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권력’ 손잡은 사교클럽 있었다…“돈 찔러 막으면 축복” [탐사K]

입력 2023.06.17 (10:02) 수정 2023.06.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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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탐사보도부는 정· 관·재계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참석하는 한 '사교 클럽'의 존재를 확인했다. 10년 가까이 유지됐던 것으로 보이지만, 한 번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수상한 모임이다.

이 사교 클럽 참석자들은 고급 식당에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을 도모했다. 수시로 골프 라운딩도 즐겼다. 클럽 참석자들은 모임에 자주 나온 '회장님' 소유의 골프장을 주로 방문했다. 모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었다.

후에는 의문의 운영자도 확인됐다. 이 운영자의 '거미줄 인맥'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걸쳐 있었다. 모임이 이어질수록 그의 인맥은 확장됐다.

KBS 탐사보도부는 ‘경영 컨설턴트’ 한 모 씨가 주선한 26차례 모임에 초대된 유력 인사 105명의 면면을 분석했다. 이들 중  당시 현직 공직자의 소속과 직책을 공개한다. 모임에 가장 빈번하게 초대된 공직자는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7차례)다.  탐사보도부는 외부 자문 결과 ‘법관윤리강령’과 ‘김영란법’ 위반 의혹이 짙다고 보고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고등법원 부장 판사는 정부 부처 1급 상당의 고위공직자로 재산 공개 대상이다.  취재진이 확인한 26차례 모임은 한 씨가 주선한 전체 모임의 지극히 일부로 보인다.KBS 탐사보도부는 ‘경영 컨설턴트’ 한 모 씨가 주선한 26차례 모임에 초대된 유력 인사 105명의 면면을 분석했다. 이들 중 당시 현직 공직자의 소속과 직책을 공개한다. 모임에 가장 빈번하게 초대된 공직자는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7차례)다. 탐사보도부는 외부 자문 결과 ‘법관윤리강령’과 ‘김영란법’ 위반 의혹이 짙다고 보고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고등법원 부장 판사는 정부 부처 1급 상당의 고위공직자로 재산 공개 대상이다. 취재진이 확인한 26차례 모임은 한 씨가 주선한 전체 모임의 지극히 일부로 보인다.

사교 클럽 운영자가 초대하면 힘 있는 사정 기관 고위직들은 만찬장으로 또 골프장으로 나왔다. 그 자리엔 늘 공직자와 교류하고 싶어 하는 기업인들이 있었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접대비는 어떤 기업의 법인 카드로 내곤 했다.

취재진은 이 수상한 사교 클럽의 실체와 그 배후, 그리고 불법 로비 의혹을 추적 취재했다.

■ "회장님은 사교 클럽 운영자"

서울 강남의 한 레지던스 호텔 26층. 48살 한 모 씨 자택이다. 그는 월세 1,000만 원 가량을 내고 호텔에서 숙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함은 'M그룹 회장'. M그룹은 직원 예닐곱을 둔 소규모 기업 경영 컨설팅 업체다.


경영 컨설팅 업체 대표 한 씨가 가장 공들인 업무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인맥 관리'였다. M그룹 직원들은 '회장님 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한 씨는 하루가 멀다고 저녁 만찬 일정을 소화했다. 골프 라운딩은 매주 나가다시피 했다.

한 씨는 주변에 자신의 인맥을 이렇게 과시하곤 했다.

(화려한 인맥들을 보고 느끼신 게 있다면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본인을 항상 이렇게 피알(PR) 하니까. 자기가 '마음먹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본인은 '가장 큰 위험이 내가 감옥 가는 거다. 감옥 가면 이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고..."
- 한 씨 전 측근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M그룹이 유력 인사들에게 배포한 '초대장'을 입수할 수 있었다. M그룹 직원들은 사교 클럽 참석 인사들에게 '저희 회장님과 만찬 약속이 있다'며 모임 일시와 장소, 내용을 알렸다.

‘M그룹’ 한 씨 측이 만찬 또는 골프 일정을 알리며 참석 여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M그룹’ 한 씨 측이 만찬 또는 골프 일정을 알리며 참석 여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

초대 인사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문자'도 확보했다. 국회의원, 정부 부처, 검찰과 경찰 고위직 명단이 여러 명 확인됐다. 모임을 마친 뒤 한 씨가 각 초대 인사들에게 보낸 문자들이다.

‘M그룹’ 한 씨 측이 작성한 유력인사 초대 명단 및 연락처 문자 메시지‘M그룹’ 한 씨 측이 작성한 유력인사 초대 명단 및 연락처 문자 메시지

취재진이 확인한 첫 번째 모임은 지난 2018년 10월. 이후 4년 3개월 동안 한 씨는 26차례의 모임을 주선했다. 적게는 4명, 많게는 19명의 유력 인사들이 초대되곤 했다. 만찬과 골프 라운딩을 수시로 가졌다고 하니 취재진이 파악한 자리는 지극히 일부로 보인다.
유형별로 보면, 골프와 만찬이 각각 13차례로 절반씩이다. 코로나 19도 사교 클럽 모임을 막지 못했다. 정부가 불필요한 모임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지만, 만남은 이어졌다.

