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뿌리고 부모도 협박…‘n번방’ 닮아가는 사채 추심

입력 2023.02.22 (06:31) 수정 2023.02.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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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높은 금리, 집요한 추심으로 악명이 높은 '사채', 그런데 여기에 성착취가 결합한 '성착취 추심'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이자를 요구하다 이를 못 갚으면 채무자의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하거나 '진짜' 성착취 영상을 받아낸 뒤 지인의 SNS 등으로 무차별 유포하는 겁니다.

최은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여성 김 모 씨.

지난해 초 급하게 대출을 알아봤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생활비로, 아니면 아빠 병원비 이렇게 해서 썼던 것 같아요. 은행에서는 이제 조회를 해 보니까 안 된다고 하셔서..."]

결국 인터넷 대출중개 사이트에 문의를 넣게 됐습니다.

'합법 등록 업체'라는 곳 여러 군데서 연락이 왔고 그 중 한 곳에서 20만 원을 빌렸습니다.

무담보인 대신 지인 연락처를 요구했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지인들 연락처가 필요하다면서. 지인 집 주소, 지인 이름, 직장명까지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단 일주일 만에 갚을 돈이 두 배가 됐습니다.

다급한 맘에 다른 업체에서도 돈을 빌려 일부를 상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채업자/음성변조 : "연체료 시간당 20만 원씩은 보내셔야 돼요. 이자 안 보내시면 직장 그냥 잘리게 하겠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율의 빚 독촉과 협박, 지인들에게까지 전가됐는데 대출 당시 요구했던 연락처가 바로 여기에 이용됐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상환) 시간이 지나면 '한 시간에 15만 원, 20만 원 더 올리겠다'. 직장 동료한테 욕까지 하면서 '이 X이 돈을 빌렸는데 안 갚아서'."]

결국 직장까지 그만뒀지만 갚을 돈은 계속 불어났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김 씨에게 사채업자들은 성착취물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텔레그램으로 (나체) 영상 찍어서 보내 주면 (상환) 기한 늦춰 주겠다'. 동생 초등학교까지 찾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두려움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기한 연장 등을 미끼로 계속해서 성착취의 강도만 높아져 갔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영상을 거울에 대고 찍었는데 그건 안 되고, ○○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니까. 또 해서 올렸는데 그 방에 아예 폭파가 된 거죠. 1분 안에 방이 폭파되어서."]

가족들의 일상까지도 '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 씨 아버지/음성변조 : "'영상을 가지고,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모티콘) 웃음 두 개. 소름 끼쳤어요. 영상을 갖고 있으니까 돈을 달라는 거죠. (사채업자에게) '영상 누구한테 있는데?' 그랬더니 자기 친구한테 있대요. 영상 하나 가지고, 영상을 다 돌려 본 거예요."]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처리 결과는 '무혐의' 종결이었습니다.

[김○○ 씨 아버지/음성변조 : "(경찰이) 본인이 자발적으로 해서 보낸 거 아니냐. 누가 이걸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성착취 추심'은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20대 남성 김 모 씨.

SNS 계정을 담보로 15만 원을 빌린 뒤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김○○ 씨/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두 시간, 세 시간에 걸쳐서 연속으로 (전화가) 120통 찍혀 있어 가지고, 그걸 안 받으면 지인들한테 한 명씩 한 명씩 똑같이.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죽이겠다..."]

나체 사진을 보내면 멈추겠단 말에 허겁지겁 사진을 보냈지만, 사채업자들은 김 씨의 신상과 사진을 넣은 '지명수배' 전단까지 만들었고 이를 지인들 SNS에 뿌려댔습니다.

[김○○ 씨/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SNS) '팔로우' 돼 있는 지인들 '태그'해서. 2시까지 (돈) 안 보내면 유포한다 했는데, 전부 다 유포가 된 상태였어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KBS가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한 '성착취 추심' 피해자만 수십 명에 이릅니다.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졌을 때 피해가 더 광역화되고 또는 장기화된다는 점 때문에,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

고리사채와 성착취, 이중의 고통으로 피해자들을 옭아매는 이 범죄는 여러 일당이 조직적으로 공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 최석규/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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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에 뿌리고 부모도 협박…‘n번방’ 닮아가는 사채 추심
    • 입력 2023-02-22 06:31:43
    • 수정2023-02-22 13:04:37
    뉴스광장 1부
[앵커]

높은 금리, 집요한 추심으로 악명이 높은 '사채', 그런데 여기에 성착취가 결합한 '성착취 추심'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이자를 요구하다 이를 못 갚으면 채무자의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하거나 '진짜' 성착취 영상을 받아낸 뒤 지인의 SNS 등으로 무차별 유포하는 겁니다.

