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대나무에 영원한 무늬를 새기다…‘낙죽장’ 김기찬
입력 2023.01.26 (19:42)
수정 2023.01.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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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나무에 인두로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 낙죽장을 아십니까?
40여 년 낙죽을 지키며 전통기술을 전승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은근한 숯불에 달군 인두가 대나무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인두가 잔뜩 달궈져 있을 땐 짙은 선을 그리고 식으면 섬세한 문양과 명암으로 농담을 맞춥니다.
[김기찬/낙죽장 : "손의 감각으로 그때그때 느낌을 살려서 하는 것이죠."]
인두의 뜨거움을 읽는 장인은 대나무와 함께 대쪽 같은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리산 구제봉 아래 자리 잡은 낙죽 공방. 김기찬 낙죽장의 다채로운 낙죽 작품이 반깁니다.
[김기찬/낙죽장 : "저는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살려서 어떻게 하면 제 손이 조금 들어가나, 내 생각을 조금 집어넣고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없는가를 연구했어요."]
큰스님이 법문 때 쓰는 불자엔 인두로 반야심경을 새기고, 생명이 다한 느티나무는 차칙과 붓대 같은 낙죽 작품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대나무 뿌리로 자연을 살려서 붓대를 만든 것입니다. '차와 나 하나 됐네’라는 시를 썼는데 제가 낙죽으로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작은 글씨체입니다."]
대밭 많은 하동에서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한 산행도 낙죽장의 일상.
곧게 잘 자란 대보다 풍파를 견디며 변형된 대를 찾는데요.
3년 이상 된 대는 터지기 쉬워서 대의 나이, 마디까지 꼼꼼하게 살핍니다.
사방이 대나무지만 한참 대숲을 헤맨 끝에야 마음에 드는 재료를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산행에 헛걸음이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묘한 대나무가 하나 눈에 띄네요. 굵기도 적당하고 쓰임새도 있고..."]
조선 시대 공예 장식법으로 발달한 낙죽은 산수문과 소라문, 사군자문 등 문양만 100가지가 넘는데요.
시서화와 목공예를 섭렵한 낙죽장은 직접 짓고 쓰고 만들면서 낙죽의 표현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낙죽에서는 송학도라고 그러는데 민화에 가깝게 표현한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낙죽을 위해 도자기의 상감기법, 금속공예의 쪼이질 등 다른 분야 기법을 접목하기도 하는데요.
인두로 점을 찍어가며 문양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은 쪼이질에서 착안한 겁니다.
[김기찬/낙죽장 : "글씨가 아닌 부분을 어둡게 해서 이 글씨를 튀어나오게 도드라지게 하는 그런 기법입니다."]
낙죽장에겐 인두가 붓이고 조각도인 셈인데요.
순천 송광사와 보성에서 낙죽의 맥을 이어온 그는 하동에 정착하면서 차와 어울리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동의 자연에서 채취한 대로 하동차를 담는 다구에 이어서 도예가와 협업한 다관도 내놓았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작가가 어느 한 가지만 해선 그건 폭이 좁아요. 지금 만들어 놓은 이 대나무 손잡이를 이렇게 해서 붙일 건데 여기에다가 낙죽을 하고..."]
도자기와 악기, 목공예 장인들과 폭넓게 협업하면서 전통 낙죽을 오늘에 맞게 변주하는데요.
흔한 대나무도 낙죽장의 삶과 철학이 담기면서 더 특별해집니다.
[김기찬/낙죽장 : "마른 대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낙죽장은 오늘도 뜨거운 화로 앞에서 '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체가 진리이고 본성이며 그것이 나와 하나다."]
[김태학/하동군 적량면 도장마을 : "모든 현대미술, 미학적인 감각으로 여러 분야를 콜라보를 해서 뜨겁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두를 붓 삼아 영원한 무늬를 새기는 낙죽장에게 대나무는 여전히 풀지 못한 화두입니다.