KBS 탐사보도부는 사교 모임 주선자 한 씨가 주선한 여러 골프장 모임의 사진을 입수했다. 해당 사진으로 유력 인사들 참석이 확인됐다.KBS 탐사보도부는 사교 모임 주선자 한 씨가 주선한 여러 골프장 모임의 사진을 입수했다. 해당 사진으로 유력 인사들 참석이 확인됐다.

2020년 1월 강남 고급 일식당 만찬에 참석했던 기업인 A 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자리 배치까지 한 씨가 다 합니다. 직책과 나이를 기준으로 해서 '의전 프로토콜(규칙)' 이러면서 종이에 자리 배치를 꼼꼼히 적어와서 그것대로 앉도록 해요."
....(중략)...
"최고급 코스 요리였고, 술은 폭탄주예요. 일반 소주에 맥주를 섞는 게 아니고요. ○○(고급 증류식 소주)를 생맥주 5,000cc에 섞어 마셔요."
- 모임 참석 기업인 A 씨

한 씨는 '사교 클럽'의 모든 것을 챙기는 사실상의 운영자였다.

■ 특별한 만찬장 '롯데타워 107층'

한 씨가 즐겨 찾는 특별한 만찬 장소가 있었다. 롯데월드타워 107층에 있는 중식당 '롯데 시그니엘 클럽'이었다. 일반인은 방문이 어렵다. 입주민이거나 연회비 350만 원을 낸 특별 회원에게만 허락되는 최고급 예약제 식당이다. 저녁 코스 요리는 1인당 29만 원부터 시작한다.

롯데월드타워 107층에 있는 고급 중식당 ‘ 롯데 시그니엘 클럽’ (출처=롯데 시그니엘 클럽 홈페이지)롯데월드타워 107층에 있는 고급 중식당 ‘ 롯데 시그니엘 클럽’ (출처=롯데 시그니엘 클럽 홈페이지)

26차례 모임 중 두 차례를 '롯데 시그니엘 클럽'에서 가졌다. 이 중 한 번은 유력 인사 9명이 초대된, 비교적 큰 모임이다. 공직자 출신으로는 현 야당(당시 여당) 실세 의원, 전 정부 차관, 지역 군수(당시 현직), 현직 검사장, 법무부 고위공무원 등 5명이다. 한 씨를 뺀 나머지 4명은 기업인들이었다.

"전용 엘리베이터 타고 딱 올라가고, 거기는 일반 손님은 거의 안 받고 룸이 몇 개밖에 없고요. 완전히 큰, 굉장히 프라이빗한 느낌이라서 여기 방문하면 안 가본 사람들은 '되게 좋네' 이렇게 하게 되는 거죠."
...(중략)...
(기자 : 우리나라에서 시그니엘 클럽 제일 많이 가는 사람 아니에요?)
"그럴 것 같습니다."
- 모임 참석 기업인 B 씨

한 씨는 모임 준비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골프 라운딩이 있을 때면, 한 씨는 골프 카트에 흰 봉투를 하나씩 뒀다고 한다. 안에는 만 원짜리 100장이 들어 있었는데, 참석자들은 이 돈을 내기 골프로 나눠 가졌다는 게 복수의 증언이다. 봉투에는 빳빳한 새 돈이 늘 채워져 있었다고 했다.


"봉투에 가지고 와서 (카트에) 올려놓는 거죠. 본인이 보통은 이제 참석을 하니까 (100만 원을) 가져와서 놓아요."
(기자 : 그건 누구 돈인가요?)
자기(한 씨)가 준비를 해오는 거죠.
- 모임 참석자 B씨

■ '사교 클럽' 초대 인사 105명, 구성은?

한 씨가 주선한 26차례 모임 초대 명단에는 모두 105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어떤 사람들일까.

신분별로 보면 전·현직 공직자가 61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기업인 36명, 언론인 2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지역 정치인, 변호사, 연예인, 병원장, 교수, 체육인 등이 1명씩이었다.

전·현직 공직자 61명 중 모임 당시 현직으로 1차례 이상 초대된 공직자는 모두 43명이다.
이중 현직 국회의원이 12명에 이른다. 국회의 한 씨 인맥은 여당과 야당에 골고루 뻗어 있었다.

정부 공직자는 모두 14명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현직 총리도 한 씨가 주선한 만찬 자리에 한 차례 초대받았다

사교 모임 운영자 한 씨가 만찬을 마치고 각 참석자에게 전달한 문자 메시지. 국무총리는 물론, 현직 국회의원, 검사장, 치안감, 육군 장성, 공정위 산하기관장, 기업인, 언론인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강남의 한 일식당 만찬에 초대됐다. 초대 명단에서 확인되는 인사들은 모두 18명이었다.사교 모임 운영자 한 씨가 만찬을 마치고 각 참석자에게 전달한 문자 메시지. 국무총리는 물론, 현직 국회의원, 검사장, 치안감, 육군 장성, 공정위 산하기관장, 기업인, 언론인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강남의 한 일식당 만찬에 초대됐다. 초대 명단에서 확인되는 인사들은 모두 18명이었다.

