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즐거운 장수마을

입력 2004.12.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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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멘트
전라북도 순창군은 장수 노인이 많은 장수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수 노인들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활동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추위에도 움츠리지 않고 활발하게 지내는 장수 노인들의 겨울나기를 취재했습니다.

*김개형기자:
오늘은 전북 순창군의 장날. 순창군 이곳 저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장터는 시끌벅적 합니다. 여기저기 벌어진 좌판 위로 흥정이 오가면서 순창군이 활기에 넘칩니다. 두름 째 걸어놓은 굴비가 햇빛을 받아 번쩍이고 좌판에 오른 갈치도 두툼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뜨거운 순대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하얀 김이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줍니다. 뜨거운 순대국 한 그릇은 갑자기 닥친 추위를 녹여낼 정돕니다. 장터 한 구석에는 얼핏봐도 70살은 넘어보이는 할머니 30여명이 좌판을 깔고 있습니다. 직접 키워 낸 농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입니다.
청국장과 깐 마늘을 팔러 나온 할머니의 입심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안 팔린다는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장갑순(93살/순창군):
(많이 파셨어요?) “조금 팔았어. 늙응게 장사가 안돼.”
(마늘은 얼마나 파셨어요?) “마늘은 6개 팔았어.”
(마늘은 하나에 얼마예요) “2천원 씩”
(그럼 4개 팔고 10개 팔았어요?) “사갈라우? 사가 하나. 하나 가져가.”

*김개형기자:
증손주까지 봤다는 할머니는 20년 넘게 장날이면 꼬박꼬박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옹예(82살/순창군):
(안 나오시면 아파요?) “몸이 아파, 내 몸을 위해서 댕기는 거야. 건강하라고. 안 움직거리면 안돼 마비가 되버려. 몸뚱이가 그렁께 다니는 거야.”

*김개형기자:
순창군 구림면 이암마을에 사는 한규상 할아버지와 김복실 할머니도 장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할머니의 옷 매무새를 잡아주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정겹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들린 곳은 방아간. 콩가루를 내는 30여분이 지루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규상(88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설 명절 남았응께, 거시기하고 공휴일 날 아들들 오면은 아들들하고 거시에다 넣어먹고
밥도 무쳐서 함께 먹고, 떡도 해서는 고물 무쳐먹고 그리고 호박떡 같은 거, 거기서는 귀한게로.>

*김개형기자:
생선을 사겠다고 어물전을 찾아 나선 할아버지. 생굴을 한입 맛본 뒤 생굴 5천원 어치를 삽니다. 집으로 돌아온 한규상 할아버지는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경운기를 이리저리 운전해 가며 동네를 빠져나갑니다. 낫으로 잔가지를 쳐가며 잡목을 하나 둘 경운기로 옮겨 싣습니다.

*한규상(88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힘들지 않으세요?) “안 힘들어. 베어 놓은 것이니까.”

*김개형기자:
이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한규상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입니다.

*한규상(88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몸 관리를 거저 인제 일정하니 거시기하게 자고 먹는 것을 철저히 일정하니 먹어야 한당게.
그러고는 놀지 말고 일혀야 혀. 꼬무락거려야 혀 그것이 비결이여. 농사짓고 그냥 저 편하게 살면 건강하들 못 혀. 늘 거시기를 혀야 혀.”

*김개형기자:
시골 마을의 겨울 아침은 소 죽을 끓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료보다 소 죽을 먹는 소가 육질이 좋아 인기가 많다며 올해 다시 소를 키우기 시작한 김일중 할아버지. 소 죽을 먹이고 돌아서서는 다음 끼니 때 줄 소 여물을 준비합니다. 부산하게 아침을 시작한 탓에 시장기가 입맛을 돋웁니다. 배추 잎을 넣어 끓인 된장국과 김치로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워냅니다.

*김일중(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더 먹어야 혀, 요것 먹고 안되라.”

*김개형기자:
40킬로그램자리 벼 가마가 차례로 경운기에 실립니다. 69살 동갑내기 할아버지들이 벼 가마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일이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설경수(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한두 가마는 힘 안 들지만 여러 가마는 힘들지.”

*김개형기자:
힘들다는 말과는 달리 농협 수매에 넘길 43가마를 10여분 만에 모두 실었습니다. 2톤 가까이 됩니다. 농협 수매에 나갈 벼를 실은 트럭과 경운기가 긴 줄을 이뤄 출발합니다. 30여분 만에 도착한 농협 창고에서는 벌써 수매가 시작됐습니다. 농협에 넘기는 가격은 40킬로그램 벼 한 가마에 5만6천원. 40여 가마를 팔아 2백만원여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설경수(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남는 거 없어. 농사 한 30마지기 지어봤자 요리조리 떨궈 놨으면 돈 한 오백 그저. 턱없이 줄동말동 그래요. 고놈 갖고 또 내년에 농사 짓고 할라 그러면 쓸 것은 집에서 한 삼백, 한 이백갖고 농사짓고.”

