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진짜 잡을 수 있을까?”…‘폭탄테러’ 글 올린 이유가

입력 2023.09.13 (07:00) 수정 2023.09.1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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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7일 KBS 뉴스 7 제주2023년 8월 7일 KBS 뉴스 7 제주

"경찰이 진짜 날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초, 전국 5개 국제공항에 '폭탄 테러'와 '흉기 살인'을 예고하는 온라인 글을 올려, 수백 명에 달하는 경찰 등이 투입되는 공권력 낭비를 불러일으킨 30대 남성 피의자 A 씨가 경찰 조사에서 밝힌 '범행 동기'입니다.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국내 주요 국제공항에서 폭탄 테러와 살인을 저지르겠다"며 협박성 글을 올린 30대 남성이 경찰 수사 개시 보름여 만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협박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 남성 A 씨를 붙잡아, 지난 11일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 해외 IP 사용…글 올리자마자 컴퓨터·휴대전화 포맷하는 수법 써

서울에 사는 이 남성은 지난달 6일 밤부터 7일 새벽 사이,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공항을 비롯한 전국 5개 국제공항에 폭탄을 설치했다, 흉기로 살인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글 6개를 연달아 올린 혐의를 받습니다.

또, 이로 인해 전국 공항에 경찰특공대 등 300여 명 이상의 경찰력과 장갑차를 동원케 하는 등, 막대한 공권력을 낭비하게 한 혐의도 받습니다.

지난달 6일 밤, 피의자 A 씨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제주공항 폭탄 테러 예고 글지난달 6일 밤, 피의자 A 씨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제주공항 폭탄 테러 예고 글

전국적으로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던 시기에 전국 5개 공항을 겨냥한 익명의 테러 예고 글까지 올라오자, 각 공항 관할 경찰청마다 특별 치안 활동을 펼치며 '게시자 추적'에 나섰습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도 온라인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던 지난달 6일 밤,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공항을 대상으로 한 테러 예고 글이 올라온 사실을 1시간 만에 파악하고, 곧장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제주경찰은 이번 사례에 처음으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해 게시글을 분석했습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폭탄 테러'와 '흉기 사용'을 결합한 비슷한 내용의 글이 연이어 올라온 점 등으로 미뤄,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제주공항을 비롯한 다른 4개 공항에서도 폭발물 처리반에 경찰 특공대·장갑차까지 출동하는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지며 한바탕 소동을 빚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예고대로 '테러'가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2023년 8월 7일 KBS 뉴스 7 제주2023년 8월 7일 KBS 뉴스 7 제주

■ 해외 IP 우회해 추적 따돌리려고 했지만…결국 경찰에 '덜미'

이 남성은 범행 당일, 각기 다른 해외 IP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단시간에 협박 글 여러 건을 올린 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방식으로 추적을 따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경찰의 끈질긴 수사에 꼬리를 밟혔습니다.

IP 추적 등을 통해 피의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한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이 남성의 주거지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경찰은 이날 A 씨가 사용한 노트북과 휴대전화·외장 하드 등을 압수하는 한편, A 씨에 대해 긴급히 출국 금지 조처를 내렸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피의자 A 씨의 자택에서 경찰이 압수한 노트북을 분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제공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피의자 A 씨의 자택에서 경찰이 압수한 노트북을 분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제공

■ 범인은 컴퓨터 전공한 30대 남성…관련 전과는 없어

A 씨는 수사 초기부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A 씨를 제주경찰청으로 불러 2차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압수물 분석 결과와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자신이 했다며 범행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이어 제주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속히 A 씨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이 남성이 털어놓은 범행 동기는 황당하게도 "해외 IP로 추적 회피를 사용하면, 경찰이 과연 자신을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였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모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 평소에도 온라인으로 글을 쓰거나 열람할 때 본인 IP를 사용하지 않는 등 해외 IP 사용에 능숙했습니다. A 씨는 현재 컴퓨터 관련업에는 종사하고 있지 않으며, A 씨에게 동종 전과는 없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제주경찰이 피의자 A 씨의 자택에서 압수한 노트북과 외장 하드·휴대전화 등. 제주경찰청 제공제주경찰이 피의자 A 씨의 자택에서 압수한 노트북과 외장 하드·휴대전화 등. 제주경찰청 제공

김성훈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A 씨가 특별히 이번 일을 위해서 IP 추적 기술을 습득하거나,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 피의자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 시작할 것 같았다"

