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일하는데 임금 차별…비정규직 신분이 ‘족쇄’

입력 2023.03.27 (21:39) 수정 2023.03.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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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48만 원 대 188만 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지난해 한 달 평균 임금입니다.

통계 낸 이래 차이가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습니다.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데, 단지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법, 이미 17년 전에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KBS가 노동위원회 판정문을 입수해, 비정규직들이 일터에서 어떻게 차별받고 있는지 실태를 들여다봤습니다.

홍성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고등학교에서 담임 교사로 일하는 박영진 씨,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기간제 신분이지만 하는 일은 정규직과 똑같습니다.

[박영진/기간제 교사 : "현재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정규 교사를 많이 뽑지 않아요. 당연히 담임을 기간제 교사가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기간제 교사는 계약 기간엔 호봉이 고정되고 학교가 바뀌면 정근수당 일부도 받지 못합니다.

[박영진/기간제 교사 : "차별을 없애고 기간제 교사도 하나의 교원으로서 대우해줘야 질 높은 교육이 가능해질 텐데..."]

노동위원회가 '비정규직 차별'이라고 판정한 건 지난 3년간 94건, 이 가운데 '전부 시정 명령'이 나온 25건의 판정문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사업장별로 보니 민간기업 9곳, 지자체 6곳, 공기업 4곳, 학교와 병원 등으로 공공부문이 40%를 차지했습니다.

24시간 교통약자 택시를 운영하는 한 지자체 공기업.

정규직 기사들이 퇴근하는 밤 시간대 운행을 위해 기간제를 채용했는데, 이들에게는 1년에 두 번 나오는 성과급을 주지 않았습니다.

[기간제 기사 : "(회사에서) 우리는 단시간제라고, 단시간제라고 해서 근무일수가 모자란다고 그래서 (성과급을)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 그렇게 얘기해 가지고..."]

노동위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로 보고 기간제 기사 14명에게 1억 5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고정수당을 차별해 지급한 사업장들도 있습니다.

지자체에 소속된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한 표입니다.

기간제 노동자에게만 급식비와 가족수당, 휴가비 등을 안 주거나 적게 줬습니다.

한 승강기 유지·보수 업체는 휴가비와 김장비, 지역수당 등 무려 9가지 수당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했습니다.

신분에 따라 휴식 공간을 구분하거나, 신분증 발급을 거부한 경우도 비정규직 차별로 인정됐습니다.

그러나 노동위 판정을 받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닙니다.

비정규직의 가장 취약한 고리, 계약 연장 문제 때문입니다.

[기간제 노동자 : "사람이 그만두고 다시 들어올 때 1년 계약을 해요. 회사에서 어차피 1년 계약이니 계약을 안 하면 일을 못 하는 거고..."]

KBS 뉴스 홍성희입니다.

촬영기자:권순두/영상편집:최찬종

[앵커]

이 문제, 홍성희 기자와 좀 더 짚어봅니다.

앞서 본 사례에서 사용자 측은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근거가 뭡니까?

[기자]

차별이 성립되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일단 유사해야 합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비교 대상이 있어야 차별을 주장할 수 있는 건데, 사용자 측은 이 부분을 주로 다퉜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하는 일이 더 많다, 근무 시간이 더 길다, 책임도 더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설사 업무가 유사해도 채용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이 합리적이라고도 했습니다.

[앵커]

그런 주장을 노동위원회가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기자]

노동위는 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완전히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봤고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주된 업무만 비교했습니다.

한 병원 의공기사의 경우, 비정규직은 업무가 4개, 정규직은 5개였지만 '의료기기 관리'라는 주된 업무만 볼 땐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채용 경로의 차이도 차별의 합리적 이유는 안 된다고 봤습니다.

[앵커]

그런데 차별로 인정한 게 3년 동안 94건이면 별로 많지는 않은 거잖아요.

[기자]

차별을 시정해 달라는 신청 건수가 한 해 평균 170건 정도 접수됩니다.

기간제 노동자가 468만 명인 걸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수치인데요.

차별을 당연한 거로 받아들이거나, 시정을 요구했다가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신청한다고 해도 차별이 발생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신청 자체가 불가합니다.

[앵커]

노동 시장의 '공정한 보상'을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요?