놀라운 점은 그의 인맥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과 총리실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실 차관급 고위직 1명은 지난해 말 그의 초대 명단에 한 차례 등장했다. 또 지금은 퇴직한 또 다른 대통령실 차관급 관계자는 한 씨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각별했다고 한다. 한 씨는 현 정부 총리실의 한 검찰 출신 고위직과도 2018년 무렵부터 알고 지냈다.

정부 부처별 인맥도 상당히 두텁다. 법무부와 국방부가 3명씩으로 가장 많았다. 특이한 점은 법무부 3명이 모두 '교정직' 고위직이었다는 점이다. 한 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정직 공무원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이밖에 한 씨의 정부 인맥은 대통령실부터 행안부, 환경부, 산업부, 해수부까지 폭넓게 걸쳐 있었다. 이들 각 행정 부처는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권을 가진 곳들이 많았다.

■ '사교 클럽 인싸'는 부장 판사·검경 고위직?

눈에 띄는 것은, 한 씨가 법원(1명), 검찰청(4명), 경찰청(3명), 국세청(3명), 공정위(1명) 등 사법 및 사정 기관 고위직과 유달리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점이다. 모두 12명이다.

이들 사정 기관들은 언제든 특정 민간 기업을 수사하거나 규제할 수 있는 곳들이다. 한 씨는 이들 기관의 고위직들을 불러 내 기업인을 연결해준 것이다.

법원 소속은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유일했다. ( [단독/탐사 K] 부장판사님의 수상한 모임…주선자는 경영컨설팅업자?)

위 사진에서 차문호 부장 판사 모습이 확인된다. 차 부장 판사는 지난 2021년 1월 16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주선자 한 씨 등 일행과 함께  골프를 쳤다.위 사진에서 차문호 부장 판사 모습이 확인된다. 차 부장 판사는 지난 2021년 1월 16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주선자 한 씨 등 일행과 함께 골프를 쳤다.

차 부장 판사는 105명 인사 중에서 '사교 클럽'에 가장 빈번하게 참석한 인물이다. 차 부장 판사와 기업인과의 사적 모임은, 2020년 1년 남짓 기간에 일곱 차례로 추정된다. 이 중 여섯 번은 차 부장판사가 서울고법 민사 16부에서 주로 기업 관련 재판을 담당하던 시기다.

취재진은 차 부장 판사가 '107층 중식당'을 한 차례 방문한 정황도 확인했다. 차 부장 판사는 "정기적으로 오해할만한 모임은 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107층 중식당'에서 만찬을 먹은 것은 한사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갔는지 안 갔는지 내가 기억이 안 나니까 그러면 또 안 갔다고 하면 또 그것도 웃긴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간 기억이 지금 없어요."
(기자 : 그 식당의 존재는 아십니까? )
"몇 층인지 높은 층에 좋은 식당이 있다는 걸 제가 알고 있거든요."
-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


차 부장 판사는 또 "기업인들에게 밥을 얻어먹거나 부탁을 받은 적이 전혀 없고 재판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유대 관계를 가진 바 없다"며 "골프 비용은 직접 현금으로 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업무와 무관한 사교였다 해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선 법관윤리강령 위반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는 "법관윤리강령에 따라 법관은 공정성이나 청렴성을 의심받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인들로부터 고액의 식사나 골프 접대를 받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윤리 강령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차 부장 판사가 한 씨가 주선한 자리에서 받은 전체 접대비 규모에 따라 김영란법 위반도 의심된다. 공직자가 제3 자에게 받을 수 있는 접대 한도는 1회 100만 원, 연 300만 원이다.

■ 공직자들 기억에서 사라진 만찬과 골프

취재진은 모임 참석자 중 ①접대 명단에 수차례 등장하면서, ②접대 당시 현직 공직자였던 인사들만 따로 구분해봤다. 30명 내외로 추려졌다. 이들에게 '누구 주선으로 접대 모임에 갔는지', '비용은 누가 냈는지', '접대 이후 청탁이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고위 검사 출신의 현직 C 국회의원은 다른 고위직 중에서도 한 씨와의 친분이 가장 끈끈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정작 그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한 회장이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가보면 또 누가 있더라는 거죠. 그런 자리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하고 만난 적이 없어요. 한 회장으로부터 '무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들은 적도 없고요."
- C 국회의원(고위 검사 출신)

골프 초대만 두 차례 확인된 D 국회의원 역시 한 씨가 주선한 접대는 행사성, 일회성 모임이라고 말한다.

