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6·25 기리는 캐나다인의 300km 순례

입력 2023.04.29 (08:22) 수정 2023.04.29 (11: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6.25 전쟁 당시 경기도 가평은 인민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의 하나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네, 1951년 4월 남하하는 중공군과 이에 맞선 유엔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바로 가평전투였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이 가평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도보 대장정을 벌이는 캐나다인이 있다고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가평전투 당시에 캐나다 군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지를 사수했는데요.

이를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서 캐나다인 가이 블랙 씨가 300킬로미터 장정에 나섰고요.

제가 직접 만나보고 왔습니다.

[앵커]

캐나다에서도 가평전투를 기리는 이런 도보 장정을 해오신 겁니까?

[답변]

네, 2년 전에도 가평전투를 기리며 캐나다에서 걸었는데요.

다만 한국에서 걷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앵커]

가이 블랙 씨가 이 대장정을 홀로 하는 겁니까?

[답변]

가이 블랙 씨 부인은 한국인인데, 이번에는 아들까지 함께 참여를 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서 가이 블랙 씨 지인들, 그리고 시민들까지 기꺼이 동참했는데요.

저도 이분들을 보곤 가평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습니다.

그날의 현장을 화면과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북한강을 마주한 경기도 가평군의 남쪽 관문, 대성립니다.

도롯가 한편에선 캐나다 국기가 펄럭이고,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가평에 입성해 주셨는데, 환영 꽃다발 하나 드리겠습니다."]

캐나다인 가이 블랙 씨의 가평 도착을 맞아 소박한 환영식이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가이 블랙 : "저희를 응원하기 위해 여기 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정말 멋지고 영광스럽습니다."]

가이 블랙 씨는 6.25 전쟁 당시의 가평전투를 기리기 위해 지난 14일 가족들과 함께 300km 걷기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에 세운 가평전투 기념비에서 벤쿠버 공항까지 100km를 걸었고, 한국에선 인천부터 가평까지 걸어서 도착한 것입니다.

["가평군, 파이팅!"]

목적지는 25km 남짓 거리의 영연방참전기념비.

매일 예닐곱 시간을 걷는 만만치 않은 대장정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가이 블랙 씨는 지난 2년 반 동안 매일 마라톤으로 체력을 키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 캐나다인 가이 블랙 씨. 과연 캐나다에서부터 한국까지 3백킬로미터의 대여정을 통해서 가이블랙씨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이 블랙 : "캐나다에는 세 개의 기념할만한 전투가 있습니다. (그중에) 가평이 주요 전투인데 한국에서 일어난 다른 여러 전투에도 캐나다인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이런 행사를 하는 건 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기념비적인 승리로 기억되는 가평전투는 1951년 4월 23일 벌어집니다.

남하하던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위해 가평으로 진입하려고 대규모 공세를 펼쳤습니다.

500명 규모의 캐나다군은 수천 명의 적군에 포위된 상황에서도 한국군 6사단의 후퇴를 엄호하고, 고지를 사수합니다.

전사 10명, 부상 23명.

하지만 가평을 끝까지 지켜냈고, 유엔군은 북한강을 경계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가이 블랙 : "유엔 연합군이 큰 역경에 맞서서 싸워 이긴 전투이고 누군가는 중공군을 상대로 싸워야만 했던 전투입니다. 아니면 서울이 빼앗겼을 겁니다. 캐나다 장병들은 유엔군에서 마지막으로 맞서 싸워 이겼습니다."]

블랙 씨의 걷기 행군에 동참한 시민들은 한 걸음씩 걸으며 캐나다 장병들의 희생을 마음에 새깁니다.

[장석윤/가평군 재향군인회 회장 : "6.25 전쟁 때 캐나다 용사들이 많이 순국하셨잖아요. 순국하신 분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드리고 그런 정신을 갖고 대장전 행군을 하신 데 대해서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가이 블랙 씨는 군사역사학자이자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회 명예회원인데요.

어느 참전용사를 통해, 가평전투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가이 블랙 : "오래 전에 전쟁기념관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도와주던 분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였습니다. 이들의 옆에 있으면서 전쟁에 대해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돕고 싶었습니다."]

그 뒤 캐나다 여러 주의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날 지정 작업에 참여했고, 특히 25년간 참전용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과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중간 지점에 도착한 일행.

이번 300km 걷기 대장정의 최대 후원자인 아내 이선옥 씨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구운 계란이라도 하나 드시고 가시지."]

