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대신 출근하라’는 법까지…‘집이냐 회사냐’ 미국도 갈림길

입력 2023.02.28 (07: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시의 한 지하철 역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미국 뉴욕시의 한 지하철 역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재택 근무 시대'의 종말일까요.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가면서 카카오와 SK텔레콤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슬슬 '회사 복귀'를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 넷마블 같은 주요 게임사는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사무실 출근 체제'로 되돌아갔습니다. 갑갑했던 마스크는 벗게 됐지만, 출퇴근길 '지옥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 '출근하라' 법안까지 등장한 미국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선 최근 '출근하라(SHOW UP)'는 법안까지 등장했습니다. 미 하원이 지난 1일(현지 시각) 이 법안을 가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습니다. 'SHOW UP'은 'Stopping Home Office Work's Unproductive Problems'의 줄임말로, 연방공무원들의 재택근무에 따른 낮은 생산성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재택근무 비율을 2019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고, 다시 늘리고 싶다면 영향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고 인사관리처 승인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법안의 진짜 목적은 재택근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 DC만 봐도 코로나19 대유행 3년 동안 식당 같은 사업체 2천3백 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출근을 안 하게 되자 주된 고객층이 사라진 탓입니다. 2021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 공무원의 절반 가까이는 재택 근무를 했습니다.

이 법안이 미 의회 상원까지 통과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공무원들이 이제 그만 사무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 디즈니도 아마존도…"복귀하라"

공무원 뿐 아니라 미국의 일반 직장인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디즈니는 직원들에게 다음 달부터 '주 4일 사무실 출근'을 명령했습니다. 아마존도 5월부터 주 3일 이상 출근을 결정했죠. 스타벅스, 트위터, 애플도 '회사 복귀'를 못 박았습니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과 불안한 경기 전망 탓에 기업 실적이 점점 나빠지자,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 "환경 오염·회사 가치 훼손"…복귀 거부

반발은 상당합니다. 미 공무원들은 '환경 오염'까지 내세우며 사무실 복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연방 공무원 75만 명을 대표하는 미 연방공무원노조(AFGE)는 "차를 몰고 회사에 나가면 공해가 발생한다"며, "재택 근무는 기후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디즈니 본사와 계열사 직원 2천여 명은 사무실 복귀 지침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경영진에 청원을 냈습니다.

아마존 직원들은 "회사 복귀 정책이 다양성과 포용성, 지속 가능성을 표방하는 아마존의 가치에 반한다"고 즉각 취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재택을 선호할 뿐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도 재택근무가 더 좋다는 주장도 종종 나옵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지난달 31일 '재택근무 시의 시간 절약'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은 재택근무로 하루 평균 55분을 절약하는데, 이 중 42%의 시간을 다시 업무에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아마존(Amazon) 직원이 동료들과 화상 회의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미국 아마존(Amazon) 직원이 동료들과 화상 회의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

■ '집이냐 회사냐' 시대는 갔다…'하이브리드'가 대세?

발 빠른 기업들은 소모적인 '재택근무' 논쟁 대신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길게 이어진 팬데믹 동안 재택 근무가 일종의 '회사 복지'로 자리 잡은 만큼,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거죠. 대신 그 둘을 적절히 섞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 갤럽 조사를 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미국 근로자의 32%가 '하이브리드 근무'를 했는데, 지난해 이 수치는 42%로 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직원들의 선호도입니다. 아예 회사를 나오지 않는 '원격 근무(32% 선호)'보다 '하이브리드 근무(59% 선호)'를 희망하는 직원이 두 배 정도 됐던 겁니다.

직원들 입장에선 일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보다 얼마나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겠죠.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길가에 ‘직원 고용’ 광고가 걸려 있다.미국 메사추세츠주의 길가에 ‘직원 고용’ 광고가 걸려 있다.

