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트] 작가냐 작품이냐…대치 끝에 임옥상 작품 철거했지만

입력 2023.09.06 (18:28) 수정 2023.09.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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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 남산에 설치돼 있던 일본군 위안부 추모 조형물, 논란 끝에 어제 철거됐습니다.

작품을 만든 임옥상 씨가 최근 강제 추행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성단체의 반발도 있었습니다.

이희연 기자와 주요 쟁점 짚어봅니다.

이 기자, 남산 기억의 터라고 하죠. 철거된 게 두 작품인가요?

[기자]

네, 서울 남산에 있는 '기억의 터'는 일본 위안부 피해자 추모를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요.

서울시가 이곳에 설치돼 있던 미술가 임옥상 씨의 작품,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어제 새벽 철거했습니다.

[앵커]

철거 이유, 결국 임옥상 씨에 대한 최근 유죄판결인데, 강제추행 혐의죠?

[기자]

임 씨가 10년 전 부하 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지난달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임 씨는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탭니다.

이렇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공공 장소에 보존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서울시 입장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 정서에도 어긋난다면서 시립 시설에 설치된 임 씨의 작품들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어제 철거된 두 작품을 마지막으로 서울 시립 시설에 있던 임 씨 작품 6개는 모두 철거됐습니다.

해당 장소에는 철거된 조형물을 대신할 작품을 재설치하겠다고 서울시는 밝혔습니다.

[앵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작가의 작품은 안된다, 서울시의 입장은 알겠는데, 여성 단체들은 반발했다구요?

어떤 이유에섭니까?

[기자]

네, 서울시는 원래 그제, 지난 4일에 철거를 진행하려 했는데요, 그 계획이 한 차례 지연됐습니다.

그간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 등 여성 단체들이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작품은 임옥상 씨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게 가장 주된 반발 사유였는데, 여성 단체의 발언,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김문민정/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이 벽을 제공했다고 해서 어떻게 그게 임옥상의 작품이 될 수 있습니까? 저희는 임옥상 개인의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고요. 이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임옥상이 그런 행위까지 했다라는 걸 기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연 등도 임옥상 씨의 범죄 행위가 잘못됐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다만 해당 작품들은 시민 2만 명이 성금을 모아 제작한 것이고 임 씨 한 명의 작품이 아니라 다수가 함께 만든 작품이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만큼 임 씨의 성폭력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모두 기억할 대안을 모색했어야 하는데, 서울시의 일방적인 철거 집행은 시민단체 지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한마디로 대안도 없이 철거를 강행했다, 그런 비판이군요.

그런데 임옥상 씨 작품들이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고 곳곳에 있을 것 아닙니까.

다른 작품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여전히 전국에 설치된 임 씨 작품이 백여 점에 달할 거로 추정되는데요,

임 씨의 또 다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대해서도 존폐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이 동상의 관리 주체는 전태일재단인데, 재단에서 관련 논의를 위한 별도의 숙의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관계자 얘기 먼저 들어보시죠.

[박승렬/전태일 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장 : "전태일 열사를 사랑하고 또 함께해왔던 수많은 시민 노동자들이 계시니까 그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숙의 위원회를 정했고요."]

이번에도 작가뿐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함께 만든 작품이기에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과 성폭력 피해자를 고려해 철거하자는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아직 공식 입장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교체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거로 보입니다.

[앵커]

결국,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해서 보느냐, 분리해서 보느냐, 이 문제인 것 같은데요.

과거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기자]

과거에도 성범죄 가해자 작품들을 철거한 경우가 있습니다.

2018년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시인 고은 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고 씨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이를 폭로한 시인 최영미 씨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 2심 모두 패소했습니다.

서울시는 2018년, 고 씨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전시 공간인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을 철거했습니다.

이때, 경남 창원 국립 3·15 민주묘지 돌에 고 씨 시를 새긴 작품도 철거됐고요.

경북 포항시도 시청사 벽면에 걸렸던 시를 덧칠해 지웠습니다.

또, 2018년 제자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던 사진작가 배병우 씨 작품도 국립경주박물관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철거됐습니다.

