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와 취재기자.
"법상 모호한 점이 많아서 중대재해법에 해당될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넘어갈지…" |
■ 한국제강 대표 A씨 "중대재해처벌법 해당 여부 쟁점"
어제(26일) 오전 창원지법 마산지원 앞. 왼팔에는 '안전제일'이라는 마크가 새겨진 푸른 작업복을 입은 한 남성이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대표 A씨였습니다. 법원 1심 선고 전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 시작을 기다리던 A씨에게 취재진이 다가가 심정을 물었습니다. A씨는 취재진에게 "법상 모호한 점이 많아서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될지, 아니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넘어갈지, 그게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회사로 복귀해야죠. 어차피 판사 재량 행위니까…" |
기자는 A씨에게 선고 이후 입장을 밝힐 것인지, 아니면 입장 발표 없이 회사로 바로 복귀할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A씨는 "회사로 복귀해야죠. 어차피 판사의 재량 행위니까, 선고 결과를 보고 대책을 논의하려고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으로 들어간 A씨는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재판부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현장.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 철강 제조업체인 한국제강에서 협력업체 소속 60대 노동자 한 명이 1.2톤 철판에 깔려 숨졌습니다. 철판을 고정하던 섬유 벨트가 끊어지면서 철판 아래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를 덮친 것입니다. 사고 전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철판을 고정하던 섬유 벨트는 심하게 손상된 상태. 검찰은 원청업체인 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와 한국제강, 협력업체 대표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의 실형 선고 이유.
■ "수차례 적발에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원청업체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입니다. 재판부는 한국제강 사업장에는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인 A씨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차례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적발됐지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 기간이었던 2021년 5월에도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이 사고로 A씨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2월 항소심에서 벌금 천만 원으로 감형됐습니다. A씨가 2년 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던 중에 또다시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오랜 기간 재해가 잇따라 안전조치 의무 이행이 절실했지만, 한국제강과 A씨가 제대로 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점이 실형 선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제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할 준비 기간이 부족했음을 정상 참작 사유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기간으로 1년이 주어졌기 때문에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할 준비 기간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법원의 실형 선고 이유.
재판부는 1심 선고 뒤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 책임자에 대한 양형 판단에서 엄중한 형사책임을 부과함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중대재해 사고를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견지에서 경영책임자 개념을 신설하고,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한편,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 등을 중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목적과 제정 경위를 고려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노동자 안전과 산업재해 예방의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경영 책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었던 셈입니다.
■ "진일보한 판결 형량 높여야" VS "형벌 체계 균형·정당성 잃어"
사실 노동계는 재판부가 이번 사건에서 실형 선고를 할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 사건이었던 원청업체 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선고 직후 "사실 집행유예 선고를 예상하고 있었다"며, "이번 판결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강력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지만, 형량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며 형량을 높여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용계약 관계와 지휘·감독 권한이 없는 원청업체 대표에게 더 엄한 형량을 선고한 것은 형벌 체계의 균형성과 정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찰과 한국제강은 각각 항소 여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기소된 사건은 모두 14건, 중대재해처벌법의 첫 실형이 선고된 어제(26일)는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 중요한 날로 평가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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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로 복귀해야죠” 했던 대표, 법정구속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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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4-27 14:50:51
"법상 모호한 점이 많아서 중대재해법에 해당될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넘어갈지…" |
■ 한국제강 대표 A씨 "중대재해처벌법 해당 여부 쟁점"
어제(26일) 오전 창원지법 마산지원 앞. 왼팔에는 '안전제일'이라는 마크가 새겨진 푸른 작업복을 입은 한 남성이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대표 A씨였습니다. 법원 1심 선고 전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 시작을 기다리던 A씨에게 취재진이 다가가 심정을 물었습니다. A씨는 취재진에게 "법상 모호한 점이 많아서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될지, 아니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넘어갈지, 그게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회사로 복귀해야죠. 어차피 판사 재량 행위니까…" |
기자는 A씨에게 선고 이후 입장을 밝힐 것인지, 아니면 입장 발표 없이 회사로 바로 복귀할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A씨는 "회사로 복귀해야죠. 어차피 판사의 재량 행위니까, 선고 결과를 보고 대책을 논의하려고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으로 들어간 A씨는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재판부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 철강 제조업체인 한국제강에서 협력업체 소속 60대 노동자 한 명이 1.2톤 철판에 깔려 숨졌습니다. 철판을 고정하던 섬유 벨트가 끊어지면서 철판 아래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를 덮친 것입니다. 사고 전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철판을 고정하던 섬유 벨트는 심하게 손상된 상태. 검찰은 원청업체인 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와 한국제강, 협력업체 대표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 "수차례 적발에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원청업체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입니다. 재판부는 한국제강 사업장에는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인 A씨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차례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적발됐지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 기간이었던 2021년 5월에도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이 사고로 A씨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2월 항소심에서 벌금 천만 원으로 감형됐습니다. A씨가 2년 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던 중에 또다시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오랜 기간 재해가 잇따라 안전조치 의무 이행이 절실했지만, 한국제강과 A씨가 제대로 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점이 실형 선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제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할 준비 기간이 부족했음을 정상 참작 사유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기간으로 1년이 주어졌기 때문에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할 준비 기간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1심 선고 뒤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 책임자에 대한 양형 판단에서 엄중한 형사책임을 부과함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중대재해 사고를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견지에서 경영책임자 개념을 신설하고,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한편,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 등을 중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목적과 제정 경위를 고려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노동자 안전과 산업재해 예방의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경영 책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었던 셈입니다.
■ "진일보한 판결 형량 높여야" VS "형벌 체계 균형·정당성 잃어"
사실 노동계는 재판부가 이번 사건에서 실형 선고를 할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 사건이었던 원청업체 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선고 직후 "사실 집행유예 선고를 예상하고 있었다"며, "이번 판결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강력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지만, 형량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며 형량을 높여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용계약 관계와 지휘·감독 권한이 없는 원청업체 대표에게 더 엄한 형량을 선고한 것은 형벌 체계의 균형성과 정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찰과 한국제강은 각각 항소 여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기소된 사건은 모두 14건, 중대재해처벌법의 첫 실형이 선고된 어제(26일)는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 중요한 날로 평가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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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기자 c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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