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바꿔치기 ‘무죄’…진실은 ‘오리무중’

입력 2023.02.0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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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여자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하고, 수사 과정에서 외할머니가 친모로 밝혀지는 등 충격의 연속이었던 구미 여아 사건. 1, 2, 3심을 거쳐 파기환송심까지 모두 네 번에 걸친 재판. '아이 바꿔치기' 혐의에 대한 판결은 '무죄'였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 파기환송심 '무죄' 선고…왜?

사건은 2021년 2월 일어났습니다. 경북 구미의 한 원룸에서 3살 여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 아이의 '법적 어머니'인 20대 A 씨는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죠. (이후 징역 20년 형이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A 씨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인 50살 석 모 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즉, A 씨는 '엄마'가 아니라 '언니'였던거죠.

석 씨에게는 자신이 낳은 아이(숨진 아이)와 A 씨가 낳은 아이 즉 외손녀(행방 생사 불명)를 바꿔치기한 혐의(미성년자 약취)가 적용돼 1, 2심에서 징역 8년이 선고됐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석 씨의 범행이 완전히 입증됐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대구지방법원으로 파기 환송됐습니다.

그리고 어제(2일), 반년 동안 진행된 파기환송심의 선고.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DNA 증거를 볼 때 석 씨와 아이가 친자 관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인 2018년 3월 말 4월 초에 아이가 바뀐 것인지는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 합리적 의심 없이 범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무죄.

그렇습니다. 논란이 됐던 아이 바꿔치기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왔습니다. 숨진 아이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가 이를 숨기려 했던 혐의(사체은닉미수)만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물론 석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선 처음부터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최종 선고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었습니다.

■ "석 씨-숨진 아이, 친자 관계 맞아…병원서 바꿨다는 증거 없어"

검찰은 석 씨의 생리대 구입 내역과 임신 관련 앱 설치, 회사 퇴사와 재입사 시기 등을 근거로 2018년 3월 쯤 아이를 낳았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30일, 20대 딸인 A 씨가 외손녀를 출산합니다.

A 씨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 아이가 바뀐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바꿀 수 있는 시점은 출신 직후 산모가 정신없을 때뿐. 그래서 검찰은 출산 다음 날인 31일과 4월 1일 사이, 석씨가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의 소홀한 출입관리를 악용해 아이를 바꿨다고 봤습니다. 하룻밤 사이 신생아의 몸무게가 270g, 7.89%나 줄었고, 신생아 식별 띠가 벗겨져 있었던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아무리 외할머니라도 신생아실을 쉽게 드나들 수는 없고, 몸무게 변화나 식별 띠 분리가 이례적인 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석씨가 2018년 3월 아이를 낳았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았다는 근거로 보긴 어렵다는 거죠.

9번에 걸친 파기환송심 공판 동안 증인신문, 증거조사, DNA 재검사 등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산부인과 간호사와 석 씨 직장동료, 친딸 A 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바꿔치기를 입증할만한 진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찰이 공소사실로 적시한 범죄는 입증이 덜 됐고, 아이 바꿔치기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된 겁니다.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

석 씨는 자신이 출산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즉 숨진 아이는 20대 딸 A 씨가 낳은 자신의 외손녀라는 거죠. 유전자 결과 '친모'로 나온 것에 대해선 한 사람 몸 안에 유전적으로 구분 되는 두 개 이상의 세포가 있는 현상인 '키메리즘'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DNA 검사 결과는 숨진 아이와 석 씨 사이에 99.9999%의 확률로 친자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숨진 아이는 석 씨의 20대 딸 A 씨와 그 남편 사이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도 DNA 검사로 확인됐습니다.

과학적 증거들은 딸 A 씨가 낳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아이,석 씨의 진짜 외손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예외적으로 한두 마디 조언이나 의견을 더하기는 하는데, 이번은 꽤 길었습니다.

"무죄는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것일 뿐, 진실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재판장으로서 석 씨의 말이 진실인지, 공소사실 이외의 또 다른 죄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라진 아이, 즉 A 씨가 낳은 아이에 대해 국가가 찾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 이어가는 내내 재판부의 곤혹스러움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죄 선고 이후 석 씨는 한참을 흐느꼈습니다. 방청석에선 석 씨를 향해 "당신은 살인자야!"라는 말이 나왔고, 이 때문에 충돌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네 번의 재판에도 왜 이런 판결이 나왔는지? 석 씨의 잘못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짓인지? 사라진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살아있긴 한 건지? 등등의 의문점은 여전합니다.