[김기찬/낙죽장 : "평생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어떤 난제가 하나씩 하나씩 자꾸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최고의 낙죽을 위한 고민과 도전.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대나무에 인두로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 낙죽장을 아십니까?
40여 년 낙죽을 지키며 전통기술을 전승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은근한 숯불에 달군 인두가 대나무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인두가 잔뜩 달궈져 있을 땐 짙은 선을 그리고 식으면 섬세한 문양과 명암으로 농담을 맞춥니다.
[김기찬/낙죽장 : "손의 감각으로 그때그때 느낌을 살려서 하는 것이죠."]
인두의 뜨거움을 읽는 장인은 대나무와 함께 대쪽 같은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리산 구제봉 아래 자리 잡은 낙죽 공방. 김기찬 낙죽장의 다채로운 낙죽 작품이 반깁니다.
[김기찬/낙죽장 : "저는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살려서 어떻게 하면 제 손이 조금 들어가나, 내 생각을 조금 집어넣고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없는가를 연구했어요."]
큰스님이 법문 때 쓰는 불자엔 인두로 반야심경을 새기고, 생명이 다한 느티나무는 차칙과 붓대 같은 낙죽 작품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대나무 뿌리로 자연을 살려서 붓대를 만든 것입니다. '차와 나 하나 됐네’라는 시를 썼는데 제가 낙죽으로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작은 글씨체입니다."]
대밭 많은 하동에서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한 산행도 낙죽장의 일상.
곧게 잘 자란 대보다 풍파를 견디며 변형된 대를 찾는데요.
3년 이상 된 대는 터지기 쉬워서 대의 나이, 마디까지 꼼꼼하게 살핍니다.
사방이 대나무지만 한참 대숲을 헤맨 끝에야 마음에 드는 재료를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산행에 헛걸음이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묘한 대나무가 하나 눈에 띄네요. 굵기도 적당하고 쓰임새도 있고..."]
조선 시대 공예 장식법으로 발달한 낙죽은 산수문과 소라문, 사군자문 등 문양만 100가지가 넘는데요.
시서화와 목공예를 섭렵한 낙죽장은 직접 짓고 쓰고 만들면서 낙죽의 표현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낙죽에서는 송학도라고 그러는데 민화에 가깝게 표현한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낙죽을 위해 도자기의 상감기법, 금속공예의 쪼이질 등 다른 분야 기법을 접목하기도 하는데요.
인두로 점을 찍어가며 문양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은 쪼이질에서 착안한 겁니다.
[김기찬/낙죽장 : "글씨가 아닌 부분을 어둡게 해서 이 글씨를 튀어나오게 도드라지게 하는 그런 기법입니다."]
낙죽장에겐 인두가 붓이고 조각도인 셈인데요.
순천 송광사와 보성에서 낙죽의 맥을 이어온 그는 하동에 정착하면서 차와 어울리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동의 자연에서 채취한 대로 하동차를 담는 다구에 이어서 도예가와 협업한 다관도 내놓았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작가가 어느 한 가지만 해선 그건 폭이 좁아요. 지금 만들어 놓은 이 대나무 손잡이를 이렇게 해서 붙일 건데 여기에다가 낙죽을 하고..."]
도자기와 악기, 목공예 장인들과 폭넓게 협업하면서 전통 낙죽을 오늘에 맞게 변주하는데요.
흔한 대나무도 낙죽장의 삶과 철학이 담기면서 더 특별해집니다.
[김기찬/낙죽장 : "마른 대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낙죽장은 오늘도 뜨거운 화로 앞에서 '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체가 진리이고 본성이며 그것이 나와 하나다."]
[김태학/하동군 적량면 도장마을 : "모든 현대미술, 미학적인 감각으로 여러 분야를 콜라보를 해서 뜨겁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두를 붓 삼아 영원한 무늬를 새기는 낙죽장에게 대나무는 여전히 풀지 못한 화두입니다.