[기자]

당사자뿐 아니라 비정규직이 가입한 노동조합도 차별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있고요.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데, 보호에도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정부는 전문가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영상편집:황보현평/그래픽: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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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같이 일하는데 임금 차별…비정규직 신분이 ‘족쇄’
    • 입력 2023-03-27 21:39:05
    • 수정2023-03-27 22:01:50
    뉴스 9
[앵커]

348만 원 대 188만 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지난해 한 달 평균 임금입니다.

통계 낸 이래 차이가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습니다.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데, 단지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법, 이미 17년 전에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KBS가 노동위원회 판정문을 입수해, 비정규직들이 일터에서 어떻게 차별받고 있는지 실태를 들여다봤습니다.

홍성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고등학교에서 담임 교사로 일하는 박영진 씨,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기간제 신분이지만 하는 일은 정규직과 똑같습니다.

[박영진/기간제 교사 : "현재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정규 교사를 많이 뽑지 않아요. 당연히 담임을 기간제 교사가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기간제 교사는 계약 기간엔 호봉이 고정되고 학교가 바뀌면 정근수당 일부도 받지 못합니다.

[박영진/기간제 교사 : "차별을 없애고 기간제 교사도 하나의 교원으로서 대우해줘야 질 높은 교육이 가능해질 텐데..."]

노동위원회가 '비정규직 차별'이라고 판정한 건 지난 3년간 94건, 이 가운데 '전부 시정 명령'이 나온 25건의 판정문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사업장별로 보니 민간기업 9곳, 지자체 6곳, 공기업 4곳, 학교와 병원 등으로 공공부문이 40%를 차지했습니다.

24시간 교통약자 택시를 운영하는 한 지자체 공기업.

정규직 기사들이 퇴근하는 밤 시간대 운행을 위해 기간제를 채용했는데, 이들에게는 1년에 두 번 나오는 성과급을 주지 않았습니다.

[기간제 기사 : "(회사에서) 우리는 단시간제라고, 단시간제라고 해서 근무일수가 모자란다고 그래서 (성과급을)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 그렇게 얘기해 가지고..."]

노동위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로 보고 기간제 기사 14명에게 1억 5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고정수당을 차별해 지급한 사업장들도 있습니다.

지자체에 소속된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한 표입니다.

기간제 노동자에게만 급식비와 가족수당, 휴가비 등을 안 주거나 적게 줬습니다.

한 승강기 유지·보수 업체는 휴가비와 김장비, 지역수당 등 무려 9가지 수당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했습니다.

신분에 따라 휴식 공간을 구분하거나, 신분증 발급을 거부한 경우도 비정규직 차별로 인정됐습니다.

그러나 노동위 판정을 받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닙니다.

비정규직의 가장 취약한 고리, 계약 연장 문제 때문입니다.

[기간제 노동자 : "사람이 그만두고 다시 들어올 때 1년 계약을 해요. 회사에서 어차피 1년 계약이니 계약을 안 하면 일을 못 하는 거고..."]

KBS 뉴스 홍성희입니다.

촬영기자:권순두/영상편집:최찬종

[앵커]

이 문제, 홍성희 기자와 좀 더 짚어봅니다.

앞서 본 사례에서 사용자 측은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근거가 뭡니까?

[기자]

차별이 성립되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일단 유사해야 합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비교 대상이 있어야 차별을 주장할 수 있는 건데, 사용자 측은 이 부분을 주로 다퉜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하는 일이 더 많다, 근무 시간이 더 길다, 책임도 더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설사 업무가 유사해도 채용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이 합리적이라고도 했습니다.

[앵커]

그런 주장을 노동위원회가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기자]

노동위는 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완전히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봤고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주된 업무만 비교했습니다.

한 병원 의공기사의 경우, 비정규직은 업무가 4개, 정규직은 5개였지만 '의료기기 관리'라는 주된 업무만 볼 땐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채용 경로의 차이도 차별의 합리적 이유는 안 된다고 봤습니다.

[앵커]

그런데 차별로 인정한 게 3년 동안 94건이면 별로 많지는 않은 거잖아요.

[기자]

차별을 시정해 달라는 신청 건수가 한 해 평균 170건 정도 접수됩니다.

기간제 노동자가 468만 명인 걸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수치인데요.

차별을 당연한 거로 받아들이거나, 시정을 요구했다가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신청한다고 해도 차별이 발생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신청 자체가 불가합니다.

[앵커]

노동 시장의 '공정한 보상'을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요?

[기자]

당사자뿐 아니라 비정규직이 가입한 노동조합도 차별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있고요.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데, 보호에도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정부는 전문가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영상편집:황보현평/그래픽: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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