검찰은 상고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열릴 재판에선 진실이 드러날까요? 석 씨의 눈물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그 답을 찾을 날이 오긴 할지 끝까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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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바꿔치기 ‘무죄’…진실은 ‘오리무중’
    • 입력 2023-02-03 14:14:52
    취재K

3살 여자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하고, 수사 과정에서 외할머니가 친모로 밝혀지는 등 충격의 연속이었던 구미 여아 사건. 1, 2, 3심을 거쳐 파기환송심까지 모두 네 번에 걸친 재판. '아이 바꿔치기' 혐의에 대한 판결은 '무죄'였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 파기환송심 '무죄' 선고…왜?

사건은 2021년 2월 일어났습니다. 경북 구미의 한 원룸에서 3살 여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 아이의 '법적 어머니'인 20대 A 씨는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죠. (이후 징역 20년 형이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A 씨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인 50살 석 모 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즉, A 씨는 '엄마'가 아니라 '언니'였던거죠.

석 씨에게는 자신이 낳은 아이(숨진 아이)와 A 씨가 낳은 아이 즉 외손녀(행방 생사 불명)를 바꿔치기한 혐의(미성년자 약취)가 적용돼 1, 2심에서 징역 8년이 선고됐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석 씨의 범행이 완전히 입증됐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대구지방법원으로 파기 환송됐습니다.

그리고 어제(2일), 반년 동안 진행된 파기환송심의 선고.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DNA 증거를 볼 때 석 씨와 아이가 친자 관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인 2018년 3월 말 4월 초에 아이가 바뀐 것인지는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 합리적 의심 없이 범죄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무죄.

그렇습니다. 논란이 됐던 아이 바꿔치기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왔습니다. 숨진 아이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가 이를 숨기려 했던 혐의(사체은닉미수)만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물론 석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선 처음부터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최종 선고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었습니다.

■ "석 씨-숨진 아이, 친자 관계 맞아…병원서 바꿨다는 증거 없어"

검찰은 석 씨의 생리대 구입 내역과 임신 관련 앱 설치, 회사 퇴사와 재입사 시기 등을 근거로 2018년 3월 쯤 아이를 낳았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30일, 20대 딸인 A 씨가 외손녀를 출산합니다.

A 씨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 아이가 바뀐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바꿀 수 있는 시점은 출신 직후 산모가 정신없을 때뿐. 그래서 검찰은 출산 다음 날인 31일과 4월 1일 사이, 석씨가 산부인과 병원 신생아실의 소홀한 출입관리를 악용해 아이를 바꿨다고 봤습니다. 하룻밤 사이 신생아의 몸무게가 270g, 7.89%나 줄었고, 신생아 식별 띠가 벗겨져 있었던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아무리 외할머니라도 신생아실을 쉽게 드나들 수는 없고, 몸무게 변화나 식별 띠 분리가 이례적인 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석씨가 2018년 3월 아이를 낳았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았다는 근거로 보긴 어렵다는 거죠.

9번에 걸친 파기환송심 공판 동안 증인신문, 증거조사, DNA 재검사 등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산부인과 간호사와 석 씨 직장동료, 친딸 A 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바꿔치기를 입증할만한 진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찰이 공소사실로 적시한 범죄는 입증이 덜 됐고, 아이 바꿔치기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된 겁니다.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

석 씨는 자신이 출산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즉 숨진 아이는 20대 딸 A 씨가 낳은 자신의 외손녀라는 거죠. 유전자 결과 '친모'로 나온 것에 대해선 한 사람 몸 안에 유전적으로 구분 되는 두 개 이상의 세포가 있는 현상인 '키메리즘'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DNA 검사 결과는 숨진 아이와 석 씨 사이에 99.9999%의 확률로 친자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숨진 아이는 석 씨의 20대 딸 A 씨와 그 남편 사이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도 DNA 검사로 확인됐습니다.

과학적 증거들은 딸 A 씨가 낳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아이,석 씨의 진짜 외손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예외적으로 한두 마디 조언이나 의견을 더하기는 하는데, 이번은 꽤 길었습니다.

"무죄는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것일 뿐, 진실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재판장으로서 석 씨의 말이 진실인지, 공소사실 이외의 또 다른 죄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라진 아이, 즉 A 씨가 낳은 아이에 대해 국가가 찾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 이어가는 내내 재판부의 곤혹스러움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죄 선고 이후 석 씨는 한참을 흐느꼈습니다. 방청석에선 석 씨를 향해 "당신은 살인자야!"라는 말이 나왔고, 이 때문에 충돌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네 번의 재판에도 왜 이런 판결이 나왔는지? 석 씨의 잘못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짓인지? 사라진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살아있긴 한 건지? 등등의 의문점은 여전합니다.

검찰은 상고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열릴 재판에선 진실이 드러날까요? 석 씨의 눈물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그 답을 찾을 날이 오긴 할지 끝까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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