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여성은 꽃”…조용한 변화의 주역

입력 2023.03.11 (08:17) 수정 2023.03.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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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해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인데요.

올해도 우리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선 여성의 지위와 권리 증진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습니다.

네, 북한도 ‘국제 부녀절’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데요.

이에 맞춰 어머니와 부인 등 여성들에게 줄 꽃다발을 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바라는 여성상은 국제사회의 지향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8일 노동신문 1면 사설을 보면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은 기본이고, 여성은 시부모 잘 모시고,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 잘하고,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내세워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서 북한 여성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도 하고 우려도 되는데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들을 판매하고 있는 전시장이, 국제부녀절을 맞아 선물을 사려는 손님들로 붐빕니다.

[리설향/ 화장품전시장 책임자 : "가정의 단란한 행복보다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우리 여성들이 더 아름다워지길 바라서인지, 요즘 3.8국제부녀절을 맞으며 우리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정말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는 남성의 모습은 이제 북한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김주혁/평양시민 : "3.8국제부녀절을 맞으며 어머니와 아내에게 저의 사랑의 마음이 담긴 장미꽃 묶음을 선물하기 위해서 오늘 이 꽃 상점을 찾았습니다."]

전국적으로 국제부녀절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예술 공연들이 진행됐고, 일부 지역에선 체육 경기도 펼쳐졌는데요.

매체들은 여성을 꽃에 비유하며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합니다.

["참가자들의 얼굴 마다에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품속에서 나라의 꽃, 생활의 꽃, 가정의 꽃으로 행복한 삶을 누려가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어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꽃이 아름답기 위한, 북한만의 조건이 있습니다.

가정에 무한한 사랑을 쏟아부어야 하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고상한 미풍도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강조되는 건 조국에 대한 무조건의 헌신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사회 조국에 대한 불같은 충성과 열렬한 사랑, 순결한 양심에서 샘솟는 영원한 아름다움입니다."]

1946년 7월, 북한은‘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여성 해방, 여성 존중이라는 구호 아래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고, 남녀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건데요.

그러나 더 큰 목적은 사회주의 산업화를 빠르게 완성하기 위한 노동력 동원이었습니다.

[기록영화 ‘태양의 품속에서 꽃들은 만발한다’ : "봉건적 생활 인습을 버리고 여성도 국가 산업 건설에 적극 참가하자."]

1990년대, 고난의 행군기엔 여성의 역할이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너진 국가 배급체계에 절망하지 않고 장마당에 나와 식구를 먹여 살렸고, 가정에서의 발언권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영주/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과거에도 북한이 경제위기 전에 여성들에게 부여했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방식은 노동을 통해서 경제적인 부분에 기여하는 것도 있었지만 가족의 구성원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챙기는 것이 여성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하는 것이죠."]

어려운 환경에도 당과 국가에 충성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북한 여성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인데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우리가 북에서 오신 분들 혹은 북조선 여성은 굉장히 고정관념화 한두 가지의 모습으로만 접근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었죠. 제가 탈북민 분들과 오랫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경험했던 것은 물론 체제가 주는 어떤 제약 같은 것도 있지만 각자의 삶의 조건이나 맥락 내에서 굉장히 다층적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를 발현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과거 세대부터 현재 젊은 여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비공식 활동에 있어서 만큼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능동적이었다는 겁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그렇게 당에 충성하고 당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면 북에 장마당이 이토록 활성화되기도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고요.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어떤 굉장한 어려움을 감행할 정도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만약에 정말 당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는 모습만 보였어야 하는 것이죠."]

특히 장마당을 중심으로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경험한 여성은, 변화의 폭도 큽니다.

경제위기에 맞서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욕구도 커진 겁니다.

이 같은 기류는 사회 현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출산율이 뚝 떨어졌는데요.

UNFPA,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 출산율은 1.9명으로, 세계 합계 출산율인 2.4명을 크게 밑돕니다.

당국은 육아법을 제정하고, 주택 배정에서 다자녀 가구에 혜택을 주는 등 유인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아이를 굉장히 많이 낳아라. 그리고 어머니가 되어야 된다 희생하고 그 다음 세대를 잘 키워내야 된다. 이 얘기는 역으로 어떤 얘기냐면 북의 여성들이 단순히 어머니의 위치로만 있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지도자나 당의 입장에서는 그런 어떤 역할 그런 메시지를 여맹이나 여성들에게 아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겠죠."]

