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민주주의 고향’ 그리스…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야?

입력 2023.05.24 (10:47) 수정 2023.05.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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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현직 총리가 격돌했던 그리스 총선에서 미초타키스 현 총리가 이끄는 여당이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과반 의석에는 못 미쳤지만, 예상 외의 압도적인 승리였는데요.

그리스 민심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선거 결과 먼저 정리해 볼까요?

[기자]

지난 21일 그리스 총선에서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 신민당이 40%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체 의석 300석 중 146석을 확보해, 과반에서 겨우 5석 모자랐는데요.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최대 야당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7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3위는 41석을 차지한 중도 좌파 성향의 '변화운동'이었습니다.

그리스는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으면, 1위~3위 당에 연립정부를 구성할 시간을 사흘씩 주는데요.

여기서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2차 총선을 실시합니다.

승리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선거 다음 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며 즉각 정부 구성권을 반납했습니다.

[미초타키스/그리스 총리 : "이번 투표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의회에서 정부를 구성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세대로면 2차 총선도 여당이 승리할 확률이 높은데, 그럼 최소 20석에서 많게는 50석까지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단독으로 과반을 무난히 달성하는 셈이죠.

2, 3위 야당들도 연립정부 구성엔 부정적이라, 그리스는 이르면 6월 말 2차 총선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앵커]

그리스 총선에서 여당이 이길 거란 관측이 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는 예상 밖이죠?

[기자]

선거 전 여론조사에선 우파 신민당과 좌파 시리자의 지지율 격차가 6~7% 포인트 정도였는데, 실제론 20% 포인트 넘는 차이가 났습니다.

오랜 군정 끝에 그리스에서 민주 선거가 실시된 1974년 이후 가장 큰 득표율 차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리스 유권자 : "저는 신민당이 이길 거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 득표율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신민당이 시리자를 파괴한 수준이었어요."]

사실 신민당이 갈수록 민심을 잃고 있던 상황이라 정말 뜻밖의 결과였는데요.

지난해 이른바 '그리스판 워터게이트'로 불리는 도청 사건이 터지면서 미초타키스 정권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죠.

총리실에 보고하는 국가 정보국이 야당의원과 언론인, 기업인 등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입니다.

여기에 지난 2월 5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열차 정면충돌 참사까지 벌어지면서 현 정권에 악재가 겹친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그런데도 그리스 유권자들이 집권당에 표를 준 이유는 역시 경제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고요?

[기자]

그리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뒤 2012년엔 국가 부도로까지 내몰렸던 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죠.

당시 그리스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일 정도로 경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랬던 그리스 경제를 미초타키스 총리가 2019년 총리직에 오른 뒤 극적으로 회생시켰다는 평이 많습니다.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같은 시장 친화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였죠.

마이너스였던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최근 2년 동안 8%대, 5%대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10년 전의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습니다.

[앵커]

현 정권이 말도 탈도 많지만, 결과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잘 이끌었기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을 받게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기자]

둘 중 '비교적 낫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초타키스 총리 정권이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성과를 내긴 했지만, 물가 상승이 심각해지는 등 또 다른 경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야당 '시리자'를 이끄는 치프라스 전 총리는 "그리스의 임금은 불가리아 수준인데 물가는 영국 수준"이라면서, 서민 경제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선거 전략으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자의 이런 태도가 선거 패배의 이유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신민당을 비판하는 데만 열을 올리다 보니 자기 경쟁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시리자가 일관되고 믿을만한 경제 계획을 전달하지 못한 게 현 총리와 집권당에 도움이 됐다"고 짚었습니다.

[그리스 경제 전문가 : "이번 선거 결과는 신민당의 승리라기보다 시리자의 패배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시리자가) 국정 운영을 더 잘할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또 시리자 집권 시절 극도의 경제적 불안을 겪었던 그리스 사람들이 변화보다는 정치·경제적 안정을 선호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아테네대의 한 헌법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유권자들은 안정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며, "이것이 현 정권의 도청 사건에 유권자들이 믿기 힘들 정도로 약하게 반응하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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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돋보기] ‘민주주의 고향’ 그리스…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야?
    • 입력 2023-05-24 10:47:46
    • 수정2023-05-24 10: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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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현직 총리가 격돌했던 그리스 총선에서 미초타키스 현 총리가 이끄는 여당이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과반 의석에는 못 미쳤지만, 예상 외의 압도적인 승리였는데요.

