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풍계리(Punggye-ri)'라는 지명은 북한 핵 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2006년부터 총 6번의 핵실험이 진행된 핵실험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한창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던 2018년,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려는 듯 한국 언론까지 현장으로 초청해 실험장을 '폭파'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 풍계리가 속한 함경북도 길주군, 그곳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길주군 출신으로 우리나라로 넘어온 탈북민들이 오늘(20일) 핵실험 뒤의 삶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 "금쪽같던 아들, 평양에서 병원도 못 가 보고…"
길주군에서 50년 넘게 산 탈북민 이영란(가명) 씨. 이 씨는 처음 풍계리 핵실험장이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군 시설이겠거니 생각했고 핵실험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70리, 즉 30km도 떨어져 있지 않던 핵실험장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이미 1, 2차 핵실험이 끝나고 3차 핵실험이 진행됐던 2013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3차 핵실험을 했다고 조선중앙TV 보도에 나왔을 때, 우리는 장마당에 나가서 정말 다 너무 기뻐했습니다. (그때는) 핵실험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기 때문에, '핵실험을 했으면 미국놈들이 우리나라(북한)한테 이젠 꼼짝 못 하겠구나', 막 다 들떠서 춤추는 사람도 있고 그랬습니다. - 탈북민 이영란 씨 |
하지만 핵실험이 어떤 것인지는 머지않아 알게 됐습니다. 이 씨의 외아들에게는 자주 어울리는 친구가 7명 있었다고 합니다. 다들 건강하던 아들 친구들은 3차 핵실험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결핵 진단을 받더니, 그로부터 채 4년이 지나지 않아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씨의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안 되는 벌이로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어려웠던 이 씨는, 돈을 벌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아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탈북 뒤 한국에서) 여기 돈으로 내가 6백만 원을 보내줬어요. 그랬더니 '엄마, 이거 가지고 평양병원에서 얼마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저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길주군 간염 환자, 결핵 환자 등은 일체 평양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고…." "길주군 상하수돗물도 다 그 핵실험장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수원지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거든요. 길주군 시민들이 다 핵에 피폭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 탈북민 이영란 씨 |
2011년 한국에 온 김순복(가명) 씨도, 길주군에 살던 당시 풍계리에서 흘러 내려오는 남대천의 물을 식수로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산중에 차단봉이 설치되고 이동이 통제되더니 핵실험장이 건설됐습니다. 풍계리는 그전까진 물 좋고 경치 좋고 과일 농사 잘되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핵실험장이 만들어진 뒤에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이 말라 없어지거나 나무가 원인 모르게 썩어들어가는 등 산이 병들어가고, 사람들도 함께 병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류머티즘, 결핵, 피부염 환자가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밖에 진단이 명확지 않은 병을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을 가리켜 '귀신병'에 걸렸다고 말을 했고, 무당을 찾아가 방토(굿)하기도 했습니다." - 탈북민 김순복 씨 |
■ "핵실험장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 지하수 통해 확산 가능…최소 수십만 명 영향"
앞서 북한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는 지난 2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의 지하 핵실험장은 주로 지하수가 희박한 사막지대에 있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은 강수량과 지하수가 풍부한 지역에 있다"며 "핵실험장 반경 40km 이내에는 길주군·명간군·명천군·어랑군·백암군·단천시의 주요 거주지가 포함된다"고 분석했습니다.
풍계리 핵실험장 반경 40km 이내 지역과 남대천 위험 지역 지도 /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어 "또한 남대천을 따라 주요 거주지가 형성된 화대군과 김책시도 물을 통한 오염 위험이 높은 지역에 포함시켰다"면서 "이 8개 시군의 전체 인구는 약 108만 명, 이 중에 남대천 수계 인근에 거주해 영향받는 주민을 50%로 가정하면 약 54만 명, 25%로 가정할 시 약 27만 명"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올해 들어 통일부는 2006년 1차 핵실험 뒤 탈북한 길주군과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총 796명을 상대로 피폭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원자력의학원과 함께 진행하는 이번 조사는, 올해의 경우 우선 89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시작했는데 오는 11월까지 6개월간 진행됩니다.
통일부는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한편, 이후에도 원자력의학원의 검사 역량에 맞춰 차례로 피폭 조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아직까지 조사 결과의 정책적 목적이나 활용 방안 등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북한이 언제든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는 가운데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한편 길주군 인근 주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핵실험 뒤에 ‘귀신병’ 속출…북한 풍계리 ‘피폭’ 어디까지?
