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성지’ 만든 비디오가게 사장님…“영화의 ‘급’보다 중요한 건 독창성”

입력 2023.09.27 (20:38) 수정 2023.09.2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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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비디오 가게의 소장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늘(27일) 개봉한 영화 '킴스 비디오'는 사라진 테이프의 행방을 추적하며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입니다. 1990년대, 수많은 영화인의 '성지'였던 뉴욕의 '킴스 비디오'가 영화의 소재인데요. 무단 복제까지 감행하며 진귀한 컬렉션을 완성했던 가게 주인이 바로 한국인 사업가 김용만 씨입니다. 평범한 비디오 대여점이기를 거부하며, '취향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킴스 비디오'를 이끌었던 김 대표가 21일 영화 개봉을 맞아 KBS 취재진과 마주 앉았습니다.


'킴스 비디오' 설립자이자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인 김용만 씨가 21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킴스 비디오' 설립자이자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인 김용만 씨가 21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요새는 비디오 테이프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한 에디슨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비디오로 보아야 그 느낌 그대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비디오라는 매체의 어떤 점이 특별한가.

그 답을 하려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영화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별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지만, 영화를 수집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특별하다. 영화를 한 편씩 수집할 때마다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가 있고 쉽게 잊어버리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는 손에 넣은 과정이 극적이었기에 특별한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1초에 24프레임이 지나가는 현대 영화와 달리 에디슨의 작품은 속도가 훨씬 느리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겠구나', '그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까지 상상이 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정신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하게 됐다.

이름난 예술 영화부터 소위 'B급', 'C급' 영화까지 골고루 찾아볼 수 있었던 게 '킴스 비디오'의 매력이었던 듯 하다. 어떤 기준으로 소장품을 고르나.

내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분명하다. B급이냐, C급이냐 이런 구분보다는 그 안에 있는 독창성을 봐야 한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보고 굉장히 혼란스러우면서도 어마어마한 자유를 느꼈다. 저작권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가장 먼저 지지 선언을 해 준 존 워터스 감독의 작품 전부에도 자유가 녹아 있다. 혼란스러워 보이고 굉장히 생소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해방감은 다른 감독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존은 오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도장을 찍었다고 조금 전에 사진도 보내 왔더라. 지금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감독이다. '핑크 플라밍고'(1972)를 보고 C급이라고 하는데, '헤어 스프레이'(1988) 같은 영화는 아주 A+급이다.

영화 '킴스 비디오'의 한 장면. 제공 영화사 오드.영화 '킴스 비디오'의 한 장면. 제공 영화사 오드.
단순한 대여점이 아니라, 문화를 '케이터링(Catering)'한다는 표현으로 철학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고객을 가르치려 든다는 비판을 받았을 법한데.

뉴욕 타임스도 우리를 두고 '건방진 가게, 건방진 직원들, 그리고 건방진 주인'이라는 두 페이지짜리 기사를 쓴 적 있다. 그런데 말미에는 '킴스 비디오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적었더라. 물론 '케이터링'이란 말이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직원들은 굉장히 전문가였다. '킴스'를 거친 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이 수도 없이 많다. 99%의 비디오 대여점이 '드라마', '액션', 'SF' 이런 식으로 구역을 나눴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감독 한 분, 한 분을 존경한다는 취지에서 감독별, 각본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진열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찾기가 힘들었다. 잘 모르면 겸손하게 우리 직원들에게 와서 배우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과거엔 비디오 가게에서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나는 '즐거운 우연'이 가능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는 취향을 분석해 전에 선택했던 것과 비슷한 작품을 추천한다. 이런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넷플릭스 이야기만 나오면 화가 많이 난다. 이런 수준의 서비스일 줄 알았다면 이를 악물고 '킴스 비디오'를 다른 방향으로 바꿨을 텐데. 쉽게 포기했다는 후회를 솔직히 많이 한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하던 30~50만 편의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썼다. 다시 돌아간다면 5천~1만 개 정도로 집중해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데,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컬렉션 자체가 너무 빈약하다. 상업적 사고와 인류애적 사고가 부딪힐 때 과감하게 상업적인 선택을 내리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쪽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킴스 비디오' 설립자이자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인 김용만 씨가 대화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킴스 비디오' 설립자이자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인 김용만 씨가 대화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한국 영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킴스 비디오' 덕에 빛을 본 한국 영화가 있을까.

