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3부작’ 마친 신카이 마코토 “살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곧 희망”

입력 2023.03.08 (17:41) 수정 2023.03.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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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이름은' 등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재난을 그린 감독의 3번째 영화이자, 가장 직접적으로 재난·재해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의지를 다룬 작품으로 꼽히는데요.

8일 서울 성동구에서 기자들을 만난 마코토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담아 만든 작품이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기억을 젊은 세대와 나누고자 시작한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1문 1답을 옮깁니다.

■ "동일본 대지진 없이는 지금의 일본 그릴 수 없어…반드시 해야 했던 작품"

-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 제일 먼저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의 일본을 무대로 한 엔터테인먼트(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생각했을 때 일본에서 요즘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 폐허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자연 재해나 인구 감소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많이 늘고 있는데요. 폐허를 여행한다면 목적지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그려내지 않는다면 지금의 일본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큰 거짓이다.'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도 '아직도 내 마음속에 동일본 대지진이 계속 남아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아직도 지진 복구가 끝나지 않은 지금 반드시 이것에 대해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비극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걱정은 없었나.
= 실제 재해를 엔터테인먼트로 다루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스태프들과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은 국토를 부흥시키기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치유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 모든 것을 잊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의 10대 관객들은 아예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12살인 저희 딸은 아예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일본인의 3분의 1 정도가 잊어버린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지금보다 더 늦게 영화를 만든다면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강한 이 떨림을 젊은 세대에게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영화를 이렇게 만드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저는 이 시점에 엔터테인먼트(오락) 영화로 동일본 대지진을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현지의 반응은 어땠나.
=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실제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인 도호쿠 쪽으로 무대 인사를 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무대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 어느 무대 인사보다 굉장히 긴장되고 두려운 무대였는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거나, 영화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히려 그 일을 겪은 분들에게 위로를 받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이 영화를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대 인사를 보러 오시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을 것이고,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거나 왜 만들었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엔터테인먼트 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재해를 다루는 걸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 "죽음 연연 않던 주인공의 변화…살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곧 희망"

사실 일본 영화계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처음이 아닙니다. 실제 재해 현장에서 촬영한 '두더지'(2012)는 원작 만화에 없는 장면까지 덧붙여 가며 대지진 뒤를 살아갈 청년 세대를 향해 '힘내라'고 외쳤고, '에반게리온'시리즈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내놓은 2016년 실사 영화 '신 고질라'는 무능했던 정부와 도쿄전력 등을 비판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중 한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중 한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반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당시 목숨을 잃었던 사망자 만 5천여 명의 마음을 대변해 '살고 싶다'고 절절히 외칩니다. 집요하게 일본인의 무의식 속 재난에 대한 불안을 그리면서도, 마침표인'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희망에 방점을 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바로 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습니다.

"희망을 잃었을 때 사람은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스즈메는 영화 속에서 처음에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외치는데요. 나중에는 '더 살고 싶다'고 변하게 됩니다.계속 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녀 스즈메는 어린 시절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상처 때문인지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청년 소타와 조우한 뒤, 곳곳에 숨은 특별한 문을 잠가 재난을 부르는 대지의 기운을 봉인하는 모험에 나서게 되지요.

이때 스즈메와 소타가 동원하는 힘은 바로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폐허가 되기 전 그 땅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일을 챙기며 앞날을 계획하던 하루하루와 그 안에 깃든 소박하고 다정한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죠. 꼭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렸을 때 가장 먼저 일상의 단절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고, 감독은 말하는 듯합니다.

일본의 재해를 그리고는 있지만, 단절된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살아가려는 인간의 모습은 국경을 떠나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일본에선 무려 감독의 세 번째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 영화가 또 한 번 한국인들의 마음에 가닿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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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 3부작’ 마친 신카이 마코토 “살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곧 희망”
    • 입력 2023-03-08 17:41:27
    • 수정2023-03-08 19:07:44
    취재K

영화 '너의 이름은' 등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재난을 그린 감독의 3번째 영화이자, 가장 직접적으로 재난·재해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의지를 다룬 작품으로 꼽히는데요.

8일 서울 성동구에서 기자들을 만난 마코토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담아 만든 작품이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기억을 젊은 세대와 나누고자 시작한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1문 1답을 옮깁니다.

■ "동일본 대지진 없이는 지금의 일본 그릴 수 없어…반드시 해야 했던 작품"

-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 제일 먼저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의 일본을 무대로 한 엔터테인먼트(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생각했을 때 일본에서 요즘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 폐허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자연 재해나 인구 감소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많이 늘고 있는데요. 폐허를 여행한다면 목적지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그려내지 않는다면 지금의 일본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큰 거짓이다.'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도 '아직도 내 마음속에 동일본 대지진이 계속 남아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아직도 지진 복구가 끝나지 않은 지금 반드시 이것에 대해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비극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걱정은 없었나.
= 실제 재해를 엔터테인먼트로 다루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스태프들과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은 국토를 부흥시키기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치유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 모든 것을 잊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의 10대 관객들은 아예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12살인 저희 딸은 아예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일본인의 3분의 1 정도가 잊어버린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지금보다 더 늦게 영화를 만든다면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강한 이 떨림을 젊은 세대에게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영화를 이렇게 만드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저는 이 시점에 엔터테인먼트(오락) 영화로 동일본 대지진을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현지의 반응은 어땠나.
=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실제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인 도호쿠 쪽으로 무대 인사를 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 굉장히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무대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 어느 무대 인사보다 굉장히 긴장되고 두려운 무대였는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거나, 영화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히려 그 일을 겪은 분들에게 위로를 받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이 영화를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대 인사를 보러 오시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을 것이고,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거나 왜 만들었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엔터테인먼트 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재해를 다루는 걸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 "죽음 연연 않던 주인공의 변화…살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곧 희망"

사실 일본 영화계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처음이 아닙니다. 실제 재해 현장에서 촬영한 '두더지'(2012)는 원작 만화에 없는 장면까지 덧붙여 가며 대지진 뒤를 살아갈 청년 세대를 향해 '힘내라'고 외쳤고, '에반게리온'시리즈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내놓은 2016년 실사 영화 '신 고질라'는 무능했던 정부와 도쿄전력 등을 비판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중 한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반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당시 목숨을 잃었던 사망자 만 5천여 명의 마음을 대변해 '살고 싶다'고 절절히 외칩니다. 집요하게 일본인의 무의식 속 재난에 대한 불안을 그리면서도, 마침표인'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희망에 방점을 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바로 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습니다.

"희망을 잃었을 때 사람은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스즈메는 영화 속에서 처음에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외치는데요. 나중에는 '더 살고 싶다'고 변하게 됩니다.계속 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녀 스즈메는 어린 시절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상처 때문인지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청년 소타와 조우한 뒤, 곳곳에 숨은 특별한 문을 잠가 재난을 부르는 대지의 기운을 봉인하는 모험에 나서게 되지요.

이때 스즈메와 소타가 동원하는 힘은 바로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폐허가 되기 전 그 땅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일을 챙기며 앞날을 계획하던 하루하루와 그 안에 깃든 소박하고 다정한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죠. 꼭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렸을 때 가장 먼저 일상의 단절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고, 감독은 말하는 듯합니다.

일본의 재해를 그리고는 있지만, 단절된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살아가려는 인간의 모습은 국경을 떠나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일본에선 무려 감독의 세 번째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 영화가 또 한 번 한국인들의 마음에 가닿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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