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절수 설비’…인증 제품인데 왜?

입력 2023.03.23 (19:46) 수정 2023.03.2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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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우리 집 화장실에도 '절수 설비'가 설치돼 있을 텐데요,

앞서 보신대로 물을 아껴줄 거로 알았던 제품이 효과가 없다는 건데, 궁금한 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입니다.

이 문제 집중 취재한 이준석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절수 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건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취지인 거죠?

[기자]

네, 맞습니다.

물 절약을 위한 생활 습관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생활 습관을 강제로 바꿀 순 없잖습니까?

그렇다면, 수돗물을 쓰는 설비에 '절수' 기능을 넣으면 그래도 물을 아낄 수 있겠다,

이런 취지로 절수 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겁니다.

지금은 사실상 모든 건축물에 설치해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위반하면 과태료도 무는데요,

절수 설비를 하지 않으면 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됩니다.

지난해에는 절수 설비에 실제 물이 얼마나 절약되는지를 등급으로 나누고, 이 등급을 표시하게 의무화했는데요,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까지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물 관리가 절실하다." 이런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절수 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거잖아요.

혹시 절수 설비 제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요?

[기자]

우선 '절수 설비'라고 부르려면,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공중화장실 수도꼭지의 경우 1분간 물을 틀었을 때 5리터 이하로 나와야 합니다.

대변기와 소변기는 한 번 쓸 때 각각 6리터, 2리터 이하여야 하거든요.

이 기준에 맞으면 절수 설비라고 할 수 있고,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해서 '환경표지 인증서'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저희가 취재한 학교와 교육청도 이런 시험성적서를 믿고 절수 설비를 설치한 거거든요.

민간 건설사도 건축물 준공 검사를 받으려면 절수 설비 설치 확인서를 첨부해야 합니다.

시험성적서도 있고, 인증도 받았으니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죠.

[앵커]

그럼 절수 설비인데도 물 절약 효과가 없는 건 어떻게 된 겁니까?

[기자]

네, 절수 설비를 인증하는 '법적 기준'이 엉터리입니다.

앞서서 절수 설비로 인증받으려면 대변기 소변기는 6리터, 2리터.

공중화장실 수도꼭지는 1분간 5리터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럼 절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수돗물을 이들 제품에 흘려 보내야 하겠죠?

그런데 약 1기압에서만 실험하고 있는데요,

문제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건축물의 일반적인 수압은 1기압이 아닙니다.

이 정도 수압이면 물이 졸졸 나오는 수준이라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고 하거든요.

저희가 취재한 교육청과 학교의 경우 수압이 2~3기압 수준이었습니다.

실험기준의 2~3배인 겁니다.

1기압이라는 약한 수압으로 실험한 절수 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겠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건축물에 쓰이는 2~3기압 수준의 수압에 맞게 절수 설비 검증을 받도록 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앵커]

그러니까 실제 건축물에서 쓰는 것보다 훨씬 약한 수압을 기준으로 절수 설비를 검증하고, 이 제품을 설치하게 하니까 물 절약 효과가 없다,

이런 말이군요?

그럼 법을 바꾸면 될텐데요?

환경부도 취재해 보셨죠?

[기자]

네, 환경부는 법을 바꾸면 기존의 절수 설비를 만들고 있는 기업들에 '규제'로 작용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밝혔는데요,

물 절약에 집중하기보단 기업 측 논리를 대변하는 모양샙니다.

특히 절수 설비가 물 절약 효과가 없다는 걸 아느냐는 질문에도 알고는 있다면서도 실제 어느 정도로 절수 효과가 없는지는 지금까지 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뿐 아니라 자치단체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집니다.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럼, 설치했는지 안 했는지를 부산시나 일선 자치단체가 조사하고, 점검을 해야 하는데 단 한 곳도 조사를 벌인 적이 없습니다.

'물 부족 국가' 이전에 '물 관리 부족 국가'라는 비판을 환경부와 자치단체가 새겨 들었으면 합니다.