(내가 제작한) 박철수 감독의 <301·302>(1995)는 당시 뉴욕대를 다니던 19살 학생이 1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써 온 게 시작이었다. 장편 영화로 발전해 미국 배급까지 됐다.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예술 공헌상을 받기도 한 박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도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 어떻게든 한국 영화를 '킴스 비디오'를 통해 배급하고 싶었는데, 1980년대 여건상 상당히 어려웠다. 그런데 의외로 맨해튼에 있는 한국문화원에 갔더니 내가 찾던 비디오들이 다 그냥 먼지 속에 있더라. 빌려와서 대부분 복제해 가게에 올렸다. 손님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지금은 영화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이 'K-웨이브'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수도 없이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숨은 역할이 있었겠지. 나도 그런 역할을 해보려고 굉장히 노력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타인의 저작권을 무단으로 침해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간담회에서 '디지털 민주주의'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저작물의 공유를 주장하는 '카피 레프트' 운동을 지지하나. 아니면 남이 정한 것의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성향인가.

가족 이야기를 해야 시원한 대답이 될 것 같은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문중의 장손이다 보니 집에 제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때마다 친척 어른들에게 '우리 집안은 이런 곳이다', '우리 집안은 함부로 살아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도 '집안을 대표해서 산다'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까지 21개의 사업체를 내 손으로 세웠는데, 이름에 전부 '킴'이 들어갈 정도니까. 그만큼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집안이다. 젊었지만 이미 다른 사업에서 수입이 잘 나오는 상황이었기에 비디오 대여업만큼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해보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킴스 비디오'를 운영하며) 한 번도 불법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판권을 가진 배급사보다 관객들의 볼 권리가 중요하다는 게 내 철학이었다. 저작권과 관련해 무수한 법적 문서를 받고 FBI 조사도 받았지만, 직원들도 한 번도 동요하지 않았다. 손님들도 우리를 지지했다. 생활을 하면서도 '내 집안이 어설프게 불법을 저지르며 사는 그런 집안이 아니야' 이런 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초지일관 같은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킴스 비디오'를 재밌게 본 관객에게는 어떤 영화를 추천하고 싶나.

'킴스 비디오' 직원이자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닉 제드의 '폴리스 스테이트(Police state)'라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경찰 국가라는 제목인데, 1986년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서 경찰이 노숙자를 진압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성 드라마 영화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어 본다면 큰 감동을 받을 거다. 두 번째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추천한다. 영화 속에서 한 침팬지가 나뭇가지 하나를 줍는 장면이 압권이다. 주변에 있던 침팬지들이 굉장히 몸을 사리고 조심하는데, 권력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우연히 집었을 뿐인데 왜 나머지 침팬지들은 알아서 줄을 서는가. 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교훈이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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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9-27 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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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비디오 가게의 소장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늘(27일) 개봉한 영화 '킴스 비디오'는 사라진 테이프의 행방을 추적하며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입니다. 1990년대, 수많은 영화인의 '성지'였던 뉴욕의 '킴스 비디오'가 영화의 소재인데요. 무단 복제까지 감행하며 진귀한 컬렉션을 완성했던 가게 주인이 바로 한국인 사업가 김용만 씨입니다. 평범한 비디오 대여점이기를 거부하며, '취향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킴스 비디오'를 이끌었던 김 대표가 21일 영화 개봉을 맞아 KBS 취재진과 마주 앉았습니다.


'킴스 비디오' 설립자이자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인 김용만 씨가 21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요새는 비디오 테이프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한 에디슨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비디오로 보아야 그 느낌 그대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비디오라는 매체의 어떤 점이 특별한가.

그 답을 하려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영화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별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지만, 영화를 수집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특별하다. 영화를 한 편씩 수집할 때마다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가 있고 쉽게 잊어버리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는 손에 넣은 과정이 극적이었기에 특별한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1초에 24프레임이 지나가는 현대 영화와 달리 에디슨의 작품은 속도가 훨씬 느리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겠구나', '그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까지 상상이 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정신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하게 됐다.

이름난 예술 영화부터 소위 'B급', 'C급' 영화까지 골고루 찾아볼 수 있었던 게 '킴스 비디오'의 매력이었던 듯 하다. 어떤 기준으로 소장품을 고르나.

내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분명하다. B급이냐, C급이냐 이런 구분보다는 그 안에 있는 독창성을 봐야 한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보고 굉장히 혼란스러우면서도 어마어마한 자유를 느꼈다. 저작권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가장 먼저 지지 선언을 해 준 존 워터스 감독의 작품 전부에도 자유가 녹아 있다. 혼란스러워 보이고 굉장히 생소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해방감은 다른 감독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존은 오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도장을 찍었다고 조금 전에 사진도 보내 왔더라. 지금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감독이다. '핑크 플라밍고'(1972)를 보고 C급이라고 하는데, '헤어 스프레이'(1988) 같은 영화는 아주 A+급이다.

