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재판 나온 일본 변호사의 당부 “한국 법원 용기내야” [주말엔]

입력 2023.05.14 (06:00) 수정 2023.05.14 (07: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 사법부 역사상 딱 한 번, '위안부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아시나요?

영화 '허스토리'에서 다루기도 한 1992년 '관부(關釜) 재판'인데요. 부산의 위안부·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리한 소송입니다.

당시 일본 법정에서 피해자를 대리한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습니다.

전후보상 문제 전문가로서,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위안부 소송' 항소심에 증언하기 위해섭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에서 야마모토 변호사는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따졌습니다.

■ 1심 패소는 '국가면제' 때문…항소심서도 최대 쟁점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 심리로 11일 열린 재판은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5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입니다.

1심에선 2021년 일본 정부가 내세운 '국가면제' 논리를 받아들여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국가면제란 주권 국가를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말합니다.

한국 사법부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재판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패소한 건데요, 항소심 재판에서도 최대 쟁점인 만큼 원고 측은 국가면제 인정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먼저, 국가면제론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원칙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저마다 '절대적 국가면제론'과 '제한적 국가면제론'을 채택하고 있고, 인권을 위해 국가면제 적용을 제한하는 국가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는 겁니다.

심지어 일본조차 국가면제에 예외를 두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일본 국내에서 외국이 일으킨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이른바 불법행위 예외론인데 현재 UN조약에서 명문화해 인정하고 있고 일본도 본받아 일본국내법에 그 내용을 담았다"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외국에 대한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

10조. 외국 등은 사람의 사망 ·상해 또는 유체물의 멸실·훼손이 해당 외국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행위에 의해 발생한 경우 해당 행위가 일본 내에서 이뤄지고 해당 행위를 한 자가 일본 내에 소재하고 있었다면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 또는 손실에 관한 재판 절차에 대해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

■"ICJ '국가면제' 판결은 11년 전"…국제관습법 변화 추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2012년 '페리니 판결'도 이날 재판에서 자주 등장했습니다. 1심 판단에 ICJ 판결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페리니 판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인 페리니에 대한 독일의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로 ICJ가 국가면제 원리를 적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ICJ 판결이 2012년 나온 뒤 이미 11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상황이 상당히 바뀌었다"면서 "국내재판소가 ICJ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ICJ는 독일과 전쟁피해자 간 소송이 이뤄진 8개 국가에서 국가면제 관련 판단이 어땠는지 따져, 다수결(6:2)로 국가면제 적용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각 나라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2012년에는 국가면제를 절대적으로 인정한 '다수파'였는데 지금은 판례가 뒤바뀌면서 예외를 둡니다. 또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온 것처럼 국제관습법은 계속 변화하는 흐름 속에 놓인 셈입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ICJ가 다수결로 국제관습법을 인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각국의 국내법원이 국제관습법을 판단한다면 국제법은 영구히 발전할 수 없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에서 재판하면 100% 패소"…'최후의 수단' 된 한국 재판

그렇다면 왜 일본을 우리 법정에 세워야 할까요.

야마모토 변호사는 그것이 피해 구제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일본 재판소, 미국 재판소, 또 국제사법재판소 중재를 포함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고 그 마지막 수단으로서 국내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피해자들의 사법접근권을 보장해 인권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면제를 제한해야 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일본 사법부의 피해 구제 판결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고 대리인 :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만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지금 일본 법원에 일본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다면 가능성이 어떤가요.
아먀모토 세이타 : 결론부터 말하면 승소가능성이 없습니다. (…) 100% 없다는 말씀입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피해자 개인은 소송을 통해 전후보상 권리를 다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법원에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한국인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없다고 본 판결이 계속됐습니다.
피해자로선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된 것이죠.
야마모토 변호사는 재판을 마친 뒤 "한국 법원이 용기를 갖고 주권 면제보다 인권 기준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며 "한국에는 득이고 일본에는 손해가 아니라 피해받은 개인과 가해 국가 사이의 문제고 인권을 중시한 판단이 늘어나면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용기를 줄 것"이라 말했습니다.

한편 이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처음으로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 방청석을 지킨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이 끝날 무렵 재판부를 향해 외쳤습니다.

