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어요” 말했더니 연락 뚝…또 다른 ‘코피노’들

입력 2023.04.05 (21:17) 수정 2023.04.0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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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낳은 혼혈 아이를 코피노(KOPINO)라고 부릅니다.

상당수 아빠들이 아이를 사실상 필리핀에 버리고 귀국해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까지 개설됐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코피노'같은 아이들이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국내, 우리 주변에도 있었습니다.

KBS는 취재를 통해 6명의 엄마와 7명의 아이들을 확인했습니다.

국적도, 비자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살고 있는 이들의 실태를 연속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최혜림 기자입니다.

[리포트]

승훈이(가명)는 지난 2월이 첫 돌이었습니다.

아빠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바이바이~ (빠빠!) 아빠 없어."]

필리핀인 엄마가 승훈이를 가진 지 한 달 만에, 한국인 아빠는 종적을 감췄습니다.

[A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병원 첫 검사 갔을 때 같이 가고, 첫 달에도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 안 되고 전화해도 거부하고..."]

승훈이 엄마는 한국 생활 3년째인 2021년, 한국 남성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결혼 얘기까지 오갔습니다.

[A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일 마치면 매일 아이 아빠 집에서 자고... 결혼하면 비자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성은 집을 옮기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아이 사진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아빠 없이 태어난 승훈이는 한국 국적이 없어, 기본적인 복지 혜택도 받기 어렵습니다.

[A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승훈이가) 아토피 질환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요. 우윳값이라도 벌고 싶어서 잠깐 주점에 일하러 갔는데 그날 밤에 경찰관이 들어와서 단속했어요."]

3살 딸을 혼자 키우는 이 필리핀 여성도 같은 처지입니다.

소개로 만난 한국 남성과 짧게 동거했는데, 남성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니 아이를 버리라고 요구했습니다.

[B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아이 아빠는 00을 버리라고 했어요. 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했고, 유전자 검사까지 해서 친자 확인을 받았습니다.

[B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소송 전후로 계속 연락했는데 전화 받지 않았어요."]

KBS는 같은 처지인 엄마 6명, 아이 7명을 만났습니다.

엄마들 국적은 필리핀(4명), 베트남(1명), 몽골(1명).

살고 있는 곳은 전국에 걸쳐 있습니다.

국적도 거주지도 다르지만, 이역만리인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버려졌다는 그 충격은 차이가 없었습니다.

[C 씨/베트남 국적 미혼모 : "(본국의) 가족 무서운 건 제일 어려워요. (부모님은) 그냥 조금 한국 생활만 하는 줄 (알고 계세요)."]

[D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매일 먹을 것 어디서 구해야 하나, 아이 우유, 기저귀 어디서 얻어야 하나."]

[E 씨/몽골 국적 미혼모 : "혼자 마음도 너무 아프고 약하고, 약해지고, 애들도 보면 불쌍하고."]

[F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아이 아빠는 아직도 아이의 국적을 신청하지 않았어요. 다음 주에 해줄게(라고만 했어요)."]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앵커]

보신 것 처럼 아이 아빠로 지목된 한국인 남성들은 연락을 끊고 흔적 지우기에 바빴습니다.

아빠의 정보를 모르면 친자를 확인받는 법적 소송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윤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베트남 여성은 지난해 12월 아이를 낳았습니다.

채팅앱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은 교제 중에도,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C 씨/베트남 국적 미혼모 : "반도체 연구원이라고 했어요. 나이는 95년생이라고 했어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남성이 연락을 끊은 후였습니다.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해당 남성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베트남 여성과 교제한 적이 없다"는 짧은 문자 이후 답이 없었는데, 여성의 휴대전화엔 두 사람이 나눈 다정한 대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거주지라도 확인해 보려니, 여성이 아는 정보가 너무 적었습니다.

[C 씨/베트남 국적 미혼모 : "(집 주변을) 간단하게 기억을 해요. 한번 찾아갔는데 제가 거기 기억 잘 안 해서 못 찾았어요."]

KBS가 확인한 사례의 아이 아빠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습니다.

대부분 미혼 남성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아이 엄마와 가끔이라도 연락이 닿는 경우는 1명뿐이었습니다.

집으로, 직장으로 그들의 입장을 들으려고 여러 경로로 시도했지만, 전화 연결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철저히 연락을 차단하는 건 일종의 봉쇄 전략으로 보입니다.

엄마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은 친자를 확인받는 '인지 소송'인데, 상대의 정보를 모르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필리핀인 엄마는 결국, 아이와 함께 귀국하기로 했습니다.

[D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언제든지 (단속에) 잡힐 수 있고 강제로 집으로 보낼 수 있고... 아이랑 같이 잡히면 두 배로 힘드니까요."]

