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팀장] 끝나지 않은 ‘교과서 전쟁’…유죄에서 무죄로 엇갈린 판결

입력 2022.11.22 (19:33) 수정 2022.11.2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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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파헤쳐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정재훈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자]

네, 초등학교 교과서에 단어 하나를 수정하면서 벌어진 재판을 가져왔습니다.

2018학년도 1학기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실릴 용어 중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말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교육부 직원들이 개입했다는 겁니다.

이들에게 씌어진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사문서 위조 교사, 그리고 위조 사문서 행사 교사 등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은 교과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직원들이 불법으로 개입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오늘은 끝나지 않은 교과서 전쟁의 내막과 엇갈린 법원 판단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그런데 정 팀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 언뜻 비슷한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기자]

네, 먼저 2017년 3월 교육부가 낸 해명자료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부 언론이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오류와 편향된 서술이 있다고 지적한데 대한 반박 성격이었는데요.

당시 언론에서는 해당 교과서가 '뉴라이트의 건국절 사관을 반영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말에서 정부라는 단어를 빼고 대한민국 수립으로 서술했고, 또 유신 체제의 불법성을 충분히 서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전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됐음을 의미한다며,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분명히 한 용어라고 해명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해명자료와 달리 이후 교육부가 2018학년도 초등, 중등 교과서에서 논란이 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용어로 바꿨습니다.

뒤늦게 언론의 지적을 받아들인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게 되면, 해방 이전의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독립운동의 역사가 희박해진다는 비판이 역사학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또, 이걸 보수단체인 뉴라이트가 주창한 건국절 사관에 따라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면 대한민국의 법통을 부정한다는 진보진영 측의 문제 제기도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에 입각한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이어 국정교과서 논란의 핵심에 섰던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해명자료를 낸 지 6개월 만인 2017년 9월, 입장을 바꿔 초등 사회과 교과서 수정 작업에 착수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듬해 출판된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습니다.

[앵커]

정 팀장, 다시 재판으로 돌아가서 교육부 직원들은 왜 기소당했습니까?

[기자]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교육부 공무원들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검찰이 적시한 범죄사실에는 수정된 해당 표현이 교육부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질 것을 우려해 교과서 편찬위원회가 바꾼 것처럼 주도했다는 겁니다.

판결문에도 당시 편찬위원장이 "지난 정권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라고 하더니 정권이 바뀌니까 이번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고치라는 것이냐"며 항의하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1심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기자]

지난해 2월 대전지방법원은 교육부 공무원 2명에게 각각 징역 8개월과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교과서 편찬위원장을 전면 배제한 채 편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수정, 보완한 후에 발행 승인을 요청한 것처럼 외관을 조성했다며, 도의적으로도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36쪽에 달하는 판결문에 무려 8번이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적시하며 공무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1심 판결 이후 교육부 공무원들과 검찰 모두 항소했잖습니까?

항소심 재판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어졌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기자]

네,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원심을 모두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편찬위원장에 교과서 수정에 대한 승인요청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외려 교과서 수정 권한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기소된 교육부 공무원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주어진 교과서의 수정, 보완권을 직제상 위임받아 행사한 것으로 권한 내의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직권을 남용했다는 검찰과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겁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유죄로 본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앵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죠.

교과서의 단어 하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토록 복잡한 재판이 얽혀있었습니다.

정 팀장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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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팀장] 끝나지 않은 ‘교과서 전쟁’…유죄에서 무죄로 엇갈린 판결
    • 입력 2022-11-22 19:33:24
    • 수정2022-11-22 19:59:53
    뉴스7(대전)
[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파헤쳐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정재훈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자]

네, 초등학교 교과서에 단어 하나를 수정하면서 벌어진 재판을 가져왔습니다.

2018학년도 1학기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실릴 용어 중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말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교육부 직원들이 개입했다는 겁니다.

이들에게 씌어진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사문서 위조 교사, 그리고 위조 사문서 행사 교사 등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은 교과서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직원들이 불법으로 개입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오늘은 끝나지 않은 교과서 전쟁의 내막과 엇갈린 법원 판단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그런데 정 팀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 언뜻 비슷한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기자]

네, 먼저 2017년 3월 교육부가 낸 해명자료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부 언론이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오류와 편향된 서술이 있다고 지적한데 대한 반박 성격이었는데요.

당시 언론에서는 해당 교과서가 '뉴라이트의 건국절 사관을 반영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말에서 정부라는 단어를 빼고 대한민국 수립으로 서술했고, 또 유신 체제의 불법성을 충분히 서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전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됐음을 의미한다며,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분명히 한 용어라고 해명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해명자료와 달리 이후 교육부가 2018학년도 초등, 중등 교과서에서 논란이 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용어로 바꿨습니다.

뒤늦게 언론의 지적을 받아들인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게 되면, 해방 이전의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독립운동의 역사가 희박해진다는 비판이 역사학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또, 이걸 보수단체인 뉴라이트가 주창한 건국절 사관에 따라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면 대한민국의 법통을 부정한다는 진보진영 측의 문제 제기도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에 입각한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이어 국정교과서 논란의 핵심에 섰던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해명자료를 낸 지 6개월 만인 2017년 9월, 입장을 바꿔 초등 사회과 교과서 수정 작업에 착수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듬해 출판된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습니다.

[앵커]

정 팀장, 다시 재판으로 돌아가서 교육부 직원들은 왜 기소당했습니까?

[기자]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교육부 공무원들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검찰이 적시한 범죄사실에는 수정된 해당 표현이 교육부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질 것을 우려해 교과서 편찬위원회가 바꾼 것처럼 주도했다는 겁니다.

판결문에도 당시 편찬위원장이 "지난 정권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라고 하더니 정권이 바뀌니까 이번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고치라는 것이냐"며 항의하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1심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기자]

지난해 2월 대전지방법원은 교육부 공무원 2명에게 각각 징역 8개월과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교과서 편찬위원장을 전면 배제한 채 편찬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수정, 보완한 후에 발행 승인을 요청한 것처럼 외관을 조성했다며, 도의적으로도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36쪽에 달하는 판결문에 무려 8번이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적시하며 공무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1심 판결 이후 교육부 공무원들과 검찰 모두 항소했잖습니까?

항소심 재판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어졌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기자]

네,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원심을 모두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편찬위원장에 교과서 수정에 대한 승인요청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외려 교과서 수정 권한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기소된 교육부 공무원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주어진 교과서의 수정, 보완권을 직제상 위임받아 행사한 것으로 권한 내의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직권을 남용했다는 검찰과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겁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유죄로 본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앵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죠.

교과서의 단어 하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토록 복잡한 재판이 얽혀있었습니다.

정 팀장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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