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행 고소장에서 시작된 무고 재판
충북 청주의 모 기업에서 일한 지 15년째였던 A 씨. 2020년 5월, A 씨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직장동료 B 씨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며 고소장을 작성해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 고소장에는 2019년 5월과 11월 두 차례, B 씨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A 씨가 신고한 이 사건은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돼 불기소됐고, 두 사람을 둘러싼 일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소장을 썼던 2020년 당시만 해도 A 씨는 고소장이 본인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해 가을, B 씨가 A 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겁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 2년여 길고 긴 법정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했던 A 씨는 무고 사건의 피고인이 돼 법정을 드나들게 됐습니다.
■ 1심에서 법정구속된 A 씨…직장에선 해고
무고죄로 기소된 A 씨는 2021년 11월이 되어서야 1심 재판부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A 씨는 이날 회사에 반차 휴가를 내고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앞서 검찰에서 1년 6월을 구형하긴 했지만, 변호인과 의견을 나눠봤을 때 징역형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씨는 이날 법원에 간 이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구속됐기 때문입니다. 1심 결과가 나오면서, 직장에선 A 씨를 휴직 처리했고, 이어 그를 해고했습니다.
■ "합의하의 성관계" … 징역 2년
1심 재판부는 사건 이후 A씨가 B 씨를 책망하는 행동을 보인 사실이 확인이 안 되는 점, 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 이들의 행동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바탕으로 두 사람 사이 합의하의 성관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무고죄는 피무고인인 B 씨에게 상당한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는 범죄인 만큼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 징역 2년 양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고의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사건 허위 인식 단정하기 어려워" …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A 씨가 직장 노조 간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점에 판단의 무게를 뒀습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면, 이 사실을 노조 간부에게 말할 이유나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무고의 의사로 B 씨를 고소한 것이라면 2019년 5월과 11월 두차례 모두 성폭행으로 고소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 가운데 한 건은 성폭행 미수로 고소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무고의 고의성을 증명할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본 겁니다. 최근 대법원도 항소심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결국 A 씨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 "허위 사실을 신고한다는 인식, 고의성이 중요"
무고죄는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신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고죄가 인정되려면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박아롱 변호사는 "신고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허위라고 단정하기에는 미흡한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무고죄의 '허위 사실' 요건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무고죄가 성립되려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한다'라는 점에 대해 '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신고하는 사실의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될 수 없어서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검찰과 경찰, 법무부 모두 성범죄 무고 통계를 따로 내진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연구 자료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이 지난 2019년 7월 배포했던 보도자료에서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조사에 의하면 2017~2018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대방을 무고로 고소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건 전체의 6.4%에 불과했습니다.
법정구속됐던 시기, 직장에서 해고됐던 A 씨는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자신의 무죄를 주변에 알리고 복직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민감한 성 사안인 데다, 복직하면 B 씨와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또 언론에 보도되면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볼 텐데,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을 언론에 알린 이유를 A 씨에게 물었습니다. A 씨는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충북 청주의 모 기업에서 일한 지 15년째였던 A 씨. 2020년 5월, A 씨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직장동료 B 씨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며 고소장을 작성해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 고소장에는 2019년 5월과 11월 두 차례, B 씨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A 씨가 신고한 이 사건은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돼 불기소됐고, 두 사람을 둘러싼 일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A 씨가 B 씨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며 작성한 고소장
고소장을 썼던 2020년 당시만 해도 A 씨는 고소장이 본인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해 가을, B 씨가 A 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겁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 2년여 길고 긴 법정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했던 A 씨는 무고 사건의 피고인이 돼 법정을 드나들게 됐습니다.
■ 1심에서 법정구속된 A 씨…직장에선 해고
무고죄로 기소된 A 씨는 2021년 11월이 되어서야 1심 재판부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A 씨는 이날 회사에 반차 휴가를 내고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앞서 검찰에서 1년 6월을 구형하긴 했지만, 변호인과 의견을 나눠봤을 때 징역형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씨는 이날 법원에 간 이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구속됐기 때문입니다. 1심 결과가 나오면서, 직장에선 A 씨를 휴직 처리했고, 이어 그를 해고했습니다.
