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꺾지 못한 향학열…연세대 ‘영도 분교’ 아시나요?

입력 2023.02.28 (19:35) 수정 2023.02.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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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전쟁을 피해 내려온 대학들이 모여 '교육도시'로서의 역할도 했는데요.

특히 연세대는 전쟁이 끝난 1960년대까지 영도에서 분교를 운영했었죠.

연세대가 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당시 분교가 있던 부산 보건고등학교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김영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안가를 따라 목조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습니다.

책을 든 학생들이 건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습니다.

선명히 보이는 '연희대학교 임시 교사'라는 문구.

한국전쟁 당시 연세대가 영도구에서 운영한 분교 건물입니다.

전쟁 이듬해인 1951년, 연세대는 영도구에 독자적으로 천막 교사 건물을 지어 운영했습니다.

1952년에는 영선동 현재 부산보건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에 목조 건물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연세대는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서울로 돌아갔지만, 영도 분교는 1960년대까지 활용됐습니다.

전쟁 기간 뽑힌 신입생만 천2백여 명으로 전쟁 중에도 경쟁률이 3.8대 1을 기록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습니다.

과거 연세대 분교가 있던 자립니다.

연세대가 당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2미터 높이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기념비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서승환/연세대학교 총장 : "(전시에) 우리가 학생들을 교육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그분들이 다시 또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러한 교육을 끊이지 않고 했다는 데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연세대 외에도 서울대 등이 내려와 교육도시의 역할도 했습니다.

[김한근/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 "(당시 각 대학 재학생) 이분들이 살아계실 동안에 피란수도 부산 시절의 어떤 학교들의 장소 위치를 찾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어떤 추억 여행이 되겠지만, 부산으로서는 그 당시에 어떤 역사들을 다시 찾는 그런 역할도…."]

전문가들은 이런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기록해 관광 자원 등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KBS 뉴스 김영록입니다.

촬영기자:정운호/영상편집:백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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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도 꺾지 못한 향학열…연세대 ‘영도 분교’ 아시나요?
    • 입력 2023-02-28 19:35:42
    • 수정2023-02-28 20:36:54
    뉴스7(부산)
[앵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전쟁을 피해 내려온 대학들이 모여 '교육도시'로서의 역할도 했는데요.

특히 연세대는 전쟁이 끝난 1960년대까지 영도에서 분교를 운영했었죠.

연세대가 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당시 분교가 있던 부산 보건고등학교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김영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해안가를 따라 목조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습니다.

책을 든 학생들이 건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습니다.

선명히 보이는 '연희대학교 임시 교사'라는 문구.

한국전쟁 당시 연세대가 영도구에서 운영한 분교 건물입니다.

전쟁 이듬해인 1951년, 연세대는 영도구에 독자적으로 천막 교사 건물을 지어 운영했습니다.

1952년에는 영선동 현재 부산보건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에 목조 건물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연세대는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서울로 돌아갔지만, 영도 분교는 1960년대까지 활용됐습니다.

전쟁 기간 뽑힌 신입생만 천2백여 명으로 전쟁 중에도 경쟁률이 3.8대 1을 기록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습니다.

과거 연세대 분교가 있던 자립니다.

연세대가 당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2미터 높이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기념비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서승환/연세대학교 총장 : "(전시에) 우리가 학생들을 교육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그분들이 다시 또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러한 교육을 끊이지 않고 했다는 데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연세대 외에도 서울대 등이 내려와 교육도시의 역할도 했습니다.

[김한근/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 "(당시 각 대학 재학생) 이분들이 살아계실 동안에 피란수도 부산 시절의 어떤 학교들의 장소 위치를 찾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어떤 추억 여행이 되겠지만, 부산으로서는 그 당시에 어떤 역사들을 다시 찾는 그런 역할도…."]

전문가들은 이런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기록해 관광 자원 등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KBS 뉴스 김영록입니다.

촬영기자:정운호/영상편집:백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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