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으로 얼룩", "막말·비아냥 가득"
국회 대정부질문을 두고 언론이 단골로 붙이는 기사 제목입니다.
지난 8일 끝난 2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은 "마지막 날, 본회의장을 지킨 의원은 단 16명뿐이었다"며 '대정부질문 무용론'도 제기했습니다.
'무용론'을 넘어 '폐기론'까지 거론되는 대정부질문.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마침 국회 입법조사처가 어제(21일) '국회 대정부질문 제도의 현황과 개선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국회 내 전문연구기관입니다.
■ '지나친 정쟁화'·'답보다는 질문만'
입법조사처는 우선 대정부질문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나친 정쟁화'를 꼽았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관련된 검사를 인사 발령을 선고 2주 전에 한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됩니까?"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 수사하고 있는 혐의에 대해서 몇 가지를 지금 수사를 하고 계십니까?"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
당장 2월 대정부질문만 봐도 여당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사흘 내내 화력을 퍼부었습니다.
여야가 매번 극단으로 나눠 정치적 현안에 매몰되다 보니, 정작 정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나 품격 있는 답변은 '설 자리' 자체가 없습니다.
특히 국무위원의 답을 차분히 듣기보다는 '정견 발표' 수준의 질문을 이어가고, 그 사이 사이를 '막말'이나 '비아냥'으로 끼워 넣는 행태도 대정부질문의 수준을 낮추는 요소들입니다.
실제로 입법조사처가 지난 20대 국회 영상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의원별 평균 질문 시간은 약 12~13분, 답변 시간은 약 9~10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380회 국회 제5차 본회의(2020년 7월 23일)에서 실시한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는 국무총리 등 10명이 정부를 대표해 출석했는데, 이중 국무위원 3명과 정부위원 1명은 의원들로부터 아무런 질문도 받지 못했습니다.
■ 원내대표가 선정하는 '질문자'
시청자들은 '일문일답(一問一答)의 원칙'(2003년 도입)이 무너지거나, 특히 수준 낮은 질문이 반복될 때면 이런 불만을 던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누가 저 의원한테 질문 기회를 준 거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에 나설 의원들을 선정하는 권한은 사실상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대표의원, 즉 '원내대표'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원내대표가 질문자를 고르다 보니 아무래도 당 주류 의견과 비슷한, 즉 뚜렷한 '선명성'을 가진 의원들을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특히 정당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려는 경향이 높은 정당일수록, 질문자로 나선 횟수가 많은 의원일수록 재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면도 이런 경향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질문자 선정 과정에서 교섭단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있다"며 "교섭단체별 소속 의원 수 비율대로 질문자 수를 배분하므로,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을 견제·감독할 야당의 참여가 제한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정당 의원'이기 보다는 '국민 대표'여야
해법은 없을까요?
보고서는 지나친 정쟁화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들은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의장에게 의제를 선정하고, 중복 질문을 미리 조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주자는 겁니다.
예컨대 국회의장이 '질문요지서'를 사전 검토해 중복되거나, 과도한 정쟁, 의미 없는 반복 등이 이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질문자만 바뀔 뿐, '했던 질문을 또 하는' 상황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보고서는 의회 선진국들의 사례도 살핍니다.
영국 하원과 독일 연방의회는 대정부질문 시간을 총 60분으로 한정하고, 개별 의원의 질문 수도 제한합니다.
대정부질문을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진행하겠다는건데, 5~6시간씩 길게 늘어지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 볼 만한 방안으로 보입니다.
질문자 선정에서도 영국 하원은 의원들로부터 사전 신청을 받아 전자 방식으로 '무작위 추첨'(shuffle)하는 방식을 씁니다. 다만, 의장은 여야 균형을 고려해 추가 질문자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질문 기회를 부여할 수 있고, 특히 야당 당수에게는 총리를 대상으로 6차례의 질의 기회를 별도로 보장합니다.
■ "국정에 큰 책임·역할 기대"
대정부질문은 1948년 제헌국회 때 제정된 이래 때론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견제 통로로, 때론 부정부패 폭로의 장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념 공세'와 '정쟁의 장'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거쳐 온 역사와 의미를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10여 년 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정부질문 파행이 반복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원들의 질문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된다. 보다 정확한 자료와 조사를 통해 날카롭게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때로는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은 국회가 국정에 대해 더욱 크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정의화 前 국회의장(2014년 11월, 대정부질문) |
10여 년이 흘렀지만 비판의 대상도, 비판의 내용도 여전한 상황입니다.