물론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할지, 분리할지 일괄적으로 정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다만 이런 논쟁 자체가 그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한 만큼, 공론의 장을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충분한 논의를 통한 합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희연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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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인사이트] 작가냐 작품이냐…대치 끝에 임옥상 작품 철거했지만
    • 입력 2023-09-06 18:28:27
    • 수정2023-09-06 18: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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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 설치돼 있던 일본군 위안부 추모 조형물, 논란 끝에 어제 철거됐습니다.

작품을 만든 임옥상 씨가 최근 강제 추행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성단체의 반발도 있었습니다.

이희연 기자와 주요 쟁점 짚어봅니다.

이 기자, 남산 기억의 터라고 하죠. 철거된 게 두 작품인가요?

[기자]

네, 서울 남산에 있는 '기억의 터'는 일본 위안부 피해자 추모를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요.

서울시가 이곳에 설치돼 있던 미술가 임옥상 씨의 작품,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어제 새벽 철거했습니다.

[앵커]

철거 이유, 결국 임옥상 씨에 대한 최근 유죄판결인데, 강제추행 혐의죠?

[기자]

임 씨가 10년 전 부하 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지난달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임 씨는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탭니다.

이렇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공공 장소에 보존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서울시 입장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 정서에도 어긋난다면서 시립 시설에 설치된 임 씨의 작품들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어제 철거된 두 작품을 마지막으로 서울 시립 시설에 있던 임 씨 작품 6개는 모두 철거됐습니다.

해당 장소에는 철거된 조형물을 대신할 작품을 재설치하겠다고 서울시는 밝혔습니다.

[앵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작가의 작품은 안된다, 서울시의 입장은 알겠는데, 여성 단체들은 반발했다구요?

어떤 이유에섭니까?

[기자]

네, 서울시는 원래 그제, 지난 4일에 철거를 진행하려 했는데요, 그 계획이 한 차례 지연됐습니다.

그간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 등 여성 단체들이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작품은 임옥상 씨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게 가장 주된 반발 사유였는데, 여성 단체의 발언,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김문민정/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이 벽을 제공했다고 해서 어떻게 그게 임옥상의 작품이 될 수 있습니까? 저희는 임옥상 개인의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고요. 이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임옥상이 그런 행위까지 했다라는 걸 기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연 등도 임옥상 씨의 범죄 행위가 잘못됐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다만 해당 작품들은 시민 2만 명이 성금을 모아 제작한 것이고 임 씨 한 명의 작품이 아니라 다수가 함께 만든 작품이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만큼 임 씨의 성폭력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모두 기억할 대안을 모색했어야 하는데, 서울시의 일방적인 철거 집행은 시민단체 지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한마디로 대안도 없이 철거를 강행했다, 그런 비판이군요.

그런데 임옥상 씨 작품들이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고 곳곳에 있을 것 아닙니까.

다른 작품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여전히 전국에 설치된 임 씨 작품이 백여 점에 달할 거로 추정되는데요,

임 씨의 또 다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대해서도 존폐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이 동상의 관리 주체는 전태일재단인데, 재단에서 관련 논의를 위한 별도의 숙의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관계자 얘기 먼저 들어보시죠.

[박승렬/전태일 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장 : "전태일 열사를 사랑하고 또 함께해왔던 수많은 시민 노동자들이 계시니까 그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숙의 위원회를 정했고요."]

이번에도 작가뿐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함께 만든 작품이기에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과 성폭력 피해자를 고려해 철거하자는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아직 공식 입장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교체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거로 보입니다.

[앵커]

결국,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해서 보느냐, 분리해서 보느냐, 이 문제인 것 같은데요.

과거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기자]

과거에도 성범죄 가해자 작품들을 철거한 경우가 있습니다.

2018년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시인 고은 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고 씨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이를 폭로한 시인 최영미 씨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 2심 모두 패소했습니다.

서울시는 2018년, 고 씨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전시 공간인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을 철거했습니다.

이때, 경남 창원 국립 3·15 민주묘지 돌에 고 씨 시를 새긴 작품도 철거됐고요.

경북 포항시도 시청사 벽면에 걸렸던 시를 덧칠해 지웠습니다.

또, 2018년 제자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던 사진작가 배병우 씨 작품도 국립경주박물관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철거됐습니다.

물론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할지, 분리할지 일괄적으로 정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다만 이런 논쟁 자체가 그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한 만큼, 공론의 장을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충분한 논의를 통한 합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희연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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