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엄마와 아이’ 익명출산 허용한 독일…핵심은 ‘상담’

입력 2023.07.07 (23:11) 수정 2023.07.0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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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여성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출산을 돕는 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 '익명 출산'을 이미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독일도 그중 하나인데요.

임신부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게 제도의 핵심으로 꼽힙니다.

베를린 유호윤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독일에서도 2010년쯤 신생아가 방치돼 숨지는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출산하는 제도의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카트야 되르너/당시 독일 연방의원/2013년 3월 : "베이비박스를 고려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의학적 도움 없이 출산해서, 산모와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관렵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신뢰출산제'가 2014년 5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상담부터 진료, 출산, 입양까지 임신 여성이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출산 관련 비용은 연방 정부가 모두 부담합니다.

다만 혈통증서를 남기는데 친모 실명과 주소를 적어야 합니다.

아이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16살이 되면 열람 신청이 가능합니다.

엄마가 반대해도 법원에서 공개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시행 5년을 평가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뢰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는 연간 평균 110명 정도로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도의 핵심은 위기에 빠진 여성들에게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겁니다.

도움이 필요한 임신 여성들은 이곳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상담도 가능합니다.

꼭 익명 출산이나 입양을 보내는 것 말고도 상황에 맞는 해법을 상담 과정에서 찾는 겁니다.

실제로 상담 이후 신뢰출산을 선택한 비율은 약 22%인데 마음을 바꿔 직접 양육을 선택한 경우가 조금 더 많았습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베이비박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호윤입니다.

[앵커]

이번 취재를 한 유호윤 특파원과 좀 더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유호윤 특파원!

익명출산을 합법화하면 무책임한 익명 출산이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잖아요?

독일에선 신뢰출산제 시행 이후 실제로 익명출산이 많이 늘었나요?

[기자]

독일에서 신뢰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들의 숫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방금 보도에서도 보셨지만, 2019년 기준 연간 110건 정도이고, 최근 자료를 살펴봐도 많이 늘어나진 않았습니다.

제도 시행 3년 차인 2017년에 독일 정부가 외부 기관에 '신뢰출산제'에 대한 평가를 의뢰했는데요.

해당 평가에서 신뢰출산제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임신 여성들에게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겁니다.

독일에서 '신뢰출산제'는 절박한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미 안착해가고 있습니다.

[앵커]

신뢰출산제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위기 여성들에 대한 상담이 충실히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 독일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나요?

[기자]

독일에서 임신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정부와 민간 운영 기관을 포함하면 약 1,500곳에 달합니다.

저희가 직접 다녀온 곳은 그 중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독일 임신갈등상담소였는데요.

의사가 상주하고 있어서 전문 상담이 가능했고, 경제적 지원에 대한 상담도 가능했습니다.

신생아 유기를 막기 위해선 임신 여성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하는 만큼 상담 기능을 강화한 건데요.

아울러 상담을 통해 무책임한 익명 출산을 막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위기 여성의 상황에 따라 직접 양육이나 실명 출산 후 입양 같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충분한 상담입니다.

[앵커]

하지만 아직도 독일에 베이비박스가 있다는 건 의외인데 왜 그런건가요?

[기자]

독일 베를린에만 5개 병원에서 여전히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이외 지역 병원에도 베이비박스를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2021년에 베를린에 있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는 모두 5명입니다.

신뢰출산제가 시행된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경우가 있다 보니 병원들도 쉽사리 없애지 못하는 건데요.

독일 정부는 장기적으로 베이비박스 폐지를 희망하지만 여전히 혈통증서를 작성하지 않고 완전한 익명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일 정부는 신뢰출산제를 오해하거나 잘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제도 홍보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촬영:하비에르 모야/영상편집:이웅/그래픽:강민수/자료조사: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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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 엄마와 아이’ 익명출산 허용한 독일…핵심은 ‘상담’
    • 입력 2023-07-07 23:11:56
    • 수정2023-07-08 00: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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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여성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출산을 돕는 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 '익명 출산'을 이미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독일도 그중 하나인데요.

임신부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게 제도의 핵심으로 꼽힙니다.

베를린 유호윤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독일에서도 2010년쯤 신생아가 방치돼 숨지는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출산하는 제도의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카트야 되르너/당시 독일 연방의원/2013년 3월 : "베이비박스를 고려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의학적 도움 없이 출산해서, 산모와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관렵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신뢰출산제'가 2014년 5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상담부터 진료, 출산, 입양까지 임신 여성이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출산 관련 비용은 연방 정부가 모두 부담합니다.

다만 혈통증서를 남기는데 친모 실명과 주소를 적어야 합니다.

아이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16살이 되면 열람 신청이 가능합니다.

엄마가 반대해도 법원에서 공개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시행 5년을 평가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뢰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는 연간 평균 110명 정도로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도의 핵심은 위기에 빠진 여성들에게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겁니다.

도움이 필요한 임신 여성들은 이곳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상담도 가능합니다.

꼭 익명 출산이나 입양을 보내는 것 말고도 상황에 맞는 해법을 상담 과정에서 찾는 겁니다.

실제로 상담 이후 신뢰출산을 선택한 비율은 약 22%인데 마음을 바꿔 직접 양육을 선택한 경우가 조금 더 많았습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베이비박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호윤입니다.

[앵커]

이번 취재를 한 유호윤 특파원과 좀 더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유호윤 특파원!

익명출산을 합법화하면 무책임한 익명 출산이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잖아요?

독일에선 신뢰출산제 시행 이후 실제로 익명출산이 많이 늘었나요?

[기자]

독일에서 신뢰출산제로 태어난 아이들의 숫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방금 보도에서도 보셨지만, 2019년 기준 연간 110건 정도이고, 최근 자료를 살펴봐도 많이 늘어나진 않았습니다.

제도 시행 3년 차인 2017년에 독일 정부가 외부 기관에 '신뢰출산제'에 대한 평가를 의뢰했는데요.

해당 평가에서 신뢰출산제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임신 여성들에게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겁니다.

독일에서 '신뢰출산제'는 절박한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미 안착해가고 있습니다.

[앵커]

신뢰출산제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위기 여성들에 대한 상담이 충실히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 독일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나요?

[기자]

독일에서 임신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정부와 민간 운영 기관을 포함하면 약 1,500곳에 달합니다.

저희가 직접 다녀온 곳은 그 중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독일 임신갈등상담소였는데요.

의사가 상주하고 있어서 전문 상담이 가능했고, 경제적 지원에 대한 상담도 가능했습니다.

신생아 유기를 막기 위해선 임신 여성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하는 만큼 상담 기능을 강화한 건데요.

아울러 상담을 통해 무책임한 익명 출산을 막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위기 여성의 상황에 따라 직접 양육이나 실명 출산 후 입양 같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충분한 상담입니다.

[앵커]

하지만 아직도 독일에 베이비박스가 있다는 건 의외인데 왜 그런건가요?

[기자]

독일 베를린에만 5개 병원에서 여전히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이외 지역 병원에도 베이비박스를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2021년에 베를린에 있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는 모두 5명입니다.

신뢰출산제가 시행된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경우가 있다 보니 병원들도 쉽사리 없애지 못하는 건데요.

독일 정부는 장기적으로 베이비박스 폐지를 희망하지만 여전히 혈통증서를 작성하지 않고 완전한 익명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일 정부는 신뢰출산제를 오해하거나 잘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제도 홍보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촬영:하비에르 모야/영상편집:이웅/그래픽:강민수/자료조사:문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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