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담] “인이 박힌 가락”…여성 농악 원로 발굴기
입력 2023.04.24 (19:32)
수정 2023.04.24 (19:5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한국 농악의 근간으로 꼽히는 남원은 여성 농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한데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들의 존재를 시민들이 되찾아 무대에 다시 서게 한 사연 앞서 전해드렸죠.
오늘은 이 여정을 원로들과 함께한 김양오 역사동화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지역에서도 잊혀졌던 원로들이 60여 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셨어요.
이분들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답변]
이분들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아주 오래된 춘향의 영정 덕분이었습니다.
남원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영정인데요.
최초의 영정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남원 역사연구회 회원들이 춘향제를 연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춘향제를 만든 분이 최봉선이란 분인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도 최봉선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현수막을 걸었죠, 남원시 곳곳에.
최봉선 아는 분 연락 바랍니다.
그랬더니 정말 연락이 왔고요,
그 때 맨 처음 만난 분이 장봉녀 선생님이셨고, 그 뒤에 박복례, 배분순 할머님을 찾게 된 겁니다.
알고보니 이 분들이 남원 여성농악단원들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농악단이었더라고요.
[앵커]
원로 농악인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살아오신 세월이 길다 보니, 옛 감각을 되찾고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답변]
저희가 처음 장봉녀 선생님 댁 방문했을 때 누워 계셨어요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시고 시간 보내시던 분인데.
저희가 가서 놀아드렸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장구 치고 놀아드렸더니 잊었던 가락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시는 거예요.
꽹과리 쥐어드리니까 손이 안 움직여 하시더니 점점 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한 세 달, 네 달 하다가 나중에 남원에서 문화재 활용사업 하는 섬진강 기획이란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여기서 하는 문화재 야행에 할머니들을 초대해 드린 거예요.
그래서 정식으로 60여년 만에 첫 공연을 하게 됐죠.
재작년 가을에.
[앵커]
남원에 뿌리내린 여성 농악단, '최초'라는 것 외에도 지역 예술계에서 갖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답변]
남원이 국악의 도시잖아요.
남원에 국립국악원도 있고 남원시립국악원, 남원시농악단도 있는데.
예전엔 이게 하나였어요, 남원국악원으로.
이 분들이 초창기 국악원 회원이었고, 장봉녀 선생님은 이사도 지내셨는데.
그때 이 국악원이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50~60년대.
국악원 운영 비용을 이 분들이 다 마련했다고 해요.
전국 다니면서 공연하시고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돈도 많이 버셨대요.
이게 다 국악원 운영비로 쓰였죠.
춘향제도 춘향제 때 이 분들이 다 참여해서 제사 지내고, 창극도 하고 길놀이도 하셨는데.
그 때는 공연비 갖은 걸 주는 문화가 아니었대요.
이 분들의 희생으로 국악원, 춘향제 명맥이 이어온 거죠.
그런데 이런 게 전혀 안 알려지고 60년 동안 묻혀 있었단 게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지난 주말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어땠나요?
[답변]
정말 대단했죠.
남원 사람들만으로는 이 공연이 이뤄지기 어려운데.
공연이 이뤄진 건 조갑녀 명무 따님인 정명희 명인과 한국 문화재재단이사장 지낸 진옥섭 선생 공이 매우 커요.
이 분들 덕에 서울 남산국악단에서 공연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분들이 등장하기 전에 스크린이 내려와서 1960년대 공연 영상을 보여주셨어요.
그러고 사회자가 이 분들을 모셨는데, 객석에서 3백여 명이 객석에서 엄청난 함성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앵커]
이분들의 존재가 곧 남원 농악의 역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남은 과제일 것 같습니다.
[답변]
이 분들은 남원 농악 뿐만 아니라 남원 국악계, 춘향제 맥을 이어오신 소중한 은인들이시잖아요.
지금까진 이 분들을 남원 시민들이 챙겼는데, 앞으로는 남원시차원에서 이 분들을 예우해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이분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춘향제 역사잖아요.
춘향 최초 영정, 최봉선 선생님.
