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유령 아파트’가 됐습니다…여전한 ‘코로나 낙인’

입력 2022.12.31 (06:48) 수정 2022.12.3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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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어느덧 3년이 다 돼가고, 우리 사회는 그 상흔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그동안 말못할 고충을 삭이며 남몰래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감염자'라는 이유로, 혹은 집단감염 장소에 산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가 몰랐던' 피해자들의 얘기입니다.

이도윤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전국에서 처음으로 아파트가 통째로 코호트 격리됐던 대구의 한마음아파틉니다.

격리 당시만 해도 5층짜리 아파트 두 개 동에 140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2년여가 지난 지금은 인적이 끊겼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로 변한 겁니다.

코로나 아파트, 신천지 아파트...

꼬리표처럼 붙은 낙인에 떠밀리듯 떠나야 했던 입주민들.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85년, 대구시는 여성 노동자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게 이 곳을 만들었습니다.

월 임대료는 이 호실 전체를 혼자 쓰면 5만 7천 원, 큰방만 쓰면 3만 4천원, 작은방만 쓰면 2만 3천원이었습니다.

[한마음아파트 전 거주자/음성변조 : "정말 훨씬 저렴하니까. 다른 데보다는 새는 돈이 없으니까. 쓰려고 하면 없는 돈이지만 모으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크죠."]

이 소중한 보금자리가 '감옥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2020년 3월, 46명이 연이어 확진되자, 아파트 전체의 출입을 통제하는 '코호트' 격리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입주민 전원이 그렇게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아파트 거주자는 '피해야 할 사람' 처럼 '낙인'이 찍혀버렸습니다.

당사자들은, 투병과 격리보다도, 쏟아지는 책망의 시선이 더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한마음아파트 전 거주자 A 씨 : "거기 앞에 시장이 있거든요. 싼 것도 많이 팔고 그래서 갔는데 그냥 다 '다른 데서 왔다'고 그랬어요. 그냥 깔끔하게 입고 가고. 여기를 지나치는 사람처럼."]

결국 쫓기듯 아파트를 나왔고 냉대를 피해서 아예 대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마음아파트 전 거주자 A 씨 : "그냥 이렇게 욕을 먹을 바에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총알받이가 되니까 그래서 너무 괴로웠고."]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간 집은 온기를 잃고 버려졌습니다.

[인근 주민 : "하나씩 둘씩 떠나는 거. 한번은 큰 캐리어 해가지고 떠나는 거 보기는 봤어요."]

이 시기, 대구를 '코로나 진원지'로 몰아가는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에 당연한 듯 번졌습니다.

양순덕 씨는 그 무렵 서울의 한 병원에 암 수술 예약을 잡아놨는데, 바로 전날 '대구 시민'이라는 이유로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양순덕/대구시 서구 : "갑자기 문자가 온 거예요. 수술을 무기한 연기를 해야 될 수 있다고. 그때는 대구 시민은 버림받은 상태였죠."]

코로나19 초기, 감염자들은 '확진자 몇 호', '슈퍼 전파자' 등의 오명으로 불렸고, 동선과 집주소까지 공개됐습니다.

[코로나19 초반 확진자 B 씨 :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요. 그 밑에 이제 달려져 있었던 댓글들이 정말 처참할 정도로 심각했었고요. 뭐 더러운 놈부터 시작해서..."]

낙인은 곧 인권침해였지만 그 때는 누구도, 그 배려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원망보다 용서, 갈등보다는 화합,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양순덕/대구시 서구 : "특별한 가해자 없이 피해자 없이 다 누구나 다 피해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해자, 피해자 없이 다 감염의 대상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는데."]

[강효정/대구시 남구 : "다시는 이런 병이 안 나타났으면 좋겠고요. 대구 시민들,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 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다 일 잘 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족도 행복하고."]

KBS 뉴스 이도윤입니다.

촬영기자:김현민/영상편집:이상미/그래픽:최창준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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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2-12-31 06: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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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어느덧 3년이 다 돼가고, 우리 사회는 그 상흔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그동안 말못할 고충을 삭이며 남몰래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감염자'라는 이유로, 혹은 집단감염 장소에 산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가 몰랐던' 피해자들의 얘기입니다.

이도윤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전국에서 처음으로 아파트가 통째로 코호트 격리됐던 대구의 한마음아파틉니다.

격리 당시만 해도 5층짜리 아파트 두 개 동에 140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2년여가 지난 지금은 인적이 끊겼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로 변한 겁니다.

코로나 아파트, 신천지 아파트...

꼬리표처럼 붙은 낙인에 떠밀리듯 떠나야 했던 입주민들.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85년, 대구시는 여성 노동자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게 이 곳을 만들었습니다.

월 임대료는 이 호실 전체를 혼자 쓰면 5만 7천 원, 큰방만 쓰면 3만 4천원, 작은방만 쓰면 2만 3천원이었습니다.

[한마음아파트 전 거주자/음성변조 : "정말 훨씬 저렴하니까. 다른 데보다는 새는 돈이 없으니까. 쓰려고 하면 없는 돈이지만 모으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크죠."]

이 소중한 보금자리가 '감옥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2020년 3월, 46명이 연이어 확진되자, 아파트 전체의 출입을 통제하는 '코호트' 격리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입주민 전원이 그렇게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아파트 거주자는 '피해야 할 사람' 처럼 '낙인'이 찍혀버렸습니다.

당사자들은, 투병과 격리보다도, 쏟아지는 책망의 시선이 더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한마음아파트 전 거주자 A 씨 : "거기 앞에 시장이 있거든요. 싼 것도 많이 팔고 그래서 갔는데 그냥 다 '다른 데서 왔다'고 그랬어요. 그냥 깔끔하게 입고 가고. 여기를 지나치는 사람처럼."]

결국 쫓기듯 아파트를 나왔고 냉대를 피해서 아예 대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마음아파트 전 거주자 A 씨 : "그냥 이렇게 욕을 먹을 바에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총알받이가 되니까 그래서 너무 괴로웠고."]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간 집은 온기를 잃고 버려졌습니다.

[인근 주민 : "하나씩 둘씩 떠나는 거. 한번은 큰 캐리어 해가지고 떠나는 거 보기는 봤어요."]

이 시기, 대구를 '코로나 진원지'로 몰아가는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에 당연한 듯 번졌습니다.

양순덕 씨는 그 무렵 서울의 한 병원에 암 수술 예약을 잡아놨는데, 바로 전날 '대구 시민'이라는 이유로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양순덕/대구시 서구 : "갑자기 문자가 온 거예요. 수술을 무기한 연기를 해야 될 수 있다고. 그때는 대구 시민은 버림받은 상태였죠."]

코로나19 초기, 감염자들은 '확진자 몇 호', '슈퍼 전파자' 등의 오명으로 불렸고, 동선과 집주소까지 공개됐습니다.

[코로나19 초반 확진자 B 씨 :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요. 그 밑에 이제 달려져 있었던 댓글들이 정말 처참할 정도로 심각했었고요. 뭐 더러운 놈부터 시작해서..."]

낙인은 곧 인권침해였지만 그 때는 누구도, 그 배려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원망보다 용서, 갈등보다는 화합,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양순덕/대구시 서구 : "특별한 가해자 없이 피해자 없이 다 누구나 다 피해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해자, 피해자 없이 다 감염의 대상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는데."]

[강효정/대구시 남구 : "다시는 이런 병이 안 나타났으면 좋겠고요. 대구 시민들,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 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다 일 잘 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족도 행복하고."]

KBS 뉴스 이도윤입니다.

촬영기자:김현민/영상편집:이상미/그래픽:최창준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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