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속 150km로 얼음을 가르는 거북선이 있습니다. 바로 스켈레톤 국가대표 정승기의 이야깁니다.
헬멧에 '거북선'을 그려 넣은 정승기는 마치 그 거북선처럼 얼음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정승기는 평창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이 잠시 스켈레톤을 내려놓은 사이, 대표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이번 시즌 3연속 월드컵 메달. 1차 대회 은메달로 시작해 2차대회 은메달, 3차 대회에서 동메달입니다.
정승기는 "저도 이 정도로 성적이 잘 나올 거라고 기대를 못 했어요. 정말 기쁘고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세요. 1차 대회에서 2등을 하고 '우연인가'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2, 3차 대회 때도 평균적인 기록이 나오더라고요. '여름에 코치님들하고 준비한 게 헛된 게 아니구나'하고 뿌듯한 마음이 있습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대회마다 사연도 다양합니다. 1차 대회에서는 0.01초 차로 뒤 쳐져 메달 색깔이 바뀌었고, 3차 대회에서는 A형 독감까지 걸렸습니다.
정승기는 "1차 대회, 2차 시기를 타고 내려왔을 때 '이거 됐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1위와 0.01초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좀 억울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0.01초가 매우 큰 시간이라는 걸 느꼈어요. 다음부터는 내가 0.01초 차이로 이겨야겠다고 다짐했죠.
3차 대회 때는 갑자기 A형 독감에 걸렸고요. 썰매를 탈 때만 안 아프더라고요. 다 타고 내려오면,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하하. 그래도 경기 직전 열이 내려가고 기침도 줄어서 다행이었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 올림픽 '10위'를 발판 삼아…돌격하는 '거북선'처럼
정승기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10위를 기록했습니다. 첫 꿈의 무대를 앞두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에 크게 긴장했고 컨디션도 좋지 못했습니다. 4차 시기까지 기록은 점점 좋아졌지만, 최종 성적은 10위. 아쉬웠던 경험은 성장에 발판이 됐습니다.
정승기는 "올림픽 무대에서 몇 등을 했고 이런 걸 떠나서 경기를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요. 원래 월드컵도 많이 떨렸는데, 이번 시즌은 좀 더 여유롭게 경기에 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준비한 걸 더 잘 보여줬고요. 또 올림픽 기간 코스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깨달았어요. 이 커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타야 할까 연구를 많이 했죠. 이제는 다른 코스들을 볼 때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아쉬웠던 만큼 비시즌 동안 이를 더 악물었습니다. 정승기는 선수들이 뽑은 '훈련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선수'입니다. 정승기는 자신이 재능보다는 노력파라고 말합니다. 육상훈련에서도 근력 훈련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기에, 최대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특출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정승기 성장의 비법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번 시즌에는 '썰매'를 바꾸는 승부수까지 던졌습니다.
정승기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새로운 장비로 바꿨어요. '차'처럼, '썰매'마다 특징이 다양해요. 안정성을 추구하는 썰매도 있고 안정성은 떨어져도 스피드를 추구하는 썰매가 있죠. 예전에 쓰던 썰매는 급커브 시 회전을 안정적으로 이뤄지게 했다면, 이번 썰매는 긴 커브에서 좀 더 빠르게, 멀리 뻗어 나갈 수 있는 썰매에요. 안정성은 전보다 조금 떨어지죠. 저에겐 이번 썰매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새로운 썰매를 탔을 때 완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어요. 새로 스켈레톤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고, 조종법도 완전히 바꿔야 했어요. 사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걱정했는데 몇 번 타다 보니까 감을 찾았어요. 다행이었죠."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바꾸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거북선 헬멧입니다. 검정 헬멧에 금색으로 거북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한국사에 관심도 많고 거북선을 좋아해요. 그래서 헬멧에 거북선을 넣었죠. 거북선이 돌격선이잖아요. 거북선처럼 위풍당당하게 얼음을 내려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런 마음 가짐을 갖고 싶기도 하고요.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는 이 헬멧을 계속 쓰고 싶어요." 라며 "후원사 로고 스티커를 헬멧에 붙여야 하는데, 눈은 차마 못 가리겠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스켈레톤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정승기는 스켈레톤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썰매 종목은 육상이나 다른 종목에서 전향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정승기는 스켈레톤만을 고집해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말 그대로 '첫사랑'입니다. 소치 올림픽 중계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겁니다. 정승기는 중계 해설진의 한 마디, '운동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한마디에 바로 평창으로 갔습니다.