"무슨 행사 비슷한 것, 그냥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해서 봤던 것인데, (골프 접대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거든요. 나는 그냥 이례적으로 초대를 받아서 갔고, (동료 정치인인) 다른 의원도 골프 자리에 왔더라고."
-D 국회의원

골프를 포함해 모두 5번 명단에 오른 전직 E 지방경찰청장은 모든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접대는) 저도 모르는 내용이고..."
(기자: 누가 주선하거나 이런 사람도 없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 전직 지방경찰청장 E 씨

또, 현직 검사장 시절 명단에 다섯 차례 이름을 올린 현직 변호사는 "일회적이고 의례적인 만남이 무슨 문제냐"고 반박했다.

퇴직 직전 107층 중식당에서 1인당 30만 원짜리 식사 대접과 이후 골프를 친 것으로 파악된 전직 지방국세청장 역시 "공직자 신분일 때 문제가 될 만하고 불편한 자리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취재 대상인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 초대 받은 횟수가 많을수록 취재진의 연락을 피하거나 주선자 한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 비용은 누가 냈는지 기억 못 했지만, 청탁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기억했다.

■ 경영 컨설팅 실체는 '검은 로비'?

만찬과 골프 모임에 초대된 공직자들은 대부분 '누가 비용을 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KBS 취재 결과, 일부 비용은 기업 몫이었다. 2020년 12월 롯데타워 107층 중식당 만찬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식사비용 133만 원을 자신의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오늘은 계산해야겠다'는 한 씨의 말에 카드는 건넸다고 했다.

해당 기업은 왜 이런 비용을 선뜻 댄 걸까.

만찬 비용을 댄 이 중견 기업은 한 씨의 M그룹과 경영 컨설팅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 씨는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이른바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며 음성적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한 씨의 회사 M그룹과 컨설팅 계약을 맺은 곳은 모두 7곳. 다른 회사들도 접대 모임 자리에 대표나 총수가 참석했다. 컨설팅 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한 씨와 친분이 있는 중견기업 총수들도 모임에 수시로 얼굴을 내비쳤다.

이들 기업 중에는 당시 검찰이나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대상이었던 곳이 적지 않다. 내부 상황을 알려줄 수 있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고위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이 한 씨를 매개로 만남을 이어온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잠재적으로 보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며 "어떤 사안이 생겨 수사를 받거나 조사를 받거나 부적절한 정보 제공이나 청탁 같은 게 이뤄질 수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 "돈 찔러 막으면 축복" 검찰, 로비 암시 녹취 확보

국내 대표 안마의자 제조업체 바디프랜드 역시 한 씨와 컨설팅 계약을 맺은 기업 중 하나였다.

바디프랜드 경영진은 "한 씨가 2020년 말쯤 바디프랜드 경영진에게 접근해 관세청, 공정위 조사, 국회 증인 출석 문제 등 당면한 현안을 해결해줄 것처럼 믿게 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한 씨가 주선한 자리에 나가면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장 등 힘 있는 기관들의 고위직들이 나오곤 했다.

"깜짝 놀랐어요. 검사장 중에서도 ○○○○ 부장이면 고위직이고 재벌 그룹 수사하고 막 이러잖아요. 기업들 저승사자로 확실히 알고 있고 그런데 갑자기 ○○○ 회장하고 메리어트 호텔 중식당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렇게 네 명이 앉아서 식사하더라고요. 또 굉장히 막역하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 바디프랜드 전 경영진

한 씨는 지난 2021년 12월 대관 업무와 컨설팅 비용 등을 이유로 회사 창업주로부터 모두 15억 원을 받아가기도 했다. 이후 한 씨는 본인이 모든 문제와 복잡한 일을 푼 것처럼 행세했다는 게 바디프랜드 주장이다.

바디프랜드는 지난 2월 한 씨를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한 씨 스스로 '금전적 로비'를 암시하는 육성 녹취 파일을 확보했다.( [단독/탐사 K] 경영컨설팅 실체는 ‘검은 로비’?…검찰 수사 착수)

"관세(조사 건)도 그렇고, 000(조사 건)도 그렇고, 다 우리가 막았잖아. 돈으로 다 찔러서 막았잖아요. 돈을 주고 들어주는 데가 있으면 축복인 거고…"
- 지난 1월 M그룹 한○○ 회장

이에 대해 바디프랜드는 "한 씨는 회사 창업주에게 접근해 거짓 내용으로 겁박해서 개인적으로 돈을 받아갔다며 "회사는 한 씨의 사기와 각종 범죄행위의 피해자 중 하나일 뿐 로비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 씨가 자신의 육성 녹취대로 '거미줄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실행했는지, 실행됐다면 성공했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또 한 씨가 받아간 거액의 자금이 어디로 건네졌는지 밝히는 것이 향후 수사의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 컨설팅 업자 한 씨는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를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다른 사모펀드와 함께 바디프랜드를 공동 인수했다. 그러나 두 사모펀드의 동거는 6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현재 양측은 주총 무효, 명예훼손 등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M그룹’의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테해란로에 위치한 빌딩 6층에 있다. 해당 건물의 메인 엘리베이터는 6층에 서지 않았다. 사무실의 유일한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M그룹’의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테해란로에 위치한 빌딩 6층에 있다. 해당 건물의 메인 엘리베이터는 6층에 서지 않았다. 사무실의 유일한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