노(老) 정치인의 고언은 그래서 더욱 유효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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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부질문, 왜 싸우기만 할까…국회가 내놓은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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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2-22 07:02:07
"고성으로 얼룩", "막말·비아냥 가득"
국회 대정부질문을 두고 언론이 단골로 붙이는 기사 제목입니다.
지난 8일 끝난 2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은 "마지막 날, 본회의장을 지킨 의원은 단 16명뿐이었다"며 '대정부질문 무용론'도 제기했습니다.
'무용론'을 넘어 '폐기론'까지 거론되는 대정부질문.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마침 국회 입법조사처가 어제(21일) '국회 대정부질문 제도의 현황과 개선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국회 내 전문연구기관입니다.
■ '지나친 정쟁화'·'답보다는 질문만'
입법조사처는 우선 대정부질문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나친 정쟁화'를 꼽았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관련된 검사를 인사 발령을 선고 2주 전에 한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됩니까?"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 수사하고 있는 혐의에 대해서 몇 가지를 지금 수사를 하고 계십니까?"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
당장 2월 대정부질문만 봐도 여당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사흘 내내 화력을 퍼부었습니다.
여야가 매번 극단으로 나눠 정치적 현안에 매몰되다 보니, 정작 정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나 품격 있는 답변은 '설 자리' 자체가 없습니다.
특히 국무위원의 답을 차분히 듣기보다는 '정견 발표' 수준의 질문을 이어가고, 그 사이 사이를 '막말'이나 '비아냥'으로 끼워 넣는 행태도 대정부질문의 수준을 낮추는 요소들입니다.
실제로 입법조사처가 지난 20대 국회 영상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의원별 평균 질문 시간은 약 12~13분, 답변 시간은 약 9~10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380회 국회 제5차 본회의(2020년 7월 23일)에서 실시한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는 국무총리 등 10명이 정부를 대표해 출석했는데, 이중 국무위원 3명과 정부위원 1명은 의원들로부터 아무런 질문도 받지 못했습니다.
■ 원내대표가 선정하는 '질문자'
시청자들은 '일문일답(一問一答)의 원칙'(2003년 도입)이 무너지거나, 특히 수준 낮은 질문이 반복될 때면 이런 불만을 던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누가 저 의원한테 질문 기회를 준 거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에 나설 의원들을 선정하는 권한은 사실상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대표의원, 즉 '원내대표'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원내대표가 질문자를 고르다 보니 아무래도 당 주류 의견과 비슷한, 즉 뚜렷한 '선명성'을 가진 의원들을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특히 정당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려는 경향이 높은 정당일수록, 질문자로 나선 횟수가 많은 의원일수록 재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면도 이런 경향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질문자 선정 과정에서 교섭단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있다"며 "교섭단체별 소속 의원 수 비율대로 질문자 수를 배분하므로,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을 견제·감독할 야당의 참여가 제한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정당 의원'이기 보다는 '국민 대표'여야
해법은 없을까요?
보고서는 지나친 정쟁화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들은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의장에게 의제를 선정하고, 중복 질문을 미리 조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주자는 겁니다.
예컨대 국회의장이 '질문요지서'를 사전 검토해 중복되거나, 과도한 정쟁, 의미 없는 반복 등이 이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질문자만 바뀔 뿐, '했던 질문을 또 하는' 상황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보고서는 의회 선진국들의 사례도 살핍니다.
영국 하원과 독일 연방의회는 대정부질문 시간을 총 60분으로 한정하고, 개별 의원의 질문 수도 제한합니다.
대정부질문을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진행하겠다는건데, 5~6시간씩 길게 늘어지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 볼 만한 방안으로 보입니다.
질문자 선정에서도 영국 하원은 의원들로부터 사전 신청을 받아 전자 방식으로 '무작위 추첨'(shuffle)하는 방식을 씁니다. 다만, 의장은 여야 균형을 고려해 추가 질문자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질문 기회를 부여할 수 있고, 특히 야당 당수에게는 총리를 대상으로 6차례의 질의 기회를 별도로 보장합니다.
■ "국정에 큰 책임·역할 기대"
대정부질문은 1948년 제헌국회 때 제정된 이래 때론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견제 통로로, 때론 부정부패 폭로의 장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념 공세'와 '정쟁의 장'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거쳐 온 역사와 의미를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10여 년 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정부질문 파행이 반복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원들의 질문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된다. 보다 정확한 자료와 조사를 통해 날카롭게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때로는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은 국회가 국정에 대해 더욱 크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정의화 前 국회의장(2014년 11월, 대정부질문) |
10여 년이 흘렀지만 비판의 대상도, 비판의 내용도 여전한 상황입니다.
노(老) 정치인의 고언은 그래서 더욱 유효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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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 기자 kbs03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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