"저는 스켈레톤이 첫 운동이에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시작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지금 대학교까지 강원도에서 나왔고요.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이 많았었는데 우연히 스켈레톤 중계를 봤어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평창으로 갔죠. 운명인 것 같아요. 타이밍도 잘 맞았어요. 제가 육상이나 축구 등 다른 종목에서 스카웃을 많이 받았었는데 부모님께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스켈레톤만큼은 강력하게 말씀드리니 결국 허락하셨죠."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소한 이 종목, 당시에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완전히 생소한 종목이고 정보도 많이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이랑 떨어져 있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외에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더 애를 먹었죠. 처음 시작했을 때는 완주를 못 할 정도로 부딪히면서 내려갔어요. 그래서 멍도 많이 들고 집에 가고 싶었죠. 지금은 너무 재밌어요. 어떻게 해야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갈 수 있지 고민을 하면서 썰매를 탈 만큼 재밌습니다."
이제 정승기는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 무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첫 올림픽은 '긴장'이었다면, 이제는 '설렘'입니다. 스켈레톤은 종목 특성상 경험이 중요합니다. 경험이 쌓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를 전성기로 보는데, 3년 뒤 정승기는 만 26살에 접어듭니다. 매일 쌓이는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금메달을 노립니다. 이 메달을 바탕으로 '스켈레톤'하면 누구라도 어떤 종목인지 알게끔 하고 싶다는 장기적 목표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트랙을 가서도 속도가 제일 빠르고, 스타트가 제일 빠르면 그 사람이 이기는 종목입니다. 개최지 이점은 개의치 않아요. 어떤 유형의 커브에서도 최대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끔 공부도, 훈련도 많이 할 겁니다.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아있어요. 다른 선수들과 차이가 있어야 금메달을 딸 수 있겠죠. 3년이란 시간 동안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 결과를 내려고 합니다."
닻을 높이 올린 거북선이 3년 뒤 밀라노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오는 6일 4차 대회를 시작으로, 정승기는 다시 시즌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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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을 가르는 거북선 정승기 “스켈레톤은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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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1-02 16:42:57

시속 150km로 얼음을 가르는 거북선이 있습니다. 바로 스켈레톤 국가대표 정승기의 이야깁니다.
헬멧에 '거북선'을 그려 넣은 정승기는 마치 그 거북선처럼 얼음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정승기는 평창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이 잠시 스켈레톤을 내려놓은 사이, 대표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이번 시즌 3연속 월드컵 메달. 1차 대회 은메달로 시작해 2차대회 은메달, 3차 대회에서 동메달입니다.
정승기는 "저도 이 정도로 성적이 잘 나올 거라고 기대를 못 했어요. 정말 기쁘고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세요. 1차 대회에서 2등을 하고 '우연인가'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2, 3차 대회 때도 평균적인 기록이 나오더라고요. '여름에 코치님들하고 준비한 게 헛된 게 아니구나'하고 뿌듯한 마음이 있습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대회마다 사연도 다양합니다. 1차 대회에서는 0.01초 차로 뒤 쳐져 메달 색깔이 바뀌었고, 3차 대회에서는 A형 독감까지 걸렸습니다.
정승기는 "1차 대회, 2차 시기를 타고 내려왔을 때 '이거 됐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1위와 0.01초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좀 억울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0.01초가 매우 큰 시간이라는 걸 느꼈어요. 다음부터는 내가 0.01초 차이로 이겨야겠다고 다짐했죠.
3차 대회 때는 갑자기 A형 독감에 걸렸고요. 썰매를 탈 때만 안 아프더라고요. 다 타고 내려오면,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하하. 그래도 경기 직전 열이 내려가고 기침도 줄어서 다행이었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 올림픽 '10위'를 발판 삼아…돌격하는 '거북선'처럼
정승기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10위를 기록했습니다. 첫 꿈의 무대를 앞두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에 크게 긴장했고 컨디션도 좋지 못했습니다. 4차 시기까지 기록은 점점 좋아졌지만, 최종 성적은 10위. 아쉬웠던 경험은 성장에 발판이 됐습니다.
