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루트에 변화…지금까지 몇명?

입력 2004.07.28 (20:34) 수정 2004.12.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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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탈북자 집단 입국의 파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금철영 기자.
이번 집단 입국은 여러 면에서 과거 탈북자들의 입국과 다른데요, 정부 주도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집단 입국이 또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신호탄으로도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단 전문가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마는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고 있는 탈북자가 많게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요.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추가적인 대량 국내 입국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앵커: 지금까지를 살펴보면 중국의 외교공관을 이용한 그러니까 얘기를 하자면 기획망명, 이렇게 부르는 게 상당히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많이 다른 모습이에요, 동남아를 이용했는데 이렇게 탈북자들이 이용하는 루트가 변했다, 얘기할 수도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 중국 공안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8000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동남아가 새로운 탈북루트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화면을 보시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탈북경로는 북한 국경을 넘어서 선양과 옌진, 그리고 베이징 등을 거쳐서 쿤밍과 난닝 등 중국 남부지역까지 이동한 뒤에 라오스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약 1만킬로미터의 대장정인데요, 위험부담이 높습니다마는 그만큼 한국행을 강력히 희망하는 탈북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으로 파악됩니다.
⊙앵커: 사실 이번에 들어온 게 1, 20명도 아니고 460여 명인데 탈북자들이 몇 년새 급증하지 않았습니까?
최근 몇 명이나 되고 얼마나 더 늘 것 같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수가 5000명을 넘고 있는 것으로 알러지고 있는데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매년 10명 안팎에 불과했습니다마는 최근 3년 사이에 해마다 10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연도 많은데요.
지금까지 국내 입국과정을 김원장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지난 83년 2월 북한군 이훈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직접 몰고 귀순합니다.
이어 4년 뒤인 87년 김만철 씨 가족 11명이 어선을 타고 서해상으로 입국합니다.
지난 97년에는 김일성대학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가르쳤던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입국합니다.
이어 북한의 경제난을 반영하듯 고위층들의 제3국 망명이 이어졌고 90년대 후반에는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을 넘는 북한 주민들이 급증합니다.
지난 2001년에는 장기수 씨 등 탈북자 7명이 UN고등판무관 베이징사무소를 통해 입국했고 이듬해에는 주중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진입한 25명이 입국에 성공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주중 일본대사관에 진입하던 일가족이 붙잡히는 모습이 공개돼 국민적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후 중국 내 제3국의 대사관이나 학교를 통한 입국과 동남아를 거친 입국이 급증하면서 탈북자들의 입국러시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원장입니다.
⊙앵커: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요, 지승현 앵커는 이번 탈북자들 보고 어떤 생각하십니까?
⊙앵커: 일단은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가 당연히 수용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요.
저렇게 많은 수의 주민들이 한꺼번에 들어올 경우를 생각하면 과연 우리 사회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대비가 돼 있는지 그런 의문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앵커: 그러면 여기서 시민들의 반응을 한번 직접 들어볼까요.
⊙인터뷰: 오면 돈을 많이 주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돈만 줄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부에서도 관리해 주고...
⊙인터뷰: 우리나라에도 지금 어려운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굳이 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인터뷰: 진정한 우리 교포애로서 이것을 맞이해야 된다고 나는 봐요.
⊙인터뷰: 진짜 힘들어요,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못 사는데 그런 탈북자들을 더 잘 사는 나라에서 도와줘야죠.
⊙인터뷰: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적응해서 잘 살 수 있도록 따뜻하게 받아주고 싶어요.
⊙앵커: 시민들의 반응이 정말 상당히 많이 분분하고 다양해요.
⊙앵커: 어찌 보면 이 문제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될 수 있고 또 사회적 논의가 아직 불충분하다, 그런 반증일 것 같아요.
탈북 주민들 천신만고 끝에 왔는데 그 기존의 탈북자들은 어떻게 잘 정착을 하고 있습니까?
⊙기자: 남한 주민들의, 북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의 적응을 측정하는 바로미터 가운데 하나가 취업인데요.
한마디로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현재 탈북자들의 취업률은 30%를 밑돌고 있고요.
그나마 정규직에 취업한 사람들도 일반 평균 근로자의 60% 정도의 그런 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탈북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그러나 남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꼽고 있는데요.
한번 탈북자들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최성일(99년 12월 입국/양강도 출신):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가지고 있는 자기의 어떤 능력을 그리고 남한에 와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최성일(99년 12월 입국/양강도 출신): 소외감, 이질감, 이런 것을 많이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취직을 해도 어느 직장에 발 붙이고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참 배울 나이에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평생 그 공백을 안고 항상 남한 사람들보다 처진, 뒤떨어지는 이런 사람들로밖에 살 수 없다는 거죠.
⊙정주화(2001년 4월 입국/함경북도 출신): 내 며느리, 내 사위 이러면 내 식구잖아요.
저렇게 독한 (북한) 사람들이 우리 식구가 되고.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만에 하나 혹시 우리 집의 돈을 보고 어떤 일이 있겠는지 이런 걸 먼저 타산(계산)을 하는 거예요.
