이후 블랙홀의 새 음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신보 발표가 뜸한 이유를 묻자 블랙홀은 2∼3년 안에 정규 10집을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그 음반이 블랙홀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상균은 "정규 음반 10개 정도 되면 블랙홀이 할 수 있는 음악은 모두 해본 것 같다. 더 정규 음반을 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호는 "그렇다고 밴드 해체는 아니다"라면서 "10집이 나오고 10년은 더 공연할 것"이라며 웃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올해로 데뷔 33주년을 맞은 백전노장 밴드 '블랙홀'의 주상균(보컬 겸 기타),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김세호(베이스) 네 멤버의 열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최근 종로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블랙홀은 수많은 록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밴드 블랙홀은 1989년 정규 1집 '미라클'(Miracle)을 발표하며 국내 가요계에 데뷔했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음악을 빨아들이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담아 밴드 이름을 지었지만, 헤비메탈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개척자로 나선 길은 쉽지 않았다.
원년 멤버 주상균은 "밴드 결성 초기에는 아무 기반도 없었다"며 "첫 앨범을 냈을 때 기대만큼 흥행이 되지 않아서 멤버들도 자주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열정은 식지 않았다. 블랙홀은 1991년 2집 '서바이브'(Survive)를 비롯해 2019년 발매한 정규 9집 '에볼루션'(EVOLUTION)까지 20여 개의 음반을 발표하며 공백기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다. 블랙홀의 음악들은 '록'이라는 서양 장르에 한국의 한을 잘 녹여냈다고 평가받는다.
주상균은 "음악의 소재가 멀리 있지 않았다"며 "부모님, 옆집 사람, 역사 속 무너지지 않았던 우리 민초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중 블랙홀이 1995년에 발표한 정규 4집은 매국노를 질타하는 '공생관계'나 '잊혀진 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곡 '마지막 일기' 등이 수록돼 민감한 역사 속 아픔을 가장 잘 드러낸 음반으로 꼽힌다. 밴드 해체를 각오하고 내놓은 문제작은 오히려 대표작이 됐다.
이원재는 "4집 데모 테이프(임시녹음본)를 들고 갔을 때 음반사가 경악했었다"며 "'너희도 유명해지고 음반도 팔려야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상균은 "그런 음반이 입소문을 타더니 발매 한 달 뒤부터 대학교에서 섭외공연이 물밀듯이 들어왔다"며 "그 이후 1년 동안은 집에도 거의 못 들어가고 공연만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4집 성공으로 블랙홀은 가장 한국적인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밴드로 자리매김한다.
이들은 음반 시장의 변화와 헤비메탈 장르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5년 발표한 정규 8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는 등 한국 록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갔다.
블랙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시작되고 무대가 줄어들자 '원정대 프로젝트'라는 색다른 전국투어를 떠나기도 했다.
'원정대 프로젝트'는 블랙홀의 지역 팬들이 기획자가 되어 현지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블랙홀은 팬들이 준비한 무대에 올라서 공연을 선보이는 이색 콘서트다.
이원재는 "그런 소소한 공연만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며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거리두기 때문에 영업하는 식당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데뷔 33주년 기념 공연도 열었다. 소규모 공연이던 '원정대 프로젝트'의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게 30여곡을 선보였다.
무대에서 활발히 팬을 만나고 있지만 '에볼루션' 이후 블랙홀의 새 음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신보 발표가 뜸한 이유를 묻자 블랙홀은 2∼3년 안에 정규 10집을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그 음반이 블랙홀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상균은 "정규 음반 10개 정도 되면 블랙홀이 할 수 있는 음악은 모두 해본 것 같다. 더 정규 음반을 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호는 "그렇다고 밴드 해체는 아니다"라면서 "10집이 나오고 10년은 더 공연할 것"이라며 웃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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