정승기는 "올림픽 무대에서 몇 등을 했고 이런 걸 떠나서 경기를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요. 원래 월드컵도 많이 떨렸는데, 이번 시즌은 좀 더 여유롭게 경기에 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준비한 걸 더 잘 보여줬고요. 또 올림픽 기간 코스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깨달았어요. 이 커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타야 할까 연구를 많이 했죠. 이제는 다른 코스들을 볼 때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아쉬웠던 만큼 비시즌 동안 이를 더 악물었습니다. 정승기는 선수들이 뽑은 '훈련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선수'입니다. 정승기는 자신이 재능보다는 노력파라고 말합니다. 육상훈련에서도 근력 훈련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기에, 최대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특출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정승기 성장의 비법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번 시즌에는 '썰매'를 바꾸는 승부수까지 던졌습니다.
정승기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새로운 장비로 바꿨어요. '차'처럼, '썰매'마다 특징이 다양해요. 안정성을 추구하는 썰매도 있고 안정성은 떨어져도 스피드를 추구하는 썰매가 있죠. 예전에 쓰던 썰매는 급커브 시 회전을 안정적으로 이뤄지게 했다면, 이번 썰매는 긴 커브에서 좀 더 빠르게, 멀리 뻗어 나갈 수 있는 썰매에요. 안정성은 전보다 조금 떨어지죠. 저에겐 이번 썰매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새로운 썰매를 탔을 때 완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어요. 새로 스켈레톤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고, 조종법도 완전히 바꿔야 했어요. 사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걱정했는데 몇 번 타다 보니까 감을 찾았어요. 다행이었죠."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바꾸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거북선 헬멧입니다. 검정 헬멧에 금색으로 거북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한국사에 관심도 많고 거북선을 좋아해요. 그래서 헬멧에 거북선을 넣었죠. 거북선이 돌격선이잖아요. 거북선처럼 위풍당당하게 얼음을 내려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런 마음 가짐을 갖고 싶기도 하고요.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는 이 헬멧을 계속 쓰고 싶어요." 라며 "후원사 로고 스티커를 헬멧에 붙여야 하는데, 눈은 차마 못 가리겠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스켈레톤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정승기는 스켈레톤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썰매 종목은 육상이나 다른 종목에서 전향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정승기는 스켈레톤만을 고집해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말 그대로 '첫사랑'입니다. 소치 올림픽 중계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겁니다. 정승기는 중계 해설진의 한 마디, '운동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한마디에 바로 평창으로 갔습니다.
"저는 스켈레톤이 첫 운동이에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시작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지금 대학교까지 강원도에서 나왔고요.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이 많았었는데 우연히 스켈레톤 중계를 봤어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평창으로 갔죠. 운명인 것 같아요. 타이밍도 잘 맞았어요. 제가 육상이나 축구 등 다른 종목에서 스카웃을 많이 받았었는데 부모님께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스켈레톤만큼은 강력하게 말씀드리니 결국 허락하셨죠."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소한 이 종목, 당시에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완전히 생소한 종목이고 정보도 많이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이랑 떨어져 있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외에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더 애를 먹었죠. 처음 시작했을 때는 완주를 못 할 정도로 부딪히면서 내려갔어요. 그래서 멍도 많이 들고 집에 가고 싶었죠. 지금은 너무 재밌어요. 어떻게 해야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갈 수 있지 고민을 하면서 썰매를 탈 만큼 재밌습니다."
이제 정승기는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 무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첫 올림픽은 '긴장'이었다면, 이제는 '설렘'입니다. 스켈레톤은 종목 특성상 경험이 중요합니다. 경험이 쌓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를 전성기로 보는데, 3년 뒤 정승기는 만 26살에 접어듭니다. 매일 쌓이는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금메달을 노립니다. 이 메달을 바탕으로 '스켈레톤'하면 누구라도 어떤 종목인지 알게끔 하고 싶다는 장기적 목표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트랙을 가서도 속도가 제일 빠르고, 스타트가 제일 빠르면 그 사람이 이기는 종목입니다. 개최지 이점은 개의치 않아요. 어떤 유형의 커브에서도 최대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끔 공부도, 훈련도 많이 할 겁니다.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아있어요. 다른 선수들과 차이가 있어야 금메달을 딸 수 있겠죠. 3년이란 시간 동안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 결과를 내려고 합니다."
닻을 높이 올린 거북선이 3년 뒤 밀라노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오는 6일 4차 대회를 시작으로, 정승기는 다시 시즌에 돌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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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빈 기자 newsub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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