*김개형기자:
내년에 칠순인 최윤섭 할아버지가 오늘 생일을 맞았습니다. 큰 아들과 세째 아들 가족이 찾아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생일 상을 차렸습니다.

*최윤섭(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아들 손주들 못 봤는 데, 아들 손주들 봤으니까 기분이 좋고 딴 거 없어. 쌍둥이 손녀를 봤고 둘째 며느리가 4월 달에 산달이 곧 돌아와. 이번에 아들 하나 또 낳을 거야>.”

*김개형기자:
장수 마을로 유명한 순창군에서도 구림면 이암 마을은 장수 노인이 유난히 많습니다. 주민 111명 가운데 37명이 65살 이상입니다. 70살 넘는 노인들도 19명이나 됩니다. 나무 장작이 쩍쩍 갈라집니다. 도끼가 힘에 겨운 지 한 번 한 번 내리칠 때마다 한숨을 내몰아 쉽니다.
그래도 도끼가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힘이 들어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움직이는 게 75년째 지켜온 최종기 할아버지의 생활 원칙입니다.

*최종기(75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힘이 있는 만큼 움직이는 것이 좋아.힘에 맞게. 늙었다고 쭉 뻗고 날만 놀아봐 안 좋다고. 움직일 수 있는 한은 움직이라고 그랬어. 힘에 맞게 과하면 하지 말고 내 힘에 맞게. 움직이라고.”

*김개형기자:
끊임없이 움직이는 장수 마을 노인들. 이번에는 짚신 삼기에 나섰습니다. 볏 집을 발가락에 걸고 농사일에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볏집 가닥가닥을 옭아 맵니다. 어느새 짚신 한 컬레가 만들어집니다.

*김기성(순창군 연산면 연산마을):
“이것도 운동이야. 돌아다는 것도 운동. 어디 걸어나가도 운동.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늙으면 활동을 해야 해요. 그래야 이 몸이 건강해요.”