⊙인터뷰: 중국에 숨어 지내서 너무나 긴장된 탓인지 한국에 나와서는 거의 다 앓고, 남자들도 다 3D일 밖에 없으니까 나가서 힘든 일 하다가 또 아프고...
⊙앵커: 이번에는 분단과 통일을 이미 경험한 독일을 연결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독일은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베를린 연결합니다.
박승규 특파원.
⊙기자: 네, 베를린입니다.
⊙앵커: 독일도 통일 전 당시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얼마나 탈출했었는지 그리고 또 이들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졌었는지 궁금한데요.
기자: 1949년 분단에서 1991년 통일까지, 동독을 탈출해서 서독으로 간 사람들이 200만명이나 됩니다.
무려 전체 동독 인구의 12%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1950년대 한 해 평균 25만명 정도가 서독으로 계속 탈출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1961년 동독에서 세운 것이 바로 베를린장벽입니다.
통일 직전인 1989년에도 58만명이 서독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들 동독 탈출자들은 당시 살림이 넉넉했던 서독 정부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가서 살 수 있고 생활비는 물론 가구, 집, 자동차를 사는 데까지 특혜를 주었습니다.
1984년 한 통계에서 서독에 정착한 지 1년 지난 동독 사람의 평균 자동차 보유율이 73%로 서독 사람 64%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또 비디오 보급률은 15%대, 8%로 두 배 정도나 높았습니다.
당시 서독 사람들은 탈동독 주민의 생활수준을 부러운 눈으로 봤다고 할 정도입니다.
⊙앵커: 앞서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 다소 엇갈렸는데요.
당시 동독 주민들에 대해서 서독 주민들,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기자: 네, 통일 전에는 탈동독 행렬에 대해 비교적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1984년 통계로도 60% 이상이 호의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통일 후 경제가 나빠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통일된 지 15년, 동독 재건비용으로 한 해 평균 우리 돈 130조원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동독지역의 평균 실업률은 18%, 지금도 서독지역의 두 배에 이릅니다.
서독지역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독일 경제가 급속히 나빠진 것은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개선되지 않는 동독지역의 문제라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일 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앵커: 독일 상황,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될 텐데요.
앞으로 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네, 앞으로 1인당 3590만원이던 탈북자 지원금이 2000만원으로 줄어듭니다.
여기에 대한 보완체계가 시급한 상황이고 지난번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건립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 그리고 편견을 극복하고 사회적인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금철영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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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들의 루트에 변화…지금까지 몇명?
    • 입력 2004-07-28 20:32:30
    • 수정2004-12-06 16:43:25
    뉴스타임
⊙앵커: 탈북자 집단 입국의 파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금철영 기자. 이번 집단 입국은 여러 면에서 과거 탈북자들의 입국과 다른데요, 정부 주도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집단 입국이 또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신호탄으로도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단 전문가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마는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고 있는 탈북자가 많게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요.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추가적인 대량 국내 입국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앵커: 지금까지를 살펴보면 중국의 외교공관을 이용한 그러니까 얘기를 하자면 기획망명, 이렇게 부르는 게 상당히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많이 다른 모습이에요, 동남아를 이용했는데 이렇게 탈북자들이 이용하는 루트가 변했다, 얘기할 수도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 중국 공안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8000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동남아가 새로운 탈북루트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화면을 보시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탈북경로는 북한 국경을 넘어서 선양과 옌진, 그리고 베이징 등을 거쳐서 쿤밍과 난닝 등 중국 남부지역까지 이동한 뒤에 라오스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약 1만킬로미터의 대장정인데요, 위험부담이 높습니다마는 그만큼 한국행을 강력히 희망하는 탈북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으로 파악됩니다. ⊙앵커: 사실 이번에 들어온 게 1, 20명도 아니고 460여 명인데 탈북자들이 몇 년새 급증하지 않았습니까? 최근 몇 명이나 되고 얼마나 더 늘 것 같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수가 5000명을 넘고 있는 것으로 알러지고 있는데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매년 10명 안팎에 불과했습니다마는 최근 3년 사이에 해마다 10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연도 많은데요. 지금까지 국내 입국과정을 김원장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지난 83년 2월 북한군 이훈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직접 몰고 귀순합니다. 이어 4년 뒤인 87년 김만철 씨 가족 11명이 어선을 타고 서해상으로 입국합니다. 지난 97년에는 김일성대학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가르쳤던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입국합니다. 이어 북한의 경제난을 반영하듯 고위층들의 제3국 망명이 이어졌고 90년대 후반에는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을 넘는 북한 주민들이 급증합니다. 