특히 젊은 여성들은 가족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기성세대와 많이 다르다는 평갑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아직까지 사회적인 분위기는 남자가 좀 더 우월하긴 하지만 집안에 들어가서 보면 여자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지고 여성들 자체가 내가 안 낳겠다 사회가 살만해야 잘 살아야 애들을 많이 낳을 텐데 둘을 낳아서 굶으면서 키우느니 하나라도 낳아서 예쁘게 잘 키우겠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그런 부모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집에서 여성의 역할 변화는 방송에서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소설을 원작으로 2001년 방영한 이 드라마엔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왜 쏘아봐? 세대주 말 같지 않아? (때리라요! 더 때려 보라요! 이젠 정말 같이 못 살겠어요.)"]

2013년 공개된 드라마 ‘우리 이웃들’.

여자 주인공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하지만 아내, 주부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큰 질타를 받습니다.

["아니 승강기 운전공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툭하면 남편한테 부엌일을 떠맡기질 않나 또 작업복 벗어 놓으면 제때 빨아주길 하나. (야... 바쁠 때 좀 도와주면 안 돼요?) 허, 저녁 근무교대 때 내 손으로 동자질을 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 아오? (아니 그거야..) 남편 귀한 줄 느껴보라는 거요! 진심으로 뉘우치기 전엔 우리 집 앞에 나타날 생각 하지 마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 준비를 하는 남편.

["(미안해서 어떡하니.) 미안하긴 뭐..."]

아들까지 나서 아버지를 돕는데요.

["(나 가요.) 한술 먹어라. (바쁜데.) 한술 먹고 가라."]

여성의 주체성이 전체주의 독재국가, 북한의 일상에 작지만 주목할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한국에서처럼 남녀가 뭐가 다르냐 막 이렇게 이슈화가 되진 않지만 그래도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남자에게 어떤 뭐라그럴까 소속된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서 사회생활도 하고 돈도 벌고 그렇게 살겠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되게 많이 생기는 것 같고..."]

북한 당국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과거 같은 충성을 강요하며 시대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데요,

[정옥희/사회주의 애국공로자 : "전세대들처럼 살자 그때 처럼 살며 일할 때 넘지 못할 난관이 없고 못할 일이 없다. "]

여성들의 애국만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독려합니다.

그렇다고 북한 여성들이 당국의 요구대로만 움직이진 않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조영주/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공식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은 북한 당국이 여러 방식으로 활용하겠지만 그 영역에 포섭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과 나의 생계를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여성들과는 국가가 굉장히 팽팽한 긴장 관계를 앞으로 계속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혹독한 시련 속에 가족을 살려내고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조금씩 자의식을 갖게 된 북한 여성들이 작고 느리지만 주목해야 할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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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여성은 꽃”…조용한 변화의 주역
    • 입력 2023-03-11 08:17:08
    • 수정2023-03-11 09: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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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해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인데요.

올해도 우리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선 여성의 지위와 권리 증진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습니다.

네, 북한도 ‘국제 부녀절’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데요.

이에 맞춰 어머니와 부인 등 여성들에게 줄 꽃다발을 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바라는 여성상은 국제사회의 지향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8일 노동신문 1면 사설을 보면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은 기본이고, 여성은 시부모 잘 모시고,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 잘하고,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내세워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서 북한 여성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도 하고 우려도 되는데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들을 판매하고 있는 전시장이, 국제부녀절을 맞아 선물을 사려는 손님들로 붐빕니다.

[리설향/ 화장품전시장 책임자 : "가정의 단란한 행복보다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우리 여성들이 더 아름다워지길 바라서인지, 요즘 3.8국제부녀절을 맞으며 우리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정말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는 남성의 모습은 이제 북한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김주혁/평양시민 : "3.8국제부녀절을 맞으며 어머니와 아내에게 저의 사랑의 마음이 담긴 장미꽃 묶음을 선물하기 위해서 오늘 이 꽃 상점을 찾았습니다."]

전국적으로 국제부녀절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예술 공연들이 진행됐고, 일부 지역에선 체육 경기도 펼쳐졌는데요.

매체들은 여성을 꽃에 비유하며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합니다.

["참가자들의 얼굴 마다에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품속에서 나라의 꽃, 생활의 꽃, 가정의 꽃으로 행복한 삶을 누려가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어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꽃이 아름답기 위한, 북한만의 조건이 있습니다.

가정에 무한한 사랑을 쏟아부어야 하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고상한 미풍도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강조되는 건 조국에 대한 무조건의 헌신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사회 조국에 대한 불같은 충성과 열렬한 사랑, 순결한 양심에서 샘솟는 영원한 아름다움입니다."]

1946년 7월, 북한은‘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여성 해방, 여성 존중이라는 구호 아래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고, 남녀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건데요.

그러나 더 큰 목적은 사회주의 산업화를 빠르게 완성하기 위한 노동력 동원이었습니다.

[기록영화 ‘태양의 품속에서 꽃들은 만발한다’ : "봉건적 생활 인습을 버리고 여성도 국가 산업 건설에 적극 참가하자."]

