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탐사보도부는 앞선 보도처럼 전국 50채 이상 다주택자 중 사기 조직과 연계된 악성 임대인을 추적했습니다. 모두 176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소유한 빌라 현황을 따져 보니 올해 전세 사기가 진정되기는커녕 더 늘어날 조짐입니다. 올 한 해 피해액만 2조 원에 가까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사기 조직들은 불과 2~3년 만에 서울과 인천, 부천 등 수도권 신흥 빌라촌을 점령했습니다. 번지르르한 신축 빌라를 짓고,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향해 덫을 쳤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연관 기사] [단독] ‘1조 8천억’ 전세 사기 폭탄 터진다…올해 역대 최다 추정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3858
■ 사기 조직의 성찬, 전세보증보험
사기 조직들이 전세금을 손쉽게 떼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전세금 반환 보증 제도(전세보증보험) 덕이었습니다. 임차인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된 전세보증보험이 사기에 악용된 겁니다. 사기 조직에는 잘 차려진 성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례로 서울 강서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기 조직의 빌라 관리 대장을 볼까요? 주로 신혼부부와 청년들과 전세 계약을 맺은 기록이 빼곡합니다.
사기 조직들은 전세 계약과 함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습니다. 혹시 사고가 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전세보증보험은 목돈이 없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대출받을 때도 활용됐습니다.
사고가 터지는 건 전세 계약이 끝날 땝니다. 믿었던 집주인은 돌변했습니다. 보증금을 못 돌려준다며 버티거나 잠적해버렸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전세보증보험이 사기 조직에는 범행을 실행할 발판이었던 셈입니다. 보증보험 가입은 매번 무사통과였습니다. 전세 사기 조직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사 절차가 뭐 있어요? 신청 단계에서 심사는 끝나는 거예요. 전세가율이랑 이런 비율만 맞으면 그냥 끝나는 거예요." (전세 사기 조직 관계자) |
HUG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결정할 때 전세가율과 가압류 설정 여부 등만 따집니다. 임대인이 누군지는 가리지 않습니다. 체납 여부를 살펴보긴 하지만, 개인 임대사업자들에 대해서는 2021년부터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안에 수백 채씩의 빌라를 사들여도 심사를 무사 통과했습니다. 사기 조직과 관련이 있는지를 전혀 살피지 않는 겁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현행법상 사전에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전세 사기 대응, 골든타임 놓치다
사기 조직들은 전세보증보험의 허점을 파고들며 빠르게 빌라촌을 점령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KBS 탐사보도부가 구축한 '빌라왕 네트워크'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이 조직적으로 주택 매입에 나선 건 2019년 무렵입니다. 한 해 4,215채를 사들였습니다. 매입 주택 수는 전 년도(1,461채) 보다 188% 급증했습니다.
176명 연결망이 눈에 띄게 촘촘해지던 때도 그때였습니다. 한 가운데, 서로 연결된 17명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전세 사기의 본격적인 서막이 열렸습니다.
그림2. 2019년 임대인 연결망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사기 조직 임대인들이 신축 빌라를 사들일 때마다 전세 보증 보험을 들어줬습니다. 영문 모르는 세입자들은 그리고 2년 뒤 보증금을 떼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전세금은 사기 조직들끼리 나눈 뒤입니다.
실제로 2021년 전세 보증 사고는 집중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보증 사고액이 1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당시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 : "보증 사고 나는 추세를 봤더니 2019년부터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2020년도에 한 번 보고 2021년도에도 한 번 보니, 추세가 줄어들 기미가 안 나오고 있어서..." (중략) (기자: 늘어난 이유는 뭐라고 파악하신 거예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 : "원인 파악을 저희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어서..." |
그러고도 정부는 적절한 대책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규모 전세 사기의 강력한 징후를 보고도, 넋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급증하는 전세 보증사고액이 급증한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 위험 징후 외면한 대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의 활동은 더 왕성해졌습니다. 이들은 2021년 한 해에만 8,929채를 사들였습니다. 주택 매입 수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연결망에서도 한가운데 완전히 똬리를 튼 시깁니다.