[김기찬/낙죽장 : "평생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어떤 난제가 하나씩 하나씩 자꾸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최고의 낙죽을 위한 고민과 도전.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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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1-26 19:42:31
- 수정2023-01-26 20:22:13

[앵커]
대나무에 인두로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 낙죽장을 아십니까?
40여 년 낙죽을 지키며 전통기술을 전승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은근한 숯불에 달군 인두가 대나무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인두가 잔뜩 달궈져 있을 땐 짙은 선을 그리고 식으면 섬세한 문양과 명암으로 농담을 맞춥니다.
[김기찬/낙죽장 : "손의 감각으로 그때그때 느낌을 살려서 하는 것이죠."]
인두의 뜨거움을 읽는 장인은 대나무와 함께 대쪽 같은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리산 구제봉 아래 자리 잡은 낙죽 공방. 김기찬 낙죽장의 다채로운 낙죽 작품이 반깁니다.
[김기찬/낙죽장 : "저는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살려서 어떻게 하면 제 손이 조금 들어가나, 내 생각을 조금 집어넣고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없는가를 연구했어요."]
큰스님이 법문 때 쓰는 불자엔 인두로 반야심경을 새기고, 생명이 다한 느티나무는 차칙과 붓대 같은 낙죽 작품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대나무 뿌리로 자연을 살려서 붓대를 만든 것입니다. '차와 나 하나 됐네’라는 시를 썼는데 제가 낙죽으로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작은 글씨체입니다."]
대밭 많은 하동에서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한 산행도 낙죽장의 일상.
곧게 잘 자란 대보다 풍파를 견디며 변형된 대를 찾는데요.
3년 이상 된 대는 터지기 쉬워서 대의 나이, 마디까지 꼼꼼하게 살핍니다.
사방이 대나무지만 한참 대숲을 헤맨 끝에야 마음에 드는 재료를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산행에 헛걸음이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묘한 대나무가 하나 눈에 띄네요. 굵기도 적당하고 쓰임새도 있고..."]
조선 시대 공예 장식법으로 발달한 낙죽은 산수문과 소라문, 사군자문 등 문양만 100가지가 넘는데요.
시서화와 목공예를 섭렵한 낙죽장은 직접 짓고 쓰고 만들면서 낙죽의 표현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낙죽에서는 송학도라고 그러는데 민화에 가깝게 표현한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낙죽을 위해 도자기의 상감기법, 금속공예의 쪼이질 등 다른 분야 기법을 접목하기도 하는데요.
인두로 점을 찍어가며 문양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은 쪼이질에서 착안한 겁니다.
[김기찬/낙죽장 : "글씨가 아닌 부분을 어둡게 해서 이 글씨를 튀어나오게 도드라지게 하는 그런 기법입니다."]
낙죽장에겐 인두가 붓이고 조각도인 셈인데요.
순천 송광사와 보성에서 낙죽의 맥을 이어온 그는 하동에 정착하면서 차와 어울리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동의 자연에서 채취한 대로 하동차를 담는 다구에 이어서 도예가와 협업한 다관도 내놓았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작가가 어느 한 가지만 해선 그건 폭이 좁아요. 지금 만들어 놓은 이 대나무 손잡이를 이렇게 해서 붙일 건데 여기에다가 낙죽을 하고..."]
도자기와 악기, 목공예 장인들과 폭넓게 협업하면서 전통 낙죽을 오늘에 맞게 변주하는데요.
흔한 대나무도 낙죽장의 삶과 철학이 담기면서 더 특별해집니다.
[김기찬/낙죽장 : "마른 대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낙죽장은 오늘도 뜨거운 화로 앞에서 '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체가 진리이고 본성이며 그것이 나와 하나다."]
[김태학/하동군 적량면 도장마을 : "모든 현대미술, 미학적인 감각으로 여러 분야를 콜라보를 해서 뜨겁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두를 붓 삼아 영원한 무늬를 새기는 낙죽장에게 대나무는 여전히 풀지 못한 화두입니다.