-
- 입력 2023-09-20 16:37:33
북한의 '풍계리(Punggye-ri)'라는 지명은 북한 핵 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2006년부터 총 6번의 핵실험이 진행된 핵실험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한창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던 2018년,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려는 듯 한국 언론까지 현장으로 초청해 실험장을 '폭파'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 풍계리가 속한 함경북도 길주군, 그곳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길주군 출신으로 우리나라로 넘어온 탈북민들이 오늘(20일) 핵실험 뒤의 삶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 "금쪽같던 아들, 평양에서 병원도 못 가 보고…"
길주군에서 50년 넘게 산 탈북민 이영란(가명) 씨. 이 씨는 처음 풍계리 핵실험장이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군 시설이겠거니 생각했고 핵실험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70리, 즉 30km도 떨어져 있지 않던 핵실험장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이미 1, 2차 핵실험이 끝나고 3차 핵실험이 진행됐던 2013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3차 핵실험을 했다고 조선중앙TV 보도에 나왔을 때, 우리는 장마당에 나가서 정말 다 너무 기뻐했습니다. (그때는) 핵실험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기 때문에, '핵실험을 했으면 미국놈들이 우리나라(북한)한테 이젠 꼼짝 못 하겠구나', 막 다 들떠서 춤추는 사람도 있고 그랬습니다. - 탈북민 이영란 씨 |
하지만 핵실험이 어떤 것인지는 머지않아 알게 됐습니다. 이 씨의 외아들에게는 자주 어울리는 친구가 7명 있었다고 합니다. 다들 건강하던 아들 친구들은 3차 핵실험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결핵 진단을 받더니, 그로부터 채 4년이 지나지 않아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씨의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안 되는 벌이로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어려웠던 이 씨는, 돈을 벌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아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탈북 뒤 한국에서) 여기 돈으로 내가 6백만 원을 보내줬어요. 그랬더니 '엄마, 이거 가지고 평양병원에서 얼마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저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길주군 간염 환자, 결핵 환자 등은 일체 평양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고…." "길주군 상하수돗물도 다 그 핵실험장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수원지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거든요. 길주군 시민들이 다 핵에 피폭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 탈북민 이영란 씨 |
2011년 한국에 온 김순복(가명) 씨도, 길주군에 살던 당시 풍계리에서 흘러 내려오는 남대천의 물을 식수로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산중에 차단봉이 설치되고 이동이 통제되더니 핵실험장이 건설됐습니다. 풍계리는 그전까진 물 좋고 경치 좋고 과일 농사 잘되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핵실험장이 만들어진 뒤에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이 말라 없어지거나 나무가 원인 모르게 썩어들어가는 등 산이 병들어가고, 사람들도 함께 병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류머티즘, 결핵, 피부염 환자가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밖에 진단이 명확지 않은 병을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을 가리켜 '귀신병'에 걸렸다고 말을 했고, 무당을 찾아가 방토(굿)하기도 했습니다." - 탈북민 김순복 씨 |
■ "핵실험장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 지하수 통해 확산 가능…최소 수십만 명 영향"
앞서 북한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는 지난 2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의 지하 핵실험장은 주로 지하수가 희박한 사막지대에 있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은 강수량과 지하수가 풍부한 지역에 있다"며 "핵실험장 반경 40km 이내에는 길주군·명간군·명천군·어랑군·백암군·단천시의 주요 거주지가 포함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또한 남대천을 따라 주요 거주지가 형성된 화대군과 김책시도 물을 통한 오염 위험이 높은 지역에 포함시켰다"면서 "이 8개 시군의 전체 인구는 약 108만 명, 이 중에 남대천 수계 인근에 거주해 영향받는 주민을 50%로 가정하면 약 54만 명, 25%로 가정할 시 약 27만 명"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올해 들어 통일부는 2006년 1차 핵실험 뒤 탈북한 길주군과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총 796명을 상대로 피폭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원자력의학원과 함께 진행하는 이번 조사는, 올해의 경우 우선 89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시작했는데 오는 11월까지 6개월간 진행됩니다.
통일부는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한편, 이후에도 원자력의학원의 검사 역량에 맞춰 차례로 피폭 조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아직까지 조사 결과의 정책적 목적이나 활용 방안 등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북한이 언제든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는 가운데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한편 길주군 인근 주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