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채록 5·18] 도청 취사반 김경임 씨, 시민군의 밥을 짓다
입력 2023.06.15 (21:50)
수정 2023.06.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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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 항쟁에 참여했는데요.
영상채록 5·18, 오늘은 전남도청에서 취사반으로 활동하며 시민군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김경임 씨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밥을,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근데 그 일 내가 하고 있잖아요. 그런 생각, 내가 해야 되는 일, 오로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고."]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갑자기 휴교령이 내리니까 뭔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고 그런데... 도청 광장에다가 시체 막 시신 리어카에 싣고 온 시신, 군인들이 죽였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뭔가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가서 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도청 들어가자." 제 친구하고 세 명에서, 저하고 세 명이서 "야, 도청 들어가자.""]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제 기억이 5일 내내 식판 나르는 기억밖에 없고 너무 지쳐서 너무 힘들어 이러면서도 거기서 계속 머물고, 나간다는 생각은 안 했고, 내가 이 일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생각으로 거기에 머물렀어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들어오는 게 결정됐대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거예요. 도청에서. 그리고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 나가야된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집을 향해서 가는데 어느 정도 가다 보니까 '어? 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는데' '내가 집에 가도 돼? 이 사람들 다 죽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확 들어오면서 멈췄어요. 결국 갈 수가 없어서 집으로 못 갔어요. 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갔어요. 도청으로 다시 제가 돌아왔습니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남편도 결혼 30년 만에 알았습니다. 국회에서 5·18 왜곡, 폄훼, 가짜 유공자 그게 방송에, TV에 나오는데 저는 5·18을 잊고 살고, 5·18 눈 감고 살고, '나한테는 5·18은 없다' 이렇게 살았는데 그 화면, 그 방송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너무 끓어올랐어요.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5·18은 저한테 그 자기 목숨을 내 놓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 자기 역할 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그게 저한테는 5·18인 것 같아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 항쟁에 참여했는데요.
영상채록 5·18, 오늘은 전남도청에서 취사반으로 활동하며 시민군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김경임 씨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밥을,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근데 그 일 내가 하고 있잖아요. 그런 생각, 내가 해야 되는 일, 오로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고."]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갑자기 휴교령이 내리니까 뭔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고 그런데... 도청 광장에다가 시체 막 시신 리어카에 싣고 온 시신, 군인들이 죽였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뭔가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가서 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도청 들어가자." 제 친구하고 세 명에서, 저하고 세 명이서 "야, 도청 들어가자.""]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제 기억이 5일 내내 식판 나르는 기억밖에 없고 너무 지쳐서 너무 힘들어 이러면서도 거기서 계속 머물고, 나간다는 생각은 안 했고, 내가 이 일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생각으로 거기에 머물렀어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들어오는 게 결정됐대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거예요. 도청에서. 그리고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 나가야된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집을 향해서 가는데 어느 정도 가다 보니까 '어? 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는데' '내가 집에 가도 돼? 이 사람들 다 죽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확 들어오면서 멈췄어요. 결국 갈 수가 없어서 집으로 못 갔어요. 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갔어요. 도청으로 다시 제가 돌아왔습니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남편도 결혼 30년 만에 알았습니다. 국회에서 5·18 왜곡, 폄훼, 가짜 유공자 그게 방송에, TV에 나오는데 저는 5·18을 잊고 살고, 5·18 눈 감고 살고, '나한테는 5·18은 없다' 이렇게 살았는데 그 화면, 그 방송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너무 끓어올랐어요.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5·18은 저한테 그 자기 목숨을 내 놓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 자기 역할 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그게 저한테는 5·18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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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6-15 21:50:04
- 수정2023-06-15 22: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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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 항쟁에 참여했는데요.
영상채록 5·18, 오늘은 전남도청에서 취사반으로 활동하며 시민군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김경임 씨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밥을,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근데 그 일 내가 하고 있잖아요. 그런 생각, 내가 해야 되는 일, 오로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고."]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갑자기 휴교령이 내리니까 뭔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고 그런데... 도청 광장에다가 시체 막 시신 리어카에 싣고 온 시신, 군인들이 죽였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뭔가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가서 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도청 들어가자." 제 친구하고 세 명에서, 저하고 세 명이서 "야, 도청 들어가자.""]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제 기억이 5일 내내 식판 나르는 기억밖에 없고 너무 지쳐서 너무 힘들어 이러면서도 거기서 계속 머물고, 나간다는 생각은 안 했고, 내가 이 일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생각으로 거기에 머물렀어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들어오는 게 결정됐대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거예요. 도청에서. 그리고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 나가야된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집을 향해서 가는데 어느 정도 가다 보니까 '어? 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는데' '내가 집에 가도 돼? 이 사람들 다 죽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확 들어오면서 멈췄어요. 결국 갈 수가 없어서 집으로 못 갔어요. 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갔어요. 도청으로 다시 제가 돌아왔습니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남편도 결혼 30년 만에 알았습니다. 국회에서 5·18 왜곡, 폄훼, 가짜 유공자 그게 방송에, TV에 나오는데 저는 5·18을 잊고 살고, 5·18 눈 감고 살고, '나한테는 5·18은 없다' 이렇게 살았는데 그 화면, 그 방송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너무 끓어올랐어요.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5·18은 저한테 그 자기 목숨을 내 놓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 자기 역할 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그게 저한테는 5·18인 것 같아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 항쟁에 참여했는데요.
영상채록 5·18, 오늘은 전남도청에서 취사반으로 활동하며 시민군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김경임 씨를 기록합니다.
[리포트]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밥을,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근데 그 일 내가 하고 있잖아요. 그런 생각, 내가 해야 되는 일, 오로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고."]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갑자기 휴교령이 내리니까 뭔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고 그런데... 도청 광장에다가 시체 막 시신 리어카에 싣고 온 시신, 군인들이 죽였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뭔가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가서 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도청 들어가자." 제 친구하고 세 명에서, 저하고 세 명이서 "야, 도청 들어가자.""]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제 기억이 5일 내내 식판 나르는 기억밖에 없고 너무 지쳐서 너무 힘들어 이러면서도 거기서 계속 머물고, 나간다는 생각은 안 했고, 내가 이 일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생각으로 거기에 머물렀어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들어오는 게 결정됐대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거예요. 도청에서. 그리고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 나가야된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집을 향해서 가는데 어느 정도 가다 보니까 '어? 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는데' '내가 집에 가도 돼? 이 사람들 다 죽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확 들어오면서 멈췄어요. 결국 갈 수가 없어서 집으로 못 갔어요. 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갔어요. 도청으로 다시 제가 돌아왔습니다."]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남편도 결혼 30년 만에 알았습니다. 국회에서 5·18 왜곡, 폄훼, 가짜 유공자 그게 방송에, TV에 나오는데 저는 5·18을 잊고 살고, 5·18 눈 감고 살고, '나한테는 5·18은 없다' 이렇게 살았는데 그 화면, 그 방송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너무 끓어올랐어요.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김경임/5·18 당시 취사반 : "5·18은 저한테 그 자기 목숨을 내 놓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 자기 역할 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그게 저한테는 5·18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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