"처음에는 멘붕 상태였고 5개월 동안 거기(교도소)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어요. 밥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우유 같은 걸로 시간을 버텼던 것 같아요." "두려움이 제일 컸어요.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경제활동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제 삶이 모두 무너졌다고 생각해요." |
■ "합의하의 성관계" … 징역 2년
1심 재판부는 사건 이후 A씨가 B 씨를 책망하는 행동을 보인 사실이 확인이 안 되는 점, 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 이들의 행동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바탕으로 두 사람 사이 합의하의 성관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무고죄는 피무고인인 B 씨에게 상당한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는 범죄인 만큼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 징역 2년 양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고의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사건 허위 인식 단정하기 어려워" …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A 씨가 직장 노조 간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점에 판단의 무게를 뒀습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면, 이 사실을 노조 간부에게 말할 이유나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무고의 의사로 B 씨를 고소한 것이라면 2019년 5월과 11월 두차례 모두 성폭행으로 고소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 가운데 한 건은 성폭행 미수로 고소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무고의 고의성을 증명할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본 겁니다. 최근 대법원도 항소심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결국 A 씨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한다는 점에 대해서 고의가 있어야 하거든요. 허위성에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될 수 없어서 무고죄로 처벌될 수가 없습니다." |
■ "허위 사실을 신고한다는 인식, 고의성이 중요"
무고죄는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신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고죄가 인정되려면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박아롱 변호사는 "신고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허위라고 단정하기에는 미흡한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무고죄의 '허위 사실' 요건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무고죄가 성립되려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한다'라는 점에 대해 '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신고하는 사실의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될 수 없어서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검찰과 경찰, 법무부 모두 성범죄 무고 통계를 따로 내진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연구 자료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이 지난 2019년 7월 배포했던 보도자료에서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조사에 의하면 2017~2018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대방을 무고로 고소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건 전체의 6.4%에 불과했습니다.
법정구속됐던 시기, 직장에서 해고됐던 A 씨는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자신의 무죄를 주변에 알리고 복직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민감한 성 사안인 데다, 복직하면 B 씨와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또 언론에 보도되면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볼 텐데,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을 언론에 알린 이유를 A 씨에게 물었습니다. A 씨는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취재가 됐는지도 모르는데 1심에 제가 법정구속됐다는 내용으로 수많은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왔어요. 그러는 동안 저는 온갖 추문의 대상이 되었고요. 대법원에서 무죄가 난 것으로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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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죄 피해 신고했다 무고로 역고소…‘무죄’ 확정에도 무너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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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9-16 06:02:26
■ 성폭행 고소장에서 시작된 무고 재판
충북 청주의 모 기업에서 일한 지 15년째였던 A 씨. 2020년 5월, A 씨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직장동료 B 씨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며 고소장을 작성해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 고소장에는 2019년 5월과 11월 두 차례, B 씨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A 씨가 신고한 이 사건은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돼 불기소됐고, 두 사람을 둘러싼 일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소장을 썼던 2020년 당시만 해도 A 씨는 고소장이 본인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해 가을, B 씨가 A 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겁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 2년여 길고 긴 법정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했던 A 씨는 무고 사건의 피고인이 돼 법정을 드나들게 됐습니다.
■ 1심에서 법정구속된 A 씨…직장에선 해고
무고죄로 기소된 A 씨는 2021년 11월이 되어서야 1심 재판부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A 씨는 이날 회사에 반차 휴가를 내고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앞서 검찰에서 1년 6월을 구형하긴 했지만, 변호인과 의견을 나눠봤을 때 징역형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씨는 이날 법원에 간 이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구속됐기 때문입니다. 1심 결과가 나오면서, 직장에선 A 씨를 휴직 처리했고, 이어 그를 해고했습니다.
■ "합의하의 성관계" … 징역 2년
1심 재판부는 사건 이후 A씨가 B 씨를 책망하는 행동을 보인 사실이 확인이 안 되는 점, 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 이들의 행동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바탕으로 두 사람 사이 합의하의 성관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무고죄는 피무고인인 B 씨에게 상당한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는 범죄인 만큼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 징역 2년 양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고의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사건 허위 인식 단정하기 어려워" …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A 씨가 직장 노조 간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점에 판단의 무게를 뒀습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면, 이 사실을 노조 간부에게 말할 이유나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무고의 의사로 B 씨를 고소한 것이라면 2019년 5월과 11월 두차례 모두 성폭행으로 고소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 가운데 한 건은 성폭행 미수로 고소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무고의 고의성을 증명할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본 겁니다. 최근 대법원도 항소심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결국 A 씨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 "허위 사실을 신고한다는 인식, 고의성이 중요"
무고죄는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신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고죄가 인정되려면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박아롱 변호사는 "신고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허위라고 단정하기에는 미흡한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무고죄의 '허위 사실' 요건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무고죄가 성립되려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한다'라는 점에 대해 '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신고하는 사실의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될 수 없어서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검찰과 경찰, 법무부 모두 성범죄 무고 통계를 따로 내진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연구 자료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이 지난 2019년 7월 배포했던 보도자료에서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조사에 의하면 2017~2018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대방을 무고로 고소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건 전체의 6.4%에 불과했습니다.
