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를 불구 만들었냐” 손가락질 견딘 삶…56년 만의 미투

입력 2023.05.02 (17:01) 수정 2023.05.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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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최말자 씨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최말자 씨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 그랬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

1964년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을 향해 저항하다 혀를 깨물었던 최말자 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성폭행 피해자가 오히려 남성의 혀를 절단한 가해자로 취급받아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최말자 씨는 억울함을 풀고자 오늘(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다시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에서 중상해 '가해자'로…가해자보다 형량 더 높아

1964년 5월 6일, 당시 18살 미성년자였던 최말자 씨는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21살이던 노 모 씨가 성폭행을 시도하자 노 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습니다.

노 씨는 혀 1.5cm가 잘려나가 봉합 수술을 받았고, 다음 해 열린 재판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던 노 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최말자 씨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최 씨에게는 중상해죄가 적용돼 노 씨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겁니다.

최 씨는 검찰 단계에서 자신의 정당방위가 사라지고, 자신의 상해죄만 부풀려졌다고 말합니다.

최말자 씨최말자 씨

최말자 씨
"경찰서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받았어요. 검찰에 넘길 때 무죄로 넘겼어요."
"검찰에서 조사받는데, 첫날부터 구속됐어요. 조사받는 과정에서 검찰이 '왜 남자를 불구 만들었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냐!"고 했어요."
"검사가 죽일 듯이 나를 압박했어요. 제게 '바른말 하라'고 하더라고요"

"재판 때 방청객들이 '죄 없는 최 양을 왜 구속시키냐'면서 아우성을 쳤어요. 그래서 재판부가 비밀(비공개) 재판을 했어요"
"재판 과정에서도 '여성성이 있니 없니' 하는 말도 들었어요."

검찰 조사 과정에서 6개월의 구속,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에도 고통은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이라는 멍에가 최말자 씨를 숨죽이게 했습니다.

선고 이후 삶에 대해 최말자 씨는 "그건 삶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밖에 가면 '최말자 간다'는 식으로 손가락질하고…수모를 겪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아왔습니다"고 했습니다.

■56년 만의 미투…재심 청구했지만 1심·2심 '기각'

2018년에 시작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는 사회현상이 됐습니다. 최말자 씨는 50년이 넘었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상해 가해자로 둔갑 된 사건에 대해 용기를 내 재심을 받고자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6일, 최말자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재심 청구를 내면서 기자회견도 진행했습니다.

최말자 씨 사건 재심 청구 기자회견 (2020년 5월 6일)최말자 씨 사건 재심 청구 기자회견 (2020년 5월 6일)

하지만 2021년, 법원은 재심 청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심 청구를 판단했던 부산지방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부산지방법원 1심 판결문 中 (2021. 2. 17)
"오늘날과 같이 성별 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 가치로 받아들여 졌다면 '청구인을 감옥에 보내지도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재판은 반세기 전,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해 9월 있었던 2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산고등법원은 노 씨가 1965년 재심확정 판결을 받고 4개월 후에 신체등급 1급을 받아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월남전에도 파병된 점 등 중상해가 아니었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중상해를 인정한 당시 판결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법원에서 '시대적 착오'라 했는데"…죄인 꼬리표 뗄 수 있을까

최말자 씨는 1심과 2심의 결정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최말자 씨
"억장이 무너지죠, 할 말을 잃었어요."
"법원이 '시대적 착오'라고 했어요. 정당방위를 인정한다고 했어요. 이럴거면 차라리 아무 말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법이 그래요.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물럭거리지 않았습니까?"

이제 마지막 3심인 대법원의 판결만 남은 상황입니다. 2021년 재심 이후 재항고를 했지만 2년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들려온 소식은 없습니다.