이분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앞으로 춘향제 역사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서 옛날 최봉선 선생님과 선조들이 왜 춘향 영정을 이렇게 그렸고, 제향을 지냈는지 뜻을 이어받아서 춘향제 원형을 잘 복원해서 문화재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 농악의 근간으로 꼽히는 남원은 여성 농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한데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들의 존재를 시민들이 되찾아 무대에 다시 서게 한 사연 앞서 전해드렸죠.
오늘은 이 여정을 원로들과 함께한 김양오 역사동화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지역에서도 잊혀졌던 원로들이 60여 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셨어요.
이분들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답변]
이분들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아주 오래된 춘향의 영정 덕분이었습니다.
남원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영정인데요.
최초의 영정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남원 역사연구회 회원들이 춘향제를 연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춘향제를 만든 분이 최봉선이란 분인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도 최봉선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현수막을 걸었죠, 남원시 곳곳에.
최봉선 아는 분 연락 바랍니다.
그랬더니 정말 연락이 왔고요,
그 때 맨 처음 만난 분이 장봉녀 선생님이셨고, 그 뒤에 박복례, 배분순 할머님을 찾게 된 겁니다.
알고보니 이 분들이 남원 여성농악단원들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농악단이었더라고요.
[앵커]
원로 농악인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살아오신 세월이 길다 보니, 옛 감각을 되찾고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답변]
저희가 처음 장봉녀 선생님 댁 방문했을 때 누워 계셨어요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시고 시간 보내시던 분인데.
저희가 가서 놀아드렸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장구 치고 놀아드렸더니 잊었던 가락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시는 거예요.
꽹과리 쥐어드리니까 손이 안 움직여 하시더니 점점 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한 세 달, 네 달 하다가 나중에 남원에서 문화재 활용사업 하는 섬진강 기획이란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여기서 하는 문화재 야행에 할머니들을 초대해 드린 거예요.
그래서 정식으로 60여년 만에 첫 공연을 하게 됐죠.
재작년 가을에.
[앵커]
남원에 뿌리내린 여성 농악단, '최초'라는 것 외에도 지역 예술계에서 갖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답변]
남원이 국악의 도시잖아요.
남원에 국립국악원도 있고 남원시립국악원, 남원시농악단도 있는데.
예전엔 이게 하나였어요, 남원국악원으로.
이 분들이 초창기 국악원 회원이었고, 장봉녀 선생님은 이사도 지내셨는데.
그때 이 국악원이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50~60년대.
국악원 운영 비용을 이 분들이 다 마련했다고 해요.
전국 다니면서 공연하시고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돈도 많이 버셨대요.
이게 다 국악원 운영비로 쓰였죠.
춘향제도 춘향제 때 이 분들이 다 참여해서 제사 지내고, 창극도 하고 길놀이도 하셨는데.
그 때는 공연비 갖은 걸 주는 문화가 아니었대요.
이 분들의 희생으로 국악원, 춘향제 명맥이 이어온 거죠.
그런데 이런 게 전혀 안 알려지고 60년 동안 묻혀 있었단 게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지난 주말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어땠나요?
[답변]
정말 대단했죠.
남원 사람들만으로는 이 공연이 이뤄지기 어려운데.
공연이 이뤄진 건 조갑녀 명무 따님인 정명희 명인과 한국 문화재재단이사장 지낸 진옥섭 선생 공이 매우 커요.
이 분들 덕에 서울 남산국악단에서 공연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분들이 등장하기 전에 스크린이 내려와서 1960년대 공연 영상을 보여주셨어요.
그러고 사회자가 이 분들을 모셨는데, 객석에서 3백여 명이 객석에서 엄청난 함성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앵커]
이분들의 존재가 곧 남원 농악의 역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남은 과제일 것 같습니다.
[답변]
이 분들은 남원 농악 뿐만 아니라 남원 국악계, 춘향제 맥을 이어오신 소중한 은인들이시잖아요.
지금까진 이 분들을 남원 시민들이 챙겼는데, 앞으로는 남원시차원에서 이 분들을 예우해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이분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춘향제 역사잖아요.
춘향 최초 영정, 최봉선 선생님.