사실 선옥 씨는 가평전투 역사를 남편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선옥/아내 : "저를 만나기 몇 년 전에 우연히 한국전쟁에 대해서 알게 된거죠. (가평전투를) 남편 때문에 알게 됐죠.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를 우리 남편한테 배웠네요."]

아들 희수 군은 이번 여정에서 한쪽 발목을 다쳐 일부 구간만 걸었습니다.

블랙 씨는 이번 프로젝트 로고도 디자인하고 학교 입학을 미루면서까지 함께 한 아들이 대견한데요.

하지만 아들은 다친 발목이 야속합니다.

[최희수/아들 : "같이 하고 싶었는데, 못하게 돼서 많이 맘이 아픕니다."]

또 다른 동반자, 한국계 캐나다 학생인 클링턴 리 씨는 가이 블랙 씨를 통해 참전용사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됐고, 몇 해 전부터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클링턴 리 : "저는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걷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한국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여정의 중반을 넘어서자 일행들에게 피로감이 몰려듭니다.

땀이 나고 숨도 차오릅니다.

[가이 블랙 : "종아리 근육이 아프긴 그럼에도 계속 걷습니다."]

풀린 다리에 힘을 모아 다시 걷는 일행들.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보입니다.

네 가평전투를 기념해서 저도 가이 블랙 씨와 함께 걸어보았는데요. 땀을 흘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함께 걸을수록 당시의 전투의 처절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희생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는데요.

출발한 지 7시간 만에 도착한 오늘의 종착지, 영연방참전기념비입니다.

[서태원/ 가평군수 : "우리 6만 4천 가평군민은 적극 지지하고 동참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 이 순간, 벽안의 순례자는 모든 고단함을 잊은 듯합니다.

[가이 블랙 : "이 참전비를 보는 건 처음입니다. 저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성지 순례 같습니다."]

가이 블랙 씨의 추모 대장정은 캐나다 대대가 활약한 가평 677 고지를 오르고, 72주년 영연방참전 기념행사에 참석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가이 블랙 :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전쟁은 사람이 죽는 비극이기 때문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1950년에 한국에 와서 싸우다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전 참전 캐나다 장병은 2만 6,791명.

낯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며 새겨야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통일로 미래로] 6·25 기리는 캐나다인의 300km 순례
    • 입력 2023-04-29 08:22:29
    • 수정2023-04-29 11:17:40
    남북의 창
[앵커]

6.25 전쟁 당시 경기도 가평은 인민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의 하나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네, 1951년 4월 남하하는 중공군과 이에 맞선 유엔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바로 가평전투였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이 가평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도보 대장정을 벌이는 캐나다인이 있다고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가평전투 당시에 캐나다 군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지를 사수했는데요.

이를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서 캐나다인 가이 블랙 씨가 300킬로미터 장정에 나섰고요.

제가 직접 만나보고 왔습니다.

[앵커]

캐나다에서도 가평전투를 기리는 이런 도보 장정을 해오신 겁니까?

[답변]

네, 2년 전에도 가평전투를 기리며 캐나다에서 걸었는데요.

다만 한국에서 걷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앵커]

가이 블랙 씨가 이 대장정을 홀로 하는 겁니까?

[답변]

가이 블랙 씨 부인은 한국인인데, 이번에는 아들까지 함께 참여를 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서 가이 블랙 씨 지인들, 그리고 시민들까지 기꺼이 동참했는데요.

저도 이분들을 보곤 가평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습니다.

그날의 현장을 화면과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북한강을 마주한 경기도 가평군의 남쪽 관문, 대성립니다.

도롯가 한편에선 캐나다 국기가 펄럭이고,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가평에 입성해 주셨는데, 환영 꽃다발 하나 드리겠습니다."]

캐나다인 가이 블랙 씨의 가평 도착을 맞아 소박한 환영식이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가이 블랙 : "저희를 응원하기 위해 여기 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정말 멋지고 영광스럽습니다."]

가이 블랙 씨는 6.25 전쟁 당시의 가평전투를 기리기 위해 지난 14일 가족들과 함께 300km 걷기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에 세운 가평전투 기념비에서 벤쿠버 공항까지 100km를 걸었고, 한국에선 인천부터 가평까지 걸어서 도착한 것입니다.

["가평군, 파이팅!"]

목적지는 25km 남짓 거리의 영연방참전기념비.