[김기찬/낙죽장 : "평생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어떤 난제가 하나씩 하나씩 자꾸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최고의 낙죽을 위한 고민과 도전.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대나무에 인두로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 낙죽장을 아십니까?
40여 년 낙죽을 지키며 전통기술을 전승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은근한 숯불에 달군 인두가 대나무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인두가 잔뜩 달궈져 있을 땐 짙은 선을 그리고 식으면 섬세한 문양과 명암으로 농담을 맞춥니다.
[김기찬/낙죽장 : "손의 감각으로 그때그때 느낌을 살려서 하는 것이죠."]
인두의 뜨거움을 읽는 장인은 대나무와 함께 대쪽 같은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리산 구제봉 아래 자리 잡은 낙죽 공방. 김기찬 낙죽장의 다채로운 낙죽 작품이 반깁니다.
[김기찬/낙죽장 : "저는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살려서 어떻게 하면 제 손이 조금 들어가나, 내 생각을 조금 집어넣고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없는가를 연구했어요."]
큰스님이 법문 때 쓰는 불자엔 인두로 반야심경을 새기고, 생명이 다한 느티나무는 차칙과 붓대 같은 낙죽 작품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대나무 뿌리로 자연을 살려서 붓대를 만든 것입니다. '차와 나 하나 됐네’라는 시를 썼는데 제가 낙죽으로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작은 글씨체입니다."]
대밭 많은 하동에서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한 산행도 낙죽장의 일상.
곧게 잘 자란 대보다 풍파를 견디며 변형된 대를 찾는데요.
3년 이상 된 대는 터지기 쉬워서 대의 나이, 마디까지 꼼꼼하게 살핍니다.
사방이 대나무지만 한참 대숲을 헤맨 끝에야 마음에 드는 재료를 얻었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산행에 헛걸음이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묘한 대나무가 하나 눈에 띄네요. 굵기도 적당하고 쓰임새도 있고..."]
조선 시대 공예 장식법으로 발달한 낙죽은 산수문과 소라문, 사군자문 등 문양만 100가지가 넘는데요.
시서화와 목공예를 섭렵한 낙죽장은 직접 짓고 쓰고 만들면서 낙죽의 표현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낙죽에서는 송학도라고 그러는데 민화에 가깝게 표현한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낙죽을 위해 도자기의 상감기법, 금속공예의 쪼이질 등 다른 분야 기법을 접목하기도 하는데요.
인두로 점을 찍어가며 문양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은 쪼이질에서 착안한 겁니다.
[김기찬/낙죽장 : "글씨가 아닌 부분을 어둡게 해서 이 글씨를 튀어나오게 도드라지게 하는 그런 기법입니다."]
낙죽장에겐 인두가 붓이고 조각도인 셈인데요.
순천 송광사와 보성에서 낙죽의 맥을 이어온 그는 하동에 정착하면서 차와 어울리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동의 자연에서 채취한 대로 하동차를 담는 다구에 이어서 도예가와 협업한 다관도 내놓았습니다.
[김기찬/낙죽장 : "작가가 어느 한 가지만 해선 그건 폭이 좁아요. 지금 만들어 놓은 이 대나무 손잡이를 이렇게 해서 붙일 건데 여기에다가 낙죽을 하고..."]
도자기와 악기, 목공예 장인들과 폭넓게 협업하면서 전통 낙죽을 오늘에 맞게 변주하는데요.
흔한 대나무도 낙죽장의 삶과 철학이 담기면서 더 특별해집니다.
[김기찬/낙죽장 : "마른 대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낙죽장은 오늘도 뜨거운 화로 앞에서 '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체가 진리이고 본성이며 그것이 나와 하나다."]
[김태학/하동군 적량면 도장마을 : "모든 현대미술, 미학적인 감각으로 여러 분야를 콜라보를 해서 뜨겁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두를 붓 삼아 영원한 무늬를 새기는 낙죽장에게 대나무는 여전히 풀지 못한 화두입니다.
[김기찬/낙죽장 : "평생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어떤 난제가 하나씩 하나씩 자꾸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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