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말하면 어떡해”…‘이 나라’ 입방정에 미국이 뜨악? [세계엔]
입력 2023.09.02 (08:01)
수정 2023.09.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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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리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수장이 지난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비공개'로 만났습니다. 비공개 회담이었는데도 널리 알려진 이유는 이스라엘 측이 일방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국가' 리비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리바이인들에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박해하는 적국이기 때문이죠. 리비아에선 연일 규탄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기가 불편해 보입니다. |
■ 이스라엘-리비아, 왜 만났을까?
지난해 말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한 뒤, 이스라엘의 유대민족주의 색채는 어느 때보다 짙어졌습니다. 중동 화약고는 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군사적 갈등 관계인 팔레스타인, 이란과 툭하면 무력 공격을 주고 받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다른 아랍권 국가들과는 친해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역내 세력을 키워 팔레스타인, 이란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특히 이슬람교 수니파 맹주이자, 이란과 갈등의 골이 깊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죠. 논란이 된 이스라엘-리비아 외교 수장 회담도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추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뻗은 손을 리비아가 맞잡은 이유는 뭘까요? 리비아에서는 2011년 '아랍의 봄'(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으로 카다피 독재 정권이 무너졌지만, 아직까지 내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엔(UN)이 인정하는 리비아 통합정부(GNU)는 군사, 경제적으로 서방의 도움을 많이 받는 상황입니다. "미국 우방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는 게 리비아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을 것(파이낸셜타임스)"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달 27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시위대가 이스라엘과 리비아 외교 장관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 리비아 "우연히 만나" VS 이스라엘 "합의된 회담"
두 외교 수장의 회담이 '깜짝' 공개된 뒤 리비아 국내 여론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리비아 통합정부는 즉각 해명을 내놨습니다. "다른 모임 중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라며,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고 밝혔죠.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측은 "합의된 만남이었고, 1시간 정도 면담을 했다"며, "회담 사실 공개도 사전에 합의된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결국, 리비아는 외교 장관의 직무를 정지하고 사실 관계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드베이바 리비아 통합정부(GNU) 총리는 자국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방문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없을 거라며 사태 수습에 애쓰고 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리비아 외교 장관은 튀르키예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거의 폭로하다시피 회담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야당 의원들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리비아뿐 아니라 나머지 이슬람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도 위태롭게 했다"며,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판단 실패"라고 비판했습니다.
직무 정지된 나즐라 구시 리비아 외교장관.
■ 이스라엘 '입방정'에 미국 이익 해친다?
비판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날아왔습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에 항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스라엘-리비아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의 안보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건 그사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미국 덕분입니다. 2020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 대표적입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수교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미국이 남 일에 적극 나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중동에서 미국의 입김은 예전만 못한 반면, 경쟁자 중국은 대중동 영향력을 갈수록 확대하고 있죠. 특히 '영원한 친구'인 줄만 알았던 사우디가 미-중 사이에 줄타기를 시작하면서, 미국에 적잖은 타격을 줬습니다. 이제 미국에 남은 카드는 친미 색채가 확실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세를 확대하도록 도와주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주도권도 되찾으려는 계산입니다.
2020년 9월 15일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 당시 모습. 왼쪽부터 바레인의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무장관,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랍에미리트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외무장관. (당시 직책)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 듯 보입니다. 미국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지렛대 삼아 중동 정세를 재편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몇 년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아랍권이 여전히 이스라엘에 깊은 적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보여준다"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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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3-09-02 09:06:08
북아프리카 리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수장이 지난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비공개'로 만났습니다. 비공개 회담이었는데도 널리 알려진 이유는 이스라엘 측이 일방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국가' 리비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리바이인들에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박해하는 적국이기 때문이죠. 리비아에선 연일 규탄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기가 불편해 보입니다. |
■ 이스라엘-리비아, 왜 만났을까?
지난해 말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한 뒤, 이스라엘의 유대민족주의 색채는 어느 때보다 짙어졌습니다. 중동 화약고는 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군사적 갈등 관계인 팔레스타인, 이란과 툭하면 무력 공격을 주고 받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다른 아랍권 국가들과는 친해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역내 세력을 키워 팔레스타인, 이란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특히 이슬람교 수니파 맹주이자, 이란과 갈등의 골이 깊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죠. 논란이 된 이스라엘-리비아 외교 수장 회담도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추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뻗은 손을 리비아가 맞잡은 이유는 뭘까요? 리비아에서는 2011년 '아랍의 봄'(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으로 카다피 독재 정권이 무너졌지만, 아직까지 내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엔(UN)이 인정하는 리비아 통합정부(GNU)는 군사, 경제적으로 서방의 도움을 많이 받는 상황입니다. "미국 우방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는 게 리비아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을 것(파이낸셜타임스)"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 리비아 "우연히 만나" VS 이스라엘 "합의된 회담"
두 외교 수장의 회담이 '깜짝' 공개된 뒤 리비아 국내 여론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리비아 통합정부는 즉각 해명을 내놨습니다. "다른 모임 중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라며,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고 밝혔죠.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측은 "합의된 만남이었고, 1시간 정도 면담을 했다"며, "회담 사실 공개도 사전에 합의된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결국, 리비아는 외교 장관의 직무를 정지하고 사실 관계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드베이바 리비아 통합정부(GNU) 총리는 자국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방문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없을 거라며 사태 수습에 애쓰고 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리비아 외교 장관은 튀르키예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거의 폭로하다시피 회담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야당 의원들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리비아뿐 아니라 나머지 이슬람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도 위태롭게 했다"며,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판단 실패"라고 비판했습니다.
■ 이스라엘 '입방정'에 미국 이익 해친다?
비판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날아왔습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에 항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스라엘-리비아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의 안보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건 그사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미국 덕분입니다. 2020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 대표적입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수교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미국이 남 일에 적극 나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중동에서 미국의 입김은 예전만 못한 반면, 경쟁자 중국은 대중동 영향력을 갈수록 확대하고 있죠. 특히 '영원한 친구'인 줄만 알았던 사우디가 미-중 사이에 줄타기를 시작하면서, 미국에 적잖은 타격을 줬습니다. 이제 미국에 남은 카드는 친미 색채가 확실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세를 확대하도록 도와주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주도권도 되찾으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 듯 보입니다. 미국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지렛대 삼아 중동 정세를 재편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몇 년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아랍권이 여전히 이스라엘에 깊은 적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보여준다"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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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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