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주 52시간 꿈도 못 꿔”…작은 일터의 눈물

입력 2023.05.09 (18:05) 수정 2023.05.0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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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68%가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근로자 수로 봐도 전체 근로자의 5분의 1정도인 430만 명 정도가 5인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상당수가 근로시간이나 연차사용 등에서 이런저런 차별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자세한 내용을 취재기자와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배지현 기자, 근로기준법이라고 하면 임금이나 노동시간, 휴가 등 거의 모든 근로조건에 있어서 최소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 아닙니까?

이렇게 많은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놀라운데요?

[기자]

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점차 적용대상이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1998년 법이 개정된 이후 다섯 명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작은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은 건 영세 사업장의 힘든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인데요.

1990년대에 이미 작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법 보호를 못 받는 건 차별 아니냐며 위헌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합헌' 결정이 났습니다.

법을 지킬만한 경제적인 여건이 안되는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차별을 할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 겁니다.

[앵커]

그렇군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던가요?

[기자]

근로시간이나, 휴가, 직장내 괴롭힘 등 여러 차별을 겪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가락동에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았는데요.

가락시장 중도매업체의 80% 이상이 직원 수가 다섯 명이 안되는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중도매업체 노동자들은 하루 11시간에서 12시간, 주 6일을 일하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한 중도매업체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법으로 정해놓은 주 52시간 상한제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출근은 저녁 6시, 퇴근은 다음날 아침 5시 30분으로 강도 높은 철야 노동이 이뤄지지만, 주말근무 철야근무에 대한 별도 수당은 없었습니다.

[앵커]

근무시간 말고, 연차사용이나 해고 같은 부분은 어떤가요?

[기자]

취재진이 만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평생 연차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470명에게 물어보니, "연차가 있다"는 응답은 13%에 그쳤습니다.

연차나 휴일이 없는 건 물론이고, 부당 해고나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도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또 요즘에 문제가 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도 5인 미만 사업장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유급휴가 등 임시 보호조치를 받고 산업재해로 인정되면 보상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런 보호망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작동을 안하는 겁니다.

저희가 직장에서 부당 업무 지시, 업무 배제, 폭언 등 괴롭힘을 겪었던 김 모씨를 만나봤는데요.

상사의 폭언 등에 시달리다가 고용청에 신고를 했더니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유가 황당한데요.

괴롭힘이 있던 그 시점에 직장 동료 한 명이 퇴사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됐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게 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앵커]

근로기준법 확대 논의도 진행중이지 않습니까?

[기자]

네, 정부가 직원 수 다섯 명이 안되는 작은 사업장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가능한지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의원급 병원이나 법무법인처럼 법을 지킬 여건이 되는 곳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법 적용 여부를 따지는 이 방식을 재검토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여건이 어려운 영세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이 확대되면 더 큰 부담을 안아야한다면서 반발하는 입장이고요.

추가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변화가 생기면 사업주들이 범법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 내 괴롭힘 처럼, 경제적인 부담이 덜한 근로기준법 조항부터 차근차근 확대해 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고용부가 올해 계획으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요.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에서도 상반기까지 논의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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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9 18:05:25
    • 수정2023-05-09 18:29:36
    통합뉴스룸ET
[앵커]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68%가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근로자 수로 봐도 전체 근로자의 5분의 1정도인 430만 명 정도가 5인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상당수가 근로시간이나 연차사용 등에서 이런저런 차별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자세한 내용을 취재기자와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배지현 기자, 근로기준법이라고 하면 임금이나 노동시간, 휴가 등 거의 모든 근로조건에 있어서 최소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 아닙니까?

이렇게 많은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놀라운데요?

[기자]

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점차 적용대상이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1998년 법이 개정된 이후 다섯 명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작은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은 건 영세 사업장의 힘든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인데요.

1990년대에 이미 작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법 보호를 못 받는 건 차별 아니냐며 위헌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합헌' 결정이 났습니다.

법을 지킬만한 경제적인 여건이 안되는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차별을 할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 겁니다.

[앵커]

그렇군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던가요?

[기자]

근로시간이나, 휴가, 직장내 괴롭힘 등 여러 차별을 겪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가락동에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았는데요.

가락시장 중도매업체의 80% 이상이 직원 수가 다섯 명이 안되는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중도매업체 노동자들은 하루 11시간에서 12시간, 주 6일을 일하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한 중도매업체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법으로 정해놓은 주 52시간 상한제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출근은 저녁 6시, 퇴근은 다음날 아침 5시 30분으로 강도 높은 철야 노동이 이뤄지지만, 주말근무 철야근무에 대한 별도 수당은 없었습니다.

[앵커]

근무시간 말고, 연차사용이나 해고 같은 부분은 어떤가요?

[기자]

취재진이 만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평생 연차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470명에게 물어보니, "연차가 있다"는 응답은 13%에 그쳤습니다.

연차나 휴일이 없는 건 물론이고, 부당 해고나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도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또 요즘에 문제가 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도 5인 미만 사업장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유급휴가 등 임시 보호조치를 받고 산업재해로 인정되면 보상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런 보호망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작동을 안하는 겁니다.

저희가 직장에서 부당 업무 지시, 업무 배제, 폭언 등 괴롭힘을 겪었던 김 모씨를 만나봤는데요.

상사의 폭언 등에 시달리다가 고용청에 신고를 했더니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유가 황당한데요.

괴롭힘이 있던 그 시점에 직장 동료 한 명이 퇴사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됐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게 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앵커]

근로기준법 확대 논의도 진행중이지 않습니까?

[기자]

네, 정부가 직원 수 다섯 명이 안되는 작은 사업장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가능한지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의원급 병원이나 법무법인처럼 법을 지킬 여건이 되는 곳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법 적용 여부를 따지는 이 방식을 재검토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여건이 어려운 영세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이 확대되면 더 큰 부담을 안아야한다면서 반발하는 입장이고요.

추가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변화가 생기면 사업주들이 범법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 내 괴롭힘 처럼, 경제적인 부담이 덜한 근로기준법 조항부터 차근차근 확대해 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고용부가 올해 계획으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요.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에서도 상반기까지 논의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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