그림3. 2021년 임대인 연결망
실제 전세 사기 피해가 급증하는데도 정부는 사기 조직과 빌라왕을 방치했고, 그런 사이에 그 규모가 더 커진 겁니다. 보증보험 가입 심사를 더욱 철저히 하거나, 짧은 시간에 여러 채 빌라를 사들일 경우 따져보거나 위험 징후가 있는 임대인을 미리 공개했다면, 연결망이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176명 중 대부분은 수사는커녕 정부의 관리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76명 중 취재진이 수사 대상으로 파악한 인물과 법인은 모두 24명(개) 입니다. HUG의 집중 관리 대상은 50명입니다. 중복을 빼고,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인물은 11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 더 큰 게 온다…막을 수 있을까?
취재진은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에 의한 올해와 내년 전세 보증금 사고 규모를 최대 2조 6천 억 원 가량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만기가 돌아오면 보증금 사고는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사기 조직에게 건네진 전세 보증금은, 계약 당시에 떼인 돈이라고 봐야 맞습니다.
지난 10일 국토부는 피해 세입자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아도 새로 집을 살 때 무주택자로 인정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습니다. 지금으로선 이런 지원책을 더 보완해서 예고된 사고가 나면 빨리 수습되도록 돕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앞으로 피해 규모가 더 늘게 되면, 막대한 재정 부담도 감수해야 합니다. 어떻게 대비할지 지혜로운 방안을 미리 세울 때입니다.
■ "100장 땡기고 몇 년 살다 와야죠"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전세 사기 종합 대책 어디를 봐도, 전세 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세 사기 조직들은 정부 대책이 어디로 가는지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빌라왕을 여럿 거느렸던 부동산 컨설팅 업체 두 대표의 실제 SNS 대화입니다. 둘 다 전세 사기에 가담한 정황이 확인된 인물들입니다.
전세 사기 총책 두 명이 이 대화를 나눈 건 지난해 7월입니다. 당시는 정부가 전세 사기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예고한 때입니다. 한 명은 잠시 쉬겠다고 하고, 한 명은 '동시 진행'을 계속하겠다고 합니다. '동시 진행'은 전세와 매매 계약을 한 번에 진행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전세 사기 유형을 일컫습니다.
두 조직 총책은 물론이고, 이들 사기 조직과 연결된 임대인 176명은 다시 빌라촌으로 돌아와 한 탕 크게 칠 궁리를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 '전세 사기 먹이 사슬' 끊어낼 수 있을까?
지난해 말, 숨진 빌라왕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전세 사기 피해가 한꺼번에 드러났습니다. 이후 사기극 전모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는 정부의 무능과 시스템 실패를 고의적으로 노린 지능형 범죄였습니다.