법정구속됐던 시기, 직장에서 해고됐던 A 씨는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자신의 무죄를 주변에 알리고 복직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민감한 성 사안인 데다, 복직하면 B 씨와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또 언론에 보도되면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볼 텐데,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을 언론에 알린 이유를 A 씨에게 물었습니다. A 씨는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충북 청주의 모 기업에서 일한 지 15년째였던 A 씨. 2020년 5월, A 씨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직장동료 B 씨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며 고소장을 작성해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 고소장에는 2019년 5월과 11월 두 차례, B 씨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A 씨가 신고한 이 사건은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돼 불기소됐고, 두 사람을 둘러싼 일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소장을 썼던 2020년 당시만 해도 A 씨는 고소장이 본인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해 가을, B 씨가 A 씨를 무고죄로 고소한 겁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 2년여 길고 긴 법정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했던 A 씨는 무고 사건의 피고인이 돼 법정을 드나들게 됐습니다.
■ 1심에서 법정구속된 A 씨…직장에선 해고
무고죄로 기소된 A 씨는 2021년 11월이 되어서야 1심 재판부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A 씨는 이날 회사에 반차 휴가를 내고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앞서 검찰에서 1년 6월을 구형하긴 했지만, 변호인과 의견을 나눠봤을 때 징역형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씨는 이날 법원에 간 이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구속됐기 때문입니다. 1심 결과가 나오면서, 직장에선 A 씨를 휴직 처리했고, 이어 그를 해고했습니다.
"처음에는 멘붕 상태였고 5개월 동안 거기(교도소)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어요. 밥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우유 같은 걸로 시간을 버텼던 것 같아요." "두려움이 제일 컸어요.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경제활동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제 삶이 모두 무너졌다고 생각해요." |
■ "합의하의 성관계" … 징역 2년
1심 재판부는 사건 이후 A씨가 B 씨를 책망하는 행동을 보인 사실이 확인이 안 되는 점, 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 이들의 행동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바탕으로 두 사람 사이 합의하의 성관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무고죄는 피무고인인 B 씨에게 상당한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는 범죄인 만큼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 징역 2년 양형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고의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사건 허위 인식 단정하기 어려워" …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A 씨가 직장 노조 간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점에 판단의 무게를 뒀습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면, 이 사실을 노조 간부에게 말할 이유나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무고의 의사로 B 씨를 고소한 것이라면 2019년 5월과 11월 두차례 모두 성폭행으로 고소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 가운데 한 건은 성폭행 미수로 고소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무고의 고의성을 증명할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고 본 겁니다. 최근 대법원도 항소심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결국 A 씨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한다는 점에 대해서 고의가 있어야 하거든요. 허위성에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될 수 없어서 무고죄로 처벌될 수가 없습니다." |
■ "허위 사실을 신고한다는 인식, 고의성이 중요"
무고죄는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신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고죄가 인정되려면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박아롱 변호사는 "신고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허위라고 단정하기에는 미흡한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무고죄의 '허위 사실' 요건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무고죄가 성립되려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한다'라는 점에 대해 '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신고하는 사실의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가 인정될 수 없어서 무고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검찰과 경찰, 법무부 모두 성범죄 무고 통계를 따로 내진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연구 자료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이 지난 2019년 7월 배포했던 보도자료에서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조사에 의하면 2017~2018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대방을 무고로 고소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건 전체의 6.4%에 불과했습니다.
법정구속됐던 시기, 직장에서 해고됐던 A 씨는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자신의 무죄를 주변에 알리고 복직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민감한 성 사안인 데다, 복직하면 B 씨와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또 언론에 보도되면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볼 텐데,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을 언론에 알린 이유를 A 씨에게 물었습니다. A 씨는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취재가 됐는지도 모르는데 1심에 제가 법정구속됐다는 내용으로 수많은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왔어요. 그러는 동안 저는 온갖 추문의 대상이 되었고요. 대법원에서 무죄가 난 것으로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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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아 기자 msa46@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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