취재진은 수상한 모임의 정체와 로비 의혹 등 여러 해명을 듣기 위해 한 씨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한 씨는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인 것으로, 수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라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에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상대방 측의 부정확하고 왜곡된 주장과 자료에 근거해 편파적이고 청탁성 취재를 하는 것은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려는 불순한 의도"라며 "중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한 씨가 주선해 온 '사교 클럽'의 실체는 무엇일까. 만일 '부'와 '권력'을 각각 거머쥔 이들이 서로 거래하는 거대한 '로비 생태계'였다면, 시급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청탁과 로비가 없었더라도 한 씨의 부름에 응한 공직자들의 김영란법 위반 여부는 물론이고, 처신의 적절성도 짚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취재 : 우한울, 김덕훈, 박영민 기자
데이터 분석 : 이지연
자료 조사 : 하주언
인포그래픽 :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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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와 권력’ 손잡은 사교클럽 있었다…“돈 찔러 막으면 축복” [탐사K]
    • 입력 2023-06-17 10:02:01
    • 수정2023-06-17 10:50:51
    탐사K

KBS 탐사보도부는 정· 관·재계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참석하는 한 '사교 클럽'의 존재를 확인했다. 10년 가까이 유지됐던 것으로 보이지만, 한 번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수상한 모임이다.

이 사교 클럽 참석자들은 고급 식당에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을 도모했다. 수시로 골프 라운딩도 즐겼다. 클럽 참석자들은 모임에 자주 나온 '회장님' 소유의 골프장을 주로 방문했다. 모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었다.

후에는 의문의 운영자도 확인됐다. 이 운영자의 '거미줄 인맥'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걸쳐 있었다. 모임이 이어질수록 그의 인맥은 확장됐다.

KBS 탐사보도부는 ‘경영 컨설턴트’ 한 모 씨가 주선한 26차례 모임에 초대된 유력 인사 105명의 면면을 분석했다. 이들 중  당시 현직 공직자의 소속과 직책을 공개한다. 모임에 가장 빈번하게 초대된 공직자는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7차례)다.  탐사보도부는 외부 자문 결과 ‘법관윤리강령’과 ‘김영란법’ 위반 의혹이 짙다고 보고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고등법원 부장 판사는 정부 부처 1급 상당의 고위공직자로 재산 공개 대상이다.  취재진이 확인한 26차례 모임은 한 씨가 주선한 전체 모임의 지극히 일부로 보인다.
사교 클럽 운영자가 초대하면 힘 있는 사정 기관 고위직들은 만찬장으로 또 골프장으로 나왔다. 그 자리엔 늘 공직자와 교류하고 싶어 하는 기업인들이 있었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접대비는 어떤 기업의 법인 카드로 내곤 했다.

취재진은 이 수상한 사교 클럽의 실체와 그 배후, 그리고 불법 로비 의혹을 추적 취재했다.

■ "회장님은 사교 클럽 운영자"

서울 강남의 한 레지던스 호텔 26층. 48살 한 모 씨 자택이다. 그는 월세 1,000만 원 가량을 내고 호텔에서 숙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함은 'M그룹 회장'. M그룹은 직원 예닐곱을 둔 소규모 기업 경영 컨설팅 업체다.


경영 컨설팅 업체 대표 한 씨가 가장 공들인 업무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인맥 관리'였다. M그룹 직원들은 '회장님 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한 씨는 하루가 멀다고 저녁 만찬 일정을 소화했다. 골프 라운딩은 매주 나가다시피 했다.

한 씨는 주변에 자신의 인맥을 이렇게 과시하곤 했다.

(화려한 인맥들을 보고 느끼신 게 있다면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본인을 항상 이렇게 피알(PR) 하니까. 자기가 '마음먹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본인은 '가장 큰 위험이 내가 감옥 가는 거다. 감옥 가면 이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고..."
- 한 씨 전 측근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M그룹이 유력 인사들에게 배포한 '초대장'을 입수할 수 있었다. M그룹 직원들은 사교 클럽 참석 인사들에게 '저희 회장님과 만찬 약속이 있다'며 모임 일시와 장소, 내용을 알렸다.

‘M그룹’ 한 씨 측이 만찬 또는 골프 일정을 알리며 참석 여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
초대 인사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문자'도 확보했다. 국회의원, 정부 부처, 검찰과 경찰 고위직 명단이 여러 명 확인됐다. 모임을 마친 뒤 한 씨가 각 초대 인사들에게 보낸 문자들이다.

‘M그룹’ 한 씨 측이 작성한 유력인사 초대 명단 및 연락처 문자 메시지
취재진이 확인한 첫 번째 모임은 지난 2018년 10월. 이후 4년 3개월 동안 한 씨는 26차례의 모임을 주선했다. 적게는 4명, 많게는 19명의 유력 인사들이 초대되곤 했다. 만찬과 골프 라운딩을 수시로 가졌다고 하니 취재진이 파악한 자리는 지극히 일부로 보인다.
유형별로 보면, 골프와 만찬이 각각 13차례로 절반씩이다. 코로나 19도 사교 클럽 모임을 막지 못했다. 정부가 불필요한 모임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지만, 만남은 이어졌다.