최은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여성 김 모 씨.

지난해 초 급하게 대출을 알아봤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생활비로, 아니면 아빠 병원비 이렇게 해서 썼던 것 같아요. 은행에서는 이제 조회를 해 보니까 안 된다고 하셔서..."]

결국 인터넷 대출중개 사이트에 문의를 넣게 됐습니다.

'합법 등록 업체'라는 곳 여러 군데서 연락이 왔고 그 중 한 곳에서 20만 원을 빌렸습니다.

무담보인 대신 지인 연락처를 요구했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지인들 연락처가 필요하다면서. 지인 집 주소, 지인 이름, 직장명까지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단 일주일 만에 갚을 돈이 두 배가 됐습니다.

다급한 맘에 다른 업체에서도 돈을 빌려 일부를 상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채업자/음성변조 : "연체료 시간당 20만 원씩은 보내셔야 돼요. 이자 안 보내시면 직장 그냥 잘리게 하겠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율의 빚 독촉과 협박, 지인들에게까지 전가됐는데 대출 당시 요구했던 연락처가 바로 여기에 이용됐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상환) 시간이 지나면 '한 시간에 15만 원, 20만 원 더 올리겠다'. 직장 동료한테 욕까지 하면서 '이 X이 돈을 빌렸는데 안 갚아서'."]

결국 직장까지 그만뒀지만 갚을 돈은 계속 불어났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김 씨에게 사채업자들은 성착취물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텔레그램으로 (나체) 영상 찍어서 보내 주면 (상환) 기한 늦춰 주겠다'. 동생 초등학교까지 찾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두려움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기한 연장 등을 미끼로 계속해서 성착취의 강도만 높아져 갔습니다.

[김○○/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영상을 거울에 대고 찍었는데 그건 안 되고, ○○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니까. 또 해서 올렸는데 그 방에 아예 폭파가 된 거죠. 1분 안에 방이 폭파되어서."]

가족들의 일상까지도 '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 씨 아버지/음성변조 : "'영상을 가지고,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모티콘) 웃음 두 개. 소름 끼쳤어요. 영상을 갖고 있으니까 돈을 달라는 거죠. (사채업자에게) '영상 누구한테 있는데?' 그랬더니 자기 친구한테 있대요. 영상 하나 가지고, 영상을 다 돌려 본 거예요."]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처리 결과는 '무혐의' 종결이었습니다.

[김○○ 씨 아버지/음성변조 : "(경찰이) 본인이 자발적으로 해서 보낸 거 아니냐. 누가 이걸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성착취 추심'은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20대 남성 김 모 씨.

SNS 계정을 담보로 15만 원을 빌린 뒤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김○○ 씨/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두 시간, 세 시간에 걸쳐서 연속으로 (전화가) 120통 찍혀 있어 가지고, 그걸 안 받으면 지인들한테 한 명씩 한 명씩 똑같이.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죽이겠다..."]

나체 사진을 보내면 멈추겠단 말에 허겁지겁 사진을 보냈지만, 사채업자들은 김 씨의 신상과 사진을 넣은 '지명수배' 전단까지 만들었고 이를 지인들 SNS에 뿌려댔습니다.

[김○○ 씨/성 착취 추심 피해자/음성변조 : "(SNS) '팔로우' 돼 있는 지인들 '태그'해서. 2시까지 (돈) 안 보내면 유포한다 했는데, 전부 다 유포가 된 상태였어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KBS가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한 '성착취 추심' 피해자만 수십 명에 이릅니다.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졌을 때 피해가 더 광역화되고 또는 장기화된다는 점 때문에,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

고리사채와 성착취, 이중의 고통으로 피해자들을 옭아매는 이 범죄는 여러 일당이 조직적으로 공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 최석규/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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