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일가족 학살의 비극’ 이복숙 할머니의 4·3

입력 2023.05.25 (19:42) 수정 2023.05.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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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족들의 증언을 들어보는 마지막 순서입니다.

이복숙 할머니는 작은아버지가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라는 이유로 일가족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이복숙/4·3유족 : "내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 어머니 다 일본에 있다가 나는 할머니하고 제주도에 살았는데 해방되니까 고향에 돌아온 거예요. 내가 좀 주변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 밥 싸주면 그 아이들 보리밥 해오면 난 쌀밥 해가면 섞어서 먹고 놀아도 남자들같이 연 띄우면서 놀고 (신촌에) 강습소가 있고 학교가 없으니까, (아버지가) 해방돼서 일본에서 들어와 학교를 지었는데 아버지가 학교 지을 때 나쁜 일 한 그 사람만 몽니를 부리지 않았으면 그렇게 사람이 많이 안 죽었는데, 자기 말 안 듣는 사람은 다 산폭도, 공산당이라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다."]

[이복숙/4·3유족 : "작은아버지(이덕구)가 조선 역사를 중학교에서 가르쳤는데, 제주도에서 신문에 났습니다. (무장대)총사령관이라고. 그때는 무서운 생각만 나지 이 생각 저 생각 안 났습니다. 집 여섯 채 불붙여버리고. 어머니 마지막으로 본 것이 포구에서 어머니네 데려갈 때,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말 안 들으면 이와 같이 다 죽인다고 하니까 다 나왔는데, 우리 친척 할머니가 어머니 손잡고 가는 나를 잡아당겨서 자기 뒤에 숨겨서 살려줬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셋어머니, 작은어머니네, 우리 언니, 언니네 시집 시어머니, 시아버지 (26명이 죽었어.) 작은어머니 아기는 7살 때 죽었습니다. 이덕구 아들이 형제였는데 모두, 한 명은 업어서 가고 한 명은 그냥 걷게 해서 가다 죽고."]

[이복숙/4·3유족 : "외할머니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해서 밥 먹고 "어서 가라, 어서 가" 하니까 "할머니, 집도 없는데 어디 가라고 해요?" 하니 "너 여기 있으면 우리 아들들 큰일 난다" 경찰 최 주임이라고 나를 살려준 사람이 뛰라, 뛰라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시국이 일어나면 너 목숨이 위험하니까 제주도를 떠나라고 하는 말이야. (21살 때) 집 불붙인 터를 팔아서 북촌으로 가 배 타는 사람한테 돈 줬어. 이 돈으로 일본 땅에만 데려다 달라고."]

[이복숙/4·3유족 : "가장 힘든 것은 (외국인) 등록이 안 된 것, 등록이 안 됐을 때 병 걸린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일본 와서 한 여섯 해쯤 (지나 불법체류로 붙잡혔어요.) 야세이 선생은 사회당 국회의원, 여자분인데 일본에 살게 해줬습니다. 동네에서 네 성질에는 찻집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해서 8평짜리 집 구해서 찻집을 했어요. 그래도 아이들 넷은, 높은 학교는 못 갔지만 보통으로 학교 보내니까, 그것 하나는 내가 성공한 것."]

[이복숙/4·3유족 : "작은아버지(이덕구)가 말한 것이 있습니다. 경찰에 잡혀가서 취조를 받을 때 "역사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말이고 나쁜 말이고 역사는 역사로 남겨야 한다"는 것. 시국이 나빠서 그렇게 됐는데, 그것을 누구 원망할 수도 없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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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증언] ‘일가족 학살의 비극’ 이복숙 할머니의 4·3
    • 입력 2023-05-25 19:42:16
    • 수정2023-05-25 20:30:25
    뉴스7(제주)
[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족들의 증언을 들어보는 마지막 순서입니다.

이복숙 할머니는 작은아버지가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라는 이유로 일가족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이복숙/4·3유족 : "내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 어머니 다 일본에 있다가 나는 할머니하고 제주도에 살았는데 해방되니까 고향에 돌아온 거예요. 내가 좀 주변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 밥 싸주면 그 아이들 보리밥 해오면 난 쌀밥 해가면 섞어서 먹고 놀아도 남자들같이 연 띄우면서 놀고 (신촌에) 강습소가 있고 학교가 없으니까, (아버지가) 해방돼서 일본에서 들어와 학교를 지었는데 아버지가 학교 지을 때 나쁜 일 한 그 사람만 몽니를 부리지 않았으면 그렇게 사람이 많이 안 죽었는데, 자기 말 안 듣는 사람은 다 산폭도, 공산당이라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다."]

[이복숙/4·3유족 : "작은아버지(이덕구)가 조선 역사를 중학교에서 가르쳤는데, 제주도에서 신문에 났습니다. (무장대)총사령관이라고. 그때는 무서운 생각만 나지 이 생각 저 생각 안 났습니다. 집 여섯 채 불붙여버리고. 어머니 마지막으로 본 것이 포구에서 어머니네 데려갈 때,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말 안 들으면 이와 같이 다 죽인다고 하니까 다 나왔는데, 우리 친척 할머니가 어머니 손잡고 가는 나를 잡아당겨서 자기 뒤에 숨겨서 살려줬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셋어머니, 작은어머니네, 우리 언니, 언니네 시집 시어머니, 시아버지 (26명이 죽었어.) 작은어머니 아기는 7살 때 죽었습니다. 이덕구 아들이 형제였는데 모두, 한 명은 업어서 가고 한 명은 그냥 걷게 해서 가다 죽고."]

[이복숙/4·3유족 : "외할머니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해서 밥 먹고 "어서 가라, 어서 가" 하니까 "할머니, 집도 없는데 어디 가라고 해요?" 하니 "너 여기 있으면 우리 아들들 큰일 난다" 경찰 최 주임이라고 나를 살려준 사람이 뛰라, 뛰라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시국이 일어나면 너 목숨이 위험하니까 제주도를 떠나라고 하는 말이야. (21살 때) 집 불붙인 터를 팔아서 북촌으로 가 배 타는 사람한테 돈 줬어. 이 돈으로 일본 땅에만 데려다 달라고."]

[이복숙/4·3유족 : "가장 힘든 것은 (외국인) 등록이 안 된 것, 등록이 안 됐을 때 병 걸린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일본 와서 한 여섯 해쯤 (지나 불법체류로 붙잡혔어요.) 야세이 선생은 사회당 국회의원, 여자분인데 일본에 살게 해줬습니다. 동네에서 네 성질에는 찻집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해서 8평짜리 집 구해서 찻집을 했어요. 그래도 아이들 넷은, 높은 학교는 못 갔지만 보통으로 학교 보내니까, 그것 하나는 내가 성공한 것."]

[이복숙/4·3유족 : "작은아버지(이덕구)가 말한 것이 있습니다. 경찰에 잡혀가서 취조를 받을 때 "역사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말이고 나쁜 말이고 역사는 역사로 남겨야 한다"는 것. 시국이 나빠서 그렇게 됐는데, 그것을 누구 원망할 수도 없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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