[앵커]

네, 이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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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지물 ‘절수 설비’…인증 제품인데 왜?
    • 입력 2023-03-23 19:46:50
    • 수정2023-03-23 20:29:30
    뉴스7(부산)
[앵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우리 집 화장실에도 '절수 설비'가 설치돼 있을 텐데요,

앞서 보신대로 물을 아껴줄 거로 알았던 제품이 효과가 없다는 건데, 궁금한 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입니다.

이 문제 집중 취재한 이준석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절수 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건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취지인 거죠?

[기자]

네, 맞습니다.

물 절약을 위한 생활 습관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생활 습관을 강제로 바꿀 순 없잖습니까?

그렇다면, 수돗물을 쓰는 설비에 '절수' 기능을 넣으면 그래도 물을 아낄 수 있겠다,

이런 취지로 절수 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겁니다.

지금은 사실상 모든 건축물에 설치해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위반하면 과태료도 무는데요,

절수 설비를 하지 않으면 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됩니다.

지난해에는 절수 설비에 실제 물이 얼마나 절약되는지를 등급으로 나누고, 이 등급을 표시하게 의무화했는데요,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까지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물 관리가 절실하다." 이런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절수 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거잖아요.

혹시 절수 설비 제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요?

[기자]

우선 '절수 설비'라고 부르려면,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공중화장실 수도꼭지의 경우 1분간 물을 틀었을 때 5리터 이하로 나와야 합니다.

대변기와 소변기는 한 번 쓸 때 각각 6리터, 2리터 이하여야 하거든요.

이 기준에 맞으면 절수 설비라고 할 수 있고,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해서 '환경표지 인증서'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저희가 취재한 학교와 교육청도 이런 시험성적서를 믿고 절수 설비를 설치한 거거든요.

민간 건설사도 건축물 준공 검사를 받으려면 절수 설비 설치 확인서를 첨부해야 합니다.

시험성적서도 있고, 인증도 받았으니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죠.

[앵커]

그럼 절수 설비인데도 물 절약 효과가 없는 건 어떻게 된 겁니까?

[기자]

네, 절수 설비를 인증하는 '법적 기준'이 엉터리입니다.

앞서서 절수 설비로 인증받으려면 대변기 소변기는 6리터, 2리터.

공중화장실 수도꼭지는 1분간 5리터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럼 절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수돗물을 이들 제품에 흘려 보내야 하겠죠?

그런데 약 1기압에서만 실험하고 있는데요,

문제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건축물의 일반적인 수압은 1기압이 아닙니다.

이 정도 수압이면 물이 졸졸 나오는 수준이라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고 하거든요.

저희가 취재한 교육청과 학교의 경우 수압이 2~3기압 수준이었습니다.

실험기준의 2~3배인 겁니다.

1기압이라는 약한 수압으로 실험한 절수 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겠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건축물에 쓰이는 2~3기압 수준의 수압에 맞게 절수 설비 검증을 받도록 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앵커]

그러니까 실제 건축물에서 쓰는 것보다 훨씬 약한 수압을 기준으로 절수 설비를 검증하고, 이 제품을 설치하게 하니까 물 절약 효과가 없다,

이런 말이군요?

그럼 법을 바꾸면 될텐데요?

환경부도 취재해 보셨죠?

[기자]

네, 환경부는 법을 바꾸면 기존의 절수 설비를 만들고 있는 기업들에 '규제'로 작용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밝혔는데요,

물 절약에 집중하기보단 기업 측 논리를 대변하는 모양샙니다.

특히 절수 설비가 물 절약 효과가 없다는 걸 아느냐는 질문에도 알고는 있다면서도 실제 어느 정도로 절수 효과가 없는지는 지금까지 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뿐 아니라 자치단체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집니다.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럼, 설치했는지 안 했는지를 부산시나 일선 자치단체가 조사하고, 점검을 해야 하는데 단 한 곳도 조사를 벌인 적이 없습니다.

'물 부족 국가' 이전에 '물 관리 부족 국가'라는 비판을 환경부와 자치단체가 새겨 들었으면 합니다.

[앵커]

네, 이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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