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기한 국민 5,126명, 2022년 맞습니까

입력 2022.12.29 (06:37) 수정 2022.12.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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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연말을 맞아 2022년 한 해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를 연속으로 짚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취약 계층의 사회 안전망을 살펴봅니다.

빈곤에 내몰려 세상을 등진 '수원 세 모녀' 사건, 많이들 기억하실 텐데요, 이 사건 이후 위기가구 발굴 대책 등이 나왔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대응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반복되는 이런 비극, 우리 사회가 막을 순 없는 걸까요?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수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골목입니다.

지난 8월, 이곳에서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치료가 힘든 병, 사업 실패로 떠안은 빚까지 감당할 수 없는 생활고를 겪었던 '수원 세 모녀'.

정부의 지원이 절실했지만, 이들은 생전에 단 한 차례도 '위기가구'로 포착되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7/지난 8월 25일 : "마지막 길도 쓸쓸하게 떠나게 됐습니다. 가족의 시신을 인도받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불 꺼진 창문, 집은 넉 달째 비어 있습니다.

세 모녀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웃들은 아직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방칠성/'수원 세모녀' 이웃 : "너무 기가 막히고 또 너무 안타까워서 말이 안 나왔죠. 또 바로 이웃이니까요."]

'가난'이 곧 '비극'이 되는 동안, 정부 역할은 부재했고, 사회복지는 미비했습니다.

장기간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자, 지자체에서 실태 파악에 나서긴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등록된 주소지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던 이 가족을, 끝까지 찾아내려는 기관은 없었습니다.

[방칠성/'수원 세모녀' 이웃 :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못 먹어서 이렇게 헐벗고 굶주려서 (죽을까?) 그렇지만 저희들이 볼 때는 지금도 못 먹고 헐벗은 자들이 많아요."]

이런 일은 끊이지를 않습니다.

20년 전 북한을 떠나 국내에 정착한 40대 김 모 씨.

관리비가 밀리자 공무원이 집 앞까지 찾아가 보긴 했지만 김 씨를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난 10월 그는 결국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서재평/변사 탈북자 동료 :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금 시스템이 아닌가. 그냥 형식적으로 그래도 찾아갔다고 실적에 그치는 상황이어서 지금은..."]

단전, 단수 등 생활상 '위기 징후'가 포착된 가구는 올 한 해만 93만여 명.

그 가운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가 지원에서 배제한 사람이 5천 백여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행정적인 이유로 정부가 지원을 포기할 때, 누군가에겐 그것이 결정적인 비극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80대 노모를 모시고 살던 58살 김 모 씨,

지난 5월 정부의 '위기가구' 명단에 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건강보험료, 관리비 체납 등의 전형적인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김 모 씨 가족/음성변조 : "코로나 때문에 (숨진 형이) 음식 장사를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그것 때문에 관리비가 미납되고..."]

지자체는 현장 조사에서 노모를 직접 만나기까지 했고, 아들 김 씨의 연락처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얼마 안 가 이 집을 '연락두절'로 분류하더니, 끝내 복지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세대주로부터 '회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사이 김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습니다.

[해당 지자체 공무원/음성변조 : "저희는 회신이 올 줄 알았죠. 일을 하러 외부로 다니기 때문에 (집에) 한 번씩 들른다고 했어요. 복지 사각지대 처리가 마치는 기간이 다가오고 이래서 우선 (연락두절) 비대상으로 빼놓고."]

이 '마감 기한'도 문젭니다.

위기가구 조사는 두 달 안에 끝내도록 돼 있습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그 기간 동안 대상자들을 일일이 만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효율적인 소재지 파악을 위해선 통신·금융 자료 등의 개인정보 조회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는데, 그걸 뒷받침할 제도나 법 정비는 아직까지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KBS 뉴스 이지은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허수곤/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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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29 06:37:19
    • 수정2022-12-29 08: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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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연말을 맞아 2022년 한 해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를 연속으로 짚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취약 계층의 사회 안전망을 살펴봅니다.

빈곤에 내몰려 세상을 등진 '수원 세 모녀' 사건, 많이들 기억하실 텐데요, 이 사건 이후 위기가구 발굴 대책 등이 나왔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대응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반복되는 이런 비극, 우리 사회가 막을 순 없는 걸까요?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수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골목입니다.

지난 8월, 이곳에서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치료가 힘든 병, 사업 실패로 떠안은 빚까지 감당할 수 없는 생활고를 겪었던 '수원 세 모녀'.

정부의 지원이 절실했지만, 이들은 생전에 단 한 차례도 '위기가구'로 포착되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7/지난 8월 25일 : "마지막 길도 쓸쓸하게 떠나게 됐습니다. 가족의 시신을 인도받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불 꺼진 창문, 집은 넉 달째 비어 있습니다.

세 모녀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웃들은 아직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방칠성/'수원 세모녀' 이웃 : "너무 기가 막히고 또 너무 안타까워서 말이 안 나왔죠. 또 바로 이웃이니까요."]

'가난'이 곧 '비극'이 되는 동안, 정부 역할은 부재했고, 사회복지는 미비했습니다.

장기간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자, 지자체에서 실태 파악에 나서긴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등록된 주소지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던 이 가족을, 끝까지 찾아내려는 기관은 없었습니다.

[방칠성/'수원 세모녀' 이웃 :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못 먹어서 이렇게 헐벗고 굶주려서 (죽을까?) 그렇지만 저희들이 볼 때는 지금도 못 먹고 헐벗은 자들이 많아요."]

이런 일은 끊이지를 않습니다.

20년 전 북한을 떠나 국내에 정착한 40대 김 모 씨.

관리비가 밀리자 공무원이 집 앞까지 찾아가 보긴 했지만 김 씨를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난 10월 그는 결국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서재평/변사 탈북자 동료 :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금 시스템이 아닌가. 그냥 형식적으로 그래도 찾아갔다고 실적에 그치는 상황이어서 지금은..."]

단전, 단수 등 생활상 '위기 징후'가 포착된 가구는 올 한 해만 93만여 명.

그 가운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가 지원에서 배제한 사람이 5천 백여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행정적인 이유로 정부가 지원을 포기할 때, 누군가에겐 그것이 결정적인 비극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80대 노모를 모시고 살던 58살 김 모 씨,

지난 5월 정부의 '위기가구' 명단에 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건강보험료, 관리비 체납 등의 전형적인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김 모 씨 가족/음성변조 : "코로나 때문에 (숨진 형이) 음식 장사를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그것 때문에 관리비가 미납되고..."]

지자체는 현장 조사에서 노모를 직접 만나기까지 했고, 아들 김 씨의 연락처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얼마 안 가 이 집을 '연락두절'로 분류하더니, 끝내 복지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세대주로부터 '회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사이 김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습니다.

[해당 지자체 공무원/음성변조 : "저희는 회신이 올 줄 알았죠. 일을 하러 외부로 다니기 때문에 (집에) 한 번씩 들른다고 했어요. 복지 사각지대 처리가 마치는 기간이 다가오고 이래서 우선 (연락두절) 비대상으로 빼놓고."]

이 '마감 기한'도 문젭니다.

위기가구 조사는 두 달 안에 끝내도록 돼 있습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그 기간 동안 대상자들을 일일이 만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효율적인 소재지 파악을 위해선 통신·금융 자료 등의 개인정보 조회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는데, 그걸 뒷받침할 제도나 법 정비는 아직까지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KBS 뉴스 이지은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허수곤/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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