최말자 씨는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변명이 아니라 이제라도 정의로운 판단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대법원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말자 씨 사건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최말자 씨 사건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

최말자 씨 사건 변호를 맡고 있는 김수정 변호사는 "어느 시대에나 여성은 성폭력에 대해 정당방위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무죄고 지금도 무죄다"면서 "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검찰로 넘어간 후에 가해자로 둔갑시켜 구속시킨 사건이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288개 여성단체는 오늘 최말자 씨를 선두로 매일 대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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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남자를 불구 만들었냐” 손가락질 견딘 삶…56년 만의 미투
    • 입력 2023-05-02 17:01:04
    • 수정2023-05-02 17:24:44
    취재K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최말자 씨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 그랬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

1964년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을 향해 저항하다 혀를 깨물었던 최말자 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보호받아야 할 성폭행 피해자가 오히려 남성의 혀를 절단한 가해자로 취급받아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

그로부터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최말자 씨는 억울함을 풀고자 오늘(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다시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에서 중상해 '가해자'로…가해자보다 형량 더 높아

1964년 5월 6일, 당시 18살 미성년자였던 최말자 씨는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21살이던 노 모 씨가 성폭행을 시도하자 노 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습니다.

노 씨는 혀 1.5cm가 잘려나가 봉합 수술을 받았고, 다음 해 열린 재판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던 노 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최말자 씨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최 씨에게는 중상해죄가 적용돼 노 씨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겁니다.

최 씨는 검찰 단계에서 자신의 정당방위가 사라지고, 자신의 상해죄만 부풀려졌다고 말합니다.

최말자 씨
최말자 씨
"경찰서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받았어요. 검찰에 넘길 때 무죄로 넘겼어요."
"검찰에서 조사받는데, 첫날부터 구속됐어요. 조사받는 과정에서 검찰이 '왜 남자를 불구 만들었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냐!"고 했어요."
"검사가 죽일 듯이 나를 압박했어요. 제게 '바른말 하라'고 하더라고요"

"재판 때 방청객들이 '죄 없는 최 양을 왜 구속시키냐'면서 아우성을 쳤어요. 그래서 재판부가 비밀(비공개) 재판을 했어요"
"재판 과정에서도 '여성성이 있니 없니' 하는 말도 들었어요."

검찰 조사 과정에서 6개월의 구속,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에도 고통은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이라는 멍에가 최말자 씨를 숨죽이게 했습니다.

선고 이후 삶에 대해 최말자 씨는 "그건 삶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밖에 가면 '최말자 간다'는 식으로 손가락질하고…수모를 겪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아왔습니다"고 했습니다.

■56년 만의 미투…재심 청구했지만 1심·2심 '기각'

2018년에 시작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는 사회현상이 됐습니다. 최말자 씨는 50년이 넘었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상해 가해자로 둔갑 된 사건에 대해 용기를 내 재심을 받고자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6일, 최말자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재심 청구를 내면서 기자회견도 진행했습니다.

최말자 씨 사건 재심 청구 기자회견 (2020년 5월 6일)
하지만 2021년, 법원은 재심 청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심 청구를 판단했던 부산지방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부산지방법원 1심 판결문 中 (2021. 2. 17)
"오늘날과 같이 성별 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 가치로 받아들여 졌다면 '청구인을 감옥에 보내지도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재판은 반세기 전,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해 9월 있었던 2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산고등법원은 노 씨가 1965년 재심확정 판결을 받고 4개월 후에 신체등급 1급을 받아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월남전에도 파병된 점 등 중상해가 아니었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중상해를 인정한 당시 판결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법원에서 '시대적 착오'라 했는데"…죄인 꼬리표 뗄 수 있을까

최말자 씨는 1심과 2심의 결정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최말자 씨
"억장이 무너지죠, 할 말을 잃었어요."
"법원이 '시대적 착오'라고 했어요. 정당방위를 인정한다고 했어요. 이럴거면 차라리 아무 말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법이 그래요.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물럭거리지 않았습니까?"

이제 마지막 3심인 대법원의 판결만 남은 상황입니다. 2021년 재심 이후 재항고를 했지만 2년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들려온 소식은 없습니다.

최말자 씨는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변명이 아니라 이제라도 정의로운 판단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대법원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말자 씨 사건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
최말자 씨 사건 변호를 맡고 있는 김수정 변호사는 "어느 시대에나 여성은 성폭력에 대해 정당방위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무죄고 지금도 무죄다"면서 "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검찰로 넘어간 후에 가해자로 둔갑시켜 구속시킨 사건이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288개 여성단체는 오늘 최말자 씨를 선두로 매일 대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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