A 씨가 온라인에 테러 예고 글을 올린 시기는 전국적으로 무차별 흉악 범죄가 잇따르던 때입니다.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피의자 심문 과정에서 A 씨 역시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을 시작할 것 같아서, 여러 협박 글을 작성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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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가 수사 초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다가, 뒤늦게 범행을 실토한 이유에 대해선 "처음엔 A 씨 스스로 '본인이 특정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면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 압수물 분석 결과, 포렌식 결과 등을 내밀며 추궁했다.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범행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찰은 이 남성에 대해 공항 운영을 방해한 죄를 물어, 항공보안법 위반 등 적용 가능한 처벌 규정이 더 있는지 법리 검토를 이어가는 한편, 추가 피의자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막대한 공권력이 낭비된 점을 고려해, 정부 방침에 따라 경찰청·법무부 차원에서 피의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제주경찰청 측은 "소송가액 등 구체적인 방법은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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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전국 5개 국제공항에 '폭탄 테러'와 '흉기 살인'을 예고하는 온라인 글을 올려, 수백 명에 달하는 경찰 등이 투입되는 공권력 낭비를 불러일으킨 30대 남성 피의자 A 씨가 경찰 조사에서 밝힌 '범행 동기'입니다.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국내 주요 국제공항에서 폭탄 테러와 살인을 저지르겠다"며 협박성 글을 올린 30대 남성이 경찰 수사 개시 보름여 만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협박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 남성 A 씨를 붙잡아, 지난 11일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 해외 IP 사용…글 올리자마자 컴퓨터·휴대전화 포맷하는 수법 써

서울에 사는 이 남성은 지난달 6일 밤부터 7일 새벽 사이,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공항을 비롯한 전국 5개 국제공항에 폭탄을 설치했다, 흉기로 살인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글 6개를 연달아 올린 혐의를 받습니다.

또, 이로 인해 전국 공항에 경찰특공대 등 300여 명 이상의 경찰력과 장갑차를 동원케 하는 등, 막대한 공권력을 낭비하게 한 혐의도 받습니다.

지난달 6일 밤, 피의자 A 씨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제주공항 폭탄 테러 예고 글
전국적으로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던 시기에 전국 5개 공항을 겨냥한 익명의 테러 예고 글까지 올라오자, 각 공항 관할 경찰청마다 특별 치안 활동을 펼치며 '게시자 추적'에 나섰습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도 온라인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던 지난달 6일 밤,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공항을 대상으로 한 테러 예고 글이 올라온 사실을 1시간 만에 파악하고, 곧장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제주경찰은 이번 사례에 처음으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해 게시글을 분석했습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폭탄 테러'와 '흉기 사용'을 결합한 비슷한 내용의 글이 연이어 올라온 점 등으로 미뤄,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제주공항을 비롯한 다른 4개 공항에서도 폭발물 처리반에 경찰 특공대·장갑차까지 출동하는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지며 한바탕 소동을 빚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예고대로 '테러'가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2023년 8월 7일 KBS 뉴스 7 제주
■ 해외 IP 우회해 추적 따돌리려고 했지만…결국 경찰에 '덜미'

이 남성은 범행 당일, 각기 다른 해외 IP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단시간에 협박 글 여러 건을 올린 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방식으로 추적을 따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경찰의 끈질긴 수사에 꼬리를 밟혔습니다.

IP 추적 등을 통해 피의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한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이 남성의 주거지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경찰은 이날 A 씨가 사용한 노트북과 휴대전화·외장 하드 등을 압수하는 한편, A 씨에 대해 긴급히 출국 금지 조처를 내렸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피의자 A 씨의 자택에서 경찰이 압수한 노트북을 분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제공
■ 범인은 컴퓨터 전공한 30대 남성…관련 전과는 없어

A 씨는 수사 초기부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A 씨를 제주경찰청으로 불러 2차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압수물 분석 결과와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자신이 했다며 범행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이어 제주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속히 A 씨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이 남성이 털어놓은 범행 동기는 황당하게도 "해외 IP로 추적 회피를 사용하면, 경찰이 과연 자신을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였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모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 평소에도 온라인으로 글을 쓰거나 열람할 때 본인 IP를 사용하지 않는 등 해외 IP 사용에 능숙했습니다. A 씨는 현재 컴퓨터 관련업에는 종사하고 있지 않으며, A 씨에게 동종 전과는 없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제주경찰이 피의자 A 씨의 자택에서 압수한 노트북과 외장 하드·휴대전화 등. 제주경찰청 제공
김성훈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A 씨가 특별히 이번 일을 위해서 IP 추적 기술을 습득하거나,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 피의자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 시작할 것 같았다"

A 씨가 온라인에 테러 예고 글을 올린 시기는 전국적으로 무차별 흉악 범죄가 잇따르던 때입니다.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피의자 심문 과정에서 A 씨 역시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을 시작할 것 같아서, 여러 협박 글을 작성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8월 7일 KBS 뉴스 7 제주
A 씨가 수사 초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다가, 뒤늦게 범행을 실토한 이유에 대해선 "처음엔 A 씨 스스로 '본인이 특정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면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 압수물 분석 결과, 포렌식 결과 등을 내밀며 추궁했다.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범행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찰은 이 남성에 대해 공항 운영을 방해한 죄를 물어, 항공보안법 위반 등 적용 가능한 처벌 규정이 더 있는지 법리 검토를 이어가는 한편, 추가 피의자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막대한 공권력이 낭비된 점을 고려해, 정부 방침에 따라 경찰청·법무부 차원에서 피의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제주경찰청 측은 "소송가액 등 구체적인 방법은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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