KBS 탐사보도부는 사교 모임 주선자 한 씨가 주선한 여러 골프장 모임의 사진을 입수했다. 해당 사진으로 유력 인사들 참석이 확인됐다.
2020년 1월 강남 고급 일식당 만찬에 참석했던 기업인 A 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자리 배치까지 한 씨가 다 합니다. 직책과 나이를 기준으로 해서 '의전 프로토콜(규칙)' 이러면서 종이에 자리 배치를 꼼꼼히 적어와서 그것대로 앉도록 해요."
....(중략)...
"최고급 코스 요리였고, 술은 폭탄주예요. 일반 소주에 맥주를 섞는 게 아니고요. ○○(고급 증류식 소주)를 생맥주 5,000cc에 섞어 마셔요."
- 모임 참석 기업인 A 씨

한 씨는 '사교 클럽'의 모든 것을 챙기는 사실상의 운영자였다.

■ 특별한 만찬장 '롯데타워 107층'

한 씨가 즐겨 찾는 특별한 만찬 장소가 있었다. 롯데월드타워 107층에 있는 중식당 '롯데 시그니엘 클럽'이었다. 일반인은 방문이 어렵다. 입주민이거나 연회비 350만 원을 낸 특별 회원에게만 허락되는 최고급 예약제 식당이다. 저녁 코스 요리는 1인당 29만 원부터 시작한다.

롯데월드타워 107층에 있는 고급 중식당 ‘ 롯데 시그니엘 클럽’ (출처=롯데 시그니엘 클럽 홈페이지)
26차례 모임 중 두 차례를 '롯데 시그니엘 클럽'에서 가졌다. 이 중 한 번은 유력 인사 9명이 초대된, 비교적 큰 모임이다. 공직자 출신으로는 현 야당(당시 여당) 실세 의원, 전 정부 차관, 지역 군수(당시 현직), 현직 검사장, 법무부 고위공무원 등 5명이다. 한 씨를 뺀 나머지 4명은 기업인들이었다.

"전용 엘리베이터 타고 딱 올라가고, 거기는 일반 손님은 거의 안 받고 룸이 몇 개밖에 없고요. 완전히 큰, 굉장히 프라이빗한 느낌이라서 여기 방문하면 안 가본 사람들은 '되게 좋네' 이렇게 하게 되는 거죠."
...(중략)...
(기자 : 우리나라에서 시그니엘 클럽 제일 많이 가는 사람 아니에요?)
"그럴 것 같습니다."
- 모임 참석 기업인 B 씨

한 씨는 모임 준비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골프 라운딩이 있을 때면, 한 씨는 골프 카트에 흰 봉투를 하나씩 뒀다고 한다. 안에는 만 원짜리 100장이 들어 있었는데, 참석자들은 이 돈을 내기 골프로 나눠 가졌다는 게 복수의 증언이다. 봉투에는 빳빳한 새 돈이 늘 채워져 있었다고 했다.


"봉투에 가지고 와서 (카트에) 올려놓는 거죠. 본인이 보통은 이제 참석을 하니까 (100만 원을) 가져와서 놓아요."
(기자 : 그건 누구 돈인가요?)
자기(한 씨)가 준비를 해오는 거죠.
- 모임 참석자 B씨

■ '사교 클럽' 초대 인사 105명, 구성은?

한 씨가 주선한 26차례 모임 초대 명단에는 모두 105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어떤 사람들일까.

신분별로 보면 전·현직 공직자가 61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기업인 36명, 언론인 2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지역 정치인, 변호사, 연예인, 병원장, 교수, 체육인 등이 1명씩이었다.

전·현직 공직자 61명 중 모임 당시 현직으로 1차례 이상 초대된 공직자는 모두 43명이다.
이중 현직 국회의원이 12명에 이른다. 국회의 한 씨 인맥은 여당과 야당에 골고루 뻗어 있었다.

정부 공직자는 모두 14명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현직 총리도 한 씨가 주선한 만찬 자리에 한 차례 초대받았다

사교 모임 운영자 한 씨가 만찬을 마치고 각 참석자에게 전달한 문자 메시지. 국무총리는 물론, 현직 국회의원, 검사장, 치안감, 육군 장성, 공정위 산하기관장, 기업인, 언론인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강남의 한 일식당 만찬에 초대됐다. 초대 명단에서 확인되는 인사들은 모두 18명이었다.
놀라운 점은 그의 인맥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과 총리실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실 차관급 고위직 1명은 지난해 말 그의 초대 명단에 한 차례 등장했다. 또 지금은 퇴직한 또 다른 대통령실 차관급 관계자는 한 씨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각별했다고 한다. 한 씨는 현 정부 총리실의 한 검찰 출신 고위직과도 2018년 무렵부터 알고 지냈다.