이분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앞으로 춘향제 역사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서 옛날 최봉선 선생님과 선조들이 왜 춘향 영정을 이렇게 그렸고, 제향을 지냈는지 뜻을 이어받아서 춘향제 원형을 잘 복원해서 문화재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앵커 대담] “인이 박힌 가락”…여성 농악 원로 발굴기
-
- 입력 2023-04-24 19:32:16
- 수정2023-04-24 19:56:00
[앵커]
한국 농악의 근간으로 꼽히는 남원은 여성 농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한데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들의 존재를 시민들이 되찾아 무대에 다시 서게 한 사연 앞서 전해드렸죠.
오늘은 이 여정을 원로들과 함께한 김양오 역사동화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지역에서도 잊혀졌던 원로들이 60여 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셨어요.
이분들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답변]
이분들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아주 오래된 춘향의 영정 덕분이었습니다.
남원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영정인데요.
최초의 영정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남원 역사연구회 회원들이 춘향제를 연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춘향제를 만든 분이 최봉선이란 분인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도 최봉선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현수막을 걸었죠, 남원시 곳곳에.
최봉선 아는 분 연락 바랍니다.
그랬더니 정말 연락이 왔고요,
그 때 맨 처음 만난 분이 장봉녀 선생님이셨고, 그 뒤에 박복례, 배분순 할머님을 찾게 된 겁니다.
알고보니 이 분들이 남원 여성농악단원들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농악단이었더라고요.
[앵커]
원로 농악인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살아오신 세월이 길다 보니, 옛 감각을 되찾고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답변]
저희가 처음 장봉녀 선생님 댁 방문했을 때 누워 계셨어요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시고 시간 보내시던 분인데.
저희가 가서 놀아드렸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장구 치고 놀아드렸더니 잊었던 가락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시는 거예요.
꽹과리 쥐어드리니까 손이 안 움직여 하시더니 점점 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한 세 달, 네 달 하다가 나중에 남원에서 문화재 활용사업 하는 섬진강 기획이란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여기서 하는 문화재 야행에 할머니들을 초대해 드린 거예요.
그래서 정식으로 60여년 만에 첫 공연을 하게 됐죠.
재작년 가을에.
[앵커]
남원에 뿌리내린 여성 농악단, '최초'라는 것 외에도 지역 예술계에서 갖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답변]
남원이 국악의 도시잖아요.
남원에 국립국악원도 있고 남원시립국악원, 남원시농악단도 있는데.
예전엔 이게 하나였어요, 남원국악원으로.
이 분들이 초창기 국악원 회원이었고, 장봉녀 선생님은 이사도 지내셨는데.
그때 이 국악원이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50~60년대.
국악원 운영 비용을 이 분들이 다 마련했다고 해요.
전국 다니면서 공연하시고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돈도 많이 버셨대요.
이게 다 국악원 운영비로 쓰였죠.
춘향제도 춘향제 때 이 분들이 다 참여해서 제사 지내고, 창극도 하고 길놀이도 하셨는데.
그 때는 공연비 갖은 걸 주는 문화가 아니었대요.
이 분들의 희생으로 국악원, 춘향제 명맥이 이어온 거죠.
그런데 이런 게 전혀 안 알려지고 60년 동안 묻혀 있었단 게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지난 주말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어땠나요?
[답변]
정말 대단했죠.
남원 사람들만으로는 이 공연이 이뤄지기 어려운데.
공연이 이뤄진 건 조갑녀 명무 따님인 정명희 명인과 한국 문화재재단이사장 지낸 진옥섭 선생 공이 매우 커요.
이 분들 덕에 서울 남산국악단에서 공연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분들이 등장하기 전에 스크린이 내려와서 1960년대 공연 영상을 보여주셨어요.
그러고 사회자가 이 분들을 모셨는데, 객석에서 3백여 명이 객석에서 엄청난 함성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앵커]
이분들의 존재가 곧 남원 농악의 역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남은 과제일 것 같습니다.
[답변]
이 분들은 남원 농악 뿐만 아니라 남원 국악계, 춘향제 맥을 이어오신 소중한 은인들이시잖아요.
지금까진 이 분들을 남원 시민들이 챙겼는데, 앞으로는 남원시차원에서 이 분들을 예우해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이분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춘향제 역사잖아요.
춘향 최초 영정, 최봉선 선생님.
