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수채화가 조현계, 화폭에 담은 자연의 숨소리

입력 2023.03.21 (20:11) 수정 2023.03.2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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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연둣빛 새순과 봄꽃 풍경이 한 폭의 거대한 수채화를 보는 듯한 요즘인데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화폭에 담으며 수채화 외길을 걸어온 노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봄이 오는 길목.

평생 길 위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에겐 자연이 곧 화실입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여기 지금 내가 나오면 새소리, 바람소리 이게 나도 모르게 음악이 되어서 내 손을 타고 그림에 들어가는 거라."]

노상 화실에서 자연의 색과 소리를 관찰하고 교감하며 작가는 자연의 심성을 그림으로 전합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작가의 붓놀림이 분주합니다.

1년에 한 번, 긴 기다림 끝에 목련의 매순간을 담는데요.

맑고 순박하면서 우아한 목련꽃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작가는 직접 목련나무를 심었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여기 봉오리도 있고 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시기를 잡아야 되는 거예요. 나하고 이제 대화를 하잖아요. 목련꽃이 다 피고 나면 떨어지기 싫어서 애처로운 느낌을 나한테 보내는 거예요."]

그가 자연과 나눈 수많은 대화는 맑고 깊은 수채화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12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72년 첫 개인전을 연 뒤 지역 대표 수채화가로, 한국수채화협회 이사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며 수채화의 지평을 넓혔는데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심성, 소리와 향기까지 담아온 작가는 얄팍한 재주를 경계합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점 찍듯이 눌러놓은 것이 결국 새소리, 바람소리, 꽃 향기까지 여기 다 들어갔다고... 재주로 그리지 말고 기교를 부리지 말고 자기 마음을 담아서 혼을 담아서 그리는 그림..."]

자연의 철학자가 되어 전국의 길 위에서 그려낸 풍경은 생명의 수채화로 평가받는데요.

서원곡의 벚꽃을 담은 작품은 다양한 기법에 추상적 요소를 더했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함축해서 설명조가 아니고 순간적으로 바로 그냥."]

목련 작가로 통할 만큼 수많은 목련을 그렸지만 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화의 여백처럼 흰 바탕은 살리면서 찍기, 번지기, 긁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그만의 목련을 그려냈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붓 뒤를 가지고 눌린 자국입니다. 긁기. 수채화에서 할 수 있는 기법은 내가 거의 다 사용을 했거든요. 내가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고 내가 좋아서 평생을 내 방식대로 그린 그림입니다."]

평생 수채화를 그렸지만 그에게 완전한 작업은 없습니다. 2015년에 그린 작품도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을 거듭합니다.

작품의 80%는 현장에서 그리고 나머지 20%는 시간을 두고 오래, 정교하게 다듬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빈 공간에 힘이 덜 들어간 부분은 점을 더 찍어주고 그게 금방 결정이 나는 게 아니고 계속 보고 조금 다르다 싶으면 한 번 더 수정하고..."]

물을 많이 쓰는 습식법으로 그리다 보니 물감이 흐르지 않게 바닥에서 작업한 세월이 60년.

수채화와 척추를 맞바꿀 만큼 극심한 통증에도 노장은 붓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평생을 엎드려서 했으니까 그런 게 좀 누적돼서 내가 지금 직업병이라. 아껴가면서 마무리하려고 언젠가는 큰 그림을 그려야죠."]

해마다 봄을 마중하는 곳, 불편한 몸으로 다시 자연과 마주한 그에게 자연은 큰 스승입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모든 식물들을 보면 다 자기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고 아름다움을 추구해나간다고. 그게 진리라. 나는 거기서 많은 걸 배우지. 자연은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거든요. 깨달음이라."]

자연이 가르쳐 준 대로, 일흔 여덟의 현역은 생명의 순간과 봄의 소리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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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人] 수채화가 조현계, 화폭에 담은 자연의 숨소리
    • 입력 2023-03-21 20:11:42
    • 수정2023-03-21 20:56:42
    뉴스7(창원)
[앵커]

연둣빛 새순과 봄꽃 풍경이 한 폭의 거대한 수채화를 보는 듯한 요즘인데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화폭에 담으며 수채화 외길을 걸어온 노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봄이 오는 길목.

평생 길 위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에겐 자연이 곧 화실입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여기 지금 내가 나오면 새소리, 바람소리 이게 나도 모르게 음악이 되어서 내 손을 타고 그림에 들어가는 거라."]

노상 화실에서 자연의 색과 소리를 관찰하고 교감하며 작가는 자연의 심성을 그림으로 전합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작가의 붓놀림이 분주합니다.

1년에 한 번, 긴 기다림 끝에 목련의 매순간을 담는데요.

맑고 순박하면서 우아한 목련꽃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작가는 직접 목련나무를 심었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여기 봉오리도 있고 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시기를 잡아야 되는 거예요. 나하고 이제 대화를 하잖아요. 목련꽃이 다 피고 나면 떨어지기 싫어서 애처로운 느낌을 나한테 보내는 거예요."]

그가 자연과 나눈 수많은 대화는 맑고 깊은 수채화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12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72년 첫 개인전을 연 뒤 지역 대표 수채화가로, 한국수채화협회 이사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며 수채화의 지평을 넓혔는데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심성, 소리와 향기까지 담아온 작가는 얄팍한 재주를 경계합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점 찍듯이 눌러놓은 것이 결국 새소리, 바람소리, 꽃 향기까지 여기 다 들어갔다고... 재주로 그리지 말고 기교를 부리지 말고 자기 마음을 담아서 혼을 담아서 그리는 그림..."]

자연의 철학자가 되어 전국의 길 위에서 그려낸 풍경은 생명의 수채화로 평가받는데요.

서원곡의 벚꽃을 담은 작품은 다양한 기법에 추상적 요소를 더했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함축해서 설명조가 아니고 순간적으로 바로 그냥."]

목련 작가로 통할 만큼 수많은 목련을 그렸지만 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화의 여백처럼 흰 바탕은 살리면서 찍기, 번지기, 긁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그만의 목련을 그려냈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붓 뒤를 가지고 눌린 자국입니다. 긁기. 수채화에서 할 수 있는 기법은 내가 거의 다 사용을 했거든요. 내가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고 내가 좋아서 평생을 내 방식대로 그린 그림입니다."]

평생 수채화를 그렸지만 그에게 완전한 작업은 없습니다. 2015년에 그린 작품도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을 거듭합니다.

작품의 80%는 현장에서 그리고 나머지 20%는 시간을 두고 오래, 정교하게 다듬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빈 공간에 힘이 덜 들어간 부분은 점을 더 찍어주고 그게 금방 결정이 나는 게 아니고 계속 보고 조금 다르다 싶으면 한 번 더 수정하고..."]

물을 많이 쓰는 습식법으로 그리다 보니 물감이 흐르지 않게 바닥에서 작업한 세월이 60년.

수채화와 척추를 맞바꿀 만큼 극심한 통증에도 노장은 붓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평생을 엎드려서 했으니까 그런 게 좀 누적돼서 내가 지금 직업병이라. 아껴가면서 마무리하려고 언젠가는 큰 그림을 그려야죠."]

해마다 봄을 마중하는 곳, 불편한 몸으로 다시 자연과 마주한 그에게 자연은 큰 스승입니다.

[조현계/수채화가 : "모든 식물들을 보면 다 자기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고 아름다움을 추구해나간다고. 그게 진리라. 나는 거기서 많은 걸 배우지. 자연은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거든요. 깨달음이라."]

자연이 가르쳐 준 대로, 일흔 여덟의 현역은 생명의 순간과 봄의 소리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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