정부 부처별 인맥도 상당히 두텁다. 법무부와 국방부가 3명씩으로 가장 많았다. 특이한 점은 법무부 3명이 모두 '교정직' 고위직이었다는 점이다. 한 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정직 공무원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이밖에 한 씨의 정부 인맥은 대통령실부터 행안부, 환경부, 산업부, 해수부까지 폭넓게 걸쳐 있었다. 이들 각 행정 부처는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권을 가진 곳들이 많았다.

■ '사교 클럽 인싸'는 부장 판사·검경 고위직?

눈에 띄는 것은, 한 씨가 법원(1명), 검찰청(4명), 경찰청(3명), 국세청(3명), 공정위(1명) 등 사법 및 사정 기관 고위직과 유달리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점이다. 모두 12명이다.

이들 사정 기관들은 언제든 특정 민간 기업을 수사하거나 규제할 수 있는 곳들이다. 한 씨는 이들 기관의 고위직들을 불러 내 기업인을 연결해준 것이다.

법원 소속은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유일했다. ( [단독/탐사 K] 부장판사님의 수상한 모임…주선자는 경영컨설팅업자?)

위 사진에서 차문호 부장 판사 모습이 확인된다. 차 부장 판사는 지난 2021년 1월 16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주선자 한 씨 등 일행과 함께  골프를 쳤다.
차 부장 판사는 105명 인사 중에서 '사교 클럽'에 가장 빈번하게 참석한 인물이다. 차 부장 판사와 기업인과의 사적 모임은, 2020년 1년 남짓 기간에 일곱 차례로 추정된다. 이 중 여섯 번은 차 부장판사가 서울고법 민사 16부에서 주로 기업 관련 재판을 담당하던 시기다.

취재진은 차 부장 판사가 '107층 중식당'을 한 차례 방문한 정황도 확인했다. 차 부장 판사는 "정기적으로 오해할만한 모임은 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107층 중식당'에서 만찬을 먹은 것은 한사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갔는지 안 갔는지 내가 기억이 안 나니까 그러면 또 안 갔다고 하면 또 그것도 웃긴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간 기억이 지금 없어요."
(기자 : 그 식당의 존재는 아십니까? )
"몇 층인지 높은 층에 좋은 식당이 있다는 걸 제가 알고 있거든요."
-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


차 부장 판사는 또 "기업인들에게 밥을 얻어먹거나 부탁을 받은 적이 전혀 없고 재판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유대 관계를 가진 바 없다"며 "골프 비용은 직접 현금으로 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업무와 무관한 사교였다 해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선 법관윤리강령 위반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는 "법관윤리강령에 따라 법관은 공정성이나 청렴성을 의심받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인들로부터 고액의 식사나 골프 접대를 받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윤리 강령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차 부장 판사가 한 씨가 주선한 자리에서 받은 전체 접대비 규모에 따라 김영란법 위반도 의심된다. 공직자가 제3 자에게 받을 수 있는 접대 한도는 1회 100만 원, 연 300만 원이다.

■ 공직자들 기억에서 사라진 만찬과 골프

취재진은 모임 참석자 중 ①접대 명단에 수차례 등장하면서, ②접대 당시 현직 공직자였던 인사들만 따로 구분해봤다. 30명 내외로 추려졌다. 이들에게 '누구 주선으로 접대 모임에 갔는지', '비용은 누가 냈는지', '접대 이후 청탁이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고위 검사 출신의 현직 C 국회의원은 다른 고위직 중에서도 한 씨와의 친분이 가장 끈끈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정작 그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한 회장이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가보면 또 누가 있더라는 거죠. 그런 자리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하고 만난 적이 없어요. 한 회장으로부터 '무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들은 적도 없고요."
- C 국회의원(고위 검사 출신)

골프 초대만 두 차례 확인된 D 국회의원 역시 한 씨가 주선한 접대는 행사성, 일회성 모임이라고 말한다.

"무슨 행사 비슷한 것, 그냥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해서 봤던 것인데, (골프 접대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거든요. 나는 그냥 이례적으로 초대를 받아서 갔고, (동료 정치인인) 다른 의원도 골프 자리에 왔더라고."
-D 국회의원

골프를 포함해 모두 5번 명단에 오른 전직 E 지방경찰청장은 모든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접대는) 저도 모르는 내용이고..."
(기자: 누가 주선하거나 이런 사람도 없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 전직 지방경찰청장 E 씨

또, 현직 검사장 시절 명단에 다섯 차례 이름을 올린 현직 변호사는 "일회적이고 의례적인 만남이 무슨 문제냐"고 반박했다.

퇴직 직전 107층 중식당에서 1인당 30만 원짜리 식사 대접과 이후 골프를 친 것으로 파악된 전직 지방국세청장 역시 "공직자 신분일 때 문제가 될 만하고 불편한 자리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취재 대상인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 초대 받은 횟수가 많을수록 취재진의 연락을 피하거나 주선자 한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 비용은 누가 냈는지 기억 못 했지만, 청탁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기억했다.