HUG와 같은 보증보험기관들은 사기꾼들이 자신들의 돈을 훔쳐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인 꼴입니다. 피해는 청년층, 서민층에 집중됐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추적한 '빌라왕 네트워크'는 서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었습니다. 이 강력한 결속을 끊어내고 응징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전세 사기꾼들 주머니를 국민 돈으로 채워주는 재앙이 반복될지 모릅니다. 전세 사기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영리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전세 사기 공모가 엄두에 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처벌도 뒤따라야 합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더 똑똑해져야 합니다. 최소한 사기꾼보다 말입니다. 우리가 망각한 사이 수도권 빌라촌은 언제든 '빌라왕 네트워크'에 다시 점령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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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탐사K]① 숨어있는 ‘빌라왕’ 전수 추적…전국에 17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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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탐사K]② 질긴 공생…빌라왕 126명이 ‘있는데 없는’ 이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3161
[탐사K]③ 176명의 전세 ‘시한폭탄’…올해만 1조 8천억?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4152
취재 : 우한울, 송수진, 김연주 기자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 김성호 개발자
연구 지원 : 연세대 사회학과 'Social Networks & Neuroscience Lab'
염유식 교수, 성기호, 곽현정, 허예진, 황채민
그래픽 제작 : 존코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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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사K]④ ‘위험’ 외면한 혹독한 대가…재발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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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3-12 08:01:45
KBS 탐사보도부는 앞선 보도처럼 전국 50채 이상 다주택자 중 사기 조직과 연계된 악성 임대인을 추적했습니다. 모두 176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소유한 빌라 현황을 따져 보니 올해 전세 사기가 진정되기는커녕 더 늘어날 조짐입니다. 올 한 해 피해액만 2조 원에 가까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사기 조직들은 불과 2~3년 만에 서울과 인천, 부천 등 수도권 신흥 빌라촌을 점령했습니다. 번지르르한 신축 빌라를 짓고,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향해 덫을 쳤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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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3858
■ 사기 조직의 성찬, 전세보증보험
사기 조직들이 전세금을 손쉽게 떼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전세금 반환 보증 제도(전세보증보험) 덕이었습니다. 임차인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된 전세보증보험이 사기에 악용된 겁니다. 사기 조직에는 잘 차려진 성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례로 서울 강서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기 조직의 빌라 관리 대장을 볼까요? 주로 신혼부부와 청년들과 전세 계약을 맺은 기록이 빼곡합니다.
사기 조직들은 전세 계약과 함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습니다. 혹시 사고가 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전세보증보험은 목돈이 없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대출받을 때도 활용됐습니다.
사고가 터지는 건 전세 계약이 끝날 땝니다. 믿었던 집주인은 돌변했습니다. 보증금을 못 돌려준다며 버티거나 잠적해버렸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전세보증보험이 사기 조직에는 범행을 실행할 발판이었던 셈입니다. 보증보험 가입은 매번 무사통과였습니다. 전세 사기 조직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사 절차가 뭐 있어요? 신청 단계에서 심사는 끝나는 거예요. 전세가율이랑 이런 비율만 맞으면 그냥 끝나는 거예요." (전세 사기 조직 관계자) |
HUG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결정할 때 전세가율과 가압류 설정 여부 등만 따집니다. 임대인이 누군지는 가리지 않습니다. 체납 여부를 살펴보긴 하지만, 개인 임대사업자들에 대해서는 2021년부터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안에 수백 채씩의 빌라를 사들여도 심사를 무사 통과했습니다. 사기 조직과 관련이 있는지를 전혀 살피지 않는 겁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현행법상 사전에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전세 사기 대응, 골든타임 놓치다
사기 조직들은 전세보증보험의 허점을 파고들며 빠르게 빌라촌을 점령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KBS 탐사보도부가 구축한 '빌라왕 네트워크'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이 조직적으로 주택 매입에 나선 건 2019년 무렵입니다. 한 해 4,215채를 사들였습니다. 매입 주택 수는 전 년도(1,461채) 보다 188% 급증했습니다.
176명 연결망이 눈에 띄게 촘촘해지던 때도 그때였습니다. 한 가운데, 서로 연결된 17명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전세 사기의 본격적인 서막이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사기 조직 임대인들이 신축 빌라를 사들일 때마다 전세 보증 보험을 들어줬습니다. 영문 모르는 세입자들은 그리고 2년 뒤 보증금을 떼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전세금은 사기 조직들끼리 나눈 뒤입니다.
실제로 2021년 전세 보증 사고는 집중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보증 사고액이 1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당시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 : "보증 사고 나는 추세를 봤더니 2019년부터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2020년도에 한 번 보고 2021년도에도 한 번 보니, 추세가 줄어들 기미가 안 나오고 있어서..." (중략) (기자: 늘어난 이유는 뭐라고 파악하신 거예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 : "원인 파악을 저희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어서..." |
그러고도 정부는 적절한 대책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규모 전세 사기의 강력한 징후를 보고도, 넋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급증하는 전세 보증사고액이 급증한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 위험 징후 외면한 대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의 활동은 더 왕성해졌습니다. 이들은 2021년 한 해에만 8,929채를 사들였습니다. 주택 매입 수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연결망에서도 한가운데 완전히 똬리를 튼 시깁니다.
