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나라에서 추방돼야 했나요”…국가에 책임 묻는 입양인들

입력 2023.01.07 (21:25) 수정 2023.01.0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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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이 17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해외 입양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거나, 입양 후 학대에 방치됐던 사례들이 뒤늦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아픈 기억에 고통받는 이들이 국가와 기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원동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80년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잠시 고아원에 맡겨졌던 김유리 씨.

친부모 동의도 없이 프랑스로 입양됐습니다.

[김유리/해외입양인/50세 : "내 부모가 있는 나라에서 나를 다른 데로 추방하는 거 같지? 내가 뭘 잘못 했길래 11살이면 내 삶이라는 게 있는데, 왜 나는 여기서 살 수가 없지?"]

입양 직후부터 양부모의 학대가 시작됐지만 아무도 그의 안전을 묻지 않았습니다.

[김유리/해외입양인/50세 : "입양기관에서 우리들을 보러오지 않았어요. 양부가 이상한 짓 하고 성적인 학대를 하고…. 그리고, 우리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결국, 스스로 입양가정을 탈출해 친부모를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남은 건 내 나라에 대한 원망입니다.

[김유리/해외입양인/50세 : "38년이라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요. 수준이 없는 입양 제도라고 할까요? 가족을 파괴시키는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1979년, 3살 때 미국에 입양된 애덤 크랩서 씨.

학대와 파양이 거듭되다 끝내 한국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김수정/변호사/애덤 크랩서 씨 소송 대리인 : "성인이 되어서 가족을 이루고 이미 살고 있는 과정에서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족을 두고 혼자) 추방이 됐어요."]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인생이 뒤바뀐 그는 해외 입양인 최초로 국가와 입양기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35년 만에 어렵게 만난 가족이 가족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해외 입양인도 있습니다.

입양 기록이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타라 푸트너/해외 입양인/46세 : "(DNA 검사를 하고 나서)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걸 발견했죠. 제가 의지했던 기반이 거짓말이거나 분명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충격 이상이었어요."]

지금까지 해외입양인 371명이 진실화해위원회에 해외 입양 과정에 대한 조사를 신청했습니다.

위원회는 일부 사건의 조사 개시를 결정해, 해외 현지 조사를 계획중입니다.

KBS 뉴스 원동희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 박준석 홍성백/영상편집:전유진

[앵커]

이 내용 취재한 문화복지부 원동희 기자와 좀 더 짚어보겠습니다.

원동희 기자, 친부모 동의 없이 해외로 보내고, 사후 관리도 안 됐어요.

당시엔 그런 의무가 없었습니까?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관리 책임이 있었습니다.

취재 중 1983년 당시 보건사회부, 지금의 보건복지부가 국내 입양기관에 보낸 입양 지침을 입수했는데요.

이 지침을 보면 입양기관에 입양 후에도 아동의 적응상태를 방문해서 살피고, 국적 취득 상황도 파악하라고 돼있습니다.

취재중 만난 입양인들은 사후 관리가 없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일부겠지만 학대 가정으로 보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입양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절차는 없었나요?

[기자]

당시에도 양부모 선정 기준은 있었지만, 상당수가 제대로 안 지킨 걸로 보입니다.

해외의 양부모는 '3개월간 월 1회 이상 방문 상담한 뒤 입양 아동이 적응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부부'라고 규정돼있습니다.

[앵커]

기준은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 지금 국가와 기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원래는 소송 결과가 지난해 12월 말에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소개해드린 입양 지침이 발견했고, 추가 증거로 제출돼 선고가 미뤄지게 됐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와 입양기관 측은 사후관리에 대한 법적 의무는 없었다라고 주장해 왔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증거가 재판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앵커]

그런데 여전히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많죠.

왜 그런겁니까?

[기자]

많이 줄긴 했지만 최근 5년 동안에도 해마다 200~300명의 어린이가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국내입양이 우선이지만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여의치 않아 국내 입양이 안 되면, 해외 입양을 보내게 됩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입양을 더 많이 보내는 나라는 콜롬비아와 우크라이나뿐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해외입양인들은 아직도 해외 입양을 허락하는걸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당장 해외입양을 없애기보단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입양과정에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국제입양법'이 지난해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앞으로 논의를 지켜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촬영기자:최석규/영상편집:이상미/그래픽: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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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내 나라에서 추방돼야 했나요”…국가에 책임 묻는 입양인들
    • 입력 2023-01-07 21:25:49
    • 수정2023-01-07 21:49:07
    뉴스 9
[앵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이 17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해외 입양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거나, 입양 후 학대에 방치됐던 사례들이 뒤늦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아픈 기억에 고통받는 이들이 국가와 기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원동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80년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잠시 고아원에 맡겨졌던 김유리 씨.