"재판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내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재판이 끝나게 좀 해주세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위안부 재판 나온 일본 변호사의 당부 “한국 법원 용기내야” [주말엔]
    • 입력 2023-05-14 06:00:03
    • 수정2023-05-14 07:12:47
    주말엔

일본 사법부 역사상 딱 한 번, '위안부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아시나요?

영화 '허스토리'에서 다루기도 한 1992년 '관부(關釜) 재판'인데요. 부산의 위안부·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리한 소송입니다.

당시 일본 법정에서 피해자를 대리한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습니다.

전후보상 문제 전문가로서,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위안부 소송' 항소심에 증언하기 위해섭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에서 야마모토 변호사는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따졌습니다.

■ 1심 패소는 '국가면제' 때문…항소심서도 최대 쟁점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 심리로 11일 열린 재판은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5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입니다.

1심에선 2021년 일본 정부가 내세운 '국가면제' 논리를 받아들여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국가면제란 주권 국가를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말합니다.

한국 사법부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재판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패소한 건데요, 항소심 재판에서도 최대 쟁점인 만큼 원고 측은 국가면제 인정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먼저, 국가면제론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원칙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저마다 '절대적 국가면제론'과 '제한적 국가면제론'을 채택하고 있고, 인권을 위해 국가면제 적용을 제한하는 국가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는 겁니다.

심지어 일본조차 국가면제에 예외를 두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일본 국내에서 외국이 일으킨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이른바 불법행위 예외론인데 현재 UN조약에서 명문화해 인정하고 있고 일본도 본받아 일본국내법에 그 내용을 담았다"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외국에 대한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

10조. 외국 등은 사람의 사망 ·상해 또는 유체물의 멸실·훼손이 해당 외국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행위에 의해 발생한 경우 해당 행위가 일본 내에서 이뤄지고 해당 행위를 한 자가 일본 내에 소재하고 있었다면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 또는 손실에 관한 재판 절차에 대해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

■"ICJ '국가면제' 판결은 11년 전"…국제관습법 변화 추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2012년 '페리니 판결'도 이날 재판에서 자주 등장했습니다. 1심 판단에 ICJ 판결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페리니 판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인 페리니에 대한 독일의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로 ICJ가 국가면제 원리를 적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ICJ 판결이 2012년 나온 뒤 이미 11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상황이 상당히 바뀌었다"면서 "국내재판소가 ICJ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ICJ는 독일과 전쟁피해자 간 소송이 이뤄진 8개 국가에서 국가면제 관련 판단이 어땠는지 따져, 다수결(6:2)로 국가면제 적용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각 나라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2012년에는 국가면제를 절대적으로 인정한 '다수파'였는데 지금은 판례가 뒤바뀌면서 예외를 둡니다. 또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온 것처럼 국제관습법은 계속 변화하는 흐름 속에 놓인 셈입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는 "ICJ가 다수결로 국제관습법을 인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각국의 국내법원이 국제관습법을 판단한다면 국제법은 영구히 발전할 수 없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에서 재판하면 100% 패소"…'최후의 수단' 된 한국 재판

그렇다면 왜 일본을 우리 법정에 세워야 할까요.

야마모토 변호사는 그것이 피해 구제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일본 재판소, 미국 재판소, 또 국제사법재판소 중재를 포함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고 그 마지막 수단으로서 국내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피해자들의 사법접근권을 보장해 인권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면제를 제한해야 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일본 사법부의 피해 구제 판결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고 대리인 :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만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지금 일본 법원에 일본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다면 가능성이 어떤가요.
아먀모토 세이타 : 결론부터 말하면 승소가능성이 없습니다. (…) 100% 없다는 말씀입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피해자 개인은 소송을 통해 전후보상 권리를 다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법원에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한국인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없다고 본 판결이 계속됐습니다.
피해자로선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된 것이죠.
야마모토 변호사는 재판을 마친 뒤 "한국 법원이 용기를 갖고 주권 면제보다 인권 기준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며 "한국에는 득이고 일본에는 손해가 아니라 피해받은 개인과 가해 국가 사이의 문제고 인권을 중시한 판단이 늘어나면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용기를 줄 것"이라 말했습니다.

한편 이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처음으로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 방청석을 지킨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이 끝날 무렵 재판부를 향해 외쳤습니다.

"재판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내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재판이 끝나게 좀 해주세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