영화 '킴스 비디오'의 한 장면. 제공 영화사 오드. 단순한 대여점이 아니라, 문화를 '케이터링(Catering)'한다는 표현으로 철학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고객을 가르치려 든다는 비판을 받았을 법한데.

뉴욕 타임스도 우리를 두고 '건방진 가게, 건방진 직원들, 그리고 건방진 주인'이라는 두 페이지짜리 기사를 쓴 적 있다. 그런데 말미에는 '킴스 비디오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적었더라. 물론 '케이터링'이란 말이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직원들은 굉장히 전문가였다. '킴스'를 거친 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이 수도 없이 많다. 99%의 비디오 대여점이 '드라마', '액션', 'SF' 이런 식으로 구역을 나눴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감독 한 분, 한 분을 존경한다는 취지에서 감독별, 각본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진열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찾기가 힘들었다. 잘 모르면 겸손하게 우리 직원들에게 와서 배우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과거엔 비디오 가게에서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나는 '즐거운 우연'이 가능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는 취향을 분석해 전에 선택했던 것과 비슷한 작품을 추천한다. 이런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넷플릭스 이야기만 나오면 화가 많이 난다. 이런 수준의 서비스일 줄 알았다면 이를 악물고 '킴스 비디오'를 다른 방향으로 바꿨을 텐데. 쉽게 포기했다는 후회를 솔직히 많이 한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하던 30~50만 편의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썼다. 다시 돌아간다면 5천~1만 개 정도로 집중해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데,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컬렉션 자체가 너무 빈약하다. 상업적 사고와 인류애적 사고가 부딪힐 때 과감하게 상업적인 선택을 내리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쪽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킴스 비디오' 설립자이자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인 김용만 씨가 대화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한국 영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킴스 비디오' 덕에 빛을 본 한국 영화가 있을까.

(내가 제작한) 박철수 감독의 <301·302>(1995)는 당시 뉴욕대를 다니던 19살 학생이 1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써 온 게 시작이었다. 장편 영화로 발전해 미국 배급까지 됐다.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예술 공헌상을 받기도 한 박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도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 어떻게든 한국 영화를 '킴스 비디오'를 통해 배급하고 싶었는데, 1980년대 여건상 상당히 어려웠다. 그런데 의외로 맨해튼에 있는 한국문화원에 갔더니 내가 찾던 비디오들이 다 그냥 먼지 속에 있더라. 빌려와서 대부분 복제해 가게에 올렸다. 손님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지금은 영화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이 'K-웨이브'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수도 없이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숨은 역할이 있었겠지. 나도 그런 역할을 해보려고 굉장히 노력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타인의 저작권을 무단으로 침해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간담회에서 '디지털 민주주의'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저작물의 공유를 주장하는 '카피 레프트' 운동을 지지하나. 아니면 남이 정한 것의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성향인가.

가족 이야기를 해야 시원한 대답이 될 것 같은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문중의 장손이다 보니 집에 제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때마다 친척 어른들에게 '우리 집안은 이런 곳이다', '우리 집안은 함부로 살아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도 '집안을 대표해서 산다'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까지 21개의 사업체를 내 손으로 세웠는데, 이름에 전부 '킴'이 들어갈 정도니까. 그만큼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집안이다. 젊었지만 이미 다른 사업에서 수입이 잘 나오는 상황이었기에 비디오 대여업만큼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해보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킴스 비디오'를 운영하며) 한 번도 불법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판권을 가진 배급사보다 관객들의 볼 권리가 중요하다는 게 내 철학이었다. 저작권과 관련해 무수한 법적 문서를 받고 FBI 조사도 받았지만, 직원들도 한 번도 동요하지 않았다. 손님들도 우리를 지지했다. 생활을 하면서도 '내 집안이 어설프게 불법을 저지르며 사는 그런 집안이 아니야' 이런 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초지일관 같은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킴스 비디오'를 재밌게 본 관객에게는 어떤 영화를 추천하고 싶나.

'킴스 비디오' 직원이자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닉 제드의 '폴리스 스테이트(Police state)'라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경찰 국가라는 제목인데, 1986년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서 경찰이 노숙자를 진압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성 드라마 영화다. '킴스 비디오'가 소장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어 본다면 큰 감동을 받을 거다. 두 번째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추천한다. 영화 속에서 한 침팬지가 나뭇가지 하나를 줍는 장면이 압권이다. 주변에 있던 침팬지들이 굉장히 몸을 사리고 조심하는데, 권력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우연히 집었을 뿐인데 왜 나머지 침팬지들은 알아서 줄을 서는가. 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교훈이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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