친부모 동의도 없이 프랑스로 입양됐습니다.

[김유리/해외입양인/50세 : "내 부모가 있는 나라에서 나를 다른 데로 추방하는 거 같지? 내가 뭘 잘못 했길래 11살이면 내 삶이라는 게 있는데, 왜 나는 여기서 살 수가 없지?"]

입양 직후부터 양부모의 학대가 시작됐지만 아무도 그의 안전을 묻지 않았습니다.

[김유리/해외입양인/50세 : "입양기관에서 우리들을 보러오지 않았어요. 양부가 이상한 짓 하고 성적인 학대를 하고…. 그리고, 우리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결국, 스스로 입양가정을 탈출해 친부모를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남은 건 내 나라에 대한 원망입니다.

[김유리/해외입양인/50세 : "38년이라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요. 수준이 없는 입양 제도라고 할까요? 가족을 파괴시키는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1979년, 3살 때 미국에 입양된 애덤 크랩서 씨.

학대와 파양이 거듭되다 끝내 한국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김수정/변호사/애덤 크랩서 씨 소송 대리인 : "성인이 되어서 가족을 이루고 이미 살고 있는 과정에서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족을 두고 혼자) 추방이 됐어요."]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인생이 뒤바뀐 그는 해외 입양인 최초로 국가와 입양기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35년 만에 어렵게 만난 가족이 가족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해외 입양인도 있습니다.

입양 기록이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타라 푸트너/해외 입양인/46세 : "(DNA 검사를 하고 나서)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걸 발견했죠. 제가 의지했던 기반이 거짓말이거나 분명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충격 이상이었어요."]

지금까지 해외입양인 371명이 진실화해위원회에 해외 입양 과정에 대한 조사를 신청했습니다.

위원회는 일부 사건의 조사 개시를 결정해, 해외 현지 조사를 계획중입니다.

KBS 뉴스 원동희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 박준석 홍성백/영상편집:전유진

[앵커]

이 내용 취재한 문화복지부 원동희 기자와 좀 더 짚어보겠습니다.

원동희 기자, 친부모 동의 없이 해외로 보내고, 사후 관리도 안 됐어요.

당시엔 그런 의무가 없었습니까?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관리 책임이 있었습니다.

취재 중 1983년 당시 보건사회부, 지금의 보건복지부가 국내 입양기관에 보낸 입양 지침을 입수했는데요.

이 지침을 보면 입양기관에 입양 후에도 아동의 적응상태를 방문해서 살피고, 국적 취득 상황도 파악하라고 돼있습니다.

취재중 만난 입양인들은 사후 관리가 없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일부겠지만 학대 가정으로 보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입양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절차는 없었나요?

[기자]

당시에도 양부모 선정 기준은 있었지만, 상당수가 제대로 안 지킨 걸로 보입니다.

해외의 양부모는 '3개월간 월 1회 이상 방문 상담한 뒤 입양 아동이 적응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부부'라고 규정돼있습니다.

[앵커]

기준은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 지금 국가와 기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원래는 소송 결과가 지난해 12월 말에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소개해드린 입양 지침이 발견했고, 추가 증거로 제출돼 선고가 미뤄지게 됐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와 입양기관 측은 사후관리에 대한 법적 의무는 없었다라고 주장해 왔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증거가 재판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앵커]

그런데 여전히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많죠.

왜 그런겁니까?

[기자]

많이 줄긴 했지만 최근 5년 동안에도 해마다 200~300명의 어린이가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국내입양이 우선이지만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여의치 않아 국내 입양이 안 되면, 해외 입양을 보내게 됩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입양을 더 많이 보내는 나라는 콜롬비아와 우크라이나뿐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해외입양인들은 아직도 해외 입양을 허락하는걸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당장 해외입양을 없애기보단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입양과정에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국제입양법'이 지난해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앞으로 논의를 지켜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촬영기자:최석규/영상편집:이상미/그래픽: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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