매일 예닐곱 시간을 걷는 만만치 않은 대장정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가이 블랙 씨는 지난 2년 반 동안 매일 마라톤으로 체력을 키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 캐나다인 가이 블랙 씨. 과연 캐나다에서부터 한국까지 3백킬로미터의 대여정을 통해서 가이블랙씨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이 블랙 : "캐나다에는 세 개의 기념할만한 전투가 있습니다. (그중에) 가평이 주요 전투인데 한국에서 일어난 다른 여러 전투에도 캐나다인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이런 행사를 하는 건 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기념비적인 승리로 기억되는 가평전투는 1951년 4월 23일 벌어집니다.

남하하던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위해 가평으로 진입하려고 대규모 공세를 펼쳤습니다.

500명 규모의 캐나다군은 수천 명의 적군에 포위된 상황에서도 한국군 6사단의 후퇴를 엄호하고, 고지를 사수합니다.

전사 10명, 부상 23명.

하지만 가평을 끝까지 지켜냈고, 유엔군은 북한강을 경계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가이 블랙 : "유엔 연합군이 큰 역경에 맞서서 싸워 이긴 전투이고 누군가는 중공군을 상대로 싸워야만 했던 전투입니다. 아니면 서울이 빼앗겼을 겁니다. 캐나다 장병들은 유엔군에서 마지막으로 맞서 싸워 이겼습니다."]

블랙 씨의 걷기 행군에 동참한 시민들은 한 걸음씩 걸으며 캐나다 장병들의 희생을 마음에 새깁니다.

[장석윤/가평군 재향군인회 회장 : "6.25 전쟁 때 캐나다 용사들이 많이 순국하셨잖아요. 순국하신 분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드리고 그런 정신을 갖고 대장전 행군을 하신 데 대해서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가이 블랙 씨는 군사역사학자이자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회 명예회원인데요.

어느 참전용사를 통해, 가평전투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가이 블랙 : "오래 전에 전쟁기념관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도와주던 분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였습니다. 이들의 옆에 있으면서 전쟁에 대해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돕고 싶었습니다."]

그 뒤 캐나다 여러 주의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날 지정 작업에 참여했고, 특히 25년간 참전용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과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중간 지점에 도착한 일행.

이번 300km 걷기 대장정의 최대 후원자인 아내 이선옥 씨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구운 계란이라도 하나 드시고 가시지."]

사실 선옥 씨는 가평전투 역사를 남편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선옥/아내 : "저를 만나기 몇 년 전에 우연히 한국전쟁에 대해서 알게 된거죠. (가평전투를) 남편 때문에 알게 됐죠.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를 우리 남편한테 배웠네요."]

아들 희수 군은 이번 여정에서 한쪽 발목을 다쳐 일부 구간만 걸었습니다.

블랙 씨는 이번 프로젝트 로고도 디자인하고 학교 입학을 미루면서까지 함께 한 아들이 대견한데요.

하지만 아들은 다친 발목이 야속합니다.

[최희수/아들 : "같이 하고 싶었는데, 못하게 돼서 많이 맘이 아픕니다."]

또 다른 동반자, 한국계 캐나다 학생인 클링턴 리 씨는 가이 블랙 씨를 통해 참전용사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됐고, 몇 해 전부터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클링턴 리 : "저는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걷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한국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여정의 중반을 넘어서자 일행들에게 피로감이 몰려듭니다.

땀이 나고 숨도 차오릅니다.

[가이 블랙 : "종아리 근육이 아프긴 그럼에도 계속 걷습니다."]

풀린 다리에 힘을 모아 다시 걷는 일행들.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보입니다.

네 가평전투를 기념해서 저도 가이 블랙 씨와 함께 걸어보았는데요. 땀을 흘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함께 걸을수록 당시의 전투의 처절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희생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는데요.

출발한 지 7시간 만에 도착한 오늘의 종착지, 영연방참전기념비입니다.

[서태원/ 가평군수 : "우리 6만 4천 가평군민은 적극 지지하고 동참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 이 순간, 벽안의 순례자는 모든 고단함을 잊은 듯합니다.

[가이 블랙 : "이 참전비를 보는 건 처음입니다. 저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성지 순례 같습니다."]

가이 블랙 씨의 추모 대장정은 캐나다 대대가 활약한 가평 677 고지를 오르고, 72주년 영연방참전 기념행사에 참석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가이 블랙 :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전쟁은 사람이 죽는 비극이기 때문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1950년에 한국에 와서 싸우다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전 참전 캐나다 장병은 2만 6,791명.

낯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며 새겨야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