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재난마저 차별…기후 재앙이 드러낸 불평등

입력 2023.08.11 (10:46) 수정 2023.08.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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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풍 '카눈'이 이례적으로 느린 속도로 이동하면서, 수도권과 강원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직도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 태풍으로 현재까지 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침수 피해도 잇따랐는데요.

문제는 이런 재난이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더욱 치명적이라는 거겠죠.

기후 재앙이 드러내고 있는 전 세계 불평등의 민낯,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중국에서도 최근 태풍으로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컸는데요.

피해 규모도 규모인데, 당국의 대응 때문에 논란이 크죠?

[기자]

지난주 중국에 상륙했던 태풍 '독수리'가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 부었죠.

수도 베이징에는 140년 전 관련 집계를 하기 시작한 뒤 가장 많은 비가 내렸는데요.

베이징과 톈진 같은 대도시의 피해를 줄이려고 인근 허베이성의 저지대 홍수 통제 구역 7곳의 수문을 열었는데, 이 지역에 피해가 집중돼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수십 명이 숨지고, 이재민 150만 명이 발생했는데, 특히 농촌 지역인 저줘우 시의 피해가 큽니다.

[앵커]

이 지역 사람들은 사전에 제대로 된 기상 예보도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죠?

[기자]

중국 정부는 태풍이 올라오기 시작하던 지난달 29일, 폭우 적색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내린 최고 수준 호우 경보인데요.

하지만 저줘우 시 주민들은 제대로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허베이성 저줘우 시 주민 : "이렇게 심각한 재난 피해를 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보험에 들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연히 보험은 없어요."]

게다가 허베이성 고위 관리가 "허베이성은 베이징을 지키기 위한 '해자', 즉 경계 역할"이라고 말해, 여론을 더 들끓게 했습니다.

사실 이런 부적절한 발언 전부터, 중국 당국이 재난 상황에서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커지던 상황이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과거에는 베이징에 폭우가 내리면 근처에 인구 밀도가 낮은 저지대 평원으로 물이 흐르게 했는데, 이 지역이 2017년부터 '슝안신구'라는 신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그게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슝안신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치적 사업으로 꼽힙니다.

[앵커]

피해 주민들 입장에서는 분노할 만한 상황이네요.

그런데 이런 일이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라고요?

[기자]

홍수 피해가 불가피할 때 주민 수가 적은 지역으로 물길을 유도하는 일은 미국에서도 벌어집니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는 '모간자 배수로'라는 수문이 125개 있는데요.

비가 많이 와서 주와 맞닿은 미시시피강이 범람하면, 물길이 인구가 많은 지역인 뉴올리언스로 가지 않고, 아차팔라야라는 분지로 가도록 이 수문이 유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차팔라야에도 적은 인구지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2011년 루이지애나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주 정부가 이 수문을 열었고, 아차팔라야 거주민 수만 명이 고스란히 수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이 이를 두고 '악마의 선택'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악마의 선택'이란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네요.

재난마저도 불평등하다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심지어 재난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서도 평등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 소식이 자주 들리죠.

지난해 여름 유럽에서 폭염으로 숨진 사람은 6만 명이 넘는데, 대부분은 80대 이상 여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같은 날씨 속에서도 나이가 많을수록, 또 남성보다는 여성이 폭염에 취약하다는 거죠.

[이탈리아 거주 여성 : "참을 수 없이 기분 나쁜 더위예요. 저는 겨울에만 건강이 괜찮아요. 저혈압이 너무 심해서요. 이미 걷기가 힘들어요."]

스위스에서는 2020년 64살 이상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가 정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했는데요.

스위스 정부가 폭염 등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고령의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 소송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기후 위기가 커질수록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 정부의 책임도 더 무거워지고 있네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홍수가 잦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집을 사들이고 있다면서요?

[기자]

'바이아웃' 제도라고 불리는데요.

홍수가 반복되는 지역 주민들이 집 정부에 팔고, 재난 위험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한계는 있습니다.

2019년 한 연구팀이 이 제도로 정부가 사들인 부동산 4만여 건을 조사해봤더니, 여기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홍수 위험이 비교적 큰 지역에서 오히려 제도 혜택은 더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혜택이 집중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재난 관리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런데요.