이분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앞으로 춘향제 역사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서 옛날 최봉선 선생님과 선조들이 왜 춘향 영정을 이렇게 그렸고, 제향을 지냈는지 뜻을 이어받아서 춘향제 원형을 잘 복원해서 문화재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 농악의 근간으로 꼽히는 남원은 여성 농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한데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들의 존재를 시민들이 되찾아 무대에 다시 서게 한 사연 앞서 전해드렸죠.
오늘은 이 여정을 원로들과 함께한 김양오 역사동화작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지역에서도 잊혀졌던 원로들이 60여 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셨어요.
이분들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답변]
이분들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아주 오래된 춘향의 영정 덕분이었습니다.
남원 향토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영정인데요.
최초의 영정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남원 역사연구회 회원들이 춘향제를 연구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춘향제를 만든 분이 최봉선이란 분인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아도 최봉선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현수막을 걸었죠, 남원시 곳곳에.
최봉선 아는 분 연락 바랍니다.
그랬더니 정말 연락이 왔고요,
그 때 맨 처음 만난 분이 장봉녀 선생님이셨고, 그 뒤에 박복례, 배분순 할머님을 찾게 된 겁니다.
알고보니 이 분들이 남원 여성농악단원들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농악단이었더라고요.
[앵커]
원로 농악인들이 악기를 내려놓고 살아오신 세월이 길다 보니, 옛 감각을 되찾고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답변]
저희가 처음 장봉녀 선생님 댁 방문했을 때 누워 계셨어요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시고 시간 보내시던 분인데.
저희가 가서 놀아드렸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장구 치고 놀아드렸더니 잊었던 가락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시는 거예요.
꽹과리 쥐어드리니까 손이 안 움직여 하시더니 점점 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한 세 달, 네 달 하다가 나중에 남원에서 문화재 활용사업 하는 섬진강 기획이란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여기서 하는 문화재 야행에 할머니들을 초대해 드린 거예요.
그래서 정식으로 60여년 만에 첫 공연을 하게 됐죠.
재작년 가을에.
[앵커]
남원에 뿌리내린 여성 농악단, '최초'라는 것 외에도 지역 예술계에서 갖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답변]
남원이 국악의 도시잖아요.
남원에 국립국악원도 있고 남원시립국악원, 남원시농악단도 있는데.
예전엔 이게 하나였어요, 남원국악원으로.
이 분들이 초창기 국악원 회원이었고, 장봉녀 선생님은 이사도 지내셨는데.
그때 이 국악원이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50~60년대.
국악원 운영 비용을 이 분들이 다 마련했다고 해요.
전국 다니면서 공연하시고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돈도 많이 버셨대요.
이게 다 국악원 운영비로 쓰였죠.
춘향제도 춘향제 때 이 분들이 다 참여해서 제사 지내고, 창극도 하고 길놀이도 하셨는데.
그 때는 공연비 갖은 걸 주는 문화가 아니었대요.
이 분들의 희생으로 국악원, 춘향제 명맥이 이어온 거죠.
그런데 이런 게 전혀 안 알려지고 60년 동안 묻혀 있었단 게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지난 주말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현장 분위기 어땠나요?
[답변]
정말 대단했죠.
남원 사람들만으로는 이 공연이 이뤄지기 어려운데.
공연이 이뤄진 건 조갑녀 명무 따님인 정명희 명인과 한국 문화재재단이사장 지낸 진옥섭 선생 공이 매우 커요.
이 분들 덕에 서울 남산국악단에서 공연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분들이 등장하기 전에 스크린이 내려와서 1960년대 공연 영상을 보여주셨어요.
그러고 사회자가 이 분들을 모셨는데, 객석에서 3백여 명이 객석에서 엄청난 함성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앵커]
이분들의 존재가 곧 남원 농악의 역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남은 과제일 것 같습니다.
[답변]
이 분들은 남원 농악 뿐만 아니라 남원 국악계, 춘향제 맥을 이어오신 소중한 은인들이시잖아요.
지금까진 이 분들을 남원 시민들이 챙겼는데, 앞으로는 남원시차원에서 이 분들을 예우해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이분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춘향제 역사잖아요.
춘향 최초 영정, 최봉선 선생님.
이분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앞으로 춘향제 역사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서 옛날 최봉선 선생님과 선조들이 왜 춘향 영정을 이렇게 그렸고, 제향을 지냈는지 뜻을 이어받아서 춘향제 원형을 잘 복원해서 문화재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