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신발 사이즈’ 점수의 추억…올해 ‘마흔 살’된 토익 시험

입력 2022.12.05 (18:05) 수정 2022.12.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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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T콕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로 거슬러 갑니다.

주인공은 입사 8년차 여직원 3인방.

["셋둘둘! 12초! 신기록 달성!"]

단지 고졸이라는 이유로 말단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이들에게 드디어! 승진의 기회가 옵니다.

단, 조건이 있으니 바로 토익 시험 점수입니다.

["세 달 안에 토익 600을 어떻게 넘냐?"]

그래서 이들이 간 곳,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입니다.

["아이캔 두잇 유캔 두잇 위캔 두잇 토익!"]

애증의 시험이라고나 할까요.

토익이 올해로 마흔 살이 됐습니다.

첫 시행은 지난 1982년, 10여 년 후인 1995년 무렵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뉴스엔 ‘토익 점수에 울고 웃는 직장인 세태’가 쏟아졌습니다.

550점을 따지 못한 직원은 해외 출장을 갈 수조차 없었고, 865점 이상 고득점 직원에겐 매달 월급의 1%가 보너스로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중년층들은 취업을 위해 토익에 목숨을 걸던, 청춘 시절의 분투가 떠오르실 겁니다.

어학연수, 자격증과 함께 토익은 대학졸업생의 3대 필수 아이템이었습니다.

오죽하면‘토폐인’이란 조어까지 나왔습니다.

토익 점수에 매달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한 달 한 번이 아닌 하루에도 두 번씩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필리핀은, 취준생들의 성지로까지 여겨졌습니다.

[KBS 9시 뉴스 : "취업에 필수인 토익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요즘 필리핀 등 해외에까지 가서 시험을 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듣기 495점, 읽기 495점, 합계 990점 만점인 토익은 결코 만만한 시험은 아닙니다.

120분 안에 200문제를 다 풀려면 1분 1초가 아쉽습니다.

이렇다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토익에 울고 웃는 사연들도 많습니다.

["멋모르고 쳤다가 신발 사이즈(250점)만큼 점수가 나왔다."]

["신발 사이즈면 다행... 내 키보다 못한 점수 (180점)를 봤다."]

성적표를 받고 망연자실한 수험생들에게, 토익 만점을 받았다는 가수 옥택연 등 '고득점' 연예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1982년 1월, 첫 시험 응시생은 73명,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은 해마다 207만 명 이상이 치르는 '국민 시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 해 만8,400원이던 응시료는 40년이 지난 지금 4만8천 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평균 점수는 초창기 550점에서 지난해 680점으로 상승했지만, 기출문제가 쌓이면서 고득점 '꿀팁'이 범람하다보니 '점수 인플레'란 평가도 있습니다.

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서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토플, 텝스 등 영어 시험의 다양화, 말하기 위주의 실무 영어 면접 등이 각광 받으면서, '토익 무용론'이 심심찮게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토익은 여전히 학생과 취준생, 직장인 영어능력평가의 공통분모 역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데요.

방학 기간 집중해서, 적어도 신발 사이즈의 3배는 넘는 고득점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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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T] ‘신발 사이즈’ 점수의 추억…올해 ‘마흔 살’된 토익 시험
    • 입력 2022-12-05 18:05:27
    • 수정2022-12-05 18:34:46
    통합뉴스룸ET
이어서 ET콕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로 거슬러 갑니다.

주인공은 입사 8년차 여직원 3인방.

["셋둘둘! 12초! 신기록 달성!"]

단지 고졸이라는 이유로 말단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이들에게 드디어! 승진의 기회가 옵니다.

단, 조건이 있으니 바로 토익 시험 점수입니다.

["세 달 안에 토익 600을 어떻게 넘냐?"]

그래서 이들이 간 곳,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입니다.

["아이캔 두잇 유캔 두잇 위캔 두잇 토익!"]

애증의 시험이라고나 할까요.

토익이 올해로 마흔 살이 됐습니다.

첫 시행은 지난 1982년, 10여 년 후인 1995년 무렵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뉴스엔 ‘토익 점수에 울고 웃는 직장인 세태’가 쏟아졌습니다.

550점을 따지 못한 직원은 해외 출장을 갈 수조차 없었고, 865점 이상 고득점 직원에겐 매달 월급의 1%가 보너스로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중년층들은 취업을 위해 토익에 목숨을 걸던, 청춘 시절의 분투가 떠오르실 겁니다.

어학연수, 자격증과 함께 토익은 대학졸업생의 3대 필수 아이템이었습니다.

오죽하면‘토폐인’이란 조어까지 나왔습니다.

토익 점수에 매달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한 달 한 번이 아닌 하루에도 두 번씩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필리핀은, 취준생들의 성지로까지 여겨졌습니다.

[KBS 9시 뉴스 : "취업에 필수인 토익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요즘 필리핀 등 해외에까지 가서 시험을 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듣기 495점, 읽기 495점, 합계 990점 만점인 토익은 결코 만만한 시험은 아닙니다.

120분 안에 200문제를 다 풀려면 1분 1초가 아쉽습니다.

이렇다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토익에 울고 웃는 사연들도 많습니다.

["멋모르고 쳤다가 신발 사이즈(250점)만큼 점수가 나왔다."]

["신발 사이즈면 다행... 내 키보다 못한 점수 (180점)를 봤다."]

성적표를 받고 망연자실한 수험생들에게, 토익 만점을 받았다는 가수 옥택연 등 '고득점' 연예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1982년 1월, 첫 시험 응시생은 73명,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은 해마다 207만 명 이상이 치르는 '국민 시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 해 만8,400원이던 응시료는 40년이 지난 지금 4만8천 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평균 점수는 초창기 550점에서 지난해 680점으로 상승했지만, 기출문제가 쌓이면서 고득점 '꿀팁'이 범람하다보니 '점수 인플레'란 평가도 있습니다.

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서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토플, 텝스 등 영어 시험의 다양화, 말하기 위주의 실무 영어 면접 등이 각광 받으면서, '토익 무용론'이 심심찮게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토익은 여전히 학생과 취준생, 직장인 영어능력평가의 공통분모 역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데요.

방학 기간 집중해서, 적어도 신발 사이즈의 3배는 넘는 고득점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ET 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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