*클로징멘트:
장수 마을 노인들이 말하는 장수와 건강의 비결은 끈임 없이 몸을 움직이라는 겁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것 같은 이 말속에 장수의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기인 웰빙을 말하면서 추운 겨울이면 움츠리기에 급급한 도시민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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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이 즐거운 장수마을
    • 입력 2004-12-12 16:35:13
    취재파일K
*오프닝멘트 전라북도 순창군은 장수 노인이 많은 장수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수 노인들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활동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추위에도 움츠리지 않고 활발하게 지내는 장수 노인들의 겨울나기를 취재했습니다. *김개형기자: 오늘은 전북 순창군의 장날. 순창군 이곳 저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장터는 시끌벅적 합니다. 여기저기 벌어진 좌판 위로 흥정이 오가면서 순창군이 활기에 넘칩니다. 두름 째 걸어놓은 굴비가 햇빛을 받아 번쩍이고 좌판에 오른 갈치도 두툼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뜨거운 순대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하얀 김이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줍니다. 뜨거운 순대국 한 그릇은 갑자기 닥친 추위를 녹여낼 정돕니다. 장터 한 구석에는 얼핏봐도 70살은 넘어보이는 할머니 30여명이 좌판을 깔고 있습니다. 직접 키워 낸 농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입니다. 청국장과 깐 마늘을 팔러 나온 할머니의 입심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안 팔린다는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장갑순(93살/순창군): (많이 파셨어요?) “조금 팔았어. 늙응게 장사가 안돼.” (마늘은 얼마나 파셨어요?) “마늘은 6개 팔았어.” (마늘은 하나에 얼마예요) “2천원 씩” (그럼 4개 팔고 10개 팔았어요?) “사갈라우? 사가 하나. 하나 가져가.” *김개형기자: 증손주까지 봤다는 할머니는 20년 넘게 장날이면 꼬박꼬박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옹예(82살/순창군): (안 나오시면 아파요?) “몸이 아파, 내 몸을 위해서 댕기는 거야. 건강하라고. 안 움직거리면 안돼 마비가 되버려. 몸뚱이가 그렁께 다니는 거야.” *김개형기자: 순창군 구림면 이암마을에 사는 한규상 할아버지와 김복실 할머니도 장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할머니의 옷 매무새를 잡아주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정겹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들린 곳은 방아간. 콩가루를 내는 30여분이 지루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규상(88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설 명절 남았응께, 거시기하고 공휴일 날 아들들 오면은 아들들하고 거시에다 넣어먹고 밥도 무쳐서 함께 먹고, 떡도 해서는 고물 무쳐먹고 그리고 호박떡 같은 거, 거기서는 귀한게로.> *김개형기자: 생선을 사겠다고 어물전을 찾아 나선 할아버지. 생굴을 한입 맛본 뒤 생굴 5천원 어치를 삽니다. 집으로 돌아온 한규상 할아버지는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경운기를 이리저리 운전해 가며 동네를 빠져나갑니다. 낫으로 잔가지를 쳐가며 잡목을 하나 둘 경운기로 옮겨 싣습니다. *한규상(88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힘들지 않으세요?) “안 힘들어. 베어 놓은 것이니까.” *김개형기자: 이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게 한규상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입니다. *한규상(88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몸 관리를 거저 인제 일정하니 거시기하게 자고 먹는 것을 철저히 일정하니 먹어야 한당게. 그러고는 놀지 말고 일혀야 혀. 꼬무락거려야 혀 그것이 비결이여. 농사짓고 그냥 저 편하게 살면 건강하들 못 혀. 늘 거시기를 혀야 혀.” *김개형기자: 시골 마을의 겨울 아침은 소 죽을 끓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료보다 소 죽을 먹는 소가 육질이 좋아 인기가 많다며 올해 다시 소를 키우기 시작한 김일중 할아버지. 소 죽을 먹이고 돌아서서는 다음 끼니 때 줄 소 여물을 준비합니다. 부산하게 아침을 시작한 탓에 시장기가 입맛을 돋웁니다. 배추 잎을 넣어 끓인 된장국과 김치로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워냅니다. *김일중(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더 먹어야 혀, 요것 먹고 안되라.” *김개형기자: 40킬로그램자리 벼 가마가 차례로 경운기에 실립니다. 69살 동갑내기 할아버지들이 벼 가마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일이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설경수(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한두 가마는 힘 안 들지만 여러 가마는 힘들지.” *김개형기자: 힘들다는 말과는 달리 농협 수매에 넘길 43가마를 10여분 만에 모두 실었습니다. 2톤 가까이 됩니다. 농협 수매에 나갈 벼를 실은 트럭과 경운기가 긴 줄을 이뤄 출발합니다. 30여분 만에 도착한 농협 창고에서는 벌써 수매가 시작됐습니다. 농협에 넘기는 가격은 40킬로그램 벼 한 가마에 5만6천원. 40여 가마를 팔아 2백만원여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설경수(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남는 거 없어. 농사 한 30마지기 지어봤자 요리조리 떨궈 놨으면 돈 한 오백 그저. 턱없이 줄동말동 그래요. 고놈 갖고 또 내년에 농사 짓고 할라 그러면 쓸 것은 집에서 한 삼백, 한 이백갖고 농사짓고.” *김개형기자: 내년에 칠순인 최윤섭 할아버지가 오늘 생일을 맞았습니다. 큰 아들과 세째 아들 가족이 찾아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생일 상을 차렸습니다. *최윤섭(69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아들 손주들 못 봤는 데, 아들 손주들 봤으니까 기분이 좋고 딴 거 없어. 쌍둥이 손녀를 봤고 둘째 며느리가 4월 달에 산달이 곧 돌아와. 이번에 아들 하나 또 낳을 거야>.” *김개형기자: 장수 마을로 유명한 순창군에서도 구림면 이암 마을은 장수 노인이 유난히 많습니다. 주민 111명 가운데 37명이 65살 이상입니다. 70살 넘는 노인들도 19명이나 됩니다. 나무 장작이 쩍쩍 갈라집니다. 도끼가 힘에 겨운 지 한 번 한 번 내리칠 때마다 한숨을 내몰아 쉽니다. 그래도 도끼가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힘이 들어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움직이는 게 75년째 지켜온 최종기 할아버지의 생활 원칙입니다. *최종기(75살/순창군 구림면 이림마을): “힘이 있는 만큼 움직이는 것이 좋아.힘에 맞게. 늙었다고 쭉 뻗고 날만 놀아봐 안 좋다고. 움직일 수 있는 한은 움직이라고 그랬어. 힘에 맞게 과하면 하지 말고 내 힘에 맞게. 움직이라고.” *김개형기자: 끊임없이 움직이는 장수 마을 노인들. 이번에는 짚신 삼기에 나섰습니다. 볏 집을 발가락에 걸고 농사일에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볏집 가닥가닥을 옭아 맵니다. 어느새 짚신 한 컬레가 만들어집니다. *김기성(순창군 연산면 연산마을): “이것도 운동이야. 돌아다는 것도 운동. 어디 걸어나가도 운동.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늙으면 활동을 해야 해요. 그래야 이 몸이 건강해요.” *클로징멘트: 장수 마을 노인들이 말하는 장수와 건강의 비결은 끈임 없이 몸을 움직이라는 겁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것 같은 이 말속에 장수의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기인 웰빙을 말하면서 추운 겨울이면 움츠리기에 급급한 도시민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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