그리스 민심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선거 결과 먼저 정리해 볼까요?

[기자]

지난 21일 그리스 총선에서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 신민당이 40%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체 의석 300석 중 146석을 확보해, 과반에서 겨우 5석 모자랐는데요.

치프라스 전 총리가 이끄는 최대 야당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7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3위는 41석을 차지한 중도 좌파 성향의 '변화운동'이었습니다.

그리스는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으면, 1위~3위 당에 연립정부를 구성할 시간을 사흘씩 주는데요.

여기서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2차 총선을 실시합니다.

승리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선거 다음 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며 즉각 정부 구성권을 반납했습니다.

[미초타키스/그리스 총리 : "이번 투표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의회에서 정부를 구성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세대로면 2차 총선도 여당이 승리할 확률이 높은데, 그럼 최소 20석에서 많게는 50석까지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단독으로 과반을 무난히 달성하는 셈이죠.

2, 3위 야당들도 연립정부 구성엔 부정적이라, 그리스는 이르면 6월 말 2차 총선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앵커]

그리스 총선에서 여당이 이길 거란 관측이 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는 예상 밖이죠?

[기자]

선거 전 여론조사에선 우파 신민당과 좌파 시리자의 지지율 격차가 6~7% 포인트 정도였는데, 실제론 20% 포인트 넘는 차이가 났습니다.

오랜 군정 끝에 그리스에서 민주 선거가 실시된 1974년 이후 가장 큰 득표율 차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리스 유권자 : "저는 신민당이 이길 거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 득표율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신민당이 시리자를 파괴한 수준이었어요."]

사실 신민당이 갈수록 민심을 잃고 있던 상황이라 정말 뜻밖의 결과였는데요.

지난해 이른바 '그리스판 워터게이트'로 불리는 도청 사건이 터지면서 미초타키스 정권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죠.

총리실에 보고하는 국가 정보국이 야당의원과 언론인, 기업인 등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입니다.

여기에 지난 2월 5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열차 정면충돌 참사까지 벌어지면서 현 정권에 악재가 겹친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그런데도 그리스 유권자들이 집권당에 표를 준 이유는 역시 경제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고요?

[기자]

그리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뒤 2012년엔 국가 부도로까지 내몰렸던 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죠.

당시 그리스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일 정도로 경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랬던 그리스 경제를 미초타키스 총리가 2019년 총리직에 오른 뒤 극적으로 회생시켰다는 평이 많습니다.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같은 시장 친화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였죠.

마이너스였던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최근 2년 동안 8%대, 5%대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10년 전의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습니다.

[앵커]

현 정권이 말도 탈도 많지만, 결과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잘 이끌었기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을 받게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기자]

둘 중 '비교적 낫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초타키스 총리 정권이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성과를 내긴 했지만, 물가 상승이 심각해지는 등 또 다른 경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야당 '시리자'를 이끄는 치프라스 전 총리는 "그리스의 임금은 불가리아 수준인데 물가는 영국 수준"이라면서, 서민 경제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선거 전략으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자의 이런 태도가 선거 패배의 이유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신민당을 비판하는 데만 열을 올리다 보니 자기 경쟁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시리자가 일관되고 믿을만한 경제 계획을 전달하지 못한 게 현 총리와 집권당에 도움이 됐다"고 짚었습니다.

[그리스 경제 전문가 : "이번 선거 결과는 신민당의 승리라기보다 시리자의 패배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시리자가) 국정 운영을 더 잘할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또 시리자 집권 시절 극도의 경제적 불안을 겪었던 그리스 사람들이 변화보다는 정치·경제적 안정을 선호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아테네대의 한 헌법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유권자들은 안정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며, "이것이 현 정권의 도청 사건에 유권자들이 믿기 힘들 정도로 약하게 반응하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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