■ "'재택 근무'가 물가 잡는 데 도움"

치솟는 물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연한 근무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 시카고대 베커프리드먼연구소는 지난해 6월 '원격 근무로의 전환으로 임금 상승 압력 감소(The Shift to Remote Work Lessens Wage-Growth Pressures)'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원격 근무로 전환할 경우, 2년 동안 임금 상승률이 2%포인트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미국은 '완전 고용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 입장에선 직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임금 인상 압박은 그만큼 커졌고, 임금이 오르면 겨우 잡히고 있는 물가도 덩달아 또 오를 거란 우려가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임금 인상을 해주는 대신 선호하는 근무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거라는 분석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재택 대신 출근하라’는 법까지…‘집이냐 회사냐’ 미국도 갈림길
    • 입력 2023-02-28 07:04:57
    세계는 지금
미국 뉴욕시의 한 지하철 역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재택 근무 시대'의 종말일까요.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가면서 카카오와 SK텔레콤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슬슬 '회사 복귀'를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 넷마블 같은 주요 게임사는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사무실 출근 체제'로 되돌아갔습니다. 갑갑했던 마스크는 벗게 됐지만, 출퇴근길 '지옥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 '출근하라' 법안까지 등장한 미국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선 최근 '출근하라(SHOW UP)'는 법안까지 등장했습니다. 미 하원이 지난 1일(현지 시각) 이 법안을 가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습니다. 'SHOW UP'은 'Stopping Home Office Work's Unproductive Problems'의 줄임말로, 연방공무원들의 재택근무에 따른 낮은 생산성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재택근무 비율을 2019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고, 다시 늘리고 싶다면 영향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고 인사관리처 승인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법안의 진짜 목적은 재택근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 DC만 봐도 코로나19 대유행 3년 동안 식당 같은 사업체 2천3백 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출근을 안 하게 되자 주된 고객층이 사라진 탓입니다. 2021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 공무원의 절반 가까이는 재택 근무를 했습니다.

이 법안이 미 의회 상원까지 통과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공무원들이 이제 그만 사무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 디즈니도 아마존도…"복귀하라"

공무원 뿐 아니라 미국의 일반 직장인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디즈니는 직원들에게 다음 달부터 '주 4일 사무실 출근'을 명령했습니다. 아마존도 5월부터 주 3일 이상 출근을 결정했죠. 스타벅스, 트위터, 애플도 '회사 복귀'를 못 박았습니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과 불안한 경기 전망 탓에 기업 실적이 점점 나빠지자,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 "환경 오염·회사 가치 훼손"…복귀 거부

반발은 상당합니다. 미 공무원들은 '환경 오염'까지 내세우며 사무실 복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연방 공무원 75만 명을 대표하는 미 연방공무원노조(AFGE)는 "차를 몰고 회사에 나가면 공해가 발생한다"며, "재택 근무는 기후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디즈니 본사와 계열사 직원 2천여 명은 사무실 복귀 지침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경영진에 청원을 냈습니다.

아마존 직원들은 "회사 복귀 정책이 다양성과 포용성, 지속 가능성을 표방하는 아마존의 가치에 반한다"고 즉각 취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재택을 선호할 뿐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도 재택근무가 더 좋다는 주장도 종종 나옵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지난달 31일 '재택근무 시의 시간 절약'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은 재택근무로 하루 평균 55분을 절약하는데, 이 중 42%의 시간을 다시 업무에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아마존(Amazon) 직원이 동료들과 화상 회의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다.
■ '집이냐 회사냐' 시대는 갔다…'하이브리드'가 대세?

발 빠른 기업들은 소모적인 '재택근무' 논쟁 대신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길게 이어진 팬데믹 동안 재택 근무가 일종의 '회사 복지'로 자리 잡은 만큼,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거죠. 대신 그 둘을 적절히 섞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 갤럽 조사를 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미국 근로자의 32%가 '하이브리드 근무'를 했는데, 지난해 이 수치는 42%로 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직원들의 선호도입니다. 아예 회사를 나오지 않는 '원격 근무(32% 선호)'보다 '하이브리드 근무(59% 선호)'를 희망하는 직원이 두 배 정도 됐던 겁니다.

직원들 입장에선 일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보다 얼마나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겠죠.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길가에 ‘직원 고용’ 광고가 걸려 있다.
■ "'재택 근무'가 물가 잡는 데 도움"

치솟는 물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연한 근무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 시카고대 베커프리드먼연구소는 지난해 6월 '원격 근무로의 전환으로 임금 상승 압력 감소(The Shift to Remote Work Lessens Wage-Growth Pressures)'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원격 근무로 전환할 경우, 2년 동안 임금 상승률이 2%포인트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미국은 '완전 고용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 입장에선 직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임금 인상 압박은 그만큼 커졌고, 임금이 오르면 겨우 잡히고 있는 물가도 덩달아 또 오를 거란 우려가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임금 인상을 해주는 대신 선호하는 근무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거라는 분석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