■ 경영 컨설팅 실체는 '검은 로비'?

만찬과 골프 모임에 초대된 공직자들은 대부분 '누가 비용을 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KBS 취재 결과, 일부 비용은 기업 몫이었다. 2020년 12월 롯데타워 107층 중식당 만찬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식사비용 133만 원을 자신의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 밝혔다. '오늘은 계산해야겠다'는 한 씨의 말에 카드는 건넸다고 했다.

해당 기업은 왜 이런 비용을 선뜻 댄 걸까.

만찬 비용을 댄 이 중견 기업은 한 씨의 M그룹과 경영 컨설팅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 씨는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이른바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며 음성적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한 씨의 회사 M그룹과 컨설팅 계약을 맺은 곳은 모두 7곳. 다른 회사들도 접대 모임 자리에 대표나 총수가 참석했다. 컨설팅 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한 씨와 친분이 있는 중견기업 총수들도 모임에 수시로 얼굴을 내비쳤다.

이들 기업 중에는 당시 검찰이나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대상이었던 곳이 적지 않다. 내부 상황을 알려줄 수 있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고위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이 한 씨를 매개로 만남을 이어온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잠재적으로 보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며 "어떤 사안이 생겨 수사를 받거나 조사를 받거나 부적절한 정보 제공이나 청탁 같은 게 이뤄질 수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 "돈 찔러 막으면 축복" 검찰, 로비 암시 녹취 확보

국내 대표 안마의자 제조업체 바디프랜드 역시 한 씨와 컨설팅 계약을 맺은 기업 중 하나였다.

바디프랜드 경영진은 "한 씨가 2020년 말쯤 바디프랜드 경영진에게 접근해 관세청, 공정위 조사, 국회 증인 출석 문제 등 당면한 현안을 해결해줄 것처럼 믿게 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한 씨가 주선한 자리에 나가면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장 등 힘 있는 기관들의 고위직들이 나오곤 했다.

"깜짝 놀랐어요. 검사장 중에서도 ○○○○ 부장이면 고위직이고 재벌 그룹 수사하고 막 이러잖아요. 기업들 저승사자로 확실히 알고 있고 그런데 갑자기 ○○○ 회장하고 메리어트 호텔 중식당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렇게 네 명이 앉아서 식사하더라고요. 또 굉장히 막역하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 바디프랜드 전 경영진

한 씨는 지난 2021년 12월 대관 업무와 컨설팅 비용 등을 이유로 회사 창업주로부터 모두 15억 원을 받아가기도 했다. 이후 한 씨는 본인이 모든 문제와 복잡한 일을 푼 것처럼 행세했다는 게 바디프랜드 주장이다.

바디프랜드는 지난 2월 한 씨를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한 씨 스스로 '금전적 로비'를 암시하는 육성 녹취 파일을 확보했다.( [단독/탐사 K] 경영컨설팅 실체는 ‘검은 로비’?…검찰 수사 착수)

"관세(조사 건)도 그렇고, 000(조사 건)도 그렇고, 다 우리가 막았잖아. 돈으로 다 찔러서 막았잖아요. 돈을 주고 들어주는 데가 있으면 축복인 거고…"
- 지난 1월 M그룹 한○○ 회장

이에 대해 바디프랜드는 "한 씨는 회사 창업주에게 접근해 거짓 내용으로 겁박해서 개인적으로 돈을 받아갔다며 "회사는 한 씨의 사기와 각종 범죄행위의 피해자 중 하나일 뿐 로비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 씨가 자신의 육성 녹취대로 '거미줄 인맥'을 동원해 로비를 실행했는지, 실행됐다면 성공했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또 한 씨가 받아간 거액의 자금이 어디로 건네졌는지 밝히는 것이 향후 수사의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 컨설팅 업자 한 씨는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를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다른 사모펀드와 함께 바디프랜드를 공동 인수했다. 그러나 두 사모펀드의 동거는 6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현재 양측은 주총 무효, 명예훼손 등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M그룹’의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테해란로에 위치한 빌딩 6층에 있다. 해당 건물의 메인 엘리베이터는 6층에 서지 않았다. 사무실의 유일한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
취재진은 수상한 모임의 정체와 로비 의혹 등 여러 해명을 듣기 위해 한 씨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한 씨는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인 것으로, 수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라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에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상대방 측의 부정확하고 왜곡된 주장과 자료에 근거해 편파적이고 청탁성 취재를 하는 것은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려는 불순한 의도"라며 "중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한 씨가 주선해 온 '사교 클럽'의 실체는 무엇일까. 만일 '부'와 '권력'을 각각 거머쥔 이들이 서로 거래하는 거대한 '로비 생태계'였다면, 시급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청탁과 로비가 없었더라도 한 씨의 부름에 응한 공직자들의 김영란법 위반 여부는 물론이고, 처신의 적절성도 짚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취재 : 우한울, 김덕훈, 박영민 기자
데이터 분석 : 이지연
자료 조사 : 하주언
인포그래픽 :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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