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편성 자료 공개

입력 2005.06.07 (21:56)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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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패망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편성했던 광복군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부산에서 해산되기는 했지만 광복군을 국군의 모태로 삼기에 노력한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보도에 신강문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이한 이 중 고려대 명예교수가 광복군부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던 3중대의 부대원 명부에는 병사 160여 명의 원적지와 일본군 복무 당시의 계급, 그리고 학력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부대일지에는 김 구 주석이 부대행사에 참가하고 이청천 장군이 열병을 받았다는 등 광복군을 통솔했던 임시정부 인사들의 행적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같이 귀국을 해서 나라 세우는 일에 협조를 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김 구 선생 등 요인들의 요망사항이었고 우리도 또 받들었죠.
⊙기자: 부대원들끼리 만든 문집에서는 헐벗고 굶주렸던 당시 광복군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당초 이들 광복군을 수만명 규모로 모아 정식 한국군으로 발족시키려 했으나 중국 국민당에게 무장해제돼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46년 3월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귀국한 즉시 해산됐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와서 보니 반탁 운동이나 미소 공동위원회라 해서 일이 뜻대
로 되지 않았다고 봐야죠.
⊙기자: 이들 자료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 여성 220여 명의 명단도 포함돼 위안부 실태를 더 상세히 규명하게 됐습니다.
KBS뉴스 신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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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군 편성 자료 공개
    • 입력 2005-06-07 21:34:39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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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패망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편성했던 광복군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부산에서 해산되기는 했지만 광복군을 국군의 모태로 삼기에 노력한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보도에 신강문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이한 이 중 고려대 명예교수가 광복군부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던 3중대의 부대원 명부에는 병사 160여 명의 원적지와 일본군 복무 당시의 계급, 그리고 학력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부대일지에는 김 구 주석이 부대행사에 참가하고 이청천 장군이 열병을 받았다는 등 광복군을 통솔했던 임시정부 인사들의 행적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같이 귀국을 해서 나라 세우는 일에 협조를 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김 구 선생 등 요인들의 요망사항이었고 우리도 또 받들었죠. ⊙기자: 부대원들끼리 만든 문집에서는 헐벗고 굶주렸던 당시 광복군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당초 이들 광복군을 수만명 규모로 모아 정식 한국군으로 발족시키려 했으나 중국 국민당에게 무장해제돼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46년 3월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귀국한 즉시 해산됐습니다. ⊙이 중(고려대 명예교수): 와서 보니 반탁 운동이나 미소 공동위원회라 해서 일이 뜻대 로 되지 않았다고 봐야죠. ⊙기자: 이들 자료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 여성 220여 명의 명단도 포함돼 위안부 실태를 더 상세히 규명하게 됐습니다. KBS뉴스 신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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