지난 2001년에는 장기수 씨 등 탈북자 7명이 UN고등판무관 베이징사무소를 통해 입국했고 이듬해에는 주중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진입한 25명이 입국에 성공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주중 일본대사관에 진입하던 일가족이 붙잡히는 모습이 공개돼 국민적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후 중국 내 제3국의 대사관이나 학교를 통한 입국과 동남아를 거친 입국이 급증하면서 탈북자들의 입국러시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원장입니다. ⊙앵커: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요, 지승현 앵커는 이번 탈북자들 보고 어떤 생각하십니까? ⊙앵커: 일단은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가 당연히 수용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요. 저렇게 많은 수의 주민들이 한꺼번에 들어올 경우를 생각하면 과연 우리 사회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대비가 돼 있는지 그런 의문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앵커: 그러면 여기서 시민들의 반응을 한번 직접 들어볼까요. ⊙인터뷰: 오면 돈을 많이 주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돈만 줄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부에서도 관리해 주고... ⊙인터뷰: 우리나라에도 지금 어려운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굳이 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인터뷰: 진정한 우리 교포애로서 이것을 맞이해야 된다고 나는 봐요. ⊙인터뷰: 진짜 힘들어요,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못 사는데 그런 탈북자들을 더 잘 사는 나라에서 도와줘야죠. ⊙인터뷰: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적응해서 잘 살 수 있도록 따뜻하게 받아주고 싶어요. ⊙앵커: 시민들의 반응이 정말 상당히 많이 분분하고 다양해요. ⊙앵커: 어찌 보면 이 문제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될 수 있고 또 사회적 논의가 아직 불충분하다, 그런 반증일 것 같아요. 탈북 주민들 천신만고 끝에 왔는데 그 기존의 탈북자들은 어떻게 잘 정착을 하고 있습니까? ⊙기자: 남한 주민들의, 북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의 적응을 측정하는 바로미터 가운데 하나가 취업인데요. 한마디로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현재 탈북자들의 취업률은 30%를 밑돌고 있고요. 그나마 정규직에 취업한 사람들도 일반 평균 근로자의 60% 정도의 그런 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탈북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그러나 남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꼽고 있는데요. 한번 탈북자들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최성일(99년 12월 입국/양강도 출신):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가지고 있는 자기의 어떤 능력을 그리고 남한에 와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최성일(99년 12월 입국/양강도 출신): 소외감, 이질감, 이런 것을 많이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취직을 해도 어느 직장에 발 붙이고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참 배울 나이에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평생 그 공백을 안고 항상 남한 사람들보다 처진, 뒤떨어지는 이런 사람들로밖에 살 수 없다는 거죠. ⊙정주화(2001년 4월 입국/함경북도 출신): 내 며느리, 내 사위 이러면 내 식구잖아요. 저렇게 독한 (북한) 사람들이 우리 식구가 되고.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만에 하나 혹시 우리 집의 돈을 보고 어떤 일이 있겠는지 이런 걸 먼저 타산(계산)을 하는 거예요. ⊙인터뷰: 중국에 숨어 지내서 너무나 긴장된 탓인지 한국에 나와서는 거의 다 앓고, 남자들도 다 3D일 밖에 없으니까 나가서 힘든 일 하다가 또 아프고... ⊙앵커: 이번에는 분단과 통일을 이미 경험한 독일을 연결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독일은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베를린 연결합니다. 박승규 특파원. ⊙기자: 네, 베를린입니다. ⊙앵커: 독일도 통일 전 당시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얼마나 탈출했었는지 그리고 또 이들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졌었는지 궁금한데요. 기자: 1949년 분단에서 1991년 통일까지, 동독을 탈출해서 서독으로 간 사람들이 200만명이나 됩니다. 무려 전체 동독 인구의 12%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1950년대 한 해 평균 25만명 정도가 서독으로 계속 탈출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1961년 동독에서 세운 것이 바로 베를린장벽입니다. 통일 직전인 1989년에도 58만명이 서독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들 동독 탈출자들은 당시 살림이 넉넉했던 서독 정부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가서 살 수 있고 생활비는 물론 가구, 집, 자동차를 사는 데까지 특혜를 주었습니다. 1984년 한 통계에서 서독에 정착한 지 1년 지난 동독 사람의 평균 자동차 보유율이 73%로 서독 사람 64%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또 비디오 보급률은 15%대, 8%로 두 배 정도나 높았습니다. 당시 서독 사람들은 탈동독 주민의 생활수준을 부러운 눈으로 봤다고 할 정도입니다. ⊙앵커: 앞서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 다소 엇갈렸는데요. 당시 동독 주민들에 대해서 서독 주민들,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기자: 네, 통일 전에는 탈동독 행렬에 대해 비교적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1984년 통계로도 60% 이상이 호의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통일 후 경제가 나빠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통일된 지 15년, 동독 재건비용으로 한 해 평균 우리 돈 130조원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동독지역의 평균 실업률은 18%, 지금도 서독지역의 두 배에 이릅니다. 서독지역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독일 경제가 급속히 나빠진 것은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개선되지 않는 동독지역의 문제라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일 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앵커: 독일 상황,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될 텐데요. 앞으로 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네, 앞으로 1인당 3590만원이던 탈북자 지원금이 2000만원으로 줄어듭니다. 여기에 대한 보완체계가 시급한 상황이고 지난번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건립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 그리고 편견을 극복하고 사회적인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금철영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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