1990년대, 고난의 행군기엔 여성의 역할이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너진 국가 배급체계에 절망하지 않고 장마당에 나와 식구를 먹여 살렸고, 가정에서의 발언권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영주/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과거에도 북한이 경제위기 전에 여성들에게 부여했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방식은 노동을 통해서 경제적인 부분에 기여하는 것도 있었지만 가족의 구성원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챙기는 것이 여성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하는 것이죠."]

어려운 환경에도 당과 국가에 충성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북한 여성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인데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우리가 북에서 오신 분들 혹은 북조선 여성은 굉장히 고정관념화 한두 가지의 모습으로만 접근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었죠. 제가 탈북민 분들과 오랫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경험했던 것은 물론 체제가 주는 어떤 제약 같은 것도 있지만 각자의 삶의 조건이나 맥락 내에서 굉장히 다층적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를 발현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과거 세대부터 현재 젊은 여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비공식 활동에 있어서 만큼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능동적이었다는 겁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그렇게 당에 충성하고 당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면 북에 장마당이 이토록 활성화되기도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고요.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어떤 굉장한 어려움을 감행할 정도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만약에 정말 당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는 모습만 보였어야 하는 것이죠."]

특히 장마당을 중심으로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경험한 여성은, 변화의 폭도 큽니다.

경제위기에 맞서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욕구도 커진 겁니다.

이 같은 기류는 사회 현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출산율이 뚝 떨어졌는데요.

UNFPA,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 출산율은 1.9명으로, 세계 합계 출산율인 2.4명을 크게 밑돕니다.

당국은 육아법을 제정하고, 주택 배정에서 다자녀 가구에 혜택을 주는 등 유인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아이를 굉장히 많이 낳아라. 그리고 어머니가 되어야 된다 희생하고 그 다음 세대를 잘 키워내야 된다. 이 얘기는 역으로 어떤 얘기냐면 북의 여성들이 단순히 어머니의 위치로만 있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지도자나 당의 입장에서는 그런 어떤 역할 그런 메시지를 여맹이나 여성들에게 아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겠죠."]

특히 젊은 여성들은 가족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기성세대와 많이 다르다는 평갑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아직까지 사회적인 분위기는 남자가 좀 더 우월하긴 하지만 집안에 들어가서 보면 여자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지고 여성들 자체가 내가 안 낳겠다 사회가 살만해야 잘 살아야 애들을 많이 낳을 텐데 둘을 낳아서 굶으면서 키우느니 하나라도 낳아서 예쁘게 잘 키우겠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그런 부모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집에서 여성의 역할 변화는 방송에서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소설을 원작으로 2001년 방영한 이 드라마엔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왜 쏘아봐? 세대주 말 같지 않아? (때리라요! 더 때려 보라요! 이젠 정말 같이 못 살겠어요.)"]

2013년 공개된 드라마 ‘우리 이웃들’.

여자 주인공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하지만 아내, 주부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큰 질타를 받습니다.

["아니 승강기 운전공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툭하면 남편한테 부엌일을 떠맡기질 않나 또 작업복 벗어 놓으면 제때 빨아주길 하나. (야... 바쁠 때 좀 도와주면 안 돼요?) 허, 저녁 근무교대 때 내 손으로 동자질을 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 아오? (아니 그거야..) 남편 귀한 줄 느껴보라는 거요! 진심으로 뉘우치기 전엔 우리 집 앞에 나타날 생각 하지 마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 준비를 하는 남편.

["(미안해서 어떡하니.) 미안하긴 뭐..."]

아들까지 나서 아버지를 돕는데요.

["(나 가요.) 한술 먹어라. (바쁜데.) 한술 먹고 가라."]

여성의 주체성이 전체주의 독재국가, 북한의 일상에 작지만 주목할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나민희/2016년 탈북 : "한국에서처럼 남녀가 뭐가 다르냐 막 이렇게 이슈화가 되진 않지만 그래도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남자에게 어떤 뭐라그럴까 소속된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서 사회생활도 하고 돈도 벌고 그렇게 살겠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되게 많이 생기는 것 같고..."]

북한 당국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과거 같은 충성을 강요하며 시대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데요,

[정옥희/사회주의 애국공로자 : "전세대들처럼 살자 그때 처럼 살며 일할 때 넘지 못할 난관이 없고 못할 일이 없다. "]

여성들의 애국만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독려합니다.

그렇다고 북한 여성들이 당국의 요구대로만 움직이진 않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조영주/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공식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은 북한 당국이 여러 방식으로 활용하겠지만 그 영역에 포섭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과 나의 생계를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여성들과는 국가가 굉장히 팽팽한 긴장 관계를 앞으로 계속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혹독한 시련 속에 가족을 살려내고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조금씩 자의식을 갖게 된 북한 여성들이 작고 느리지만 주목해야 할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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