실제 전세 사기 피해가 급증하는데도 정부는 사기 조직과 빌라왕을 방치했고, 그런 사이에 그 규모가 더 커진 겁니다. 보증보험 가입 심사를 더욱 철저히 하거나, 짧은 시간에 여러 채 빌라를 사들일 경우 따져보거나 위험 징후가 있는 임대인을 미리 공개했다면, 연결망이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176명 중 대부분은 수사는커녕 정부의 관리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76명 중 취재진이 수사 대상으로 파악한 인물과 법인은 모두 24명(개) 입니다. HUG의 집중 관리 대상은 50명입니다. 중복을 빼고,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인물은 11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 더 큰 게 온다…막을 수 있을까?
취재진은 사기 조직 연계 임대인 176명에 의한 올해와 내년 전세 보증금 사고 규모를 최대 2조 6천 억 원 가량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만기가 돌아오면 보증금 사고는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사기 조직에게 건네진 전세 보증금은, 계약 당시에 떼인 돈이라고 봐야 맞습니다.
지난 10일 국토부는 피해 세입자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아도 새로 집을 살 때 무주택자로 인정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습니다. 지금으로선 이런 지원책을 더 보완해서 예고된 사고가 나면 빨리 수습되도록 돕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앞으로 피해 규모가 더 늘게 되면, 막대한 재정 부담도 감수해야 합니다. 어떻게 대비할지 지혜로운 방안을 미리 세울 때입니다.
■ "100장 땡기고 몇 년 살다 와야죠"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전세 사기 종합 대책 어디를 봐도, 전세 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세 사기 조직들은 정부 대책이 어디로 가는지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빌라왕을 여럿 거느렸던 부동산 컨설팅 업체 두 대표의 실제 SNS 대화입니다. 둘 다 전세 사기에 가담한 정황이 확인된 인물들입니다.
전세 사기 총책 두 명이 이 대화를 나눈 건 지난해 7월입니다. 당시는 정부가 전세 사기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예고한 때입니다. 한 명은 잠시 쉬겠다고 하고, 한 명은 '동시 진행'을 계속하겠다고 합니다. '동시 진행'은 전세와 매매 계약을 한 번에 진행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전세 사기 유형을 일컫습니다.
두 조직 총책은 물론이고, 이들 사기 조직과 연결된 임대인 176명은 다시 빌라촌으로 돌아와 한 탕 크게 칠 궁리를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 '전세 사기 먹이 사슬' 끊어낼 수 있을까?
지난해 말, 숨진 빌라왕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전세 사기 피해가 한꺼번에 드러났습니다. 이후 사기극 전모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는 정부의 무능과 시스템 실패를 고의적으로 노린 지능형 범죄였습니다.
HUG와 같은 보증보험기관들은 사기꾼들이 자신들의 돈을 훔쳐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인 꼴입니다. 피해는 청년층, 서민층에 집중됐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추적한 '빌라왕 네트워크'는 서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었습니다. 이 강력한 결속을 끊어내고 응징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전세 사기꾼들 주머니를 국민 돈으로 채워주는 재앙이 반복될지 모릅니다. 전세 사기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영리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전세 사기 공모가 엄두에 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처벌도 뒤따라야 합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더 똑똑해져야 합니다. 최소한 사기꾼보다 말입니다. 우리가 망각한 사이 수도권 빌라촌은 언제든 '빌라왕 네트워크'에 다시 점령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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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우한울, 송수진, 김연주 기자
데이터 분석 : 윤지희, 이지연
데이터 시각화 : 김성호 개발자
연구 지원 : 연세대 사회학과 'Social Networks & Neuroscience Lab'
염유식 교수, 성기호, 곽현정, 허예진, 황채민
그래픽 제작 : 존코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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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울 기자 wh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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