제도를 활용하려면 지역 공무원들이 연방 정부에 부동산 매입 기금을 요청하는 등 관련된 각종 업무를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은 큰 도시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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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돋보기] 재난마저 차별…기후 재앙이 드러낸 불평등
    • 입력 2023-08-11 10:46:35
    • 수정2023-08-11 10: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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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풍 '카눈'이 이례적으로 느린 속도로 이동하면서, 수도권과 강원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직도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 태풍으로 현재까지 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침수 피해도 잇따랐는데요.

문제는 이런 재난이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더욱 치명적이라는 거겠죠.

기후 재앙이 드러내고 있는 전 세계 불평등의 민낯,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중국에서도 최근 태풍으로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컸는데요.

피해 규모도 규모인데, 당국의 대응 때문에 논란이 크죠?

[기자]

지난주 중국에 상륙했던 태풍 '독수리'가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 부었죠.

수도 베이징에는 140년 전 관련 집계를 하기 시작한 뒤 가장 많은 비가 내렸는데요.

베이징과 톈진 같은 대도시의 피해를 줄이려고 인근 허베이성의 저지대 홍수 통제 구역 7곳의 수문을 열었는데, 이 지역에 피해가 집중돼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수십 명이 숨지고, 이재민 150만 명이 발생했는데, 특히 농촌 지역인 저줘우 시의 피해가 큽니다.

[앵커]

이 지역 사람들은 사전에 제대로 된 기상 예보도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죠?

[기자]

중국 정부는 태풍이 올라오기 시작하던 지난달 29일, 폭우 적색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내린 최고 수준 호우 경보인데요.

하지만 저줘우 시 주민들은 제대로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허베이성 저줘우 시 주민 : "이렇게 심각한 재난 피해를 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보험에 들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연히 보험은 없어요."]

게다가 허베이성 고위 관리가 "허베이성은 베이징을 지키기 위한 '해자', 즉 경계 역할"이라고 말해, 여론을 더 들끓게 했습니다.

사실 이런 부적절한 발언 전부터, 중국 당국이 재난 상황에서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커지던 상황이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과거에는 베이징에 폭우가 내리면 근처에 인구 밀도가 낮은 저지대 평원으로 물이 흐르게 했는데, 이 지역이 2017년부터 '슝안신구'라는 신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그게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슝안신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치적 사업으로 꼽힙니다.

[앵커]

피해 주민들 입장에서는 분노할 만한 상황이네요.

그런데 이런 일이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라고요?

[기자]

홍수 피해가 불가피할 때 주민 수가 적은 지역으로 물길을 유도하는 일은 미국에서도 벌어집니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는 '모간자 배수로'라는 수문이 125개 있는데요.

비가 많이 와서 주와 맞닿은 미시시피강이 범람하면, 물길이 인구가 많은 지역인 뉴올리언스로 가지 않고, 아차팔라야라는 분지로 가도록 이 수문이 유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차팔라야에도 적은 인구지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2011년 루이지애나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주 정부가 이 수문을 열었고, 아차팔라야 거주민 수만 명이 고스란히 수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이 이를 두고 '악마의 선택'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악마의 선택'이란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네요.

재난마저도 불평등하다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심지어 재난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서도 평등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 소식이 자주 들리죠.

지난해 여름 유럽에서 폭염으로 숨진 사람은 6만 명이 넘는데, 대부분은 80대 이상 여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같은 날씨 속에서도 나이가 많을수록, 또 남성보다는 여성이 폭염에 취약하다는 거죠.

[이탈리아 거주 여성 : "참을 수 없이 기분 나쁜 더위예요. 저는 겨울에만 건강이 괜찮아요. 저혈압이 너무 심해서요. 이미 걷기가 힘들어요."]

스위스에서는 2020년 64살 이상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가 정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했는데요.

스위스 정부가 폭염 등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고령의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 소송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기후 위기가 커질수록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 정부의 책임도 더 무거워지고 있네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홍수가 잦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집을 사들이고 있다면서요?

[기자]

'바이아웃' 제도라고 불리는데요.

홍수가 반복되는 지역 주민들이 집 정부에 팔고, 재난 위험이 낮은 지역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한계는 있습니다.

2019년 한 연구팀이 이 제도로 정부가 사들인 부동산 4만여 건을 조사해봤더니, 여기에도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홍수 위험이 비교적 큰 지역에서 오히려 제도 혜택은 더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혜택이 집중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재난 관리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런데요.

제도를 활용하려면 지역 공무원들이 연방 정부에 부동산 매입 기금을 요청하는 등 관련된 각종 업무를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은 큰 도시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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