KBS가 만난 6명의 엄마 중 2명이 인지소송조차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KBS 뉴스 이윤우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조창훈/그래픽:김지훈 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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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했어요” 말했더니 연락 뚝…또 다른 ‘코피노’들
    • 입력 2023-04-05 21:17:59
    • 수정2023-04-05 2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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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낳은 혼혈 아이를 코피노(KOPINO)라고 부릅니다.

상당수 아빠들이 아이를 사실상 필리핀에 버리고 귀국해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까지 개설됐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코피노'같은 아이들이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국내, 우리 주변에도 있었습니다.

KBS는 취재를 통해 6명의 엄마와 7명의 아이들을 확인했습니다.

국적도, 비자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살고 있는 이들의 실태를 연속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최혜림 기자입니다.

[리포트]

승훈이(가명)는 지난 2월이 첫 돌이었습니다.

아빠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바이바이~ (빠빠!) 아빠 없어."]

필리핀인 엄마가 승훈이를 가진 지 한 달 만에, 한국인 아빠는 종적을 감췄습니다.

[A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병원 첫 검사 갔을 때 같이 가고, 첫 달에도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 안 되고 전화해도 거부하고..."]

승훈이 엄마는 한국 생활 3년째인 2021년, 한국 남성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결혼 얘기까지 오갔습니다.

[A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일 마치면 매일 아이 아빠 집에서 자고... 결혼하면 비자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성은 집을 옮기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아이 사진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아빠 없이 태어난 승훈이는 한국 국적이 없어, 기본적인 복지 혜택도 받기 어렵습니다.

[A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승훈이가) 아토피 질환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요. 우윳값이라도 벌고 싶어서 잠깐 주점에 일하러 갔는데 그날 밤에 경찰관이 들어와서 단속했어요."]

3살 딸을 혼자 키우는 이 필리핀 여성도 같은 처지입니다.

소개로 만난 한국 남성과 짧게 동거했는데, 남성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니 아이를 버리라고 요구했습니다.

[B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아이 아빠는 00을 버리라고 했어요. 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했고, 유전자 검사까지 해서 친자 확인을 받았습니다.

[B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소송 전후로 계속 연락했는데 전화 받지 않았어요."]

KBS는 같은 처지인 엄마 6명, 아이 7명을 만났습니다.

엄마들 국적은 필리핀(4명), 베트남(1명), 몽골(1명).

살고 있는 곳은 전국에 걸쳐 있습니다.

국적도 거주지도 다르지만, 이역만리인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버려졌다는 그 충격은 차이가 없었습니다.

[C 씨/베트남 국적 미혼모 : "(본국의) 가족 무서운 건 제일 어려워요. (부모님은) 그냥 조금 한국 생활만 하는 줄 (알고 계세요)."]

[D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매일 먹을 것 어디서 구해야 하나, 아이 우유, 기저귀 어디서 얻어야 하나."]

[E 씨/몽골 국적 미혼모 : "혼자 마음도 너무 아프고 약하고, 약해지고, 애들도 보면 불쌍하고."]

[F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아이 아빠는 아직도 아이의 국적을 신청하지 않았어요. 다음 주에 해줄게(라고만 했어요)."]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앵커]

보신 것 처럼 아이 아빠로 지목된 한국인 남성들은 연락을 끊고 흔적 지우기에 바빴습니다.

아빠의 정보를 모르면 친자를 확인받는 법적 소송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윤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 베트남 여성은 지난해 12월 아이를 낳았습니다.

채팅앱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은 교제 중에도,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C 씨/베트남 국적 미혼모 : "반도체 연구원이라고 했어요. 나이는 95년생이라고 했어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남성이 연락을 끊은 후였습니다.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해당 남성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베트남 여성과 교제한 적이 없다"는 짧은 문자 이후 답이 없었는데, 여성의 휴대전화엔 두 사람이 나눈 다정한 대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거주지라도 확인해 보려니, 여성이 아는 정보가 너무 적었습니다.

[C 씨/베트남 국적 미혼모 : "(집 주변을) 간단하게 기억을 해요. 한번 찾아갔는데 제가 거기 기억 잘 안 해서 못 찾았어요."]

KBS가 확인한 사례의 아이 아빠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습니다.

대부분 미혼 남성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아이 엄마와 가끔이라도 연락이 닿는 경우는 1명뿐이었습니다.

집으로, 직장으로 그들의 입장을 들으려고 여러 경로로 시도했지만, 전화 연결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철저히 연락을 차단하는 건 일종의 봉쇄 전략으로 보입니다.

엄마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은 친자를 확인받는 '인지 소송'인데, 상대의 정보를 모르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필리핀인 엄마는 결국, 아이와 함께 귀국하기로 했습니다.

[D 씨/필리핀 국적 미혼모 : "언제든지 (단속에) 잡힐 수 있고 강제로 집으로 보낼 수 있고... 아이랑 같이 잡히면 두 배로 힘드니까요."]

KBS가 만난 6명의 엄마 중 2명이 인지소송조차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KBS 뉴스 이윤우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조창훈/그래픽:김지훈 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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